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버팀목
송희제
제2부 -한인 성당 주일미사, 캐나다 여행-
청아가 시애틀에 도착한 이틀 뒤는 일요일이었다. 5남매 모두 천주교 신자이기에, 미국에서 함께 첫 주일미사를 드리게 되었다. 미국 언니가 알려준 한인 성당까지는 차로 한 시간 정도 걸렸다.
경건한 마음으로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 모두 가져온 옷 중에서 가장 단정하고 멋진 차림으로 갈아입었다. 미국 언니는 얼마 전까지 성당 부인회장을 지내며 오랫동안 봉사활동을 해왔다. 마침 그날은 미국 언니가 속한 구역에서 체리를 성당 마당 좌대에 진열해 판매하는 날이었다. 청아는 언니와 함께 마당으로 나갔다. 체리를 정리하며 청아도 봉사에 동참했다. 과일 판매 수익금은 성당 신축을 위한 성전 기금으로 사용된다고 했다. 생소한 얼굴을 본 교우들이 묻자, 미국 언니는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한국에서 친정 동기간이 모두 왔어요.”
경당 내부는 한국의 성당과 비슷했다. 5남매가 함께 미국 땅에서 처음 미사를 드린다는 사실에 모두는 감회가 깊었다. 주변엔 다양한 얼굴들이 있었다.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백인, 까무잡잡한 피부에 곱슬머리를 가진 사람들, 그리고 한국인과 국제결혼을 한 교우들도 있었다.
그중 특히 눈에 띄는 가족이 있었다. 키 큰 백인 남성과 예쁜 백인 여성, 다섯 살쯤 된 금발 딸아이, 그리고 두세 살쯤 된 동양계 남자아이였다. 남자아이는 장애가 있는 듯 보였다. 백인 남성은 그 아이를 안고 성당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청아는 그 모습을 보며 마음이 먹먹해졌다. 한국에서도 입양은 흔하지 않지만, 대부분 건강한 아이를 원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외국인 부부가 장애가 있는 동양계 아이를 입양해 사랑으로 키우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미사가 끝나갈 무렵, 주임 신부님이 청아 일행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김희아(구네군다) 자매 일행이신가요? 감사 미사 예물이 올라왔습니다. 모두 닮은 얼굴 같네요. 혹시 동기간이신가요? 장의자에 여덟 분이 나란히 앉으셨군요. 모두 일어나 주세요. 환영합니다. 참 보기 좋습니다. 하느님도 기뻐하시겠지요.”
청아 일행은 일제히 일어나 정중히 인사했고, 교우들은 따뜻한 박수로 맞이해주었다. 그녀는 미사 후, 백인 부부 가까이에 다가가 그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남편은 서툴지만, 아이에게 한국말로 이야기하고 있었고, 아내 역시 한국어로 아이를 달래는 듯 보였다.
청아는 놀라움과 감동을 안고 미국 언니에게 물었다.
“저 키 큰 백인 부부 알아요?”
“응, 그 부부는 장애 있는 한국 아이를 입양했어. 그 아기가 모국의 언어와 문화를 잊지 않도록 일부러 한인 성당에 나오는 거야.”
청아는 그 말을 듣고 울컥했다. 사랑은 국경도, 언어도 초월한다. 사랑은 서로를 감싸는 가장 큰 ‘버팀목’이었다. 청아는 미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자기 안의 편견을 내려놓고 마음 깊이 울림을 느꼈다.
며칠 뒤, 미국 언니의 교포 지인 집에도 초대받았다. 모두가 함께 가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고, 주변 관광도 함께했다. 그 후 남은 시간을 이용해 캐나다까지도 여행하기로 했다. 맏언니와 오빠의 다리가 불편했지만, 모두가 함께하는 여행이었기에 서로 도우며 떠났다.
시애틀에서 가까운 국경을 넘어, 캐나다 로키산맥을 포함한 여러 관광지를 들렀다. 초여름의 꽃 정원이 그들을 반겨주었다. 로키산맥 자락에 도착한 청아 일행은 네 명씩 리프트를 타고 산 위로 올라갔다. 겁이 많은 맏언니는 안전장치가 있음에도 불안해하며 청아의 팔을 꼭 끼고 앉아 있었다. 그녀는 언니를 웃기기 위해 모자를 마이크처럼 입에 대고 말했다.
“언니! 우리가 드디어 미국 언니네까지 왔네. 로키산맥 숲속의 주인공 같지 않아? 언니 소감 한마디 해봐.”
“내 팔자에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네. 다 너희들 덕분이지, 특히 막내 청아 네 덕분이야. 고맙다야.”
큰언니의 늘 외롭고 조용한 인상이 환하고 행복한 얼굴로 바뀌었다. 청아 또한 뿌듯한 기쁨으로 언니와 손을 맞잡았다.
산 중턱에서 내려 잠시 버스를 멈췄다. 맑은 날씨에 새하얀 설원이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인솔자가 말했다.
“눈 녹은 물이에요. 손으로 떠서 드셔도 됩니다.”
청아는 손바닥으로 물을 떠 맛보았다. 어릴 적 처마 밑에서 고드름을 따먹던 기억이 떠올랐다. 차고 상쾌한 맛이었다.
말 없던 청아의 오빠도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었다. 미국 제부와 눈 위를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걷는 모습이 참 정겨웠다. 청아는 모두를 둘러보며 제안했다.
“우리 이 로키산맥에서 함께 외쳐보자!”
“야호! 대한민국! 뻗어가라, 로키산맥처럼! 우리 삼천리금수강산아!”
그 소리에 맞춰 동기간 모두가 목청껏 따라 외쳤다. 조용한 큰언니, 점잖은 오빠 부부까지 한마음으로 소리쳤다. 그날 애국의 외침은 서로를 하나로 묶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