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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독서 일기 쓰는 법 - 새로운 배움을 위해 기록하기
수년 동안 나는 잠들기 전에 애거서 크리스티를 읽었다. 크리스티의 소설이 자장가 같은 문체는 아니지만, 이제 나는 그의 모든 작품의 결말이 어떠하지 일일이 꿰고 있다. 그래도 나는 이 소설들을 끊임없이 되풀이하여 읽어 낼 수 있다. 책 읽는 데는 두뇌의 절반만 쓰면서 다른 절반으로는 그날의 사건을 하나하나 재생하면서 정리하는 까닭이다. 책 자체로는 별다른 소득이 없지만 잠은 잘 든다.
이와 동일한 독서법은 본격 문학 작품을 읽을 때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상황은 다음과 같다. 나는 책을 읽고 있다. 어디선가 문 닫히는 소리가 신경을 거스른다. 내 신경은 이쪽 문에서 저쪽 창문으로, 정리하지 못한 일과 처리해야 할 청구서 사이를 오간다. 나 혼자만 그런 게 아니다. 우리는 너무 바쁘고 우리의 정신도 마찬가지다. 데이비드 덴비가 <위대한 책들과의 만남>에서 서정적으로 불만을 토로한 것처럼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현실이다.
"더 이상 소설에 '순종'할 수가 없다...철로 위의 장애물 때문에 정지한 기차, 궂은 날씨, 정전을 읽다 말다 읽다 말다 반복한다. 텔레비전과 영화를 보고 비디오 게임을 하고 랩 음악을 들으며 성장한 젊은이들은 길로 복잡한 문자 서사의 영향 아래 성장한 이들에 비해 참을성이 부족하다고 다들 불만을 토로하지만, 어릴 적 나는 텔레비전도 그다지 즐겨 보지 않았는데 중년인 지금 참을성을 잃었고....나의 삶은 훨씬 복잡해졌다. 나는 만만치 않은 영리한 여자와 결혼했으며 집안을 온통 뛰어다니며 지내는 두 아이가 있고 여러 직종에 종사했으며 열여덟 살 시절에 비해 생각할 거리가 훨씬 많아졌다. 훨씬 넓어진 경험의 폭이 이제는 메아리를 울려 대고 있는 것이었다."
플라톤이나 세익스피어 혹은 콘래드를 앉아서 읽을 때믄 '단순한 독서'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정신을 집중하고, 독서를 조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만 눈앞에 스쳐 지나가는 사상의 뼈대를 보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작 와츠가 우리에게 말한 대로 단순히 읽기만 해서는 안 되며 "제대로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관념과 정서를 스스로에게 건네어 전달하는" 행위에 대해 "숙고하고 연구"해야 한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독서한 내용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하여 독서 일기를 쓰면 된다. 자신이 쓴 내용은 제대로 기억에 남기 마련이다. 자신의 언어로 요약한 내용은 자기 것이 된다.
초기에 일기는 지금과는 달리 자신의 느낌을 반추하는 도구가 아니었다. 이즈음 '일기'라는 단어의 쓰임새는 주관적이고 내면으로 초점이 맞추어진 강렬한 생각과 묵상 모음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가령 여행 일기("당신을 편안하거나 불편하게 만드는 전통이나 관습은 어떤 것인가? 그 이유는?"). 꿈 일기("이 꿈이 내가 스스로를 대하는 방식에 대해서 내게 무엇을 말해 주는가?"). 창작 일기("특정 주제에 집중해서, 결코 표절하지 말고 생각나는 모든 것을 적는다."), 몸과 마음 일기("당신의 내면에 현명한 스승이 있으니, 글쓰기를 통해 신체라는 스승의 말씀을 좀 더 명료하게 '들을 수'있게 될 것이다.")를 위한 생각과 활용법을 소개한 <퍼스널 저널링> 최근 호를 살펴보기 바란다. (참고로 <퍼스널 저널링>에서는 신문 용지와 세탁기 먼지망에 걸러진 먼지 뭉치, 믹서로 수제 종이 만드는 법도 알려 주니 평범한 여러분의 일기장을 분명 예술 작품으로 만들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고전을 혼자 공부하며 쓰는 일기는 외적인 것에 더 초점을 맞춘다. 독자로서 기억하고 싶은 인용문과 발췌문을 옮겨 적은 가제본이나 제본한 백지 책자인 지난 세기의 '비망록'을 본뜬 것이다.
가장 단순한 형태의 비망록은 수제본으로 엮은 <바틀렛이 전해주는 친숙한 이야기>로, 글쓴이의 기억 보조 장치였다. 수많은 비망록들이 이 책에 나오는 인용문을 수록하는 데 그쳤다. 비망록은 글쓴이들이 기억할 거리로 무엇을 선택하는지 확인하는 데 유익하다. 제퍼슨의 대학 시절 '비망록'에는 무엇보다 특히 에루리피데스의 의견이 수록되어 있다. "아아, 죽을 운명을 지닌 자는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구나. 부나 운명의 노예이거나, 대중이나 법적 절차상의 문제 때문에 자신의 믿음을 배반하는 관례에 의존하는 이라니." 제퍼슨이 손수 작성한 모음에 대해 질베르 시나르가 언급했던 것처럼 "미국식 제도의 근간을 만든 많은 사람들의 도덕적 토대에서 고전 공부가 본질적인 부분"이었으며, 비망록은 그 정도를 보여 준다. 하지만 이러한 전통적인 비망록의 인용문 모음 가운데는 묵상이 수록되어 있지 않아서 글쓴이가 에우리피데스나 플라톤을 옮겨 적으며 했을 법한 생각에 관해서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가 없다. 개인적인 의견이 빠진 것이다.
한편 비망록은 좀 더 개인적인 형식을 취하기도 했다. 저자들은 노트를 가지고 다니면서 하루 중 어느 때든 시간이 비면 간단히 기록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필요한 정보를 옮겨 적었을 뿐 아니라 성찰한 내용과 끼적거린 시 습작이나 창작물에서부터 독서 요약문까지 모아 놓았다. 비망록은 인공 기억 장치가 되었다.
고전을 혼자 공부하기 위한 독서 일기는 비망록의 확장된 유형에 따라야 한다. 꾸밈없는 사실만 모아서도 안 되고, 마음과 영혼 속에서 진행되는 내적 언급으로만 채워서도 안 된다. 오히려 독서 일기는 외적인 정보를 취하고 기록하며, 비망록과 마찬가지로 인용하고, 자신의 언어로 요약문을 써 가면서 그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이윽고 성찰과 개인적인 사고 과정을 통해 평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독서 일기를 쓸 때는 세 단계의 과정을 따라야 한다. 마음에 와 닿는 특정 어구와 문장, 문단들을 적는다. 그리고 독서를 마쳤을 때 다시 돌아가서 무엇을 얻었는지 간략하게 요약한다. 마지막으로 자신만의 반발 지점과 질문, 생각을 적는다.
이런 식으로 일기는 객관적인 학습과 주관적인 학습을 연결시킨다. 1834년 브론슨 앨코트가 쓴 독서 일기의 한 부분을 예로 들 수 있다.
"교육이란 생각이 영혼 밖으로 열려 외부의 사물과 관련을 맺는 과정이며, 다시 내면으로 돌아와 반성함(비추어 고찰함)으로써 사물의 실재와 형태를 의식하게 만들어 주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자아실현이다.... 자신을 간절히 알고 싶은 사람은 외부 사물 속에서 자신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 제대로 찾을 수 있고, 자신의 가장 깊숙한 내면의 빛을 탐사하는 셈이 될 것이다."
고전적인 혼자 공부하기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사실적인 정보를 머릿속에 '쑤셔 넣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해하는 것이다. 사실을 정신 구조 속에 섞어 넣고 구체화하기 바란다. 내적인 삶에 비추어 사실들의 의미를 성찰해 보자. 플라톤 철학이나 제인 오스틴의 소설 속 여주인공의 행동이나 정치적인 전기 등 '외부의 사물들'은 우리 자신의 '실재와 구체'를 더 의식하게 만든다. 이것이야말로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혼자 공부하기의 목표다. 독서 일기는 학습이 일어나는 장소이다.
이해를 위한 첫걸음은 읽고 있는 책의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며, 내용을 파악하는 가장 오래되고 신뢰할 만한 방식은 자신의 말로 재서술해 보는 것이다. 내용에 정통하려면 요약해야 한다.
리디아 시고니는 젊은 여성 독자들에게 읽은 책의 내용을 요약하라고 충고한다.
"매주 마지막 날이면 가장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주제를 요약해서 글로 쓰세요....저자의 언어가 아닌 언어로, 글쓰기용으로 마련된 노트에 깔끔하게 정리하세요....그 노트를 농축된 지식과 생각의 순금 저장소로 만드세요....기억을 강화하기 위한 최고의 길은 (우리 대부분은 아마 그렇게 하겠지만!) 읽은 책의 내용을 글자 그대로 옮기지 않고, 저자가 주장하느 취지를 자신의 언어로 정확하고 명료하게 서술하는 것입니다.
독서 일기에는 무엇보다 독서한 내용의 '취지'가 포함되어야 한다.
이러한 요약문이 좀 더 생각해 볼 출발점을 제공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령 E. M. 포스터의 <비망록>이 바로 고전을 혼자 공부하는 식의 독서 일기이다. 포스터 사후에 <비망록>을 출판한 편집자 필립 가드너는 "인상적인 인용문, 시, 논평문을 사전식으로 정의한 요약문을 훨씬 능가"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이 책은 포스터의 인생 후반에 대한 날카롭고 조롱하는 듯하지만 때로는 아주 감동적인 해설을 제공한다" 포스터는 자신이 읽은 책의 자투리들을 기록하고 있다.
잠언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같이 여기게 되리라 (잠 27:14)
물에 얼굴을 비추면 서로 같은 것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추어질 것이다. (잠 27:19)
모든 것이 끝난 지금, 끝나지 않을 것을 받아 주오. (세익스피어, 소네트 110)
그는 비평문들을 기록하면서 자신이 읽은 책의 가치를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헤라 개블러는 중요한 변화를 하나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한다.....
입센이 나만큼이나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극 작품 속 여주인공처럼 완벽할 정도로 사소한 것을 극화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입센은 분명 여주인공이 비겁하고 불안하며 나약해 보이기를 원했다."
포스터는 <비망록>에 물론 개인적인 내용도 빼놓지 않는다. 1947년 그는 허무에 대하여 끼적거린다.
"펠로스 빌딩 뒤로 보이는 저녁 하늘. 원뿔형 구름 한 점.....분홍빛과 금빛으로 얼룩덜룩하다. 두 색깔 모두 희미하니 얼룩덜룩이란 단어는 너무 강하다. 미학적으로 말하면 무한히 광대하다. 일차원적으로 측정하라면 나로선 알 도리가 없다."
1953년에는 치과에 들렀다가 쉬고 난 후 이렇게 쓴다.
"작가는 글을 써야 하며 나는 기분이 풀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펜을 든다. ... 2월 26일 6시 45분이다... 토니 힌드맨이 들렀는데....나는 그와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고, 방해받고 싶지도 않아서 친절히 대하지 않았다. 7시 30분이다. 좀 더 빨리 글을 쓸 수는 없을까? 나는 줄곧 '생각'해 왔다.
이것은 <퍼스널 저널링>에서 분류한 '창작 일기'에 아주 가까운 예다. 하지만 아주 가끔 독서 중에 마주친 구절이나 생각에 촉발되어 쓴 사실적인 글이 실려 있다. 이를테면 포스터는 토머스 그레이의 문장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음미한다.
"토머스 그레이가 "오랫동안 눈과 마음을 길들였던 사람을 잃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안다."고 썼을 때, 나는 친화감을 느낀다. 게으름과 충실함에는 어떤 관련성이 있다.
포스터가 자신의 독서 내용을 요약하고 평가한 방법을 살펴보면 고전을 통한 독서 일기의 목적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드러난다. 1942년 포스터는 토머스 호지킨의 <이탈리아와 그 침략자들 376-476>을 다 읽었다. 그의 일기 도입부에는 이런 글이 있다.
"로마는 왜 몰락했나? 부수적인 원인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페르시아에 대한 두려움으로 콘스탄티노플을 건립했기 때문이다. 북쪽으로부터 위협은 절대 현실화되지 않았다. "로마의 생명력이 카르타고, 안디옥, 알렉산드리아의 여러 신경 중추로 분산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로마를 파괴시킨 것은 콘스탄티노플이었다. 고목의 한 부분이 썩어 버렸다."
둘째, 기독교를 또 다른 원인으로 들 수 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와 다르다. 국가를 성화하는 제국의 신격화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는 내용 요약을 끝내면서 자신의 생각을 덧붙인다.
"이번 유람에서 원래 나를 몰아간 힘은 평행선을 이루는 지점을 발견하려는 욕심이었다. 그러다 과거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되었다가 이제는 그것마저 맥이 풀려, 이 분석을 끝내려고 애써 나 스스로를 채근했다. 나의 무지와 지식의 무력함이 나를 짓누른다."
이것이 시고니가 추천하는 독서 요약의 본보기다. 여기서 포스터는 독서의 주요한 쟁점을 자신의 말로 재서술하고, 호지킨이 특유의 간결한 문장으로 제시한 부분을 글자 그대로 인용하면서 호지킨의 쟁점 하나하나를 현재의 고뇌 지점과 연결시키고, 이어서 위대한 제국이 허물어진 것을 보는 스스로의 정서적인 반응에 대해서 감정이 묻어나는 논평까지 덧붙인다.
토머스 머턴은 자신의 메모집을 작성하면서 이와 유사한 전략을 따랐다. 그가 인생 후반부에 기록한 비망록에서 모은 문장들은 실은 <아시안 저널>에는 이런 내용들이 세 쪽에 걸쳐 소개된다. 무르티의 <불교의 중심 철학>에서 옮겨 적은 인용문("성찰적인 의식은 필연적으로 오류의 의식이다."), 아침 산책 동안의 기록 ("옵서버토리힐의 삼나무 아래서 찬양을 읊으며 걸어가는데, 아래서 힘차고 낭랑한 찬송가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골짜기가 내려다보이는 어느 오두막 옆에서 한 남자가 흔들리는 햇살을 받으며 기운차게 운동을 하고 있는데....."), 머턴 자신이 읽은 책의 내용을 요약하면서 직접 인용문과 섞어 놓은 부분("콘츠는 동양과 서양의 대화가 지금까지 철학 분야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엔 대해서 논평한다. '지금까지 유럽 철학자들, 그중에서 특히 영국 철학자들은 예전보다 훨씬 더 지역색을 드러냈다.'")을 찾아볼 수 있다.
고전을 혼자 공부할 때에는, 사상을 이해하고 평가한 다음 반응을 보여야 한다. 각자의 독서 일기에 독서 내용을 요약하여 기록해야 한다. 독서를 통한 생각들을 이해하는 도구가 바로 이것이다. 사실에 정통하는 것이 고전 교육의 첫 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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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세 번째 단계는 독서 노트에 중요한 부분을 발췌하는 연습이다.
"들었던 대화나 얘기하려는 내용을 잘 기억하려면, 내용을 간략한 개요로 발췌한 다음 되풀이하여 복습해보자." 와츠의 충고이다. 이 책을 활용하여 고전 혼자 공부하기의 다음 단계인 그 기술을 연습하기 바란다.
1) 독서 일기용으로 노트 한 권을 마련한다. 낱장을 끼웠다. 뺐다 할 수 있는 노트든 백지 노트든 상관없다.
2) 일주일에 네 차례 독서 계획을 세운 후 꾸준히 지키고, 그 시간을 이용해서 다음에 이어지는 4장을 읽으며 메모하고 간략한 요약문을 작성한다. 그런 후 다음 안내를 따른다.
1. 노트 첫 장에 장 제목을 쓴다. 쉬지 말고 한 장 전체를 통독한다. 인상적인 특정 생각이나 어구, 문장이 있으면 지체없이 메모한 다.
2. 4장은 세 개의 주된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각 부분을 자신의 언어로 요약해 본다. 그리고 자문해 본다. 이 부분에서 글쓴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일까? 이 부분에서 오직 한 가지만 기억할 수 있다면 무엇이 될까? 그렇다면, 내가 기억하고 싶어 하는 중요한 점에 대해서 글쓴이가 달리 내게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각 부분을 하나의 문단으로 요약한 후, 요약한 문단 양옆에 6-9센티미터가량의 아주 넓은 여백을 남겨 둔다.
3. 나머지 장에도 같은 방법을 적용한 후 요약한 문단을 앞에서부터 훑어본다. 그리고 각각의 요약문 가운데 정보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적는다. 이때 노트의 여백을 활용한다.(다른 색상의 펜이 편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