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 《문예사조》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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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이 깊어졌다 외 1편
김숙
혼자 사막을 걷는 소년한테 바람이 말을 걸었다
왜 혼자 걷고 있냐고 물어도 대답이 없다
손에는 큼지막한 돋보기가 들려져 있고
사막을 캠퍼스 삼아 맨발로 모래 위를 걸으며
발자국으로만 초현실주의 그림을 그린다
길게 발자국이 닿는 곳은 관심이란
의미가 더 진해져 생기가 돋는다, 심오해 졌다
소년은 돋보기로 모래를 확대해 가며
선명해진 길을 따라 바위였을 때를 들여다본다
모래 안은 사막이 되기 전 짙푸른 바다의 기억도
그대로 간직되어 출렁거리고 있다
푸른 파도와 갈매기는 그림자 끝에
와 있는 재앙을 보지 못한 채 한가롭다
끝 쪽부터 물은 점점 말라
숨쉬기가 버거운 고기들은 버둥거리고
변화에 적응 못한 몸이 붉게 변하며 굳어진다
멀리 있는 집과 가로등 불빛도 물속에 잠겨
모래층의 아래부터 차근차근 숨구멍을 채운다
소년은 역사가 층층이 쌓인 곳을 내려다보며
발바닥에 까끌까끌 읽혀지는 내력을 무시할 순 없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물루동굴도 발밑에 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곳에 돋보기를 가까이 대어본다
햇볕이 내리쬐는 오후 마음이 더 깊어진 소년은
돋보기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림자 끝만 희미하게 보인다
107호 여인
15층의 무게를 이겨내고 있는 107호에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여자 혼자 산다
드나드는 사람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
달과 별이 선명히 뜨는 깊은 밤에
창문을 열고 서있는 것을 볼 뿐이다
투명한 큰 볼에 달과 별을 버무려
새벽까지 천천히 씹어 먹는 여자
간간이 입안에서 별이 톡톡 터지면
표정 잃은 얼굴에 미소가 지나간다
아파트 여자들은 소문에 소문을 더해
마법사가 산다고 근처도 가지 말라한다
사람들 눈길에 화답하지 않았던 여자 주위로
날마다 경계의 원은 점점 넓어진다
쉬쉬했던 소문의 꼬리가 현관을 들어와
여자에게 귓속말로 전해주고 간 뒤
묵직한 커튼은 한 번도 젖혀지지 않았다
밤에 107호 여자를 봤다는 사람이 없어지고
여자는 사람들 기억에서 점점 희미해졌다
아파트 위에 뜬 별과 달이 사라졌을 때
여자의 방에서 들리는 소곤거린 소리와
사라진 별빛이 창틈으로 선명히 흘러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