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한 감정이입
임병식 rbs1144@daumnet
1.
추석날 아침이었다. 작년에 세상을 떠난 아내를 위해 차례상을 차리고 베란다를 보니 낯선 꽃이 피어있었다. 추석 전날까지도 아직 꽃이 머금은 채 피어있지 않던 것이다. 커다란 꽃송이 하나가 마치 보름달처럼 환했다. 꽃 이름은 무늬 아마릴리스.
서둘러 물어서 나중에야 안 이름이지만, 나는 그것을 사 오기는 했지만 이름도 잊고 있었다. 봄철에 화원을 지나다가 양파를 닮은 구근(球根)이 있기에 사 왔었다. 그것이 차차로 자라더니 군자란 잎처럼 넓은 잎사귀를 내밀었다. 그렇지만 설마 꽃을 피우리라는 건 생각도 못 했다.
“이런 특별함이라니”
서둘러 모임을 함께한 카톡방에 사진을 올려 꽃 이름을 물었다. 거기서 한 지인이 이름을 알려준 것이다.
나는 아내를 작년 12월 9일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후 사진을 감춰놓고 지냈다. 그러다가 지난달부터 꺼내어 거실에 걸어두고 있다. 처음에는 좀 주저했지만 걸어두니 함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든든하기도 하다.
그 사진 밑에다 추석을 맞아 간단히 차례상을 차렸다. 생선만 갖추지 못했을 뿐, 과일을 고루 놓았다. 인사는 묵례로 대신에 하고, 사진을 바라보았다. 사진 속에서 아내는 환하게 웃고 있다. 하얀 치아를 드러내고 근심 없는 모습이다.
그렇지만 아내는 긴 병마와 투병했다. 무려 스물두 해를 침상에서 누워 지냈다. 뇌졸중이 찾아와 몸을 부린 후 한 발짝도 걷지 못했다. 나는 그 생활을 온전히 아내와 함께했다. 처음 3개월은 응급실에서 쪽 의자를 놓고 함께 잤다. 그 과정에서 급히 실려 온 환자들이 죽어 나가는 광경도 여러 차례 목격했다. 그렇지만 무섭지 않았다.
오직 나는 쓰러진 아내가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차도에만 관심이 있었다. ‘초기이니 사향을 써보겠습니다. 좀 비싼데 괜찮겠습니까?’ 다급한데 돈 들어갈 것을 걱정할 계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게 만만한 가격이 아니었다. 사람을 살렸다면 아까울 것이 없겠지만, 결국 실패한 후유증은 매우 컸다. 병원비를 대느라 사람 노릇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가장 난처한 일은 애경사 소식을 접한 때인데, 부조를 충분히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을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가. 그때의 미안한 부조는 나중에 그대로 갚음으로 돌아왔다. 세상의 눈높이는 틀리지 않아서 그때 내가 했던 금액이 그대로 적용되어 돌아왔다. 그것을 받아들고서 새삼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아픔을 겪은 간호 생활. 그때는 하루도 신음을 내지 않은 날이 없었는데, 하늘나라로 떠난 아내는 그 세상이 편안한지 차례상 앞에서 웃고 있었다.
아니, 실제로 무늬 아마릴리스가 환하게 피어있는 게 아내의 웃는 모습으로만 여겨졌다.
2.
재작년 봄날이었다. 날씨가 화창하여 거주하는 아파트 후원으로 나가 벤치에 앉았다. 때마침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서 꽃 대궐을 이루고 있었다. 살랑대는 바람에 떨어지는 꽃비를 맞고 있자니 특별한 감정이 일었다. 주머니에서 메모지를 꺼내 시 한 편을 적어 내렸다.
4월 벚꽃 아래
청명한 날 벚꽃 아래 벤치에 앉았다
명지바람이 건듯건듯 부니 우수수 쏟아진 소리 들린다
비가 저리도 멋스럽게 내리면 마냥 좋으리
그 생각을 하다가 어릴 적 분이를 떠 올린다
치장이라고는 손톱에 봉숭아 물들이던 것이 전부이던
웃을 때면 목젖까지 다 드러내던 아이
고개를 드니 공중에서 그미가 하늘하늘 내려오는 것 같다
혼자가 아니고 친구들과 함께
나는 그런 무리를 보면서 생각한다
멀리 떨어져서 내 시야를 벗어난 것은 내가 모르는 아이 같고
내 머리 위와 무릎 위로 내려앉은 것들은 아는 아이들일까
그런 생각에 얼른 털어 내지를 못한다
실상 그런 것들이 지금껏 그리움이 되지 않았을까
한동안 유정한 눈길을 거두지 못한다
내 어린 시절 이웃에 입술이 유난히 파란 소녀가 살고 있었다. 어른들의 말에 의하면 가난해 못 먹어서 입에 감창이 났다고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심장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심장이 안 좋으면 병증이 입술에 파랗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 소녀가 일곱 살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나는 어린 나이에 차마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 그 할머니가 분이를 업었고 보자기를 덮었는데, 분이 아버지가 앞장을 서고 있었다.
지게에다 보통 크기의 도가니를 지고 있었다. 그것으로도 충분히 안 좋은 일이 생겼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는데 등에 업힌 분이의 발이 삐져 나 온 게 보였다. 그 다리는 늘어져서 덜렁거리고 있었다.
그때 본 광경이 얼마나 무섭고 충격적이었는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날도 그랬다. 벚꽃 잎이 흩날리는 벤치에 앉아서 나는 분이를 생각하고 있었다.
하늘에서 무언가 전하려는 말이 있는 듯 하늘거리며 내리는데 가까이 와서는 자꾸만 흩어져 버렸다. 그중에 용케 어깨며 무릎에 떨어진 것이 있어 분이를 상상했다. 이 두 가지, 추석날에 만개한 무늬 아마릴리스. 그리고 어깨에 떨어진 꽃잎, 특별한 감정이입을 시켜준 일이 아닌가 한다.
첫댓글 추석날 사모님 차례상도 건사하게 잘 차리시고,
추석날 만개한 무늬아마닐리스를 보고 환하게 웃고 계신 사모님 같아 사모님이 더욱 그리워 하셨겠습니다.
아파트 후원 벤치에서 어깨에 떨어진 꽃잎을 보고 순이(분이) 생각에 有情한 눈길을 거두지 못했으니
청석님은 感性이 너무나 풍성해 수필이나 詩나 어느 것 하나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좋은 작품 잘 읽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백일장에서 글짓기하듯이 잽싸게 한편을 완성했습니다.
감정이입이 되니 글이 술술 잘 풀렸습니다.
이른 시간 읽어주시고 가슴따뜻한 댓글 달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상서로운 징조라 생각합니다
사모님 사진을 모셔놓고 차례도 지내셨으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셨겠어요 자식들이 있어도 아내에 대한 제사는 남편이 모시며 나이에 관계없이 절을 올리는 것이 격식이라고 하지요 결혼식 때 신랑신부가 맞절을 하는 것을 보더라도 맞는 예법이라고 봅니다
지금은 많이 평온해진 상태입니다.
간단히 차례상을 차리고 사진을 바라보니 웃고 있었습니다.
더하나 이날따라 무늬아마닐리스가 만개하여 기묘하다 했습니다.
아내의 혼이 꽃속에 실려있었다면 잘있으라고 결려한듯도 했습니다.
2024년 겨울호 창작수필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