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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수능.문학실 스크랩 [상호조언] [시] 제3회 푸른작가 문학상 고등부 운문 수상작
시사랑사람들 추천 0 조회 77 07.08.25 22:2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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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 운문 우수상 최성아(전주예고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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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이꽃


밤새 내린 비로 발목까지 흥건하다

겨우내 밭에 머물던 할머니
한 송이 꽃조차 피울 수 없는
지붕 높은 집, 해거름은
반쪽짜리 창문을 가닥가닥 두드린다
지쳐 돌아가 버린 봄 날
전설이라도 붙잡고 싶은 갈증이 인다

손 시린 어둠 속
꽃을 접는다
하루 종일 벗지 않은 내복 소매에
진홍빛 종이꽃물이 올랐다

자식들 꿈을 바지런히 키워왔던
종이꽃에 짓눌려
늙은 오이마냥 굽은 허리엔
적적한 빈 둥지만 남았다

꽃술에 숨 불어넣는 볼이 부풀고
샛노란 하늘이 내려앉는 찰나
할머니의 등줄기가 봉긋 솟는다
수북히 접어놓은 무더기 꽃 속에서
고동빛 마른 손에서 흘러나온
여린 종이꽃의 잎사귀에는
누런 고름만 얼룩덜룩 화사하다

태풍이 이제 막
쩔뚝이며 산을 넘었다는 뉴스속보에
진달래색 개나리색 습자지가
겹겹이 허리 묶어 포개 눕는다
밤새 내린 빗줄기
약한 밭고랑 틈으로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예순세 송이 종이꽃
목에 두르고 저승길 가련다,
지네발로 가도 아직 한참인 먼 길
당신이 피우고 당신이 태울 마지막 욕심에
비탈진 생의 주름진 텃밭을 건너는
한 잎의 여자,

꽃잎보다 가벼운 생
가뿐가뿐 반음 낮은 숨소리로
할머니 손끝, 닳아진 지문이
색종이 이파리 물관을 트고
철사 위에 탐스러운 꽃을 피운다



▣ 갯벌의 꿈


바다가 살을 발라내야
서서히 드러나는 갯벌
하늘을 향해 숨구멍이 열리고
살아 꿈틀대는 것들이 모두
목을 쭉 내뺀다

해안선 타고 온 겨울기운이
귓볼을 날카롭게 스치고
물결이 바람따라 한 쪽으로 눕듯
깊은 주름이 흐르는 얼굴들
어망을 뒤집던 할배가
옷섶에서 솔담배를 내어 물면

황태보다 몇 번은 더 얼었다 녹은 손
반나절 질척한 갯벌 속을 본다
빨판으로 끝가지 버티던 세발낙지
네 녀석도 집을 지키려던 게지
억척스럽게도 깊은 낙지의 동굴
적막했던 갯벌이 웅웅 울리고
쓴 입에서 담배재가 하얗게 날아간다

할배 허리가 해거름을 찾아 기울고
망태기 하나가 가득 채워지면
뱃고동소리 너머 바다가 오고 있다
뻘에 널려있는 기억이 둥글게 부풀어
어느덧 주름진 할배 얼굴에도
파도의 흔적이 썰물처럼 빠진다



▣ 국화꽃 향기를 아세요?


변두리 버스 정류장 옆
아내의 병원비가 부풀수록
빵 찍는 기계는
쉴새 없이 달아올랐다

노동의 철칙인 양 도통 입을 떼지 않는 사내
국화빵과 누런 종이봉투만으로
세상과 수화를 나눈다

일당을 챙겨 넣은 안주머니
고된 노동이 허덕인다
혹여 그 돈이 풀어진 실 자락 틈새로
빠져나갈라, 곧장 병원으로 내달리는 사내

단골 이씨 아저씨가 왔다
만원을 내고 거스름 팔천원을 받는 낯익은 손
되돌아와 계산이 틀렸다며
돌려주는 오천원권 지폐 한 장
서로가 제 것이 아님을 안다
사랑으로 나누는 수화

한 평 남짓한 따스한 공간에서
오천원권 지폐의 종착역은
항상 주인사내의 손이었다

어느덧,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바람
계절 탓이지-
코끝 아린 매연이 국화 향을 밀어낸다

지난 봄, 자취를 감춘 사내
몇일 전, 남자는 아내와
바삭바삭 군침 도는 국화빵 굽기 시작했다
길목을 녹여내는 국화 향기로
병석에 누운 아내를 일으켰다는
사내의 인사말

그윽한 국화 향기, 도시를 녹인다



▣ 평화세탁소


느티나무 아래 커다란 볼록거울 속으로
평화세탁소 오토바이가 들어온다
이른 일요일 아침,
경사가 가파른 재건축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며
늦잠에 뒤척이는 집들을 깨우고 나면
조금씩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하는 복도에
활기가 차기 시작한다
세탁소에 남아 있는 아내는
왼쪽 볼에 실밥을 묻힌 채
낡은 양복 바짓단을 다림질하고 있다
좁은 골목에 가로등이 환한 눈을 뜨고
이마엔 단추같은 땀방울이 꿰어진다
갸르릉대는 기계소리에 파묻혀
티비소리가 점점 목소리를 잃어가고
반쯤 부푼 헌 지폐를 세며
스팀다리미에서 뿜어져 나오는 김에
얼굴이 뜨거워도 내일이 기울어지지 않는다
자꾸 일어나려는 보푸라기를 다림질하면서
납작한 세상을 꿈꾸며
먼지를 훌훌 털어버리려 한다
하얀 김을 쏘이며 옷감을 누빌때마다
옷들이 파닥파닥 은비늘로 펄떡이고 있다



▣ 창


어스름이 고여 있는 바깥 어둠 속에서
나는 차을 들여다보았다
언제부터 닫혀 있었을까
뽀얀 먼지가 수북하게 내려앉아 있을
썩은 밑동이는 늙은 개 이빨처럼 들쑥날쑥하고
오래 된 창문 고리는
손때 묻은 정겨움이 결을 따라 닳아 있다

곶감 한 타래가 여무는 창문 모서리로
노을빛을 안고 달려온 바람이 머물 적
창문에 일렁이는 입김을 따라 문득 눈을 들면
처마 밑 삭은 물도랑은 감나무 밑을 돌고 돈다

할머니는 골방에 앉아 묵묵히 겨울 채비를 하셨다
강물같이 환한 웃음 지으시며
저녁놀보다 더 느리게 웃으시는 할머니

열아홉 개의 창을 가진 나는
옹이가 생긴 하나뿐인 할머니의 창을 두들겨 보지만
이쪽 세상과 저쪽 세상이 서로
말할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것을 안다
모나지 않은 가을 풍경 속에서는
잎이 노랗게 질 때까지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산사 풍경이 울먹울먹 메아리치고
창 밖 노을이 가지에 내려앉을 때마다
까치는 푸르르 몸을 떨며 날아가고
어둠살이 마구 보채는 산그늘은 아직도
창문 곁을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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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 운문 우수상 최성희(용문종합고등학교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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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탑방


과자 부스러기 같은 별들이 하늘에 박히면
골목 안 쓰레기통이 네모난 얼굴을 하고서
누군가가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벽보만 날리는 가로등 빛은 서글프기만 하다

술 취한 사내가 옥탑방으로 올라가자
잠시 껌벅 거리던 형광등 불빛이 환하게 켜진다
눈이 시리다
바깥은 안개주의보가 내려져 있다

새벽 그늘을 타고 골목을 빠져나간 사내는
남대문 시장에서 지게품을 팔다
계단에 앉아 긴 하품을 한다
옷감에서 나오는 포르말린 냄새에 눈이 아프다
김밥을 파는 여자가 허탕을 치고 돌아간 뒤로
바깥에는 기어이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에 젖은 사람들이 계단으로 뛰어들고
둥지 밖에서는 비를 피해 달아나는 취객들이
첫차를 타고 떠났다

옥탑방이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밤 고양이 옥상을 배회하고 있었다
비에 젖지 않은 것이 없었다

▣ 의자


길 가, 누군가 버려놓은 의자 위에는
먼지만 세들어 살고 있다
해가 서쪽으로 등을 돌리면
달맞이 꽃의 쿨럭대는 소리가 비껴가기도 한다

처음 의자를 만들었던 사내는
가끔, 피곤에 지쳤을 때
혼자 앉아 하늘 저편을 올려다 보면서
떠날 채비를 했는지도 모른다
다리 한쪽이 무너져버린 뒤로
하늘을 기우뚱 바라보고 서 있으면서
낮달이 지는 것을 아쉬워 한다

새들이 둥지 짓느라 아우성칠 저녁
숲이 조용해지면
의자는 절룩거리며 일어나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듯 멍하니 서있다

무꽃이 한창 필 때쯤
떠났던 외삼촌이 돌아와 낡은 집을 수리하고
깊게 잠겨버린 우물을 다시 퍼 올려
마당가에 봉숭아 꽃씨를 뿌린다
처마 밑에는 평상이나 긴 의자를 내어 놓고서
여름밤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고
외삼촌은 목발을 짚은 채
낡은 의자 위에 앉아
서울 낯선 곳에서의 생활을 모닥불에 던져 넣고 있었다



▣ 서울로 간 아버지


오뉴월 가뭄에 갈라터진 논바닥에
쇠비름이 자라고
끝내 물이 채워지지 않는 저수지가
연 뿌리를 하얗게 드러내고 있었다
지난해 장마에는 물바다가 되었지만
올해는 점점 파래지는 하늘에
고추잠자리들만 무성하게 날아다니고
가뭄 끝에 마을 떠난 이들은 고추잠자리가 되어
도시의 회색 하늘을 날고 있으리라

땅만 바라보다가 서울로 떠난 아버지는
여태 소식이 없다
알전구 밑
말라빠진 푸성귀를 담든는 엄니의 손가락 끝엔
풀물이 짙게 배였다
봉숭아도 이젠 지쳐
노란 꽃을 피우다 말고 고개를 떨구었다

날마다 서울로 떠나는 열차를 바라보면서
나도 한번쯤 서울로 떠나버릴까 눈물 짓다가
끝내 주저앉고 만다
들녘은
아직도 타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찔레꽃이 해진 옷깃을 여미며
산비탈을 내려오고 있는 저녁 무렵이면
나는 떠난 열차를 생각한다

남의 집 처마 밑에서 곤한 잠을 주무시는 아버지의
옷깃에서는 낡은 주름살이 접히고
새벽,
가로등 불빛에 젖은 초라한 아버지를 본다
마당 뒤편 텃밭에서는
아버지가 심어놓은 해바라기들이
말라가고 있다
엄니의 손에선 아직도 풀물이 지워지지 않았다

언제쯤 비를 묻힌 바람이 불어올까
풀들이 제 풀에 자지러지고
냇물이 말라버려서 이젠 자갈밭이 되었다
뉴스에서 본 서울 하늘은 늘 푸르러
눈물이 난다
도시의 밤은 안녕한가 묻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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