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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 학리 해안에서 바라본 일광 일대 모습. 한적한 포구인 학리는 마을의 생김새가 황학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 전해진다. 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
이리 늦은 건, 망할 놈의 딸내미
못된 성질머리 탓이다
막내딸은 덜렁 준이 손만 잡은 채
이태 전 고향으로 돌아왔다
남편을 잃고 살기 위해 선택한 일
숨을 몰아쉰 후 더 깊이 잠수했다
으윽, 순간 몸이 뻣뻣해졌다
고통에 입이 벌어지고 말았다
돌멍게, 이놈은 절대 혼자 안 산다
옹기종기 핏줄끼리 모여 안 사나
회동댁은 딸내미 생각이 들었다
그때,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났다
세월이 무섭다.
이곳 풍광이 이렇게 달라지다니.
항아리처럼 부드러운 해안선은 바라보기만 해도 눈맛이 시원했다.
하지만 백사장 일대를 건물들이 차지하면서 솔수펑도 사라졌고 모래펄은 피서객이나 찾는 관광지로 변해버렸다. 사람들이 모여들자 메짠데기 솔숲의 하얀 목화송이 같은 학들도 사라져버렸다.
한때 학들이 모여 장관을 이룬 마을이라고 학리라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이제 학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달라진 환경이 새마저도 사라지게 한 모양이었다.
회동댁은 눈길을 들어 올려 하늘 눈치를 보았다.
해가 메짠데기를 지나 달음산 쪽으로 달음박질을 치고 있었다.
꽤나 늦은 셈이다.
집에 들러 장비까지 챙겨 선창으로 나서려면 아무래도 서둘러야 할 듯했다.
이렇게 늦어버린 건 망할 놈의 딸내미 못된 성질머리 탓이다.
도시로 시집 간 막내딸이 돌아온 건 이태 전이었다.
막내는 제 탯줄을 끊은 학리의 집을 두고 바로 옆의 일광해수욕장 앞에 터를 잡았다.
그러고는 살림집이 붙은 가게를 세내어 무슨 커피전문점인가를 열었다.
문제는 혼자서 덜렁 준이 손만 잡은 채 왔다는 거였다.
그러니 에미로서는 돌아온 걸 무조건 반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짬이 나는 대로 회동댁은 메짠데기를 넘어와 딸내미의 살림이며 손주 준이를 돌봐줄 수밖에.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물일로 지친 몸이었지만 반찬 서너 가지를 싸서 건너왔다.
그런데 딸내미가 밤이 늦도록 들어올 생각을 않는 거였다.
졸지에 발이 묶이고 말았다.
아침에 눈을 뜨니 얼마나 마셨는지 집안을 술 냄새로 도배까지 해놓고 거실바닥에 잠들어 있었다.
꼭지가 선 김에 딸을 향해 잔소리를 퍼붓다가 자신도 모르게 김서방이란 단어가 불쑥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러자 저도 속에 쌓인 것이 있었는지 준이아빠 얘기를 왜 식전부터 꺼내냐며 맞받아치며 나섰다.
그 바람에 한동안 언성을 높이고 말았던 것이다.
기장 학리는 미역의 첫 배양지로 알려져 있으며, 아직도 해녀들이 활동하고 있다. |
등 뒤에서 빵빵, 소리가 울렸다.
회동댁은 자동차가 지나가도록 길가로 바투 붙어섰다.
그때 막내딸의 목소리가 귓등을 때렸다.
조금만 기다리랬더니 그새 가버리면 어떡해요?
몇 발이몬 갈 낀데 뭐하로 기름 닳아감서 차를 타냐?
일없다, 가서 가게문이나 얼른 열든지.
회동댁은 그렇게 말한 후 멈췄던 걸음을 내디뎠다.
모시러 나왔으니까 얼른 타요, 누가 보면 괜히 나만 욕먹으니까.
깐에는 이혼하고 내려온 게 걸리긴 걸리는 모양이었다.
그런 걸 왜 사위 얘기 꺼냈다고 발광을 부리는지 원.
잘했다고 에미가 박수치며 응원가라도 불러줄 줄 알았남.
얼른 타요, 나도 바쁘다니까.
딸내미의 새된 목청에 마지못해 그녀는 승용차 속으로
엉덩이를 디밀었다.
차가 다시 출발했다.
제발 엄마도 고집 좀 그만 부리세요.
고집은, 어매가 무씬 고집을 부릿다꼬 그라노?
그놈의 보자기 짓인가 뭔가도 그렇잖아요.
그기라도 안 하몬 할망구가 여서 뭔 할 일이 있다꼬?
그냥 집에서 쉬면 되잖우.
쉬몬 불러서 집안 일만 시키묵을라꼬?
누가 맨날 부탁한데? 그냥 바쁠 땐 잠깐씩 와서 손주 좀 챙겨달라는 거지. 니들이 좋아서 내지른 새끼니 니들이 책임져라, 나도 늙어서 왔다갔다 할라쿤께 무르팍 아파서 몬 하것다.
그렇게 아픈 사람이 물일을 어떻게 자꾸 하려고 해요?
물질이랑 애 꽁무니 따라댕기는 게 같냐?
올해까지만 봐줘요, 내년이면 준이도 알아서 할 거야.
회동댁은 못마땅하다는 듯 창밖으로 시선을 내몰았다.
새로 지은 방파제와 등대가 보였다.
잠시 뒤, 할매제당 앞에 차가 멎었다.
회동댁이 차에서 내리자 딸내미는 휑하니 차를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물질에 필요한 연장을 챙겨 나오니 일행은 벌써 배에 올라 있었다.
선장 부부도 보였다.
선장네는 물안경 대신 내시경 한다며 걱정스런 표정이더니 다행히 큰 병이 아닌 모양이었다.
회동댁이 나타나자 선장 영감이 나서서 그녀의 장비를 안아들었다.
끄응, 하는 소리가 영감의 입에서 났다.
역시 세월 앞에 장사가 없는 모양이었다.
한때 영감의 몸피는 천하장사나 마찬가지였다.
지금처럼 뙤약볕이 내리쬐면 그림자 덕을 볼 정도로.
그렇게 덩치가 컸던 양반이 이제 살점을 죄다 세월에 털려 뼈만 남아 있었다.
선장댁은 그녀에겐 형님이기 이전에 스승이었다.
그녀에게 물질을 가르쳐준 제주 출신 상군해녀였으니까.
그러고 보니 이들과 함께 물밑을 헤매기 시작한 것도 어언 50여 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남편을 잃고 셋이나 되는 아이들 배곯지 않게 하려고 뛰어든 바다.
그 험한 세월을 어찌 자식들이 알까.
처음 갓난아기인 막내딸을 업고 나타나자 다들 만류했다.
하지만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배 위에 갓난아기를 뉘어놓고 물질을 한 번 하고 올라와 배 눈치 살피고 다시 또 물속으로 들어가고.
그러다가 아기가 울면 배에 올라 허겁지겁 짜디짠 젖을 물리지 않았던가.
그렇게 애지중지 키운 딸이 고향으로 돌아왔으니 얼마나 반가운가.
한데 마음 놓고 동료들에게 그 얘기조차 꺼낼 수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회동댁은 바닷물을 마신 듯 입 안이 썼다.
배가 선돌배기 근처를 천천히 에돌았다.
회동댁의 눈이 저절로 선돌배기 위쪽으로 향했다.
군복을 입은 군인들과 철망을 둘러쓴 초소가 눈에 띄었다.
군부대가 들어서기 전까지 그녀의 일터였던 곳.
비록 없는 살림이었지만 남편도 살아 있고 몸도 젊으니 가난은 금세 훌훌 털어낼 것 같지 않았던가.
더군다나 근처의 광대바우, 고래암, 굿당개 일대는 미역이 잘도 붙는 명당 곽전(藿田)이었지 않은가.
때가 되면 함께 몰려가 개닦이 작업부터 시작해 한겨울 내내 미역을 캤다.
쉬 풀리지 않고 쫄깃쫄깃한 맛을 지닌 덕에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 몇 오리로 건조를 해놔도 팔려나가기 바빴다.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그때가 가장 회동댁의 일생에서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구역관리권도 없던 시절이었으니 부지런한 사람이 곧 해산물의 임자였기도 했고.
그런 행복을 앗아간 건 전쟁이었다.
전쟁의 여파가 한갓진 어촌까지 미치리라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난데없이 철수 명령이 떨어졌다.
무슨 불발탄 처리장이 들어선다고 했다.
어창을 비우고 할매제당 근처로 몸을 피하긴 했지만 영영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일터가 금단의 지역으로 꽁꽁 묶이자 삶은 점점 팍팍해져 갔다.
참다못한 남편은 고깃배를 타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남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일곱 물.
게다가 날물이 시작됐으니 작업에는 더 이상 좋은 때도 없다.
해녀로 변신한 할망구들이 하나둘 바다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회동댁도 늦을세라 테왁을 안은 채 부랴부랴 뒤를 따랐다.
수온이 올랐지만 냉기만큼은 여전했다.
몰려온 차가움에 입 안의 틀니마저 드르르 떨리는 기분이었다.
이제 무슨 일이 있어도 다섯 시간 정도는 물속사정만 살펴야 한다.
하지만 바다 속사정도 전 같지가 않았다.
방파제공사 이루 물빛이 탁해지면서 해산물도 현격하게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해녀들은 더 부지런을 떨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이 내려가도 배 위로 올라올 땐 망사리가 천층만층 구만층이니까.
회동댁은 자리를 잡은 후 테왁의 고정줄을 내렸다.
그런 다음 깊이 숨을 들이마신 후 물속으로 자맥질을 시도했다.
첫 잠수는 빈손이었다.
나이 탓에 수심이 낮은 곳을 택했더니 그 흔한 보라성게 한 마리도 눈에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난바다 쪽에서 숨비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선장네는 운 좋게 문어까지 잡아 올렸고 다른 일행도 열심히 망사리를 더듬는 중이었다.
조바심이 났다.
무리겠지만 회동댁도 덩달아 깊은 쪽으로 향해야 할 듯싶었다.
난바다 쪽으로 헤엄친 후 고정줄을 다시 내렸다.
물안경으로 바다 속을 살피니 컴컴한 게 수심이 얼추 15미터는 넘어 보였다.
젊은 시절에는 이 정도의 깊이는 약과였다.
하지만 이제 이런 깊이마저도 힘겨웠다.
회동댁은 숨을 몰아쉰 후 물속으로 잠수를 시도했다.
오리발을 놀리며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바다가 벽 같았다.
그 바람에 몇 번이고 바닥에 닿지도 못하고 돌로 수면 위로 올라와야 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회동댁은 숨을 고른 후 납덩이를 하나 더 찼다.
그러고는 다시 자맥질을 시도했다.
잠시 뒤 잘피가 자라는 바닥이 눈을 파고들었다.
서둘러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때 암벽에 붙어 있는 돌멍게 군락이 눈에 띄었다.
요놈들을 만나려고 이런 고생을 했나 싶은 게 저절로 미소가 퍼졌다.
회동댁은 압박해오는 숨을 참으며 헤엄을 쳐서 멍게를 캐기 시작했다.
두 마리를 캐고 세 마리를 캐려는 순간 몸이 뻣뻣해지는 고통이 밀려왔다.
자신도 모르게 으윽, 하는 소리가 터졌고 그만 입이 벌어지고 말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배 위였다.
바닷물을 제법 마셨는지 입안이 짰다.
하따, 인자 정신이 드는 모양이네?
돌아보니 선장 영감이었다.
내가 와 여게 누버있는교?
임자가 하는 짓이 불안해서 지켜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사고가 났지 뭐요.
내가요?
믿을 수 없었다.
평생을 하던 물질에서 사고를 당하다니.
하마터면 초상 치를 뻔했구먼. 안 그래도 꿈속 할배제당 위짬에서 여우가 울어 찜찜했었는데, 원.
고작 쥐난 것 갖고 초상은 무씬.
회동댁은 부러 딴청을 부렸다.
하지만 대대로 내려오는 얘기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여우가 할매제당 쪽에서 울면 풍어요, 할배제당에서 쪽에서 울면 마을에 초상이 난다는 얘기를.
회동댁은 영감의 꿈이 거짓임을 일러주고 싶어 연장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영감이 재빨리 손을 휘젓고 나섰다.
오늘은 그냥 쉬소, 인자 돌아갈 때도 됐으이.
그러고 보니 정신을 잃고 제법 누워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느새 해가 달음산 꼭대기에 걸려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잡은 것도 없는데 맨손으로 어찌 가우? 잡은 것이 없다이, 이거는 뭐우?
영감이 건네는 건 분명 그녀가 캔 돌멍게였다.
할망구가 정신을 잃고서도 요것만큼은 손에 꼭 쥐고 있더만. 내가 그랬단 말인가.
영감의 말을 듣고도 믿어지지 않았다.
암튼, 귀한 거니까 요건 넘기지 말고 집에 갖고 가슈.
선장은 그렇게 말한 후 바다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러고는 목에 걸고 있던 호루라기를 불었다.
그러자 숨비소리를 내던 해녀들이 하나둘 배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사지가 물 간 문어마냥 늘어지는 게 얼른 집에 가서 눕고 싶었다.
대문 앞에 다다랐을 때였다.
웬 꼬마가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이기 누고? 준이 아이가?
어, 할머니!
준이는 몹시 애타게 기다렸다는 듯이 쪼르르 달려왔다.
하이고, 우리 이쁜 강아지. 할매집에 왔으몬 집에서 기다리제 와 밖에 나와 있노?
집에서 가다리다가 심심해서.
손자와 함께 방으로 들어서자 어째 분위기가 묘하다 싶었다.
준아, 어매는?
엄마는 오늘 도자기 구우려 간댔어.
속에서 절로 욕지기가 일었다.
그놈의 커피전문점인가 하는 가게를 알바생인가에게 맡기고 싸돌아다닐 생각만 하다니, 쯧쯧. 그런다고 제 삶이 여물어지기나 할까 봐서? 하긴 김서방 처음 봤을 때부터 물러터진 게 영 마뜩찮긴 했다.
그렇더니 결국 사단이 나고 말았다.
벌인 사업이 동티가 났던 것이다.
그래, 요즘 엄마 가게 장사는 어떻다더노?
어제 그대로래.
그라만 어제는 얼마나 벌었는데?
그제랑 같대.
괜한 걸 물었다 싶었다.
주인이 밖으로 나도니 매상이 오를 리 있을까.
아이 심심할까 싶어 티브이를 켜고 회동댁은 얼른 주방으로 향했다.
주린 배라도 채워주는 게 도리인 듯해서였다.
할머니, 근데 그게 뭐야?
티브이 앞에 앉아 있던 녀석이 쪼르르 달려와 물었다.
이거? 돌멍기지.
돌멍기? 아참, 돌멍게라고 그래야 알아듣제.
준이 니, 아나? 뭘 말이야?
글쎄 이놈은 말이다, 절대 혼자 안 산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데?
요것들은 가파른 암벽이라도 옹기종기 제 핏줄끼리 모여 안 사나.
준이가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회동댁은 서둘러 돌멍게를 장만하기 시작했다.
딸내미와 함께라면 더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하지만 아이까지 맡기고 나갔다니 이 시각에 찾아올 리 만무했다.
그때, 대문 앞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났다.
무슨 일인가 싶어 바깥동정을 살피니 막내딸이 붉은 눈을 하고는 허겁지겁 달려오는 게 아닌가.
야가 이 시각에 뭔 일로 이리 급하게 달려오고 이라노?
엄마, 엄마! 괜찮은 거야?
난데없이 그기 뭔 소리고?
소식 듣고 왔단 말이에요, 사고 났다며?
사고는 무씬.
회동댁이 얼른 말끝을 얼버무렸다.
정말 괜찮아요?
나 엄마 못 보는 줄 알고 얼마나 놀랐다구, 흐흑!
막내딸은 꼭꼭 싸맨 울음을 기어이 회동댁의 치마폭에 풀어놓고 말았다.
회동댁은 그 모습이 그다지 싫지 않았다.
이상섭 소설가
※공동기획 :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