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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菩薩의 十種願無碍用
佛子야菩薩摩訶薩이有十種願無礙用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以一切菩薩願으로作自願無礙用과 以一切佛成菩提願力으로 示現自成正覺無礙用과隨所化衆生하야自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無礙用과於一切無邊際劫에大願不斷無礙用과遠離識身하고 不着智身하야 以自在願으로 現一切身無礙用과捨棄自身하고 成滿他願無礙用과普敎化一切衆生하야 而不捨大願無礙用과於一切劫에行菩薩行하야 而大願不斷無礙用과於一毛孔에現成正覺하야 以願力故로 充徧一切諸佛國土하야 於不可說不可說世界에爲一一衆生하야 如是示現無礙用과 說一句法호대 徧一切法界하야 興大正法雲하며 耀解脫電光하며 震實法雷音하며 雨甘露味雨하야 以大願力으로 充洽一切諸衆生界無礙用이 是爲十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원(願)에 걸림 없는 작용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모든 보살의 원으로 자신의 원을 삼는 걸림 없는 작용과, 모든 부처님이 보리를 이루는 원력으로 자기가 바른 깨달음 이룸을 나타내 보이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교화할 바 중생을 따라서 스스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는 걸림 없는 작용과, 온갖 그지없는 겁에 큰 서원이 끊어지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알음알이의 몸[識身]을 멀리 여의고 지혜의 몸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자유자재한 원으로 모든 몸을 나타내는 걸림 없는 작용과, 제 몸을 버리고 남의 원을 만족케 하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일체 중생을 두루 교화하되 큰 서원을 버리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과, 모든 겁에서 보살의 행을 행하되 큰 서원이 끊이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한 모공에서 바른 깨달음 이룸을 나타내고 서원하는 힘으로 일체 모든 부처님 국토에 두루 하여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세계에서 낱낱 중생을 위하여 이와 같이 나타내 보이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한 구절의 법을 설하여 모든 법계에 가득하게 해서 크고 바른 법의 구름을 일으키고 해탈의 번개 빛을 비추며 실다운 법의 우레를 진동시키고 감로 맛의 비를 내려 큰 서원의 힘으로 일체 모든 중생세계를 흡족하게 하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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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의 십종무애용(十種願無碍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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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유십종원무애용(有十種願無礙用)하니 : 열 가지의 원하는 데 걸림 없는 작용이 있으니
하등(何等)이 : 무엇이
위십(爲十)고 : 열 가지냐?
소위이일체보살원(所謂以一切菩薩願)으로 :소위 일체보살의 원으로
작자원무애용(作自願無礙用)과 : 스스로 원을 짓는 걸림 없는 작용과
이일체불성보리원력(以一切佛成菩提願力)으로 :모든 부처님의 보리를 이루는 원으로
시현자성정각무애용(示現自成正覺無礙用)과 : 자기가 바른 깨달음 이룸을 나타내는 걸림 없는 작용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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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화중생(隨所化衆生)하야 :교화할 바 중생을 따라서
자성아뇩다라삼먁삼보리무애용(自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無礙用)과 :스스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는 걸림 없는 작용과
어일체무변제겁(於一切無邊際劫)에 :온갖 그지 없는
대원부단무애용(大願不斷無礙用)과 : 대원력이 끊어지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과
원리식신(遠離識身)하고 :알음알이의 몸을 여의고, 원리식신이라, 잔머리를 떠나서
불착지신(不着智身)하야 : 지혜의 몸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이자재원(以自在願)으로: 자유자재한 원으로
현일체신무애용(現一切身無礙用)과 : 모든 몸을 나타내는 걸림 없는 작용과
사기자신(捨棄自身)하고 : 자기의 몸을 버리고
성만타원무애용(成滿他願無礙用)과 : 남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보교화일체중생(普敎化一切衆生)하야 :또한 일체중생을 두루 교화하되
이불사대원무애용(而不捨大願無礙用)과 :대원력을 버리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과
어일체겁(於一切劫)에 : 모든 겁에
행보살행(行菩薩行)하야 : 보살행을 행하되
이대원부단무애용(而大願不斷無礙用)과: 그러나 대원력이 끊이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과
어일모공(於一毛孔)에: 한 모공에서
현성정각(現成正覺)하야 :바른 정각, 깨달음을 이루면서
이원력고(以願力故)로 : 원하는 힘이 있는 까닭으로
충만일체제불국토(充徧一切諸佛國土)하야 : 모든 부처님 국토에 충만하며
어불가설불가설세계(於不可說不可說世界)에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세계에서
위일일중생(爲一一衆生)하야 : 낱낱 중생을 위해서도
여시시현무애용(如是示現無礙用)과 :그렇게 나타내는 걸림 없는 작용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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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일구법(說一句法)호대 : 한 구절의 법을 설해서
변일체법계(徧一切法界)하야 :모든 법계에 두루한다.
천수경 할 때도 우리가 뻥이 쎄서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보례진언(普禮眞言) 아금일신중(我今一身中) 즉현무진신(卽現無盡身)’
흥대정법운(興大正法雲)하며 : 크게 바른 법 구름을 일으키고, 정법의 구름을 일으키고
요해탈전광(耀解脫電光)하며 : 해탈의 번개 빛을 비추며
진실법뢰음(震實法雷音)하며 : 실다운 법의 우레를 진동시키고
우감로미우(雨甘露味雨)하야 : 감로맛의 비를 내려서
이대원력(以大願力)으로 : 대원력의 힘으로
충흡일체제중생계무애용(充洽一切諸衆生界無礙用)이 : 모든 중생계를 흡족케 하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
시위십(是爲十)이니라 : 이것이 열 가지다.
실제로 달을 본 사람들은 손가락을 안 본다.
여기서 지금 화엄경을 계속하는 것이 ‘손가락을 보지 말라, 손가락을 보지 말라’ 하는 것이다.
본질인 달을 봐라. 달을 봐라.
제갈공명이 ‘지금 내가 월나라로 가는 것은 오늘 가는 것이 아니라 1년 전부터 가기 시작했다’ 이런 이야기를 했잖은가.
제가 새벽에 대웅전 예불을 마치고 관음전으로 법당으로 한 바퀴 돌면서 보면 대웅전에도 선배스님이 꼭 들어가면서 신발을 뒤로 돌려놓는다.
화엄경을 안 읽어서 그렇다.
종체기용(從體歸用) 섭용귀체(攝用歸體)다.
새벽예불은 대웅전 예불이 다 끝나야 본체가 끝나고, 그다음 작용을 해서 관음전이며 다른 전각으로 간다. 저녁 예불은 다른 전각에서 끝내고 대웅전으로 모여서 본체에서 섭용귀체로 끝나도록 예불 의식에 그렇게 되어 있다.
지금은 따로따로 기도하니까 얄궂게 되었는데, 제가 드리는 말씀은 다른 게 아니고, 문수선원에 계신 여러 스님들 지금 시간이 둘째 시간이 되니까 집에 막 가고 싶잖은가. 올 때부터 이미 집에 가고 싶으셨는가?
관음전에 가면 신발을 이렇게 바깥으로 돌려놓는다. 그런데 의상스님께서는 법당에서 평생토록 서쪽을 등지고 앉지 않으셨다. 아미타불을 등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절에 가서 공부를 가르치고 이럴 때도 제자들이 부처님을 등지고 앉으니까 ‘남이 모시는 성인도 그렇게 어른 등지고 앉는 법은 아니다’ 이랬는데 스님들은 들어올 때 벌써 신발장에서 내리기 좋게 신발을 돌려 놓으셨을 것이다.
관음전에 가면 신발을 항상 바깥으로 돌려놓는데 ‘그래 하는 것이 아니다. 관음전에서 죽어버리던지 살아버리던지’ 기도 법사가 다시 신발을 돌려놓는다.
어릴 때 제가 왔다갔다 기도하면서 방장스님 시자를 3년씩 하고 그랬다. 통도사 방장 노스님을 초하루 법문이든지 법회를 할 때 모시러 가서 신발을 돌려드리려고 하면 “됐다고. 내가 신으면 된다고.” 이렇게 월하스님께서는 말씀하시곤 했다.
부방장 스님은 거만하시게, 벗어 놓으신 대로 당신이 조심스럽게 뒷걸음쳐서 내려오신다. 이렇게 항상 공부가 푹 익으신 어른들은 그렇다. 법당 가면 뒷걸음쳐서 나와야지, 일본사람들도 아니고, 부처님 등지고 나와서 얼마나 빨리 가려고 하는가?
자 잊어버리고 공부하자.
신발은 어디 안에 감춰두고 공부를 하자.
오늘 진여상회향이 끝나야 집에 가는 것이다.
앞에까지 다섯 가지를 했다.
사. 菩薩의 十種境界無碍用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境界無礙用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在法界境界호대 而不捨衆生境界無礙用과 在佛境界호대 而不捨魔境界無礙用과 在涅槃境界호대 而不捨生死境界無礙用과 入一切智境界호대 而不斷菩薩種性境界無礙用과 住寂靜境界호대 而不捨散亂境界無礙用과 住無去無來無戱論無相狀無體性無言說如虛空境界호대 而不捨一切衆生戱論境界無礙用과 住諸力解脫境界호대而不捨一切諸方所境界無礙用과入無衆生際境界호대而不捨敎化一切衆生無礙用과 住禪定解脫神通明智寂靜境界호대 而於一切世界에示現受生無礙用과 住如來一切行莊嚴成正覺境界호대 而現一切聲聞辟支佛의 寂靜威儀無礙用이 是爲十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경계에 걸림 없는 작용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법계의 경계에 있으면서 중생의 경계를 버리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부처님의 경계에 있으면서 마(魔)의 경계를 버리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열반의 경계에 있으면서 생사의 경계를 버리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일체 지혜의 경계에 들어가서 보살의 종자 성품의 경계를 끊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고요한 경계에 머물러서도 산란한 경계를 버리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고 부질없는 말도 없고 형상도 없고 자체 성품도 없고 말도 없어서 허공과 같은 경계에 머물면서도 일체 중생의 부질없는 희론의 경계를 버리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모든 힘의 해탈하는 경계에 있으면서도 일체 모든 방소(方所)의 경계를 버리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중생의 경계 없는 경계에 들어가도 일체 중생을 교화하기를 버리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선정과 해탈과 신통과 밝은 지혜와 적정한 경계에 머물면서도 모든 세계에 태어남을 나타내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여래의 모든 행으로 장엄한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경계에 머무나 그러나 모든 성문과 벽지불의 고요한 위의를 나타내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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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의 십종경계무애용(十種境界無碍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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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이
유십종경계무애용(有十種境界無礙用)하니: 열 가지 경계에 걸림이 없는 작용이 있으니
하등(何等)이 : 무엇이
위십(爲十)고 : 열 가지냐.
소위재법계경계(所謂在法界境界)호대 :소위 법계의 경계에 있으면서
이불사중생경계무애용(而不捨衆生境界無礙用)과 : 중생의 경계를 버리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자기가 아무리 호의호식을 하고 살더라도 밥 먹을 때 꼭 지옥 중생을 생각하라. 우리가 그러잖는가. 지옥 중생을 돌아봐야 된다. 우리가 등 따시고 배부를 때 그렇게 북풍한설에 모진 세월을 살아가는 중생을 생각해야 된다.
재불경계(在佛境界)호대 : 모든 부처님의 경계에 있으면서
이불사마경계무애용(而不捨魔境界無礙用)과 : 마의 경계를 버리지 않는 걸림없는 작용과
재열반경계(在涅槃境界)호대 : 열반의 경계에 있으면서도
이불사생사경계무애용(而不捨生死境界無礙用)과 :중생들의 생사 경계를 버리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과 생사열반상공화라.
입일체지경계(入一切智境界)호대 : 입일체지경계라.
그러니까 ‘생사열반상공화’를 딱 해석하려면 이 구절을 갖다 붙여버리면 여지없이 해석이 된다.
열반이 본래 없고 생사가 본래 없으니까 무애라.
온갖 지혜의 경계에 들어가서, 일체지 경계에 들어가서
이부단보살종성경계무애용(而不斷菩薩種性境界無礙用)과 : 보살의 종성 경계를 끊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과
주적정경계(住寂靜境界)호대 : 적정한 아주 깊은 삼매의 경계에 머물면서도
이불사산란경계무애용(而不捨散亂境界無礙用)과 :복잡한 산란의 경계를 버리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과. 요런 대목은 지공화상의 14과송을 보면 잘 나온다. 14과송을 꼭 참고해 보기 바란다.
어른스님의 법보장에 보면 화중연화 제14권 직지 뒤쪽 지공화상편에 대승찬송 10수와 14과송이 나온다.
특히 14과송을 야무지게 보시면 색과 공에 대해서, 부처님과 중생에 대해서, 생사와 열반에 대해서, 산란과 고요에 대해서 ‘그것이 불이(不二)다, 둘이 아니다’ 라고 설명한 내용을 자세하게 알 수가 있다.
지공화상의 14과송과 대승찬이 모토가 되어서 그 뒤에 주옥같이 남겨진 글들이 신심명, 증도가, 같은 글이다.
주무거무래무희론무상상무체성무언설여허공경계(住無去無來無戱論無相狀無體性無言說如虛空境界)호대 : 가는 곳도 없고 오는 곳도 없고, 주무거무래무희론무상상 말할 것도 없이 최고로 여기에 다 해 놓았다.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고 부질없는 말도 없고 형상도 없고 자체도 없고 체성도 없고 언설도 없고 말도 없고, 마치 허공 같은 경계에 머물면서도
이불사일체중생희론경계무애용(而不捨一切衆生戱論境界無礙用)과 : 일체 중생의 부질없는 말 경계를 버리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과. ‘무슨 말이 그리 많노’그러면 ‘말이 많으니까 말 안 하지’ 이렇게 이야기해야 된다.
이것을 우리가 시식의 고혼청(孤魂請)을 할 때 맨날 한다.
약인욕식불경계(若人欲識佛境界)
당정기의여허공(當淨其意如虛空)
원리망상급제취(遠離妄想及諸取)
영심소향개무애(令心所向皆無碍)라
화엄경 여래출현품에 나오는 게송이다.
출현품에는 약인욕식불경계라고 안 나오고 어떻게 나오는가?거기에는 약유욕지불경계(若有欲知佛境界)라고 나온다.
부처님의 경계를 알고 싶으냐? 네 마음을 허공같이 비워라. 그것이 바로 여기에 다 해당하는 내용이다.
‘약유욕지불경계(若有欲知佛境界) 당정기의여허공(當淨其意如虛空)’ 그 두 구절은 댓구절로 되어서 우리가 출가하기 전부터도 어릴 때 어떤 집에 가더라도 그런 것이 많이 있었다.
‘약인욕식불경계(若人欲識佛境界) 당정기의여허공(當淨其意如虛空)’ 화엄경 여래출현품에서 이런 한 꼭지가 끝나고 지금 우리는 이세간품으로 넘어왔다.
제7여래명호품부터 사성제품 광명각품, 보살문명품 제 37품 여래출현품까지가 화엄경의 이론이다. 수행의 이론이다.
부처님의 이름을 듣고 신심을 내서 여래명호 사성제 이론을 습득한다. 여래명호는 불보(佛寶)이고 사성제는 법보(法寶)이며 광명각품은 수행하는 승보(僧寶)이다. 여실수행승이다.
여래명호 사성제 광명각품 문명품 문답하고 문명하고 정행품 그래서 현수품까지 와서 믿음을 완전히 장착해서 그 믿음을 쭉 끌고 어디까지 가는가? 여래가 출현할 때까지 간다. 그래서 여래출현품을 끝낸다.
여래의 명호를 듣는 데서부터 여래가 출연하는 데까지 이 서른 한품이 불교 수행의 이론이고, 여래출현품의 마지막에 여래가 출현하면 끝이다.
그다음에 지금 우리가 하는 대목인 이세간품은 신해행증(信解行證)의 행에 해당한다.
주제력해탈경계(住諸力解脫境界)호대 : 모든 힘의 해탈하는 경계에 있으면서도
이불사일체제방소경계무애용(而不捨一切諸方所境界無礙用)과:모든 방소에 경계를 버리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과
입무중생제경계(入無衆生際境界)호대: 중생의 경계 없는 경계에 들어가도
이불사교화일체중생무애용(而不捨敎化一切衆生無礙用)과: 일체중생 교화하기를 버리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과
주선정해탈신통명지적정경계(住禪定解脫神通明智寂靜境界)호대 : 선정 해탈 신통 지혜 고요한 경계, 적정경계에 머물면서도.
쉽게 이야기하면 이것이다.
적정경계에 머물면서도 우리는 한번도 보현행원을 버리지 않는다. 십정품 해석에 그렇다.
보현보살의 삼매는 십지보살이 넘볼 수 있는 삼매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십지보살 정도의 사람은 못 본다. 급이 다르다고 한다.
이어일체세계(而於一切世界)에 : 일부러 모든 세계에서
시현수생무애용(示現受生無礙用)과 : 태어남을 버리지 않는 걸림없는 작용과
주여래일체행장엄성정각경계(住如來一切行莊嚴成正覺境界)호대 : 여래의 모든 행으로 장엄한, 바른 깨달음으로 성정각 경계에 머물러서
이현일체성문벽지불(而現一切聲聞辟支佛)의: 모든 성문과 벽지불의
적정위의무애용(寂靜威儀無礙用)이: 고요한 위의를 나타내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
시위십(是爲十)이니라 : 이것이 열 가지니라.
아. 菩薩의 十種智無碍用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智無礙用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無盡辯才無礙用과 一切總持無有忘失無礙用과 能決定知決定說一切衆生諸根無礙用과於一念中에以無礙智로知一切衆生心之所行無礙用과 知一切衆生欲樂隨眠習氣煩惱病하야 隨應授藥無礙用과 一念에 能入如來十力無礙用과 以無礙智로知三世一切劫과及其中衆生無礙用과 於念念中에現成正覺하야 示現衆生호대 無有斷絶無礙用과 於一衆生想에 知一切衆生業無礙用과 於一衆生音에 解一切衆生語無礙用이 是爲十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지혜의 걸림 없는 작용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다함이 없는 변재의 걸림 없는 작용과 온갖 것을 모두 지니어 잊어버리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과 일체 중생의 모든 근성을 결정하게 알고 결정하게 설하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잠깐 동안에 걸림 없는 지혜로 일체 중생의 마음에 행하는 것을 아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일체 중생의 욕망과 따라다니면서 잠자듯이 하는 것과 습기(習氣)와 번뇌의 병을 알고 알맞게 약을 주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잠깐 동안에 여래의 열 가지 힘에 능히 들어가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걸림 없는 지혜로써 세 세상의 모든 겁과 그 속에 있는 중생을 아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잠깐잠깐마다 바른 깨달음을 이루어 중생에게 보이되 끊어지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한 중생의 생각에서 일체 중생의 업을 아는 걸림 없는 작용과, 한 중생의 음성에서 일체 중생의 말을 이해하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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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의 십종무애용(十種智無碍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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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의 열 가지 지혜의 무애용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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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유십종지무애용(有十種智無礙用)하니 : 열 가지 지혜의 무애용, 걸림 없는 작용이 있으니
하등(何等)이 : 무엇이
위십(爲十)고 : 열인가.
소위무진변재무애용(所謂無盡辯才無礙用)과 : 이른바 다함이
없는 무진변재 무애용이다.
여기는 혼용해서 쓰기는 하지만, 무진변재는 십지보살로 따지자면 제9지에서 사무애(事無碍)변재가 통달한다고 한다.
이른바 다함이 없는 변재에 걸림이 없는 작용.
된장찌개를 확실히 끓일 줄 아는 할머니는 언제 어디서 물어봐도 된장찌개는 어떻게 끓인다고 말씀하실 수가 있다. 레시피가 확실히 몸에 장착되어 있는 사람이다.
불교 이론이 확실히 자기에게 장착되어 있는 사람은 어떻게 수행해야 되는지, 처신해야 되는지를 확실히 안다. 이런 것을 변재라고 한다.
그 외에는 컨닝을 하든지 베껴쓰든지 해서 자기가 법문해 놓은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바둑 두는 사람이 프로 2급이 되면 복기를 한다. 자기가 어디에 바둑돌을 두었는지 몇 년 전에 둔 것도 다 기억을 한다.
불교 공부도 아는 사람은 자기가 법문 중에 무슨 말을 어디서 어떻게 했다는 것을 다 안다. 들은 것도 알고 한 것도 다 안다. 그 외에는 그냥 말이라고 있으니까 아무거나 주워들어서 수업 준비하듯이 해서 법문을 하고는 우리처럼 ‘내가 그런 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 홀딱 까먹어 버린다. 그러면 안 된다. 책임지고 자기가 언제 어떻게 ‘무슨 말을 했다’ 이것이 나와야 된다.
일체총지무유망실무애용(一切總持無有忘失無礙用)과 :온갖 것을 모두 지니고 있지 않은 걸림 없는 작용과
능결정지결정설일체중생제근무애용(能決定知決定說一切衆生諸根無礙用)과 : 일체 중생의 근성을 결정하게 알고 결정하게 말하는 걸림 없는 작용과
어일념중(於一念中)에 : 잠깐 동안에 일념 중에
이무애지(以無礙智)로 : 걸림 없는 지혜로
지일체중생심지소행무애용(知一切衆生心之所行無礙用)과 : 일체 중생의 마음에 행하는 것을 아는 걸림 없는 작용과
지일체중생욕락수면습기번뇌병(知一切衆生欲樂隨眠習氣煩惱病)하야 : 일체 중생의 욕망과 수면 번뇌 습기, 수면도 번뇌다. 습기가 안쪽으로 찌든 번뇌라면 번뇌병은 바깥으로 발현되어 나오는 현행하는 번뇌라고 할 수가 있다. 이런 것들을 알고
수응수약무애용(隨應授藥無礙用)과 : 알맞게 약을 주는 걸림 없는 작용과, 응병여약(應病與藥)이라고도 한다.
일념(一念)에 : 일념에
능입여래십력무애용(能入如來十力無礙用)과 : 여래의 열 가지 힘에 능히 들어가는 걸림 없는 작용과
이무애지(以無礙智)로 : 무애지로써
지삼세일체겁(知三世一切劫)과 : 지, 안다. 삼세의 일체겁과
급기중중생무애용(及其中衆生無礙用)과 : 그 중생을 아는 걸림 없는 작용과
어염념중(於念念中)에 : 매생각마다, 잠깐잠깐마다
현성정각(現成正覺)하야 : 성정각을 이루어서
시현중생(示現衆生)호대 : 일체중생에게 보여주되
무유단절무애용(無有斷絶無礙用)과 : 끊어지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과
어일중생상(於一衆生想)에 : 한 중생의 생각에서
지일체중생업무애용(知一切衆生業無礙用)과 : 일체중생의 업을 아는 걸림 없는 작용과, 크기는 그렇게 된다. 세계가 생겨지고 세계 위에 중생이 딛고 산다. 그 중생에게서는 업이 돋아난다. 세계기시(世界起始) 중생기시(衆生起始) 업과기시(業果起始)다.
어일중생음(於一衆生音)에 :한 중생의 음성에서
해일체중생어무애용(解一切衆生語無礙用)이 : 일체중생의 말을 이해하는 걸림 없는 작용이
시위십(是爲十)이니라 : 이것이 열 가지니라.
자. 菩薩의 十種神通無碍用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神通無礙用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於一身에示現一切世界身無礙用과於一佛衆會에聽受一切佛衆會中所說法無礙用과於一衆生心念中에成就不可說無上菩提하야 開悟一切衆生心無礙用과以一音으로 現一切世界差別言音하야 令諸衆生으로 各得解了無礙用과 一念中에 現盡前際一切劫의所有業果種種差別하야 令諸衆生으로 悉得知見無礙用과 一微塵에出現廣大佛刹無量莊嚴無礙用과 令一切世界로 具足莊嚴無礙用과 普入一切三世無礙用과 放大法光明하야 現一切諸佛菩提衆生行願無礙用과 善守護一切天龍夜叉乾闥婆阿修羅迦樓羅緊那羅摩睺羅伽釋梵護世聲聞獨覺菩薩과 所有如來十力菩薩善根無礙用이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得此無礙用하면 則能普入一切佛法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신통의 걸림 없는 작용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한 몸에 모든 세계의 몸을 나타내는 걸림 없는 작용과, 한 부처님의 대중이 모인 데서 모든 부처님의 대중이 모인 데서 말씀하는 법을 듣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한 중생의 생각 속에서 말할 수 없는 가장 높은 보리를 이루고 일체 중생의 마음을 깨닫게 하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한 음성으로 모든 세계의 차별한 음성을 나타내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각각 알게 하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한 생각 가운데서 지난 세상 모든 겁에 있던 업과 과보가 갖가지로 차별함을 나타내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알고 보게 하는 걸림 없는 작용과, 한 티끌 속에서 광대한 세계의 한량없는 장엄을 나타내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모든 세계로 하여금 장엄을 구족하게 하는 걸림 없는 작용과, 모든 세 세상에 두루 들어가는 걸림 없는 작용과, 큰 법의 광명을 놓아 일체 모든 부처님의 보리와 중생의 행과 원을 나타내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모든 천신과 용과 야차와 건달바와 아수라와 가루라와 긴나라와 마후라가와 제석과 범천과 세상을 보호하는 이와 성문과 독각과 보살과 여래의 열 가지 힘과 보살의 착한 뿌리를 잘 수호하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걸림 없는 작용을 얻으면 능히 모든 불법에 두루 들어가느니라.”
*
보살(菩薩)의 십종신통무애용(十種神通無碍用)
*
불자(佛子)야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유십종신통무애용(有十種神通無礙用)하니 : 또 열 가지 신통의 걸림 없는 작용이 있으니
하등(何等)이 : 무엇이
위십(爲十)고 : 열 가지인가
소위어일신(所謂於一身)에 : 이른바 한 몸에
시현일체세계신무애용(示現一切世界身無礙用)과 : 모든 세계의 몸을 나타내는 걸림 없는 작용과
어일불중회(於一佛衆會)에 : 한 부처님 회상, 중회에서
청수일체불중회중소설법무애용(聽受一切佛衆會中所說法無礙用)과 : 모든 부처님 회상, 회중에 말씀하시는 법을 듣는 걸림 없는 작용과
어일중생심념중(於一衆生心念中)에 :한 중생의 생각 속에서
성취불가설무상보리(成就不可說無上菩提)하야 :말할 수 없이 위없는 보리를 이루고
개오일체중생심무애용(開悟一切衆生心無礙用)과 :일체 중생의 마음을 열리게 하는 걸림 없는 작용과
이일음(以一音)으로 : 한 음성으로
현일체세계차별언음(現一切世界差別言音)하야 : 모든 세계의 차별한 음성을 나타내어
영제중생(令諸衆生)으로 : 모든 여러 중생으로 하여금
각득해요무애용(各得解了無礙用)과 : 각각 알게 하는 걸림 없는 작용과
일념중(一念中)에 :한 생각 가운데에
현진전제일체겁(現盡前際一切劫)의 : 지난 세상 모든 겁에 있던 법과
소유업과종종차별(所有業果種種差別)하야: 과보와 갖가지 차별함을 나타내어
어제중생(令諸衆生)으로 :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실득지견무애용(悉得知見無礙用)과 : 모두 알고 보게 하는 걸림 없는 작용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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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미진(一微塵)에 :일미진에서
출현광대불찰무량장엄무애용(出現廣大佛刹無量莊嚴無礙用)과:광대한 세계의 한량없는 장엄을 내게 하는 걸림 없는 작용과,
광대 불찰에서 무량장엄을 출현하는 무애용과
영일체세계(令一切世界)로 : 일체 세계로 하여금
구족장엄무애용(具足莊嚴無礙用)과 : 장엄을 구족하게 하는 걸림 없는 작용과
보입일체삼세무애용(普入一切三世無礙用)과 :일체 삼세에 모두 다 들어가는, 보입하는 걸림 없는 작용과
방대법광명(放大法光明)하야: 큰 법의 광명을 놓아서
현일체제불보리중생행원무애용(現一切諸佛菩提衆生行願無礙用)과 : 모든 부처님의 보리와, 중생의 행과 원을 나타내는 걸림 없는 작용과
선수호일체천용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석범호세성문독각보살(善守護一切天龍夜叉乾闥婆阿修羅迦樓羅緊那羅摩睺羅伽釋梵護世聲聞獨覺菩薩)과 :모든 하늘, 용, 야차, 건달바, 아수라, 가루라, 긴나라, 마후라가, 제석범천, 세상을 보호하는 성문, 독각, 보살과
소유여래십력보살선근무애용(所有如來十力菩薩善根無礙用)이 : 모든 여래의 열 가지 힘과 보살의 선근을 잘 수호하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
시위십(是爲十)이니 : 이것이 열 가지니라.
약제보살(若諸菩薩)이 : 만약에 보살이
득차무애용(得此無礙用)하면 :이와 같은 걸림 없는 작용을 얻으면
즉능보입일체불법(則能普入一切佛法)이니라 : 즉능보입 들어갈 수가 있다. 일체 불법에 들어갈 수 있게 되나니라.
차. 菩薩의 十種神力無碍用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神力無礙用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以不可說世界로置一塵中無礙用과 於一塵中에現等法界一切佛刹無礙用과以一切大海水로置一毛孔하야 周旋往返十方世界호대 而於衆生에無所觸嬈無礙用과以不可說世界로 內自身中하야 示現一切神通所作無礙用과以一毛로繫不可數金剛圍山하야 持以遊行一切世界호대 不令衆生으로 生恐怖心無礙用과 以不可說劫으로 作一劫하고 一劫으로 作不可說劫하야 於中에 示現成壞差別호대不令衆生으로 心有恐怖無礙用과於一切世界에現水火風災種種變壞호대 而不惱衆生無礙用과一切世界三災壞時에 悉能護持一切衆生資生之具하야 不令損缺無礙用과 以一手로 持不思議世界하야 擲不可說世界之外호대 不令衆生으로 有驚怖想無礙用과 說一切刹이 同於虛空하야 令諸衆生으로 悉得悟解無礙用이 是爲十이니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신통한 힘[神力]의 걸림 없는 작용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말할 수 없는 세계를 한 티끌 속에 두는 걸림 없는 작용과 한 티끌 속에서 법계와 같은 모든 세계를 나타내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일체 큰 바닷물을 한 모공에 넣어 가지고 시방세계를 두루 돌아다니면서도 중생을 부딪치거나 번거롭게 하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과, 말할 수 없는 세계를 제 몸 속에 넣어서 모든 신통한 일을 나타내 보이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한 터럭으로 셀 수 없는 금강위산을 얽어 모든 세계로 돌아다니면서도 중생들로 하여금 두려운 마음을 내지 않게 하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말할 수 없는 겁으로 한 겁을 만들고 한 겁으로 말할 수 없는 겁을 만들며 그 가운데서 이루고 무너지는 차별을 나타내 면서도 중생들의 마음을 두렵게 하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모든 세계에서 수재와 화재와 풍재의 갖가지 변괴(變壞)가 나타나도 중생을 시끄럽게 하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과, 모든 세계가 수재와 화재와 풍재로 무너질 적에 모든 중생들의 살림살이를 보호하여 파괴되지 않게 하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라. 한 손으로 부사의한 세계를 들어 말할 수 없는 세계 밖으로 던져도 중생들을 놀라게 하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과, 모든 세계가 허공과 같음을 말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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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의 십종신력무애용(十種神力無碍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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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유십종신력무애용(有十種神力無礙用)하니: 열 가지의 신력무애용이 있으니
하등(何等)이 :어떠한 것이
위십(爲十)고: 열 가지냐
소위이불가설세계(所謂以不可說世界)로 : 이른바 불가설세계로
치일진중무애용(置一塵中無礙用)과 :일진 중에 두는 걸림 없는 작용과
어일진중(於一塵中)에 : 한 티끌 속에
현등법계일체불찰무애용(現等法界一切佛刹無礙用)과: 법계와 같은 모든 부처님 세계를 나타내는 걸림 없는 작용과
이일체대해수(以一切大海水)로 : 큰 바닷물을
치일모공(置一毛孔)하야 : 한 털구멍에 넣어서
주선왕반시방세계(周旋往返十方世界)호대 :시방세계로 돌아다니면서도, 큰 바닷물을 한 털구멍에 넣어서 시방세계로 돌아다니면서도, 대단하다.
이어중생(而於衆生)에 :중생을
무소촉요무애용(無所觸嬈無礙用)과 : 시끄럽게 하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과
이불가설세계(以不可說世界)로 : 말할 수 없는 세계를
내자신중(內自身中)하야 : 제 몸속에 넣어서
시현일체신통소작무애용(示現一切神通所作無礙用)과 : 모든 신통한 일을 보이는 걸림 없는 작용과
이일모(以一毛)로 : 한 털로써
계불가수금강위산(繫不可數金剛圍山)하야 :셀 수 없는 금강위산, 금강산, 금강윤위산이라고 한다. 금강위산을 얽어서
지이유행일체세계(持以遊行一切世界)호대 : 모든 세계에 돌아다니면서도
불영중생(不令衆生)으로 : 중생들로 하여금
생공포심무애용(生恐怖心無礙用)과 :공포한 마음을 내지 않게 하는 걸림 없는 작용과. 우리는 조금만 얻어놓으면 남을 겁주려 하잖는가. 돈이 많든지, 학식이 높든지, 인물이 좀 잘났든지 이러면 못 참는다. 키가 좀 커도 못 참는다.
이불가설겁(以不可說劫)으로: 말할 수 없는 겁으로
작일겁(作一劫)하고 : 한 겁을 만들고
일겁(一劫)으로 : 한 겁으로
작불가설겁(作不可說劫)하야 : 말할 수 없는 겁을 만들며
어중(於中)에 :그 가운데서
시현성괴차별(示現成壞差別)호대 : 성주괴공과 생노병사 이런 것을 다 나타내면서도
불영중생(不令衆生)으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심유공포무애용(心有恐怖無礙用)과 : 모든 중생들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한다.
공포스럽지 않게 하는 이런 것을 방편이라고 한다.
원리전도몽상(遠離顚倒夢想) 걸림 없는 작용과
어일체세계(於一切世界)에 : 모든 세계에서
현수화풍재종종변괴(現水火風災種種變壞)호대 : 수재,화재,풍재, 삼재팔난, 종종변괴 갖가지 파괴를 나타내면서도
이불뇌중생무애용(而不惱衆生無礙用)과 :중생을 시끄럽게 하지 않는, 중생을 뇌고롭지 않게 하는 걸림 없는 작용과, 뇌(惱)자, 남을 고뇌스럽게 하는 사람은 성품이 불신이라.
믿음이 없는 사람의 성품은 무엇으로 종자가 되었는가 하면 지저분한 것으로 되어 있다. 잡예(雜穢) 생각이 아주 잡되고, 오염된 것으로써 자기의 종지종풍을 삼는다. 자기 가풍이다.
신심없는 사람들을 딱 보면 공덕을 짓는 것이 아니고, 늘 패악질을 하고 시비하고 말꼬리를 잡고 남 욕을 잘한다.
그런데 이것은 정반대다.
불뇌중생(不惱衆生) 중생을 시끄럽게 하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과
일체세계삼재괴시(一切世界三災壞時)에 : 모든 수재, 화재, 풍재로 무너질 적에
실능호지일체중생자생지구(悉能護持一切衆生資生之具)하야 :모든 중생의 살림살이를 잘 보호해서
불영손결무애용(不令損缺無礙用)과 : 파괴되지 않게 하는 걸림 없는 작용과
이일수(以一手)로 :한 손으로
지부사의세계(持不思議世界)하야 :부사의한 세계를 들어서
척불가설세계지외(擲不可說世界之外)호대 : 말할 수 없는 세계 밖으로 던져도 척불가설세계지외라.
불영중생(不令衆生)으로 : 중생들을
유경포상무애용(有驚怖想無礙用)과 : 놀라게 하지 않는 걸림 없는 작용과. 누구처럼 계엄해 가지고 “나는 겁 주려고 했다아이가?” 이러면 골치 아프다.
설일체찰(說一切刹)이 :모든 세계가
동어허공(同於虛空)하야 : 허공과 같다고 말하여
영제중생(令諸衆生)으로 :여러 중생을
실득오해무애용(悉得悟解無礙用)이: 깨닫게 하는 걸림 없는 작용이니
시위십(是爲十)이니 :이것이 열 가지니라.
카. 菩薩의 十種力無碍用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力無礙用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衆生力無礙用이니 敎化調伏하야 不捨離故며 刹力無礙用이니 示現不可說莊嚴하야 而莊嚴故며法力無礙用이니 令一切身으로入無身故며劫力無礙用이니 修行不斷故며佛力無礙用이니 覺悟睡眠故며行力無礙用이니 攝取一切菩薩行故며 如來力無礙用이니 度脫一切衆生故며 無師力無礙用이니 自覺一切諸法故며 一切智力無礙用이니 以一切智로 成正覺故며 大悲力無礙用이니 不捨一切衆生故라 是爲十이니라佛子야 如是가 名爲菩薩摩訶薩의 十種無礙用이니 若有得此十無礙用者면 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에 欲成不成을 隨意無違하야 雖成正覺이나 而亦不斷行菩薩行하나니 何以故오 菩薩摩訶薩이 發大誓願하야 入無邊無礙用門하야 善巧示現故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힘의 걸림 없는 작용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중생의 힘 걸림 없는 작용이니 교화하고 조복시켜 버리지 않는 연고며, 세계의 힘 걸림 없는 작용이니 말할 수 없는 장엄을 나타내어 장엄하는 연고이니라. 법의 힘 걸림 없는 작용이니 모든 몸으로 몸이 없는 데 들게 하는 연고며, 겁의 힘 걸림 없는 작용이니 수행이 끊이지 않는 연고며, 부처님의 힘 걸림 없는 작용이니 잠을 깨는 연고며, 행하는 힘 걸림 없는 작용이니 모든 보살의 행을 거두어 가지는 연고이니라.
여래의 힘 걸림 없는 작용이니 일체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케 하는 연고며, 스승 없는 힘 걸림 없는 작용이니 스스로 일체 모든 법을 깨닫는 연고며, 일체 지혜의 힘 걸림 없는 작용이니 일체 지혜로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연고며, 큰 자비의 힘 걸림 없는 작용이니 일체중생을 버리지 않는 연고니, 이것이 열이니라.
불자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걸림 없는 작용’이라 이름 하나니, 만약 이 열 가지 걸림 없는 작용을 얻는 이가 있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거나 이루지 않거나 마음대로 되고 어그러지지 않을 것이며, 비록 바른 깨달음을 이룬다 하여도 또한 보살행 행하는 것을 끊지 않을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보살마하살이 큰 서원을 내고 그지없이 걸림 없는 작용의 문에 들어가 교묘하게 나타내어 보이는 연고이니라.”
*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유십종력무애용(有十種力無碍用)
*
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유십종력무애용(有十種力無礙用)하니 :열 가지, 십종력의 걸림 없는 작용이 있으니
하등(何等)이 : 무엇이
위십(爲十)고 : 열 가지냐?
소위중생력무애용(所謂衆生力無礙用)이니: 이른바 중생의 힘에 걸림 없는 작용이니
교화조복(敎化調伏)하야 : 교화하고 조복시켜서
불사이고(不捨離故)며 : 버리지 않는 힘이라.
찰력무애용(刹力無礙用)이니 :세계 힘의 무애용이라.
앞의 것은 중생세간이고 여기 나온 찰력은 기세간이다. 법력, 불력 이렇게 나오면 지정각세간에 해당한다. 세계 힘의 걸림 없는 작용이니
시현불가설장엄(示現不可說莊嚴)하야: 말할 수 없는 겁 동안에 불가설 장엄을 시현해서
이장엄고(而莊嚴故)며 :장엄하는 까닭이고, 자기가 사는 집이나, 살다 가는 도량을 양껏 장엄하고, 또 자기 주변에 있는 권속들을 양껏 교화 조복한다.
그러니까 자기 권속들을 교화 조복하는 데는 화엄경에서 이렇게 해놨다. ‘강강난화중생(剛强難化衆生) 뻑센 중생들은 무엇으로 다스려야 하는가? 세력으로, 두드려 패서 다스려야 된다. 그리고 유화선순(柔和善順) 중생들, 아주 부드러운 중생들은 법력으로 다스린다’ 뻑센 사람들은 법을 말해줘도 콧구멍에 콧방귀를 뀌고 잘 안 듣는다. 그때는 마치 임제스님을 다스리듯이 황벽스님의 방망이보다도 더 모질게 두드려 패야 된다. 조주스님은 아예 적나라하게 말씀해놨다.
‘공부 안 되는 중생은 입으로 나불나불 공부하는 것처럼 해서 알음알이를 내고 이러면, 조타삼천 아침에 삼천 대 두드려 패고, 모타팔백 저녁때 팔백 대 더 두드려 팬다’
방망이로 삼천 대 두드리고, 팔백 대를 두드리면 사람이 가루가 돼버리지 남아나겠는가?
법력이 이미 부드러워진 사람한테는 두드려 팰 것이 없으니 그냥 쓱 보여주면, 꽃 한송이만 들어도 법이 다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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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력무애용(法力無礙用)이니 :법의 힘 걸림 없는 작용이니
영일체신(令一切身)으로 : 모든 몸으로
입무신고(入無身故)며 : 몸이 없는 데 들게 하는 연고이다.
지금 그 내용이 화엄경에 다 나온다.
겁력무애용(劫力無礙用)이니 : 겁의 힘 걸림 없는 작용이니
수행부단고(修行不斷故)며 : 수행이 끊이지 않는 연고며, 해가 끝나든지 내가 끝나든지 한 번 해볼 것이라고 계속하는 것이다. 세월이, 목숨이 끝나든지 뭐가 끝나든지 불석신명(不惜身命)이다.
겁력무애용(劫力無碍用) 이것을 제가 해인사 행자 첫 법문에서 들었다. 산중무갑자(山中無甲子)라. 산중에는 갑자을축이 없다. 산중에는, 수행하는 사람한테는 세월이 없다. 한진(寒盡)에 부지년(不知年)이라. 겨울 삼동결제가 다 가도 해 바뀐 줄도 모른다.
‘지금 몇 달 됐노?’
우리 학인들은 얼마나 방학날짜를 기다리는지, 소풍날짜처럼 동그라미를 쳐놓고 있다. 그러나 겁력무애용(劫力無碍用)이라. 시간이 긴지 짧은지, 밤인지 낮인지 구분도 안 한다는 것이다.
불력무애용(佛力無礙用)이니 :부처님의 힘 걸림 없는 작용이니
각오수면고(覺悟睡眠故)며 : 각오수면고라. 대몽일교(大夢一覺)라고 한다. 각(覺)이라고 써놓고, 꿈깰 교라 하지 않는가. 대몽일교(大夢一覺) 큰 꿈을, 평생 백 년의 꿈을, 천 년의 꿈을 한번에 깨버린다.
흔히 비유하기를 캄캄한 동굴에 횃불을 들고 들어갔다, 천 년 어둠을 밝힌다고 표현한다.
행력무애용(行力無礙用)이니: 행하는 힘 걸림 없는 작용이니
섭취일체보살행고(攝取一切菩薩行故)며 : 모든 보살의 행을 거두어 가지는 연고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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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력무애용(如來力無礙用)이니 :부처님 힘에 걸림 없는 작용이
도탈일체중생고(度脫一切衆生故)며 : 일체중생을 도탈하는 까닭이라.
무사력무애용(無師力無礙用)이니: 우리가 누구한테 배워서 이러는 것이 아니잖는가. 불유타오, 무사력이라. 흔히 원효스님을 비유할 때, 무사무자(無師無子) 스승도 없고 제자도 없다고 한다.
본분사를 마친 사람, 일 마친 사람을 무사라고 한다.
일 없는 사(事)자도 되지만, 스승도 없다.
부처님도 육사외도를 의지했지만, 마지막 궁극에 가서는 스승이 없이 스스로 자기 일을 해결해 버렸다.
스승 없는 힘 걸림 없는 작용이니
자각일체제법고(自覺一切諸法故)며 : 스스로 모든 법을 깨닫는 연고다. 젖먹이 때는 엄마 젖을 의지하지만, 젖 떨어진 사람이 자꾸 젖을 먹으려 한다면 이상하잖은가.
일체지력무애용(一切智力無礙用)이니 :온갖 지혜의 힘 걸림 없는 작용이니
이일체지(以一切智)로 : 온갖 지혜로
성정각고(成正覺故)며 :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까닭이니라. 그래서 무사라고, 스승이 없다고 하는 것을 능엄경이나 금강경이나 화엄경에서 공히 우리가 잘 쓰는 말이 있다. ‘이일체상(離一切相) 즉일체법(卽一切法)’ 일체법에 즉하여 일체상을 떠난다. 일체상을 떠나서 일체법에 즉한다, 똑같은 말이다. 이일체상(離一切相) 즉일체법(卽一切法) 굳이 순차로 따져서 이야기하자면, 능엄경에서 뭐라고 하는가? 순차로 따져서 이야기할 때 ‘승오병소(乘悟幷消)하야 인차제진(因次第盡)’이라고 한다.
대비력무애용(大悲力無礙用)이니 : 큰 자비의 힘 걸림 없는 작용이니
불사일체중생고(不捨一切衆生故)라 : 일체중생을 버리지 않는 연고라.
삼매의 근본은 자비라고 하잖는가. 대비(大悲), 큰 삼매의 힘은 큰 대자대비심이다.
대자대비심이 큰 자비심이 되고, 그 자비심이 나오는 대목은 입법계품 근본법회에도 나오지만, 보현행원에서도 자세하게 나온다.
입법계품 근본법회에도 자비심이 있어야 발보리심이 되고, 그 발보리심이 나중에 정각심이 된다.
보현행원 제아홉 번째 단락 항순중생편에 그것이 자세히 나온다. ‘일체 중생을 버리지 않는 연고라’ 대비의 힘 걸림 없는 작용이니, 일체 중생을 버리지 않는 연고라.
시위십(是爲十)이니라 : 이것이 열 가지니라.
결론은 ‘일체중생을 버리지 않는다’ 다른 말로는 항순중생(恒順衆生)이다. 우리가 청사를 할 때 꼭 한다.
‘중생을 버리지 않는 명목을 낱낱이 제시하시오.
어제병고(於諸病苦) 위작양의(爲作良醫)
어실도자(於失道者) 시기정로(示其正路)
어암야중(於暗夜中) 위작광명(爲作光明)
어빈궁자(於貧窮者) 영득복장(令得伏藏)
평등요익(平等饒益) 일체중생(一切衆生)
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스패너가 되든지, 드라이버가 되든지, 드릴이 되든지,톱이 되든지, 망치가 되든지, 칼이 되든지, 중생들이 적재적소에 쓰는 것, 중생이 필요한 도구를 적재적소에 주는 것이 중생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말만 해버리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잖은가.
중생을 버리지 않는 것은 아픈 사람 손 잡아 주는 것, 길 잃은 사람 보듬어 주는 것이다.
*
불자(佛子)야 : 불자야
여시(如是)가 : 이것이
명위보살마하살(名爲菩薩摩訶薩)의 : 보살마하살의
십종무애용(十種無礙用)이니 : 열 가지 힘, 걸림 없는 작용이라 이름하나니
약유득차십무애용자(若有得此十無礙用者)면: 만약에 이 열 가지 힘, 걸림 없는 작용을 얻으면
어아뇩다라삼먁삼보리(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욕성불성(欲成不成)을 : 이루거나 이루지 않거나
수의무위(隨意無違)하야 : 마음대로 되고 어그러지지 않을 것이다.
‘단자무심(但自無心)에 어만물(於萬物)하면’ 어떤 선방이든지 방거사의 게송을 다 써놨다. ‘하려보리도불성(何慮菩提道不成)이리요? 어찌 도를 이루든지 못 이루든지 근심 걱정할 것이 뭐가 있나?’ 이렇게 해놨다.
수성정각(雖成正覺)이나 :비록 정각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눈물 나는 대목이다. 가슴이 찔리는 대목이다.
비록 정각을 이루었으나
이역부단행보살행(而亦不斷行菩薩行)하나니: 이(而) 그러나, 하우에버(however), 밧(but), 또한 우리는 뭘 해야 되느냐?
부단행(不斷行) 끊지 말아야 된다. 제발 보현행원을 끊지 말아야 된다. 보살행을 끊지 말아야 된다.
바른 깨달음을 이뤄서 무엇을 하는가? 보살행을 끊지 않아야 된다.
화엄경에는 이만큼이나 적재적소에 수행할 것을 제시해놨다.
막연한 종이조각 같이 해서 안거증을 주는 것이 아니고, 확실한 안거증을 주는 것이다.
하이고(何以故)오 : 어찌한 까닭이냐?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발대서원(發大誓願)하야 : 대원력을 내어서
입무변무애용문(入無邊無礙用門)하야: 무변무애용문에 들어가서, 그지없고 걸림 없는 한량없는, 끝없는 무애용이다.
무애자재다. 자재하기 때문에 무애할 수 있다.
앞에는 자재를 배웠고 오늘은 무애를 배웠다.
무변무애용문에 들어가서
선교시현고(善巧示現故)니라 : 선교 무연선교착여의(無緣善巧 捉如意)니라. 누구든지 전부 여의주를 하나씩 줘야 된다.
누가 ‘여의주다, 여의주다’ 이러니까 어떤 사람이,
“스님, 구슬 잃어버린 것이 여읩니까? 여의주입니까?”하고 묻더라. ‘여의주, 구슬을 잃어버렸다. 여의었다’고 농담을 한 것인데.
교묘하게 나타내 보이는 연고이니라.
오늘은 거기까지 해 놓고, 다음 시간에 공부할 앞 구절 한 구절만하고 마치겠다.
딱 한 줄만 하겠다.
아홉 번째, 무박무착해탈회향(無縛無着解脫廻向), 다른 데는 또 무박무착이 아니고, 무착무박해탈회향(無着無縛解脫廻向)이라고도 되어 있다. 무착무박이나 무박무착이나 똑같은 말씀이다.
보살의 열 가지 유희, 이렇게 경전을 읽다보면, 순서대로 읽을 줄 알면 재미가 있다.
자재하니까 무애하다. 걸림 없으니까 마음껏 노닌다. 바람처럼 구름처럼, 흘러가는 물결처럼 춤추듯이 유희한다. 곡식이 자라듯이 아주 순리대로 새가 날듯이 철새처럼, 유희(遊戱)한다. 불자야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유희가 있다. 무엇이 열 가지냐?
이것은 연속극, 다음 시간에 하겠다.
오늘 날도 궂은데 살펴가시기 바란다.
근념하셨다.
(죽비소리)
하강례
화중연화(火中蓮華)
폭설과 폭한과 이상 더위가 난무하는 2025년의 3월이었다.
3월21일부터 경남과 경북도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한 초대형 산불이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최악의 산불로 기록되면서 30일 주불이 모두 진화되었다. 25일 아침 영주 부석사 직원들이 불상과 불화를 대피시키기 위해 포장을 하는 사진을 보았다. 25일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가 전소되었다. 나중에서야 24일 고운사에서도 불상과 탱화를 포장하였던 사진을 보았다. 3월 28일에 법문하신 큰스님의 법문을 전문 녹취했다.
화엄경에서 배웠지요
오늘은 72권 95페이지 어제에 이어서 보살대왕의 이야기입니다.
자신에게 무엇이든 구걸하러 오는 사람을 만나면 ‘세상에서 이보다 더 반갑고 기쁜 일이 없다’ 이렇게 표현한 대목을 우리가 어제 봤습니다. 자신에게 무엇이든지 구걸하러 오는 사람을 만나면 세상에서 이보다 더 반갑고 기쁜 일이 없다, 그렇습니다.
그 밑에 제가 강설에다가
‘우리나라에는 1950년 6월 25일에 한국전쟁이라는 전쟁이 벌어져서 지금까지도 휴전 중이다. 전쟁을 하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잃었는데 이산가족상봉이라는 행사가 가끔 행해진다. 그때에 가족들이 만났을 때 서로 안고 눈물을 흘리며 그 반가움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하듯이 보살대왕은 자신에게 구걸하러 오는 사람을 보고 그와 같이 대한다고 하였다.’
어제 이 생각이 났었는데 여기에 기록이 있어서 이렇게 오늘 함께 생각해 봅니다.
‘아, 이 얼마나 놀랍고도 감동적인 말씀인가’
우리 평범한 중생들에게는 어려운 일이긴 합니다만 제가 농담반 진담반으로 가끔 그 이야기를 하죠.
소위 전국에 다니면서 차비도 얻고 인사도 하고 문안도 여쭙고 하는 객스님들이 오면 ‘내가 찾아가서 차비라도 드리고 생활비도 드려야 되는데 이렇게 멀리까지 오시게 해서 미안합니다. 참 고맙습니다’라고 합니다.
‘아 스님, 또 그 얘기 하십니까’ 하고 자주 오는 그 스님은 그 이야기가 재밌어서 또 선방에 가서 이야기합니다.
‘무비스님이 우리 보고 글쎄 찾아가서 생활비도 주고 차비도 주고 그래야 되는데 여기까지 오게 해서 미안하다고, 그런 말을 한다. 어디서 배웠는지’
어디서 배웠긴요. 화엄경에서 배웠죠.
화엄경에는 이렇게 일반 사람들로서는 상상도 못할 생각을 하고, 그런 마음을 씁니다.
그렇게 마음 쓰고 그렇게 생활하는 보살들이 잔뜩 표현돼 있으니까, 보통 사람들이 생각도 못하는 말을 하지요. 그렇습니다. 이렇게 알면 돼요.
부처님 경전에 나오는 모든 부처님, 모든 보살들, 모든 선지식들, 모든 위대하다고 하는 사람들, 다 성인이고 현인인 이들을 ‘불보살님들’ 이렇게 표현하는데, 그분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가 하면요. ‘내가 왜 이 세상에 사는가. 다른 사람들 도와주려고 내가 이 세상에 산다. 내가 이 땅에 왜 왔는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려고 이 땅에 왔다.’
오로지 그거 하나입니다. 그 한 가지 목적으로 경전에 등장하고, 온갖 사찰의 스승으로 불법을 가르치고 그래요.
사찰을 운영하고 신도들을 가르치는 스님들은 무조건 의무적으로 모든 사람을 돕고,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려고 이 세상에 왔습니다.
지금 전국에 불이 나가지고 난리가 났습니다. 유례없는 산불이 그렇게 나서 곳곳에서 모두 도움의 손길을 펼치고 그런데, 또 사찰도 많이 타고요.
세상에 사찰이 그렇게 타고 그렇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산이나 재산이나 집이나 사람들의 가옥이 불에 타도 부처님의 힘으로 그걸 구제하고 불을 꺼주어야 하는데 어떻게 사찰이 탈 수 있느냐? 어떻게 부처님이 탈 수 있느냐?’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그게 이치에 맞는 생각일까요?
부처님이고 불상이고 사찰이고 국보고 보물이고 그런 걸 가리지 않고 불은 자기 할 일을 합니다.
불은 그냥 활활 타는 것이 자기 할 일이에요.
그 대상이 뭐가 되든지, 불이 무슨 국보를 알고, 부처님을 알고, 불상을 알고, 사찰을 알고, 아주 가난한 시골 노부부가 어렵게 사는 생활을 압니까?
오늘 보니까 귀촌해서 사는 단체가 있더라고요.
스무 집인가 그런데 그 집들을 홀랑 다 태웠어요.
도시에서 살다가 돈을 좀 모아가지고 귀촌을 해서 농사 지으면서 살아보겠다고 집을 마련하고 그랬는데 그게 홀랑 다 탔어요. 불이 뭐 그걸 알겠습니까. 기독교를 압니까. 불교를 압니까. 불은 그것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이치를 알아야 돼요.
그러니까 ‘부처님이 왜 그걸 못 지켜 주느냐’‘왜 하나님이 교회를 다 태우고 그러느냐’ 이치를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종교를 믿는 것도 좀 철이 들어야 돼요.
자꾸 수준이 높아지고 철이 들어야지요.
불을 지키는 것은 시골의 소방수들이 더 잘합니다.
소방수가 더 잘 지키지만, 헬기가 물을 싣고 가다가 전깃줄에 걸리면 또 그 불을 끄려고 가던 소방수들도 사고가 나서 저렇게 생명을 잃지 않습니까.
그저 조심하고 조심해야지요.
그 이치를 잘 살펴서 모든 것을 그렇게 해야지, 그게 무슨 부처님이 다 지켜주고, 하나님이 다 지켜주고,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면 좋긴 좋죠.
그런데 그렇다면 아무리 큰불이 절 주변까지 나더라도 절 주변도 타지 말아야죠. 설사 절 주변이 타더라도 절은 까딱없이 안 타야죠.
‘불이 법당에 다 옮겨 붙더라도 부처님은 까딱 없어야 된다’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단언컨대 그런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이치가 그렇지 않아요.
불은 태우는 게 자기 할 일입니다. 물은 불을 끄는 것이 자기 할 일입니다.
주변에 미리미리 불에 탈 소재를 다 없애야죠. 나무를 베버리고 옛날에는 나무가 귀해서 아꼈지만 지금은 나무가 워낙 흔합니다. 다 베어야 돼요. 전부 벌목을 해야 됩니다.
사전에 벌목을 다 해서, 설사 실수로 불이 나는 일이 있더라도 문제가 안 생기도록 사전에 방비를 해야죠. 그게 이치죠. 그게 이치고, 그렇게 할 줄 아는 게 부처님의 뜻이고, 그게 부처님의 지혜지요.
만약에 지혜 있는 주지스님이 절을 운영한다면 절 주변 나무를 미리 깨끗하게 깎아요. 나무를 깨끗하게 깎아 벌목을 다 합니다. 그게 부처님의 지혜입니다.
미리 사전에 나무를 다 깎고 혹여 불이 날까, 소방수를 전부 대기시켜 놓고, 언제든지 그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나와서 충분히 불을 끌 수 있는 준비를 해요. 그렇게 할 줄 아는 게 부처님의 지혜입니다.
불난 뒤에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끈다? 말도 안 돼요. 그거는 안 되는 소리입니다. 불은 태우는 게 목적이고 물은 떠내려 보내는 게 목적이에요.
그런 능력이 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데 불 맡으신 주화신에게 물어보십시오. 주수신 물 맡은 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당신의 의무가 뭐냐?
주화신 당신의 의무가 뭡니까?
주수신 당신의 의무가 뭡니까?
주화신에게 물어 보면 ‘나는 무엇이든지 활활 태우는 게 내 의무다’ ‘불이 싫으면 불나지 않도록 주변을 정비하는 것이 그게 주화신의 의무다’
주수신은 물이 아무리 많이 비가 많이 내리더라도 물길을 따라서 잘 흘러가도록 하는 것이 부처님의 지혜입니다.
물의 성질을 미리 알고 대비하는 것이 부처님의 지혜다, 지혜대로 그렇게 사전에 방비를 해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이제 제가 눈치 볼 거 있습니까? 바른대로 이야기해야죠. 내가 깨달은 대로, 내가 아는 대로 이치대로 말씀을 드려야죠. 어쩝니까.
언제 이치대로 바른 소리 할 수 있겠습니까.
바른 소리 지금 해야 됩니다.
그런 사실들을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수준 높다고 하는 화엄경을 공부하는 우리 화엄학인들, 화엄행자들은 누구보다도 그러한 이치에 대해서 잘 알아야 됩니다.
여기 보살대왕의 이야기, 개부일체수화주야신 선지식의 과거생 이야기들을 이렇게 했는데, 그 이야기 속에 교훈이 참 많지 않습니까.
들을 만한 것이 많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에게 와서 구걸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반갑다 오랜만이다 왜 이제 왔느냐’ 하고 그냥 반가워서 ‘무엇을 드릴까요, 무엇이 부족합니까, 어떤 것을 내놓을까요’ 하고 반기는 것, 비록 경전에 있는 말씀이긴 하지만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우리가 그런 마음을 한번쯤 내고, 이렇게 경전을 읽는 동안에
스치고 지나가면서 이해하고 한다고 하는 것이 참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은 95페이지(대방광불화엄경 강설 제72권)
“선남자여 그 대왕이 그때 선지식을 만나서 부처님의 보리를 이해하고 이루고자 함이 더욱 증장하며 모든 근기가 성취하고 믿음이 청정하며 환희함이 원만하였습니다.”
우리가 화엄경을 이렇게 만나는 것, 공부하고 읽고 듣고 하는 것이 바로 선지식을 만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보리를, 부처님의 깨달음을 이해하고 이루고자 함이 더욱 증장했다, 원해여래진실의(願解如來眞實義) 원해여래진실의 여래의 진실한 뜻, 진실한 마음, 진실한 의미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그것 알기를 원합니다.
원해여래진실의 원해여래진실의 원컨대 여래의 진실한 뜻 알기를 원합니다. 얼마나 근사한 말입니까. 우리가 천수경에서 배운 말 아닙니까.
여래의 진실한 뜻이 도대체 뭐냐고요.
맨 처음 절하고 인연 맺으면서 배우는 천수경에 원해여래진실의(願解如來眞實義) 그런 말을 이미 못박아 놨습니다.
원해여래진실의 원컨대 여래의 진실한 뜻 알아지이다.
“무슨 까닭입니까. 이 보살이 여러 가지 행을 부지런히 닦아 일체 지혜를 구하며, 모든 중생을 이익하게 하기를 원하고, 보리의 한량없는 묘한 낙을 얻기를 원하며, 일체 모든 착하지 못한 마음을 버리고 모든 착한 뿌리를 모으기를 좋아하며”
“항상 모든 중생을 구호하기를 원하고, 항상 살바야의 도(道)를 관찰하기를 좋아하며, 항상 일체 지혜의 법을 수행하기를 즐기고, 모든 중생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며, 모든 부처님의 공덕 바다에 들어가며, 모든 마(魔)의 업과 번뇌의 장애산을 깨뜨리며, 모든 여래의 가르침을 따르며, 일체 지혜의 걸림 없는 도를 행하였습니다.”
“이미 능히 일체 지혜의 흐름에 깊이 들어갔으며, 모든 법의 흐름이 항상 앞에 나타나며, 큰 서원이 다함이 없어 대장부가 되었으며, 거룩한 이의 법에 머물러 여러 가지의 넓은 문 착한 일을 쌓아 모으며”
“모든 집착을 여의어 일체 세간의 경계에 물들지 않으며, 모든 법의 성품이 마치 허공과 같음을 알고, 와서 구걸하는 이에게 외아들이라는 생각을 내고, 부모라는 생각을 내고, 복밭이라는 생각을 내고”
저 앞에도 있었죠.
인시복전(人是福田) 사람이 복밭입니다.
복밭이 왔는데 우리는 인상을 씁니다.
복이 굴러왔는데 인상을 쓴다니까요.
객스님이 오면 ‘차비는 얼마나 줘야 될까, 얼마나 줘야 행패를 안 부릴까, 얼마나 대접해야 될까’ 이런 계산을 한다니까요. 무조건 복밭이라는 생각을 해야죠.
“아이구 복밭이 오셨습니까. 복전이 오셨습니까?”
참 좋은 말 아닙니까.
이런 말을 견문위종(見聞爲種)이라, 자꾸 듣고 보고, 듣고 보고, 듣고 보고 입으로라도 자꾸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그것이 익숙해지고, 내 의식 속에 저장이 됩니다. 그래서 내 삶이 되는 거예요.
지금은 남의 말 같지만 나중에는 내 말이 되고, 내 삶이 되고, 내 의식이 되고, 내 인격이 됩니다.
복밭이라는 생각을 내고
“만나기 어렵다는 생각을 내고, 이익하고 은혜롭다는 생각을 내고, 견고하다는 생각과 스승이라는 생각과 부처님이라는 생각을 내었습니다.”
내가 서두에 그랬죠.
불보살님들, 모든 선지식들, 모든 불자들, 모든 수행자들은 이 세상에 왜 왔나? 무엇하러 왔느냐? 남을 이익하게 하기 위해서 왔다. 남을 돕기 위해서 세상에 왔다, 전부가 이익하게 하기 위해서. 그럼 나는 언제 이익이 돌아오느냐? 그거 생각하지 않는 것이 불자입니다.
‘내 이익이 언제 그 대가를 받느냐’ 그거 생각하지 않고, 그거 계산하지 않는 것이 불자입니다.
불보살들이 처음부터 그랬습니다.
우리 스승이신 불보살님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보살님들의 제자, 부처님의 제자이고, 관세음보살의 제자이고, 지장보살의 제자이고, 그런 훌륭한 분의 제자로서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야 되는 거예요.
‘구걸하러 오는 사람을 어찌하여 그토록 반가워하고 기뻐하는가. 보살은 구걸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외아들이라는 생각과 부모라는 생각과 복의 밭이라는 생각과 만나기 어렵다는 생과 이익하고 은혜롭다는 생각과’
아, 나에게 이익을 주러 왔구나, 그것 참.
‘견고하다는 생각과 스승이라는 생각과 부처님이라는 생각을 내었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어쨌든 또 말씀을 드립니다.
날짜가 차츰차츰 가까워 옵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너무 산불이 많이 심해 가지고 오늘까지도 아직도 불길이 다 잡히지가 않아서, 4월 3일부터 불교박람회에서 법공양을 대대적으로 무차법시를 하려고 펼쳐 놨는데, 잘 성사가 되었으면 합니다.
요즘 범어사는 비구계 비구니계를 받는 행사를 지금 8일간 계속하거든요.
오늘이 회향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임원스님들에게도 법보장을 몇백 개씩 돌렸습니다. 가서 그 절 대중들에게 나누라고 하고, 또 오늘 회향이니까 어제 120개를 준비해서 수계자들, 계받는 사람들에게 다 주었습니다. 내가 그걸 해놨더니 스님들이 와서 가져가는데 나는 얼마나 고맙고 반가운지 눈물이 날 정도예요.
부처님 말씀을 거기 뭐가 있다고? 화엄경이 다 들어 있습니다. 또 스물다섯 권이나 되는 전집이 다 들어 있습니다.
전집이 뭐라고? 천수경 반야심경 금강경 유마경 법화경 이런 해설서들, 또 그런 강의도 수백 꼭지가 그 속에 녹음되어 있고 아, 세상에 이런 법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이런 법이 조그만한 USB 하나 속에 다 담겨 있는데, 그것을 핸드폰에다 끼우기만 하면 그만 그게 바로 펼쳐져 나옵니다. 참 공부하기 좋은 세상에 우리가 삽니다.
우리가 그런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기술을 놓치면 안 된다 해서 저는 막 그야말로 반 미친 듯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 하도 많이 준비를 해서 서울에 일만 개를 보급해놓고 여기도 수백 개 해놓고 하니까 아직도 어제까지 다 나누고도 아직도 몇 백 개가 남았대요. 아침에 내가 점검을 해 보니까.
아, 이렇게 해야죠.
부처님 말씀 전하자고, 부처님 말씀 전하자고 ‘전법합시다. 전법합시다’ 얼마나 우리가 소리쳤습니까. 전법합시다, 법을 전합시다, 부처님 법을 전합시다, 부처님 법을 전합시다, 그렇게 했는데 구체적으로, 구체적으로 이렇게 막 그냥 밀어붙여야죠.
“처소도 가리지 않고 종족의 유(類)도 택하지 않고, 형상도 가림이 없이 오는 이마다 그의 욕망대로 크게 인자한 마음으로 평등하여 걸림이 없으며 모든 것을 널리 보시하여 다 만족하게 하였습니다.”
“음식을 구하는 이에게는 음식을 주고, 옷을 구하는 이에게는
옷을 주고, 향과 꽃을 구하는 이에게는 향과 꽃을 주고, 화만과 일산을 구하는 이에게는 화만과 일산을 주고, 당기(幢旗)와 번기(幡旗)와 영락과 궁전과 동산과 정원과 코끼리와 말과 수레와 평상과 보료와 금, 은, 마니 등 보물과 창고에 쌓아 둔 것과 권속과 도시와 마을들을 모두 다 이와 같이 중생들에게 보시하였습니다.”
대왕보살이 참 왕쯤 되니까 능력이 있죠, 능력 있는 사람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그런 마음을 가져도 능력이 없으면 또 그게 안 돼요.
그래서 저는 그런 능력을 키운다고 여기 임원되는 스님들이 와서 놀라고 나한테 묻는 게 “아, 스님 그렇게 USB 하나가 12,000원 하는데 그게 그렇게 만 개 또 수천 개 달라는 대로 막 인연만 되면 주고 앞으로도 계획은 100만 개를 깔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도대체 스님이 어디 주지도 안 살고 아무것도 안 하는데 어떻게 돼서, 돈은 어디서 생겨가지고 그렇게 합니까?”
불교 경제 원리로 갖다가 하면 다 되게 돼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법보시를 해도 거기에 경제적인 공덕도 따라옵니다. 법보시를 하면 경제적인 공덕도 따라오는 게 법공양의 이치입니다.
부처님이 무슨 밥 주고 돈 주고 그렇게 해서 그렇게 부자입니까. 세상에 부처님 같이 부자가 어딨습니까. 저 불국사 해인사 통도사 범어사 전부 부처님 앞으로 등기가 되어 있는데 부처님은 어찌하여 그렇게 부자가 되었는가? 언제 누구에게 밥 한 그릇 사준 적이 있고, 라면 한그릇 사준 적이 있고, 커피 한 잔 사준 적 있는 사람이 부처님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법만 나눴는데 법은 그렇게 효과가 큽니다.
효과가 워낙 천 배 만 배 요즘 가성비? 그런 소리 잘 쓰더라고요. 효과가 천 배 만 배로 크기 때문에 저도 그 이치를 믿고 따르니까 그 이치대로 하다 보니까 저절로 그렇게 돌아가더라. ‘그게 부처님이 가르치신 불교적 이치 아니냐, 불교적 경제 이치인데’ 그 원리만 믿고 그냥 합니다.
아무것도 겁날 것이 없고 바랄 것이 없고, 아, 그런데 주지하는 사람들은 그게 어려운가 봐요.
하물며 가정을 운영하는 사람이 그게 어디 쉽겠습니까? 이해는 합니다. 가정을 운영하는 사람은 정말 어렵습니다.
또 주지만 해도요 주지만 해도 그게 매달 들어가는 공과금도 있지 뭐도 있지 또 인건비도 많이 나가죠. 그래서 ‘내가 주지를 해도 정말 어려울 것 같다’ 하는 생각을 하긴 합니다. 내가 가정을 꾸리고 산다면 더 어려울 것 같아요.
제가 뭐 그렇게 툭 터진 사람입니까? 툭 터진 사람도 아니에요. 내가 가정을 꾸리고 산다면 정말 못할 것 같고 어려울 것 같고 주지를 산다면 정말 어려울 것 같다, 주지 안 살기가 천만다행이다, 큰절에 이렇게 얹혀사니까 얼마나 큰 다행이냐, 절에서 밥 주지 옷 주지 연료비 내가 걱정 안 해도 되지, 그러니까 그냥 주면 주는 대로 쓰고, 안 주면 안 주는 대로 가만히 있고, 그런 것이 절 집안에 사는 큰절에 사는 혜택인데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조그만한 코딱지만한 말사 하나 얻어가지고 그거 운영하려면 최소한도 부전 하나 둬야죠, 공양주 하나 둬야죠, 사무장 하나 둬야지요, 무슨 심부름 하는 사람 하나 둬야지요. 대여섯 명은 월급을 준비해서 매달매달 인건비를 줘야 되는데 그거 어떻게 감당합니까? 어떻게 뭘로 감당해요 도대체가, 사기 쳐서 감당해요? 그러니까 가끔 사기도 치나 봐요. 웃자고 하는 소리입니다. 예 오늘 공부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이야기하다 보니까 이렇게 중언부언 말 같지 않은 소리도 합니다. 그 속에는 뼈도 있고요.
언중유골이라. 말 속에 뼈가 있는 그런 말씀도 드리게 됐습니다. 오늘 화엄경 공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동참해 주신 모든 화엄학인 여러분들 각각등보체(各各等保體)
화엄법석에 동참하셔서 자리를 빛내주신 여러 화엄학인 모든분들 각각등보체.
내 개인 유튜브 방송이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이런 말 마음대로 해도 되고요.
그렇다고 방송 내리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요.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성불하십시다.
-無比스님, 2025년 3월 28일, 유튜브 염화실TV 법문全文-
원해여래진실의
우리도 부처님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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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從體歸用 攝用歸體 ...아름다운 화엄회상,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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