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달 28일부터 국민 나이를 한 살씩 줄여 준단다. 죽음으로 향해 가는 나이가 줄어들어 좋기만 할 줄 알았는데 썩 반갑지는 않다. 왜냐! 한 살 어려지면, 나이보다 젊었다는 말은 들을 수 없고 나이보다 늙었네~ 하는 소리를 들을까 우려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모든 공식적인 나이는 만으로 쓴다. 또 번거로운 나이 계산법을 익힐 때 까지는 시간이 흘러야 적응이 될 텐데, 굳이 혼란스럽게 선심을 쓰시느라고.
어찌됐건 그렇게 해서 올해는 한 살 더 먹는 게 아니고, 한 살 줄어든 생일을 맞게 되었다. 가족 행사를 유난히 잘 챙기는 우리 가족들! 남편은 생일에 하고 싶은 것 다 해 준다고 나열하란다.
"평상시 부족함 없이 살고 있으니 낙숫물이 떨어져서 움푹움푹 패인 것처럼 볼수록 심란한 얼굴에 주름이나 쫘악 댕겨 주면 좋으련만" 했다. 서울까지는 못가고 제천에서 보톡스라도 맞게 해줄 테니 가자고한다. (그런 것 말고 찢고 당기고 그런 것 하고 싶은데...)
사실 내 얼굴에 그리 자신감(?) 없이 살았다. 그런데 50대 중반 장애인 목욕 봉사를 다닌 적이 있었는데 당시 10살쯤 되는 여자아이가 내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귀엽다”고 하는 게 아닌가. 옆에서 그 얘길 들은 다른 선생님들은 어른한테 귀엽다고 하면 안 된다고 아이를 나무란다. 티없이 맑아 거짓말을 못하는 아이에게 들은 귀엽다는 한 마디가 지금까지 나에게는 큰 위안이다.
지금도 그 인상이 변형될까 얼굴에 칼을 대기가 조심스럽기는 하다. 잘못하면 풍선 아줌마가 될 수도 있고. 몇 년 전 남편은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동안 자신의 암 수발로 인해 망가진 내 얼굴에 의학의 힘을 빌려서라도 주름을 펴 주고 싶다고. 서울 강남에 있는 유명 성형외과를 딸들이 알아보긴 했지만 내가 시집 갈 것도 아닌데 견적이 만만치 않을 생각에 포기했다. 그 비용으로 펜션 손님들 방과 욕실을 리모델링했다.
지금 생각하니 아무 소리말고 했어야 하는데 세월이 흐르니 미안함의 유효기간이 넘어서인지 남편의 태도가 바뀌었다. 그렇게 만족할 건 아니지만 생일 선물로 보톡스 라도 맞게 해준다니 고맙게 받아야지~
우선 점심부터 하자면서 먹고 싶은 것을 얘기하란다. 간장 게장을 워낙 좋아해서 게장 정식 하는 집을 검색했다.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대로 간다. 시골 동네를 지나 전혀 음식점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외곽으로 안내한다. 한옥에 입구부터 온갖 정성을 쏟은 티가 난다.
11시 30분 밖에 안됐는데 주차장에는 차들이 즐비하다. 들어가니 분위기도 좋고 테이블 마다 손님들로 가득하다. 메뉴판을 주는데 간장게장 정식 2만8000원, 보리굴비 정식은 3만원이다. 좀 비싸긴 해도 내 생일인데 이 정도는 먹어야지...ㅎㅎ
두 가지를 시켜서 나오는데 비주얼이 고급스럽고 푸짐하다. 깔끔한 유기그릇에 수저도 반짝반짝 빛난다. 양이 푸짐해서 남기면 아까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많이 남기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거한(?) 생일 점심 식사를 끝내고 고대하던 피부과를 찾았다. 진료가 2시부터라니 메모장에 이름을 적어놓고 한 시간은 기다려야 했다. 옆에 남편도 있고, 스마트 폰도 있으니 그리 지루하지는 않았다.
잠시 후 내 이름을 부르고 어떻게 오셨냐고 묻는다. 대기자도 많고, 이 나이에 보톡스 맞으러 온 게 살짝 쑥스러웠다. 모기 소리만큼 작게 "보톡스 맞으러 왔는데요" 했더니 잠시 기다리라고 한다. 차례가 되어 이마와 입술 주변에 보톡스를 맞고 싶다고 하니 이벤트 기간이라 절반 가격이다. 생각했던 것 보다 싸도 너무 싸다. 결제를 하고 기다리니 마취 연고를 발라주고 예리한 기구로 콕콕 찌르는데 아프긴 해도 참을 만하다.
잠시 후 다 끝났다고 해서 집으로 오는데 얼굴이 궁금하기는 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얼른 거울을 들여다 봤다. 입술 주변 주름은 좀 없어진 것 같은데 이마에는 아직도 골이 져있다. 뭐야 이거! 내가 보톡스 맞은 것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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