내가 교수님의 레포트 주제를 처음 듣자마자 생각난 것은 오리온 초코파이-情이란 CF였다. 그 씨에프를 보면 마음이 참 따뜻해지면서 말 그대로 우리나라의 정이란 것-한밤에 손님이 찾아오면 아랫목에 두었던 따듯한 밥을 대접하던 마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면서 가슴에서 표현하기 힘든 간질간질한 뭔가가 일어나는 듯했다.
하지만 뉴스, 시사프로그램, 신문 심지어 드라마까지도 연일 우리에게 좋지 않은 자화상만을 심어준다. 얼마 전에 신문에 발표되었던 대학의 취업률만도 그렇다. 정확한 근거 없이 그러한 정보를 밝히기에만 급급해서 전국 내 4년제 대학을 서열화하고 학벌주의를 각인시킨다. 그래서 우리들 대부분은 조금이라도 더 나은 대학이라고 생각되는 곳에 가기 위해 편입하려하고, ‘재수는 필수이고 삼수는 선택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되었다.
지금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들도 그러한 미디어의 행태에서 예외는 아니다.
그 예로 ‘러브스토리 인 하바드’란 제목의 sbs 미니시리즈가 방영되고 있다. 아직 초반부를 방영중이기에 드라마의 내용이나 구성 등은 자세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주인공이 하버드 법대생, 의대생이란 것은 안다. 주인공도 서울대생 김태희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미디어는 끊임없이 성공한 사람들만을 주목한다. 서울대가 아니면 이미 패자가 되는 시대라고 말한다. 서울대학교에서 아무리 많은 신입생을 받아들인다고 하여도 2천명을 넘을 수는 없다. 그러면 그 2천명을 제외한 모든 수험생들은 실패한 사람이며 낙오자가 된다. 토익 990점이 안되면 바보라고 한다. 우리나라 언어도 제대로 모르면서 영어는 만점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다른 것을 아무리 잘해도 영어를 완벽하게 하지 않으면 소용없다고 한다. 즉, 사회가 그 사람의 됨됨이나 그 사람의 다른 특성을 봐주는 게 아니라 학벌만, 영어실력만 중시할 뿐이라고 우리를 세뇌시킨다.
뉴스에서는 경기가 너무 악화되었기 때문에 실업자는 80만에 육박하고 일자리는 없고 취업률은 낮다고 한다. 이러한 뉴스는 우리 학생들을 끊임없이 불안하게 한다. 이른바 명문대생도 뚫기 힘든 취업의 문을 이류, 삼류의 대학이 갈수 있을 리는 만무하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굉장히 들어가기 어려운 한국전력과 같은 공기업의 경우 인력을 구할 때 출신학교는 가리고 심사한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올해 입사한 사람 중에 서울시립대 학생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미디어에선 이런 것을 주목하여 다루지 않는다. 이것은 비명문대에 다니는 취업하고자 학생에게 희망을 주는 좋은 소식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도 사실 한 번 더 수능을 치르고 싶었다. 이른바 더 좋은 대학이란 곳에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봤고 그것은 나의 생각을 변화시켰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아이비리그 대학에 다니는 한국계 학생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은 하버드에 다니는 것이 성공이란 것 자체를 의미한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그 하버드란 간판이 아니라 그들이 얼마나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 있으며 얼마나 열심히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문제였다. 내가 어느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것 말고 내가 어떤 사람이다 는 것을 더 중시해야 한다는 것은 그들의 모습 속에서 볼 수 있었다. 그들은 24시간을 소원히 여기지 않고 끊임없이 탐구하고, 끊임없이 남을 위해 봉사하고, 삶에 대해 고뇌한다. 하지만 드라마가 보여주는 것은 하버드란 간판밖에 없다. 그 하버드란 학교의 아름다움(어쩌면 미국이란 나라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건지도 모르겠다)과 그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란 명분만을 보여준다. 어쩌면 내가 보았던 다큐멘터리도 그 제일주의의 일환일지도 모르겠다. 세계 최고의 명문대를 보여줌으로서 우리에게 세계최강으로 서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 프로그램의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매년 수많은 학생들이 조기유학을 가고 있고, 특히 아이비리그대학에 가고자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현재 우리의 미디어는 그렇다. 그 안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보여주기 보다는 그저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며 무엇이 중요한지를 간과하게 만든다.
사회를 이끌어 가는 것은 엘리트층일 수 있다. 하지만 사회가 엘리트층만으로 유지될 수 있는가하면 그것은 아니다. 사회의 가장 바닥에서 일하는 사람이 없다면 우리가 걷는 길, 차가 다니는 도로, 심지어 지하철에 사람이 다닐 수 없을 것이다. 모두가 엘리트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엘리트만 중시하는 사회에서 누가 비엘리트가 되려하겠는가? 왜 미디어는 가장 험한 일을 하며 가장 수고하는 이는 다루지 않는 것일까? 오히려 성공과 부만을 주목하면서 그들을 비천하고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하는 것일까? 엘리트가 사회를 이끌어 갈수 있을지는 몰라도, 사회를 유지시킬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매체의 각인 속에서 우리는 어떠한 시각을 가지고 살아야 할까? 그것은 끊임없는 비판의식이 될 것이다. 그 비판이란 단지 미디어에만 한정 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것도 포함된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비판이란 자기애 과정이 포함한 된 것이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늘 돌이켜봐야 할 것 이다. 내게 고정되어 있는 가치관에 잘못된 점은 없는지 지나친 편견이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내가 정말 가야할 방향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고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배우는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이 우리 안에 각인된 학벌주의를 깨뜨리고 삶에서 더 중요한 무언가를 깨닫게 할 것이다.
내가 그 프로그램에서 멋진 하버드란 것만을 보았다면 나는 삼수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그 사람들을 보면서 최고라 보여 지는 학교가 아니라, 삶을 사는 것이- 매일 한 시간 일분일초를 살아가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기에 나의 학교를 사랑하며, 나의 삶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