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야기 Ⅸ
금선정과 금양정사
- 금계(錦溪)에 흐르는 선비의 꿈 -
소백산 비로봉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기암괴석을 휘감아 돌며
비단결 같은 무늬를 만들어내는 곳,
우리는 그곳을 금계(錦溪)라 부릅니다.
예로부터 『정감록』이 꼽은
십승지 중 으뜸이라 불리는
풍기 땅에서도,
금선정(錦仙亭)이 자리한 이곳은
세속의 먼지를 털어내고
신선이 머물만한 은밀한
수양처(修養處)였습니다.
비단 물결 위에 세운 선비의 기개
금선정은 풍기읍 금계리,
욱금동 계곡의 거대한 반석인
금선대(錦仙臺) 위에 그림처럼
앉아 있습니다.
노송(老松)들이 춤추듯
휘어져 계곡을 덮고,
그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가
세상의 소란을 잠재우는 곳입니다.
해 질 무렵, 굽이친 소나무 사이로
스며든 낮은 햇살이 금선대 반석 위에
비단 자수를 놓을 때면,
이곳은 시대를 건너온
한 폭의 산수화가 됩니다.
이 아름다운 계곡에 마
음을 빼앗긴 이가 있었으니,
바로 풍기가 낳은 대학자
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 선생입니다.
퇴계 이황의 수제자이자
성리학의 대가였던 그는
이 계곡의 아름다움을 사랑하여
자신의 아호를 '금계'라 짓고,
이곳에서 자연을 벗 삼아
학문을 닦으며 심신을 수양했습니다.
선생은 이곳의 정취를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신선은 간 곳 없고
바위만 남았는데
흐르는 물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같구나
소나무 그림자 물결에 흔들리니
마치 푸른 용이 찬 샘물
속에서 꿈틀대는 듯하네“
그가 이곳에 머문 것은
단순한 유희가 아니었습니다.
단양 군수 시절, 피폐해진
백성들의 삶을 구하기 위해 목
숨을 걸고 올린 '단양소(丹陽疏)'는
오늘날까지도 목민관의
표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벼슬길에 나가서는 백성의
고통을 덜기 위해 임금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대쪽 같은
그에게, 금선정은
치열한 현실 속에서도
결코 잃지 않으려 했던
'선비의 맑은 정신'을 비추어보는
거울과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퇴계 이황, 제자의
뜰에서 시름을 씻다
금선정에는 스승과 제자의
애틋한 사연도 서려 있습니다.
풍기 군수로 부임했던 퇴계 이황 선생은
제자 황준량이 공부하던
금양정사(錦陽精舍)와 그 뜰인 금계를
자주 찾았습니다.
특히 퇴계 이황(당시 48세)이
풍기 군수로 부임한 1548년(명종 3년),
금계 황준량(당시 32세)은
마침 모친상을 당해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인 풍기에서
시묘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엄격한 유교 사회에서
스승이자 고을 수령이 제자의 상중
거처를 직접 방문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고 파격적인 배려였습니다.
금계천의 너럭바위와
맑은 물에 반한 황준량이 이곳을
'금선대'라 이름 지었는데,
퇴계 역시 이곳의 풍광을 극찬하며
황준량과 함께 거닐었습니다.
두 분은 인간의 본성과
우주의 원리를 담소하고,
때로는 도탄에 빠진 백성을
걱정하며 이 계곡을 걸으셨습니다.
퇴계는 금선계곡의 맑은 물소리에
마음의 위안을 받으며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습니다.
"신선 될 재주 없어
삼신산을 못 찾고 구름 바라보며
시냇물로 입을 헹구네 좋구나
풍류 찾아 떠도는 손아
금계에 때때로 와서
세상 근심 씻는다네“
이 시에는 속세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연과 하나 되고자 했던
선비들의 동경이 담겨 있습니다.
퇴계에게 금계는 멀리 있는
이상향이 아니라, 마음의 때를
씻어낼 수 있는 현실 속의
무릉도원이었습니다.
훗날(1781년) 풍기 군수
이한일이 두 사람의 고결한 뜻과
황준량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가 금선정입니다.
당시 현판의 글씨는 퇴계 선생의
필치를 모아 만든 것이라고 하니,
이곳이 단순한 정자가 아니라
당대 최고의 지성들이 교류하던
정신적 공간이었음을 증명합니다.
금계(金鷄)와 금계(錦溪),
그 속에 숨은 이야기
이곳에는 지명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흔히 풍기의 명당을 말할 때
'금닭이 알을 품은 형상'이라 하여
'금계(金鷄)'라 쓰지만,
황준량 선생이 이름 붙인
이 계곡은 '비단 금(錦)' 자를 쓴
‘금계(錦溪)'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마을
뒷산에 금계바위가 있어
'금계촌(金鷄村)'이라 불렸으나,
황준량 선생은 이곳의 물살이
비단처럼 곱고 주변의 노송과
바위가 어우러진 풍경이
너무도 아름다워 '비단 계곡'이라는
뜻의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이는 풍수지리적 명당이라는
'운명'적 공간을 넘어,
자연의 심미적 가치를 발견하고
그 속에서 인격을 수양하고자 했던
선비의 능동적인 안목을 보여줍니다.
십승지의 전설이 난세를 피하기 위한
간절한 생존의 이야기라면,
금선정의 이야기는
그 생존의 터전 위에서 꽃피운
고귀한 정신문화의 이야기인 셈입니다.
흐르는 물에 갓끈을 씻으며
지금도 금선정에 오르면
수백 년 묵은 소나무들이
옛 선비들의 기개처럼 푸르게 서 있고,
바위 사이를 흐르는 물소리는
여전히 맑고 깨끗합니다.
황준량 선생이 머물며
책을 읽던 금양정사의 그윽한 향기는
이제 역사 속에 스며들었지만,
그가 남긴 선비 정신은
금선정의 바람이 되어
우리 곁을 스칩니다.
세상이 어지럽고 혼탁할수록,
금선정 앞 맑은 물에
갓끈을 씻으며 마음을 다잡았던
그 옛날 선비들의 모습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뷰파인더 너머로 보이는
금선정은 단순한 유적지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맑은 삶'이란
무엇인지를 묵묵히 일러주는
풍기의 위대한 정신적 유산입니다.
2026.1.21.
베규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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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동영상은
Goolgle Gems Storybook
기능을 이용하여
퇴계 이황 션생님과
금계 황준량 선생님의
만남의 한 순간을
재현해 보았습니다.
우리 소풍가던 곳
유난히도 맑은 물에
발을 담그기도 했으며
아름다운 추억이 서려있는 금선정
금선정의 역사를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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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야기 Ⅸ / 금선정과 금양정사
신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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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1.22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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