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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판
엄마 손에 이끌리어 다니던 교회는
아주 커다란 십자가가 주홍색 뾰족 지붕 위에 솟아 있었고
번들거리는 마 루 바닥에 엎드린 어른들이 많았다.
나를 옆에 앉혀놓고 엎드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기도를 했다.
얼마 후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작은 종을 울림과 동시에
사람들은 바른 자세로 앉았고 예배가 시작 되었다.
생애에 처음으로 자각(自覺)할 수 있는 첫 예배 였다.
하나님과의 첫 만남이었기에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다.
난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예수를 믿었던 모태 신앙인이다.
유 초등부 시절 주일날이면 계란 프라이를 먹던 간식시간이 가장 즐거웠다.
청소년기에는 이성 친구를 사귈 수 있는 만남의 장소로 생각을 했고,
대학 시절엔 강렬하게 문학 연극 무대를 통해 많은 학생들을 전도하고 이끌기도 했다.
어머니 소천(召天) 후 청년 시절 잠시 방황을 한 뒤
감리교에서 장로교로 바꾸어 예수님 믿음을 이어 나갔다.
결혼 후 꾸준히 예수를 믿었지만 믿지 않던 아내와의 마찰이 싫어
묵묵히 스스로 예수를 찾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벌이고 있던 사업이 실패위기에 처했을 때 아내는 붉은 깃발이 서있는 집을 기웃거렸다.
또 여기저기 조그만 절을 찾아 헤매다 결국에는 아는 언니를 통해 굿판을 벌이자고 결론을 내렸다.
순간 아내가 마귀처럼 보였다.
무서웠다. 그래도 하자는 대로 했다.
아마 예수님도 그냥 내버려 두셨을 거라 믿는다
가랑비에 젖은 낙엽이 아스팔트 위에 떨어져 차바퀴에 깔리는 비참한 심정에 처하지 않으면
인간은 본시(本是) 교만하여 쉽게 꺽이지않기에 기다리기로 마음먹고 하자는 대로 했다.
일천오백만원을 아무 소리 안하고 쏟아 붓기로 마음먹었다.
1995년 12월 31일을 지나는 새해 벽두부터
봉고차 뒷자리에 아내와 같이 두 손을 다소곳이 모으고
몇 시간을 덜컹거리며 어디인지 모르는 목적지로 실려 갔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무교(戊校)를 연구한다는 사내가 같이 동석을 했다.
사십대 초반의 사내는 굵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고
연실 물병을 만지작거리면서 열변을 토했다.
오랜만에 커다란 굿판을 벌인다는 연락을 받고 참관하기 위해
같이 동석한 이유를 간략하게 말을 해주었다.
분위기 파악을 대충 하더니 굿판을 의뢰한 장본인들이라고 판단을 했는지
우리 부부를 힐끗 쳐다보면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무교(巫敎)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어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심심치 않았다.
巫敎는 단군성조의 통치 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재세이화(신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다스림)를 기본 이념으로 한다고 했다.
三神신앙에 바탕을 두고 천지신명(天地神明)의 가교(架橋) 역할을 하는
제자를 부르는 호칭이 무당(巫堂)이라고 했다.
巫堂의 巫는 천지간의 조화를 이루어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뜻이며,
堂이란 당호(堂號)를 받은 사람만 사용할 수 있는 귀하고 높은 단어란다.
조선시대에 당호를 받은 사람이 3명밖에 없을 정도로 귀했다고 한다.
첫째로, 율곡 이이의 어머니인 신사임당
둘째로, 정조의 어머니 헤경궁 홍씨의 가화당
셋째로, 매월당 김시습
그러니 무교제의를 행하는 제자를 巫堂이라 부름은 높이 칭송하는 말 이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들어오면서 정치적인 명분을 내세워
무교인 들을 천민계급으로 묶어 항소부곡(抗訴部曲)으로 내치면서
무교는 무속(巫俗)과 미신(未信)으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한다.
무교의 속된 말로 일컫는 말이 무속(巫俗)이란다.
우리들이 가장 쉽게 떠 올릴 굿판의 춤사위.
신 칼을 핥는 충격적인 모습도 있다고 한다.
무당의 의례는 상당히 다양해서 몇 시간 동안 원색 천을 흔들며 춤을 추거나,
앉아서 독경을 외는 충청도 방식도 있으며, 훨씬 충격적인 퍼포먼스도 많다고 했다
오늘은 죽은 돼지를 창으로 꿰거나, 작두 계단을 올라타는 의례가 있을 거라 했다.
강신무들은 전문성을 지녀야 각종 행사에 초청받아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한다.
그 중에 오늘 접신을 하는 무당은 수도권에선 꽤나 유명한 강신무라 했다.
巫堂.
보통 한국의 전통적인 여성샤먼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남성샤먼은 박수 혹은 박사라 불린다.
이 둘을 박수무당이라 칭하기도 하지만,
현대에는 무교제의를 행하는 남녀를 죄다 묶어서 巫堂이라고 부른다.
지역마다 호칭이 다양한데 이북지역이나 6.25 당시 이북 출신 무당들에 영향을 받은
서울지역에서는 만신, 충청도에서는 법사/보살,
경상도에서는 화 랭이나 양중, 전라도에서는 단골 레,
제주도에서는 심방, 소미 등으로 불린다고 했다.
재미있게 이야기를 듣던 중 자동차는 비포장도로 산길을 한참 오르다 멈추어 섰다.
도착 한 곳은 파주의 감악산 이라고 했다.
지천에 어둠이 깔린 깊은 산중인데
이미 그곳에는 대여섯 명이 대낮처럼 불을 밝히고 행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접하는 풍경인 것 같았다.
예수를 믿지 않는 친척들 집에 가끔 굿판을 구경하러 가곤 했지만
이렇듯 굿판 중심에 내가 설 줄은 꿈에도 몰랐다.
굿판 자체를 거부하는 마음이 깊숙한 곳에서부터 밀려 나와 용솟음치려 하고 있었기에
굿판 시작과 동시에 아내에게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골방으로 들어가
홀로 예배를 드리고 회개기도를 했었다.
시간이 두어 시간 흐른 뒤 굿판은 끝나고 얼굴을 알 법한 몇 몇 사람과 작두를 탔던
큰 무당과 가볍게 인사 후 밥상머리에 둘러앉았다.
사람들 사이에 끼어 앉은 아내가 낮 설게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와 몇 일간 별 말없이 지냈다.
굿판을 벌이자고 꼬드긴 언니는 내가 없는 시간만 이용해 왔다 가는 것 같았다.
아내를 이해하려고 무던히 노력을 한 결과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일이 있고나서 아내는 한 동안 외출이 뜸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굿판이 가져다 줄 결과물은 뻔했기 때문이다.
굿판을 벌이자고 꼬드긴 여자가 미웠고 속만 상할 뿐이었다.
무교를 연구한다는 사내도 열심히 설명은 해주었지만
정작 무교의 깊은 내면적인 것은 신뢰하지 않는 다고 귀 띔을 해줬었다.
어쨌든 간에 하던 사업은 계속해서 삐걱 거려갔고
급기야는 급전까지 빌려다 어음을 막아야 할 처지가 되었다.
아내가 아는 사람 중에 돈 놀이하는 사람이 있었기에 어음 할인을 부탁했다.
“당신 오늘 김 사장한테 가서 어음 할인 좀 해줘야 겠어.”
어음이 담긴 봉투를 건네주며 말을 했다.
“또 돈이 안돌아요? 그럼 손해가 클 텐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요?”
그늘이 드리운 얼굴로 아내가 물었다.
이미 돈이 될 만한 것은 내다가 처분을 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기꺼이 결혼 패물을 내어 주었다.
복받치는 설움이 깊은 곳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내를 부둥켜안고 소리 내어 엉엉 울고 나니 한결 편해졌다.
어음 할인하여 급한 불을 껐지만 제2 제3의 여파가 밀려올 것 같아
하루하루가 바늘방석에 앉은 듯 좌불안석(坐不安席) 이었다.
재기(再起)를 노리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아내는 무슨 일인지 하루도 쉬지 않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듯 보였다.
나에게는 그냥 볼 일 보러 다닌다고 했는데 귀가 시간이 규칙 적 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에게 정색을 하고 물었다.
“당신 요즘 무슨 일 있어? 새벽에 가게 가려면 피곤하니 쉬어야지”
아내는 별일 없다는 시늉을 하며 대답했다.
“요즘 답답해서 바람이라도 쎌 겸해서 돌아 다녔어요?”
“그럼 되었고 지난번처럼 사고 치지 마 이젠 돈 없어 알았지.”
바지를 파자마로 갈아입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참 요즘엔 그 여자 안 만나지?
정 안되면 모든 사업을 내려놓으면 되 너무 걱정 하지 마“
TV를 켜며 뒤돌아 아내를 달래듯 말을 했다.
아내는 화들짝 놀라며 손 사레를 쳤다.
”그럼 안 만나지. 그때 생각하면 열 받아 본전이라도 뽑고 싶은데“
뽀로 통 한 입술을 내보였다.
”그 나 저나 하루 빨리 이사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집 좀 알아 봐야 될 것 같아서 낮 에 몇 군데 부동산에 알아봤는데
이사 오겠다는 사람은 있다고 해서 그러라고 그랬는데 괜찮지?“
담배에 불을 붙이며 툭하고 내 던졌다.
체념한 듯 아내는 별 대꾸 없이 알았다고 고개만 끄덕였다.
둘이서 살기에는 32평 아파트가 넓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잘 나가던 시청 7급 공무원이었는데 사업을 해보겠다고
졸지에 사직서를 내고 나와서 사업을 시작한다 했을 때 아내는 말렸었다.
아버지부터 형님들까지 줄줄이 공무원으로 살아오는 것만 보다보니
적잖이 싫었고 막연히 사업을 하면 무언가 달리 보이는 줄 알았다.
잘 할 수 있다고 몇 번이고 설득한 끝에 시작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 투자한 돈이 제법 되다 보니 이놈 저놈 많이 꼬여
사업이 잘 될 것 같아 김칫국물 마시고 건방을 떨었나 보다.
아내와 상의 한 끝에 남대문 도매시장에 비싼 터를 두 개나 얻어
수입 그릇 도소매업을 시작했다. 장사는 생각과는 달리 잘되었다
남대문 시장 상가는 아내가 맡아 경영하기로 했다.
가게운영은 시집 안간 아내의 사촌 여동생을 두고 교대로 장사를 했다.
아내는 매일 새벽 5시쯤에 가게로 나가서 교대를 했다.
상대하는 고객이 지방의 장사꾼들이었고 더러는 큰 손도 섞여 있었다.
어떤 날은 돈을 셀 수 없을 정도로 장사가 잘되었으나
또 어떤 날은 파리 새끼 한 마리 없다는 말을 몸소 체험했다.
굴곡진 하루하루를 보내며 장사에 한참 재미를 붙일 쯤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 시련이 찾아오고 있었다.
정권이 바뀌며 경제정책을 바뀌게 되었다는 뉴스가 나온 다음 날부터
시장경기는 요동을 치었고, 여파는 엄청난 쓰나 미로 밀려오기 시작했다.
정부 탓을 하기 시작했다.
시장 전체가 벌집 쑤시듯이 난리가 났다.
보따리장사로 부터 수입한 물건들을 압수 한다고 해서
가게마다 물건 숨기기에 정신이 없었다.
나는 아내와는 별도로 크리스탈 원석을 수입 가공해서 도소매로 취급하는 회사를 운영하였다.
맥시 코, 터어 키 등을 경유해서 들여온 크리스탈 원석을 전북 이리에 있던 원석 가공 공장에 맞겨 반지, 목거리 등 값 비싼 악세 사리를 만들어 유명 백화점 5군데에 매장을 유치하여
팔고 있었기에 몸뚱이 하나로는 시간이 모자라 언제나 바빴다.
한 동안은 엄청난 호황을 부렸었다.
그러나 IMF라는 경제위기가 오기 위한 전조 증상이 시작 되는 것을
미리 예견할 만한 능력이 없었기에 고스란히 떠안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백화점 매장을 돌아다녔는데 매출이 신통치 않아 매장 매니저와
심각하게 매장의 존폐를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
”사장님 생각은 알겠는데 매출이 이렇게 안 나오면 저로서도 어찌 할 수가 없습니다.“
담당자는 고개를 돌려 매장 안을 둘러보는 척 내 눈을 피하며 말을 했다.
”나도 미치겠습니다. 이번 달 한 달만 더 봅시다.
그래도 안 되면 매장을 철수할 테니 마음 편히 가집시다.“
의자에서 일어나 손을 내 밀며 웃어 보였다.
매장마다 매출이 오르지 않아 위기에 봉착했다.
경기가 좋을 때는 앞 다투어 매장 유치를 하려고 했던 놈들이
시들어 지자마자 안면 바꾸는 놈들이 야속 했지만 약육강식(弱肉強食)의
세계라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 기정사실(旣定事實) 이었다.
무리해서 투자 했던 부분이 상당했기에 바로 부도와 직결되었다.
실제로 부도라든가 파산이라든가 하는 문제들을 접해보지 않았던
나로선 실감이 나질 않아 무덤덤하기만 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고 궁리를 해도 뾰족한 수는 생각나지 않았다.
밤마다 모포를 들고 예배당을 찾아가 밤새도록 통성으로 기도를 했고,
아내는 아내 나름대로 정성을 드리러 열심히 다닌다고 했으나 별 진전은 없었다.
문제는 단한가지 시장 경기가 안 좋아 매출이 떨어져 문제가 되었는데
한심한 인간들은 문제의 본질은 놔두고 엉뚱한데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하니 얼마나 한심스러운 가.
그렇다고 돈으로 해결하기에는 말도 안 되는 금액이었고
그냥 이대로 앉아서 고스란히 손해와 압박을 받아내야만 했다.
엄습해 오는 불안감이 어두워질수록 심해 아내나 나는 나름대로
시간을 때우는 방법을 찾았었다.
어둑 어두해지면서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던 후배들을 불러내어
질펀하게 소주잔을 기울이며 지금 처한 상황을 사실대로 말해 주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은 도와 달라는 부탁을 했다.
후배들은 진지하게 말을 들었고 이구동성으로 걱정하지 말라며
술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얼마나 내말에 귀를 기울여 줄지는 모를 일이었다.
아내는 정색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 당신 술 많이 마셨어요? “
조그만 교자상에 술상을 차리고 있었다.
뜻밖이었다.
”아니 많이 먹지는 않았는데 무슨 일 있어 당신? “
바지를 벗고 팬티 바람에 술상 앞에 앉으며 뒤 물었다.
아내가 차려주는 술상을 받아본지 꽤 오래된 듯싶어 한편으로 놀랬다.
말없이 따라놓은 술잔을 들고 건배하듯 포즈를 취하며
두 사람은 똑같이 단숨에 털어 넣었다.
아내는 다시 술잔에 술을 채우며 조심스레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내가 당신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닌데
정말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만 다시 해봤으면 하는데... “
아내는 말끝을 흐리며 술잔을 다시 집어 들었다.
아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 줄 알았다.
나도 일단은 알았다고 하고 생각을 해본 뒤 다시 말하자 한 뒤
남은 술을 서둘러 마시고 상을 물렸다.
아내가 그새 술이 늘었나 생각 하며 지나쳤다.
”당신 또 그 여자랑 어울려 다니는 거 아니야? “
살짝 핏 대를 올렸다.
”아니야 이번에는 혼자 찾아보았는데 한 번만 다시 하면
반드시 모든 것이 회복될 거라고 했어. 제발 한 번만 더 믿어줘
그리고 돈이 없다고 하니까 오백 만원에 해 준다고 했거든“
아내는 이미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 버린 것 같았다.
그녀가 믿는 신들은 모두 왜 이 모양인가?
도무지 무엇이 잘될 거란 말인가?
밑도 끝도 없이 잘될 거라니
그렇게 말을 전달하는 아내가 더 정신없는 여자처럼 보였다.
평소엔 진지하고 지성이 있어 보이는데 미신 앞에서 무참히
깨어지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는 그녀가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내가 믿는 예수님은 절대 그런 것을 용납 치 않는다고 한들
불화가 커질 것은 불 보듯 뻔 한일이고
그러다 보면 이혼하자고 말이 나올 것이고 모두 끝내자고 할 것은
부처님 손바닥 같이 훤하게 보이니 진짜 진퇴양난(進退兩難)이 아닐 수 없었다.
마음을 진정하고 아내를 불러서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은데
딱히 좋은 말은 생각이 나질 않아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여보 오늘은 그냥 잡시다“
신속히 런닝과 팬티를 벗어 던지고 그녀를 침대 위에 뉘었다.
오랜만이었다.
달콤한 살 내음이 깊은 내면을 뚫고 온통 나를 뒤집어씌우는 듯 했다.
좀 더 당당해진 아내는 일주일 쯤 지난 후 나를 주저 없이 보살 집으로 오라고 불렀다..
그래 삼수갑산(三水甲山)을 가더라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다.
생각지도 않던 두 번째 무당을 내 발로 찾아 떠났다.
동네 한 가운데 1층은 비어있는 가게가 있는 건물 2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쾌쾌한 향냄새가 코를 진동했고
거실이나 방들은 일반 가정집과 별 다를 것이 없었는데
작은 방 하나에 별도로 신당을 차려 놓고 온갖 신주 물건들을
주렁주렁 걸어 놓았다. 섬뜩했다.
아내는 나를 보며 약간 움칫거리는 시늉을 하더니
빨리 들어와 일단 인사를 하라고 짧게 말을 했다.
”손을 씻고 어서 들어오세요.“
아내는 귀 띰으로 단군할아버지를 모신다고 했다.
신당으로 데리고 들어갔으나 멀대 같이 서서 벽에 붙어 서있는
수염이 가슴까지 내려오는 할아버지 모습의 동상을 보았으며,
그 옆에 적은 신상들이 서너 개 더 있었다.
제일 커다란 동상이 단군이라고 했다.
그리고 벽 전체에는 수십 개의 얼굴들이 어지럽게 그려져 있었고
그 얼굴들 뒤에는 하나같이 둥그런 원이 그려져 있었다.
신당을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마도 사회적으로 가져다주는 선입 견 탓에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구미호라도 본 듯한 느낌이었다.
아내는 나를 신랑이라고 소개를 한 뒤 주방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녀를 보지 않으려고 마룻바닥에 코를 박고 아내가 빨리 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아내는 딸기와 커피를 갖고 앉으며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엄마 오늘은 언제 나가세요. “
아내는 커피를 홀짝거리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런데 웬? 엄마. 이 사람들이 뭐하는 거야 하며 고개를 처 들었다.
젊은 여자에게 엄마라고까지 말을 하는 아내가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그녀는 잠시 후 얼굴에 요란스레 분칠을 하고 몸에 꼭 끼는 원피스를 입고
현관문을 나서면서 한마디 했다.
”나갔다 올게 그리고 피곤하면 자고가도 되요“
그녀가 나가고 아내와 단 둘이 남았다.
나는 정색을 하고 닦달을 해댔다.
”당신 뭐하는 여자야?
저 여자가 뭔데 언제부터 엄마가 되었어.
도대체 무슨 관계야? “
그리고 저 여자가 용하다는 무당 맞아?
내 눈에는 그냥 암창 난 과부 같구먼. “
아내에게 배신감마저 들어 느낀 대로 투덜거렸다.
듣고 있던 아내는 정색을 하며 내말을 끊었다.
”무슨 소리야. 당신이 그렇게 말하면 될 것도 안 돼요
내일부터 일요일까지 3일 동안 강릉 가서 굿을 하고 올 거라고
이 집에서 다른데 가지 말고 정성들이며 기다리라고 하는데
당신도 마음이라도 합해야지 이러면 안 돼요
어떻게 당신도 여기 있을 거야? “
벌써 대금을 지불했다는 말로 들려왔기에 흥분하며 담배를 꺼내 물며 물었다.
”당신 돈은 어디 있어서 준거야? 혹시“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빼앗았다.
”어차피 며칠 있으면 지금 살고 있는 집 계약금이 나올 거 아냐?
그 때 갚기로 하고 김 사장한테 급전으로 며칠 빌렸어.
미안해 당신한테 말을 안 하고 내 마음대로 해서“
난 그때 처음으로 이 여자와 결혼 한 걸 후회했다.
아내는 한 술 더 떴다.
정 갈 데가 없으면 이집에서 당분간 살아도 된다고 그녀가 말을 했다고 한다.
남아있는 물건들은 1층 비어있는 가게에 맡겨 놓아도 된다고 말을 이어 나갔다.
이미 결정 난 일들을 통보하듯이 말을 하는 그녀가 미웠다.
투덜거리며 다시 물었다.
”그런데 호칭이 무슨 엄마야? 꼭 그렇게까지 해야 되?
나이도 몇 살 차이 안날 것 같은데“
”신 엄마는 나이와 상관이 없다고 하니 일만 잘되면 되지 않아
일이 잘되면 나보고 신을 받으래.
아내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하며 걸레를 들고 여기저기를 닦으며
왔다 갔다 했다.
처음 느꼈지만 아내는 내가 모르는 백치 같았다.
해머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충격이 왔다.
아내는 날 떠나 낮 선 여자가 되어 있는 듯 했다.
그냥 있다 보면 머리가 돌 것 같아 급한 일이 있다고 하며
밖으로 뛰어 나다가 시피 나갔다.
가게는 보증금을 포기한 채 채권자들에게 넘겨서 마무리 되었고.
백화점과 사무실에 있던 액세서리들은 모두 철수해서 집으로 옮겨 놓은 상태였다.
남아있는 물건 값 만 수억 원은 될 듯 했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당분간은 지니고 있어야 했기에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무당집을 나와 후배 현철에게 전화를 걸어 단골 술집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발길을 옮겼다.
”형님 이젠 어떻게 하실 거예요. “
걱정이 잔뜩 묻은 표정으로 물었다.
”뭐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씀 하세요. 우리들이 가서 도와드릴 테니. “
소주잔을 연실 비워가며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알았다. 미안하고 고맙다. 후배야“
현철은 운동을 오래 한 무도인 출신이라 어깨가 당당했다.
그의 친구들 역시 유도선수 출신들이었다.
십 수 년 전에 만나 지금까지 친 형제 마냥 우애를 다지며 살아온 사이였다.
할 말 못할 말 가리지 않는 사이라 속을 뒤집어 보였다.
아내와 있었던 말을 했더니 후배는 심각하게 말을 받았다.
”형수님이 원래 그런 데를 좋아 했나요?
답답하시니까 간 것 같은데 왠지 느낌이 안 좋은데요. “
빈대떡을 입에 넣으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어찌되는지 지켜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네요“
나는 심각한 말투로 말을 받았다.
”걱정이란다. 하지 말라고 하면 불 보듯 빤하니 여하튼 이번 일은 끝내고
또 다시 말을 안 들으면 그때는 할 수 없지. “
소주잔을 목에 털어 넣으며 각오(覺悟)하듯 말했다.
사실 그랬다. 어느 누구도 무당굿을 한다고 하면 미친 짓이라 했으나
더러는 일반인들 중에 은근히 무당을 맹신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무당은 대체로 집값이 싼 동네에 사는 경우가 많다.
혹은 동네의 집값이 떨어지면서 멀쩡했던 주택이 무당 신당으로 하나 둘 변하면서
무당 촌이 되어버리는 사례도 볼 수 있다고 한다.
결론은 선무당이 판을 치는 세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후배와 이런 말 저런 말 하다 보니 시간이 어느새 자정이 되어가고 있고
습관처럼 집으로 갔으나 아내는 없고 물건들만 꽉 찬 창고 같았다.
온수를 틀어 샤워를 하고 훌렁 벗은 맨몸으로 침대에 벌러덩 누웠으나
잠은 오질 않고 앞으로 어찌 살아야 되는 지 정리가 안됐다.
당장에 아내가 두 번째나 저지르는 일 들을 뻔히 알면서 당해야 하는 게
속은 상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강한 신념을 불어 넣었다.
살아가는 거야 몸뚱이 젊은데 어떻게 하면 될 거라 걱정되진 않았다.
다른 때 같으면 아내의 부드러운 손으로 만져주 던 것을 내 스스로 잡으니
아무런 감흥이 나질 않아 뒤척이다 그냥 잤다.
날이 밝아 대충 씻고는 아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골목 입구에 비껴서 택시 한 대가 비상등을 켜고 서 있었다.
주차 자리를 막고 있어서 기사에게 양해를 하고 주차를 했다.
계단을 올라가는데 뒤에서 기사가 따라오는가 싶어 뒤돌아보니 멈칫 거렸다.
손님을 태우러 온 모양이다 생각했다.
현관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려고 하는데 문이 벌컥 하고 열리면서
여우같은 여자가 여행 가방을 들고 나오고 있었다.
가볍게 목례를 한 뒤 여자는 계단을 내려갔고
웬 남자 목소리가 뒤이어 나더니 이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궁금해서 이층 창문으로 내려다보니 기사가 택시 트렁크에 가방을 넣고
여자는 차 속으로 들어갔다. 이내 부 웅하며 골목길을 빠져 나갔다.
평범한 사이 같지 않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냥 지나쳐 버렸다.
어차피 벌어 진 일 아내에게 자꾸 짜증내면 안 될 것 같아
억지로라도 웃어 보이려 노력 했다.
도대체 행색이 저래가지고 굿판을 벌이러 간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돈을 내고 굿을 해달라고 한 당사자들을 떼어 내고 갔다는 자체도
말도 안 되는 사실을 아내는 콩깍지가 씌어 느끼지 못하고 있으니
속에서 불방망이가 튀어나올 정도로 답답했다.
하나에서 열까지가 의문투성이었다.
이해가 더 안 되는 건 정작 아내였다.
며칠 전 진지하게 물었다.
” 당신이 신을 받아 무당 될 팔자인가?
그럼 나는 어떻게 하고 생각해 보았어?
한번쯤 전문가에게 물어보아야 되는 거 아니야? “
절대로 단순한 문제가 아닌데 아내는 속수무책(束手無策) 같았다.
나는 유명하다는 사찰을 수소문해 조언을 듣던지
교회 목사님을 찾아가 상담을 하자고 달래도 보았다.
아내와의 관계가 절체절명(絕體絕命)’의 시련이라 판단했고
어떻게 하든지 아내를 치료하고 싶었다.
나 혼자 사찰을 찾아 효원 스님이라는 분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답변으로 신 내림 증상이 보일 때는
알코올중독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술을 자꾸만 먹고
원래의 성향과 달리 폭력적인 성향으로 변하게 되고
누군가 혼내거나 싫은 소리를 하면 듣기 싫어하고 달려들어 싸우려 한다고 한다.
향냄새를 좋아하게 되고
등불 등 신 내림받기에 좋은 장소나 신당을 점점 좋아하게 된다고도 하며
가장 커다란 문제가 잠을 안 잔다고 아니 못 잔다고 했다.
이 증상이 신 내림 증상인지, 정신 질환에 의한 증상인지
아니면 빙의 증상인지를 알아차리는 것은 아주 어렵고
가위에도 잘 눌리고 물을 떠놓고 기도를 하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나 신병을 앓는 시기에 검증되지 않은 무속 인을 만나 인연을 쌓게 되면
올바른 신이 아닌 잡귀를 모시게 되는 허무맹랑한 무당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전문가를 찾아가 상당히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당부를 해주었다.
조심스럽게 이런 말을 아내에게 해주면서 한마디 덧 붙였다.
”이 여자는 아마 잡신을 섬기는 가짜 무당 같은데 당신 생각은 어때? “
아내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으나 힘이 없어 보였다.
아마도 스스로를 주체를 못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아내가 믿고 편하다고 하니까 한 번 더 속아주자고는 했지만
지금 같은 현실에 오백만원이라는 거금이 미친 년 가랑이로 스며들어 가는 게
마음은 편치 않았고 더불어 아내까지 빼앗길 것 같아 조급증이 생겼다.
아내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런 여자 집에서
정성스레 된장국을 끓여 밥을 먹자고 했다.
향내에 질식해서 죽을 것 같다고 말을 했으나 들은 척 만 척 했다.
밥 을 먹고 나니 피곤이 몰려와 둘이는 약속이나 한 듯이
낮잠을 자기 위해 구석 골방에 이불을 깔고 누웠다.
신세 한 탄을 한들 무엇 하나.
처량해진 몰골에 한 숨이 나왔다.
그리고 지금 무엇을 기다리는 것인지 묻고 싶지만 맹목적으로
무당을 맹신하는 아내의 속을 들어가 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쨌든 간에 소원처럼 몇 일만에 둘은 한 공간에 같이 누웠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 고했던가.
약속이나 한 듯이 한 몸이 되어 깊고 깊은 시름을 걷어 내는 기분으로
거침없이 회포를 풀어내고 싶었으나 다음기회에 라며... 낮 잠이 잘 왔다.
어두워져서야 눈을 떴다.
단 잠을 잤나보다.
아내는 벌써 일어나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세수를 한 바탕하니 정신이 번쩍 났다.
”내일이나 모레는 짐을 옮겨야 하는데. 내가 조그만 집은 일단 얻었어.
그런데 물건 놓을 곳이 마땅치 않으니 일단 이 건물 1층에 세를
얼마씩 주더라도 갖다 놓아야겠는데 당신 생각은 어때? "
결정을 다하고는 새삼스레 묻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 거렸다.
“당신은 그 여자 올 때까지 이 집에 있어야지.
짐을 다 옮긴 후에 내가 부르러 올 테니 좀 쉬고 있어”
말이 끝나고 나는 짐을 싸야겠다며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밤바람이 차가왔다.
밤새도록 정리를 했다.
버려야 될 짐과 창고로 옮길 짐을 분류를 하다 보니 여명이 밝아 왔다.
후배들이 기꺼이 도와주기로 해서 짐 옮기는 것은 수월했다.
집은 철거가 2년 이상 남았다는 낡은 연립 주택 1층이었다.
찬밥 더운밥 가릴 사정이 아니기에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낮고 헐은 담장에 새빨간 장미가 봉우리를 물고 있었다.
내 신세처럼 처량해 보였다.
창고로 물건까지 옮기고 나니 어둑어둑해져서 수고해 준 후배들을
모아놓고 없는 돈에 소주 파티를 열었다.
고마운 후배들 덕분에 마음의 위로가 많이 되었다.
늦게까지 술판을 벌이다 보니 떡이 되어 새 집으로 돌아와 누웠다.
옹색하고 지저분하게 느껴지는데 아내가 오면 정말 많이
속상해 할 것 같아 왠지 미안했다.
자리를 다시 잡을 때까지 그 집에 있어라 할까도 생각 해봤지만
이내 그것은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늘어지게 잠을 자고 대충 정리를 하다가 오후 늦게야 움직였다.
아내에게 갔다.
“이삿짐을 정리하다 보니 늦었네. ”
아내는 진심이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미안해요. 도와주지도 못하고”
“강릉 갔던 사람은 왔어? 굿은 잘하고 왔대?”
신당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내는 신당을 힐끗 쳐다보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어 잘하고 왔대. 아주 좋다는데 지금은 누굴 만난다고 나갔어.”
순간 부아가 치밀어 올라 마음속에 있던 말들을 퍼부었다.
“뭐가 좋대.
뭐가 바쁜지 얼굴도 안보이고 뭔 말을 해야 될 것 아냐?
도대체 저 여자가 뭐야? 우리는 돈만 주면 끝이야.
굿판 벌이는 걸 보여주지도 않고 당신은 바보야?”
화가 치밀어 쏟아내질 않으면 미칠 거 같았다.
아내는 할 말이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안절부절못했다.
여기저기 기웃 거리다가 열려 있는 그 여자가 사용하는 방으로 불쑥 들어갔다.
정리정돈은 잘되어 있었다.
정돈 된 화장대 위에 사진 몇 장이 유독 눈에 잘 들어왔다.
사진을 들어 자세히 보니 그 여우같은 여자와
몇 일전 입구에서 만났던 사내가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어깨동무하고 있는 사진을 비롯해서 몇 장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아마도 돈을 주고 폴로라이드 즉석사진을 찍었던 거 같다.
사진에 찍혀 있는 날 자를 자세히 보니 엊그제였다.
1996. 3. 17.
순간 번뜩하고 스쳐지나가며 분노가 치밀기 시작했다.
사진을 흔들며 아내를 큰소리로 불렀다.
“당신 이 사진 좀 봐
이 년이 놈팡이하고 그 돈을 갖고 서방질하러 잘 놀러 갔다 왔구먼.
내가 설마 했는데 이럴 줄이야. 당신 정신 좀 차려!”
분노가 치미니 눈앞에 뵈는 게 없어 나오는 말도 두서가 없었다.
사진을 받아 한 참을 내가 퍼붓는 말을 듣던 아내가 갑자기 돌변했다.
생전 들어 보지 못한 욕이 아내의 입을 통해 튀어 나왔다.
“이 갈보 같은 년, 이 나쁜 년 들어오기만 해봐라.”
아내는 사진을 쥔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다
나는 잠시 머릿속에 사건 정리를 하다가 아내에게 말했다.
“자기야 침착해야되. 이 년이 오리발 내밀면 우리만 우습게 되니까
사진 속에 있는 이 택시 기사 놈을 찾은 다음 요절을 내자”
화장대 서랍을 열어 이것저것 살피다 주민증을 찾았다.
본명은 강 명자
나이는 1952년생이므로 정확히 아내와는 8살 차이가 났다.
대충 수첩에 적고 뒤적거리다가 거실로 나와
침착하게 사진을 눈 여겨 보니 개인택시와 같이 찍혀있는 사진을 발견했다.
자동차 넘버를 확인하고 그길로 자동차 등록업소에 가서 자동차 등록원부를
발급 받아 기사 놈의 집 주소를 알아냈다.
아내에게 침착하게 모르는 척하며 있으라고 당부는 해두었다.
현철과 만나기로 전화약속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다방 안으로 들어설 때 뒤에서 현철의 목소리가 들렸다.
185센티의 키에 건장한 몸을 가진 현철은 얇은 청색 잠바를 입고
환하게 웃으며 나를 불러 세웠다.
“형님도 오셨네
우리 차라리 다방가지 말고 소주나 한잔하죠?”
술 생각은 별로였지만 그냥 그러자고 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직 이른 시간이라 영업을 하는 주점이 눈에 띄질 않았고
우리는 시장골목을 생각하고 발길을 돌리며 말을 꺼냈다.
자초지종을 차근차근 말을 이어나갔고...
혓바닥집이라는 선술집 문을 열고 원탁 위에 앉으며 현철은 말을 했다.
“그럼 결국에는 그 무당 년 씹 값을 형님이 집 뺀 돈으로 대준 꼴이 된 거네요.“
담배에 불을 붙이며 눈을 커다랗게 뜨고 따지듯이 목청을높혔다.
한 숨을 내 뿜고 고개를 끄덕이며 주문을 했다.
”아줌마 여기 제일 빨리되는 걸로 하나주고 일단 두꺼비 한 마리 줘요.“
알 콜에 목말라 하는 사람들처럼 김치쪼가리에 독한 소주를 두 잔씩
털어 놓을 때 쯤 머리고기가 접시에 담겨져 나왔다.
둘이는 약속이나 한 듯 안주에 소주를 두병쯤 비워 갈 때 부탁 할 것을 말을 꺼내었다.
”현철아 너 친구 중에 순경하는 애 있지?“
”네 있긴 한 대 왜요?
소주잔을 내려놓으며 얼굴을 보았다.
“응 다른 게 아니고 택시 기사 놈 을 찾아서 족 친 다음에
그년이 헛소리하면 증인으로 대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네가 도와줘야 될 같다.”
현철의 빈 잔을 채워 주며 바로 내 잔도 채우려 했을 때
현철은 잽싸게 소주병을 낚아채어 두 손으로 내 잔을 채워 주며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알았어요. 형님 그 새끼 사진하고 주소만 주시면
제가 알아서 처리 할게요. 제가 처리하는 것이 날걸요”
그랬다. 현철과 친구들이 나서면 어지간한 조직폭력배도
꼬리를 내리고 갈 정도로 우락부락 했다.
부탁을 들어 준다 하고 먹던 술병을 계속 비워 나갔다.
그럼 내일 오전에 그 집 근처에 있는 다방에 나와서 대기하기로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현철과 헤어져 오늘은 아내와 같이 그 집에서 밤을 보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아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취기가 조금 올라 왔으나 3월의 꽃샘추위에 확 깨는 듯 했다.
걷는 동안 귓밥이 떨어지는 맹추위를 느꼈다.
계단을 올라 그 집 앞에서 숨을 몰아 쉰 다음 초인종을 눌렀다.
처음에는 그 여자가 누구냐고 하는 목소리가 들리더니 문을 열어준 사람은 아내였다.
실내는 냉기가 썰렁하게 돌았다.
아내는 손가락으로 쉿 하는 시늉을 하며 작은 방으로 다짜고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우리가 사진을 본 것을 아무래도 눈치 챈거같아.
들어와서는 웃고 그러더니 자기 방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부터는
태도가 돌변해서 큰소리로 뭐라 뭐라 지껄이고 있어. 미친년처럼“
걱정과 근심을 가득채운 아내는 내 눈치를 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저년이 이제는 막 저주를 퍼붓고 있네. 어떡하지? “
일단 오늘 밤을 보내고 내일 문제를 제기 하려고 하는데
상대가 무당인지라 마음이 편 칠 않았다.
지금도 밖 에서는 무당이 뭐라고 주절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들을 수 없는 주문에는 살의 만 분명하고 명료했다.
아내와 나는 닥쳐올지 모르는 불안감에 두 손을 맞잡고
처음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아내의 눈에서 소리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오늘이 바로 그 날이라는 것을 주님은 알고 계셨나 보다.
문을 잠그고 불안에 떨면서 기도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들끓는 체온 덜덜 떨면서 이정표 없는 꿈속을 헤맸고
희뿌연 연무 뒤에 무당이 숨죽여 기다리고 있었다.
사방에 키가 들쑥날쑥한 가시나무 가시가 자꾸 찔러 댔다.
가시덤불 긁히며 험 한 산길 끌려갔고
뾰족한 바위 아래 꿇어앉히고 굿판을 벌였다.
알록달록 화려한 의상 휘날리며 신 칼 들고 춤을 췄다
몸 흔들며 징 울리고 무당방울 흔들고 북도 쳤다
고깔모자에 달린 종이꽃들의 설움이 슬퍼 나도 흐느껴 울었다
전신으로 쏟아지는 온갖 곡 알들이 수북이 무릎을 뒤 덮었다.
비린내 나는 땅위에 고사리가 무더기로 피어올랐다.
시 뻘건 황토물이 흐르는 길을 머리채 잡혀 끌려갔다.
”여보, 여보 일어나 왜 그래 “
아마도 꿈속에서 호되게 무당에게 당한 것 같았다.
식은땀을 삐질 흘리며 자는 모습이 나약해 보이지는 않았을까
아내에게 들킨 것 같아 창피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무당은 밤새 우리가 들으라고 뭐라 뭐라 지껄이다 좀 전에
자러 들어갔는지 조용해 졌다고 한다.
아내는 잠이 오질 않아 하나님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고 덤으로 말해 주었다.
일단 오늘의 일처리 문제를 논의 했다.
잠에서 깨어 일어나면 앉혀놓고 다짜고짜로 말하기로 했다.
문제를 야기 시키고 이후의 문제는 그때 처리하자고 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엄청난 싸움을 한 판 벌여야 하기에 긴장되는 것은 사실이다.
생각보다 일찍 일어나 거실로 나오는 그녀를 보고 불렀다.
”할 말이 있는데 시간 좀 내주시죠.“
신중하게 말을 하며 거실 바닥에 앉았다.
무당은 이미 독기를 품고 있는 얼굴로 어제보다 화장을 더욱더 진하게
떡 칠을 하고는 당당하게 방석을 끌어다 앉았다.
우선 사진을 꺼내 두 사람의 가운데쯤에 내려놓으며
”당신 우리에게 돈을 받아서 굿을 해준다고 사기치고 강릉 가서 놈팡이랑 놀단 온 거 맞지. “
막 바로 정면 돌파를 하였다.
무당은 대답을 안 하고 뚫어져라 무섭게 나를 노려보며 있었다.
살기(殺氣)를 느끼는 눈빛이었다.
순간 오싹했으나 이제는 거두어 드릴 수 없는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당신의 노리개 정도로 생각되나 보지?
당신 오늘부로 무당 짖은 다한 줄이나 알아.“
나도 독기를 품고 말을 이어 나갔다.
”깃발 하나 꼽아 놓고 찾아오는 불쌍한 사람들 등을 처먹는
기생충 같은 당신 같은 사람들은 이 사회에서 없어져야 하는데
빨리 실토하고 더 망신당하기 전에 받았던 돈 돌려줘! “
계속 듣기만 하던 무당이 입을 열었다.
”난 분명히 굿을 했고 대금으로 사용 한 것이니 돌려줄 수 없고,
이 사진은 그냥 찍은 건데 무엇이 문제라고
신성한 신당 앞에서 이 횡포야 횡포가 당신 진짜 혼나고 싶어! “
어린애를 타이르듯 조목조목 말하며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그렇게 말하는 모습이 내 눈에는 영락없는 사기꾼으로 밖에 보이질 않았다.
무당의 정신적 세계 란 자기 최면 비슷한 것으로 먹고사는 자들이라
논리와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
무당과 신의 세계에 질문을 몇 번 한 적이 있는데
논리적으로 초라하기 그지없는 답변들을 쏟아 내는 것을 보고는
이후로는 침묵하는 게 낮다고 생각 했었다.
잡신을 가져다 점괘를 맞추지 못하면 손님은 점점 떨어지고,
잡신들에게 일종의 배신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되고
본인 스스로가 자신의 잡신들을 폐하게 되고
한 평생 모시던 신을 버리게 됨으로 인생의 허무가 밀려오면서
매일같이 술을 마시며 사람들을 저주하거나
개종을 해서 기독교로 천주교로 가는 것을 보았다.
아마 이 여자도 잡신을 대충 모셔서 무당질을 하는 척하다
요즘에는 남정네를 잡신으로 모시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 와중에 아내가 가뭄에 단 비처럼 스스로 들어와
머리를 수그리니 때는 이때다 하고 사기를 본격적으로
치려고 발동을 걸고 있던 와중이었나 보다.
따지고 보면 이 무당은 정신적 장애인이다.
자신도 통제하지 못하는 세계에 잡혀 사는 장애인이다.
이런 여자와 긴말을 해서 무엇 하나 하면서 아내에게 백지와 볼펜을 갖고 오라 고 했다.
아내는 볼펜과 백지를 갖고 와서 무당의 코앞에 들이대며 날카롭게 쏘아 붙였다.
”내 돈으로 서방질하려고 그런 것 같은데 안 될 것 같은데“
아내는 나름대로 독기를 품고 조롱에 가깝게 씨부렁거렸다.
내 말에는 침착한 척을 했던 무당은 아내가 하는 말에는
참지를 못하고 결국 본색이 나왔다.
강릉에 가서 굿판을 벌였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무당은 벌떡 일어나
신당을 차린 방으로 들어가 제일 먼저 향 그릇 부터 집어 던졌다.
무당이 동상과 집기를 부수며 신 칼을 휘두르는 사태까지 발전했다 .
나와 아내는 혹여 불똥이 튈까 봐 멀리 서서 먼 동네 불구경하듯
신당을 두들겨 부수는 모습을 쳐다 만 보았다.
이런 일을 벌이는 게 한 두 번이 아닌 여자 인 듯 했다.
잽싸게 전화를 해서 현철에게 기사 놈을 빨리 데리고 오라고 말했다.
미친 여자 무당과 우리는....., 한 손엔 신 칼...., 입술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물러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당신은 사악한 기운이 넘쳐나니 죽으면 불기둥 속 지옥으로 떨어질 거야.
여태껏 사람들을 속여 먹고 살았으니 아마 곱게 죽지도 못할 것이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나도...건물이 떠나가도록 저주를 퍼부었다.
무당은 머리를 풀어 헤친 채 반 쯤 미친 여자가 되어 신방 안에서
나와 아내를 향해 칼을 휘두르며 연실 소리를 질렀다.
아마도 제 풀에 꺾여 우리가 스스로 물러나길 원하며
단 수 높은 수작질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영문도 모르는 윗 층 사람이 말리러 왔다가 무당이 들고 있던
날카로운 깨진 동상 조각에 긁혀 피를 보는 사태까지 발전하면서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는 것을 말려서 일단 진정을 시켰을 때
현철과 3명의 후배들이 따라 들어오며 난장판이 된 집 안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형수님 괜찮으세요?
형님도 다친데 없어요? “
후배들은 걱정된 얼굴로 진지하게 물었다.
”없어 잘 왔다 우선 이런 모습을 보여 미안하다. 기사는 같이 왔니? “
현철은 창가 쪽으로 걸어가서 저기 있다고 손 짖을 했다.
무당은 떡 대들이 4명이나 구둣발을 신은 채 거침없이 들어와
웅성거리는 모습에 풀이 죽어 정신 줄을 놓고 앉아 있었다.
손에는 피를 흘린 자국이 있었다.
아마도 동상을 집어 던지다 파편에 다친 것 같았다.
”형님 말도 마세요. 이 새끼가 처음에는 안 온다고 뻗대어서
애를 먹이기에 구슬려 달래 줬더니 한 술 더 뜨지 뭐예요.
그래서 방법이 없지요.“
따라온 민수가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주먹을 쥐어 보이더니 벽을 한방 갈겼다.
순간 무당은 한기를 느끼는지 온몸을 파르르 떠는 듯 했다.
”한 방 갈겼더니 다음부터는 순한 양이 되데요. 들어오라고 할까요?
붙어먹은 년이 저년 인가보죠.?
말을 하고는 창밖을 내다보며 거칠게 손 짖을 했다.
잠시 몇 분 정적이 흐르더니 웬 사내가 현관 문 앞에서 기겁을 하며 섰다.
사내를 붙잡고 무당과 붙어먹은 사실을 불게 하는 것은 현철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현철의 첫 인상에 기가 안 죽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험상궂었다.
현철이 조근 조근 조용히 물었다.
“신 경호씨 나이는 서른아홉, 직업은 개인 택시기사 맞지요?”
“네 맞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무당은 그러는 신경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쏘아 보고 있었다.
“당신은 며칠 전 저 여자와 강릉으로 밀 월 여행을 다녀왔지요?”
잠시 무당의 안색을 살피더니 약간 작은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현철은 또 다시 질문을 했다.
“여행가서 경비는 누가 썼나요? 당신이 아니면 저 여자가?”
망설임 없이 기사는 대답을 했다.
“네 저 여자가 놀러가자고 먼저 말을 해서 따라 갔습니다.
그리고 저 여자가 비용은 모두 대었습니다. 사실입니다.”
비굴하게 느껴졌다.
듣고 있던 창배가 한마디 보탰다..
“넌 팔자 좋은 놈이네. 저 년이 돈 대주고, 배 떼지 대주고
넌 그냥 엎드려 타기만 하면 됐네.”
순간 현철이 기사의 뒤통수를 소리가 나도록 때렸다.
“야 이 새끼야 그 돈이 무슨 돈인데 너희 씹 질하라고 준 돈이냐?
너네둘이 책임지고 며칠 안에 돈 만들어서 내 앞에 가져오지 앉으면
조용히 보내지 않을 거란 걸 명심해라. 혹시라도 도망갈 생각이면
그 다음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알아서 하고 알았나?”
거칠고 폭력적으로 말을 뱉었다.
평소에 점쟎고 조용한 현철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사내는 대답을 했는데 무당이 대답을 하지 않자
현철은 구둣발로 깨지다 만 신주그릇을 걷어찰 자세로
다시 말을 했고 무당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억지로
대답을 하며 일단락 난 줄 알았는데 무당은 끝이 아니었다.
무당은 밤사이에 간단한 옷가지를 챙겨서 야 밤도주 했다.
거실에는 현철의 일행이 대충 치워 놓고 술판을 벌이다가 널브러져 자고 있었기에
현관으로 나오질 못했고 이층에서 창문을 타고 달아난 걸로 결론을 지었다.
어제 찾아 왔던 3층 사람이 밤 새 시끄럽다고 파출소에 신고를 하는 바람에
우리는 모두 파출소에 불려가 그 간의 지난 일들을 적나라하게
순경나부랭이에게 썰을 풀다 보니 하루가 지나갔고,
현철 일행은 하룬가 더 괴롭히다 훈방을 하고 풀어 주었다.
포기를 하는 것이 편하겠다 싶어 아내에게 말했다.
그리고 1층에 맞 겨 놓은 물건을 꺼내 헐값에라도 처분해서 자금을 만들려고
몇 일만에 찾아 갔다가 기겁을 하고 주저앉았다.
건물 주인을 수소문해서 1층에 물건을 찾으러 왔다고 문 열어 달라고 하니
청천벽력 같은 말을 내뱉었다.
무당이 살던 2층은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를 50만원씩 주며 살던 집이었고
어차피 월세를 2달 밀려 찾아 갈 보증금도 한 푼도 남아있지 않다고 말을 했고
1층의 물건들은 원래 자기 것이라고 하며 몇 일 전 야밤에 짐을 몽땅 빼갔다고
말을 뱉은 뒤 더 이상 볼일이 없다고 가버렸다.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소리를 했다.
참으로 도둑년이었다.
다음 날부터 아내와 나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무당 년의 행방을 수소문하고
경찰에도 사건의뢰를 해놓았다.
무당 년에게 신 내림을 해주었다는 신엄마를 찾았으나 별 소득이 없었다.
나이는 60세 갖 넘은 초로의 얼굴로 얼핏 보면 평범한 주부 같은데
이 여자 역시 선(善)과는 거리가 먼 듯 느껴져 아내와 나는 체념하고 돌아섰다.
돌아가는 길에 봄비가 내렸다.
분홍 연산 홍 꽃잎이 다 떨어지게 처절처절 비가 내렸다.
잠시 바닥에 웅크린 채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아내도 쪼그려 앉은 채 죄인처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떨고 있는 아내를 부둥켜안고 일어나며 말했다.
“여보 우리 집에 가기 전에 예배당에 들려 기도나 하고 갈까?”
아내는 미안한 듯 고개를 들고 그러자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아내 모르게 며칠 전 근처의 교회를 찾아가 목사님께 부탁했었다.
나는 모태 신앙을 갖고 태어나 열심히 예수를 믿어온 서리집사인데
믿지 않는 아내로 인해 이런 어려운 일을 당했지만 너무나
사랑하는 아내를 어찌 할 도리가 없어 기다리다 이 지경까지 되었지만
그나마 아내가 내 말을 듣고 교회를 나가겠다고 한 내용을
목사님께 자세히 말을 하고 아내를 위로해주고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없애 달라 부탁 했었다.
상태가 좋았을 때 왔으면 좋았겠지만 이제라도 예수님을 찾는 것이
모든 게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 것 아닌가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오히려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된 듯 스스로 자위 했다.
집 쪽으로 가는 길에 교회에 불이 켜있는 걸 확인하고
젖어있는 몸을 탁탁 털며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작은 상가건물 2층에 있는 교회로서 한 사오십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놓여 있었고 단상 벽에는 십자가가 붙어있었고
교탁과 의자 두 세 개가 배치되어 있는 작은 교회였다.
단 상에는 목사인 듯한 남자가 큰소리로 울부짖으며 기도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가히 기가 죽은 아내는 쥐구멍이라도 찾는 기분으로
구석 자리가 편하다며 주저앉아 고개를 숙여버렸고
나는 단상 가까이 자리를 잡고 기도를 시작했다.
기도를 하기위해서라기보다 지금의 공허한 심정을
속 시원히 하나님에게라도 털어 놓고 싶어서였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목사님이 기도를 멈추고 내 곁으로 걸어왔다.
미리 약속을 했듯 모르는 사람처럼 해 달라 했었다.
활짝 웃으며 악수를 건네며 목사님이라 소개를 했고
나와 아내는 자초지종을 말하고 마음을 달래려고 불쑥 들어와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더니 목사님은 손 사레를 치며
예배당은 힘들고 아픈 분들이 마음대로 와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 곳이라며 편안하게 마음을 가지라고 하며
따끈한 커피를 손 수 타다가 주었다.
아내의 표정을 보니 안심이 되는 듯 편해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편안한 얼굴이었다.
우리는 목사님께 사실대로 말하고 앞으로 어찌 살아야 될지 막연하게 물었다.
50대 초반 정도로 인자하게 생긴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목사님은
“아주 잘 오셨습니다. 성도님들처럼 아프고 깨어져야 찾는
하나님이 바로 여기에 계십니다.
낮은 데로 임하시는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세를 고쳐 앉으며 목사님은 나보다는 아내에게 집중으로
권면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 했다.
아마 목사님은 준비를 단단히 하신 모양이었다.
이대로 밤이 새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우리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목사님은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악한 마귀는 우리 삶에 은밀하게 들어와 많은 고통과 재난을 가져다줍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신앙을 파괴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합니다.
사탄 마귀들의 존재(存在)의 의미(意味) 이지요.
마귀가 존재하고, 우리가 살아있는 한
마귀의 유혹과 공격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의 풍요함을 가져가지요.
물질을 빼앗아 가고,
건강을 빼앗아 가며,
시간을 빼앗아 가고,
삶의 환희와 행복을 빼앗아갑니다.
그들은 강도이며 도둑입니다.“
아내는 눈을 크게 뜨고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목사님은 신이 난 듯 물을 한 모금 마신 다음 이어나갔다.
”사랑과 우정으로 가득했던 인간관계를 파기하고 쐐기를 박습니다.
그들은 분노와 미움과 원망과 불평을 심어 놓고,
마귀가 존재하는 한
우리들의 삶은 결코 행복은 없을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들을 파괴하기 위하여
이렇듯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접근하고 있는데
그 사실을 모른 우리들은 어떻게 대적 할 수 있겠습니까? “
목사님은 점점 크고 경직된 목소리로 설교를 이어나갔다.
”성도님이 믿으려 했던 무당이라는 여자는 바로 이 마귀입니다.
분명한 것은 마귀는 대부분의 고통과 재난의 배후 조종자입니다.“
들고 있던 성경책을 들추어 욥기 편을 열어 아내에게 내밀었다.
아내는 신기하다는 듯이 귀를 쫑긋 세우고 내 옆에 바짝 앉아 경청했다.
”이 욥기만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으며 그의 삶의 모든 부분이 만족 했었지요.
하지만 그러한 풍요로움 속에서도
주님께 감사하고 경외하며 자만하지 않고 조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녀들의 생일날 잔치를 벌인 후에는
꼭 잊지 않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아내는 나에게 성경책에서 욥기를 열어 달라는 표정을 했고
나는 교회 본관용 성경책을 가져다 욥기를 열어 주었다.
”그의 마음속에 너무 풍요하고 행복한 삶이 영적인 느슨함을 가져오지 않을까,
교만하고 높은 마음을 품거나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는 마음이 컸던 사람입니다..
그만큼 경건한 사람이었답니다.
모든 상황이 다 잘 되어 가는 상황에서도 겸손하고
주님 앞에 엎드려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그의 행복한 가정에 갑자기 온갖 재난이 닥친 이유를
성경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탄 마귀입니다.
사탄은 그의 행복과 신앙에 대해서 시기하고 질투하며
어떻게 해서든지 그를 타락시키고 멸망시키려고 온갖 노력을 했던 것입니다.
설교는 길어 졌다.
시간이 갈수록 아내는 쉽게 빠져 들어가는 성향을 느낄 수 있었다.
어쨌든 간에 무당에게 미치는 거 보다 예수에게 미치는 게 좋다고 생각을 했다.
“정작 재난의 시작이 된 마귀의 존재에 대한 대화는 전혀 없었기에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었지요.
이렇게 구약이 지나고
신약시대에 악한 영들을 결박하고 깨뜨리고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오셔서 시작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의 공적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악한 마귀들을 결박하고 쫓아내는 것이 중요한 사역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직 구약에는 그러한 권세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오심은 곧 신약의 시작이며 하나님 나라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될 때 그 놀라운 특징은
마귀의 세력을 분별하고 대적하여 깨뜨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과 같은 구약의 사람들은 오직 모든 것에 하나님께 호소할 수 있었지
직접 주의 이름과 권세를 사용하여 마귀를 결박하고 깨뜨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은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그의 시의 대부분을 형성하는 비탄 시에서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하고 호소하지만 직접 마귀를 부수지는 않습니다.
그도 아직 신약 이전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신약시대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인간의 죄 값을 해결하셨습니다.
그리고 마귀를 제어 할 권세와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왕국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며 마귀를 쫓아낼 수 있는
힘이 그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이 시대에 태어난 우리들이 누릴 수 있는 놀랍고도 영광스러운 특권입니다.
하지만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 있습니다.
여전히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시대의 사람들처럼
하나님께 호소하고 울부짖고 만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마귀를 대적할 줄 모릅니다.
아니 마귀가 어떻게 장난을 치고 그들의 삶을 파괴하는 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합니다.
고통과 재난에 대해서 하나님은 그 행위자가 아닙니다.
당사자가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께 하소연합니다.
어떤 이가 내게 물었습니다.
”주님은 언제 다시 오시나요?“ 하고.
그래서 나는 대답했습니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내가 갔다가 언제 올 것인지, 알고 싶으면 저에게 물어보십시오.
하지만 주님이 언제 오시는지 알고 싶으시면 주님께 물어보십시오.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것은 주님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당사자에게 물어야 합니다.
관계없는 엉뚱한 사람에게 묻거나 책임을 돌린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나쁜 사람이 우리의 돈을 가져갔다고 합시다.
그것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돈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에게 찾아가서 하소연할 수 있습니다.
항의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돈을 돌려달라고. 왜 가져갔느냐고.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엉뚱한 사람에게 가서 울면서 하소연하거나 항의를 하면
그는 대답할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돈을 말하는 겁니까? 왜 엉뚱한 사람에게 이렇게 난리를 치고 있습니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고통을 주시고 우리의 삶을 파괴하고 아프게 하는 존재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귀입니다.
왜 한강에서 뺨을 맞고 종로에 가서 하소연을 합니까?
그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우리는 마귀가 우리의 삶을 공격하고 파괴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직 구약시대에는 마귀와 귀신의 존재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셔서 마귀를 드러내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이 사역을 제자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맡기셨습니다.
주님은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며
제자들과 그리스도인들도 그러한 일을 해야 함을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당사자를 분명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기도의 방향과 싸움의 방향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화살은 과녁을 맞출 수가 있습니다.
마귀를 제압하지 않고 하나님께 울고 하소연만 하는 것은
문제의 당사자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 이름과 능력을 사용하는 권세를 주셨으며 그것을 맡기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능력과 권세를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주님은 성경을 통해 바로 우리 자신에게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책을 들어 보이며 말을 끊고 잠시 기도 하자며 나와 아내의
머리에 손을 대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사탄 마귀를 근접하지 못하게 하고 쫒아내는 목사님의 강력한 기도였다.
아내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눈물을 훌쩍거리며 계속 걸어갔다.
내면에서부터 나온 회개의 눈물임을 알고 나는 내심 흡족해 미소를 지었다.
마누라 덕에 팔자에 없는 무당을 만나 신나게 굿판을 벌인 후유증은 예상외로
컸지만 두 사람은 흔들림 없이 살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다.
얼마 후 경찰서에서 무당을 검거 했다고 연락이 와서 대질신문을 받으러 다녀왔다.
여전히 화장을 진하게 하고 줄무늬 원피를 입고 앉아 있었다.
굿판을 벌인 돈은 그렇다 치고 훔쳐간 물건이나 돌려 달라고 했더니
자기도 잃어버렸다고 했다.
도와준다고 한 놈들이 몽창 들고 내뺐다고 진술을 했다.
허탈했다. 쓴 웃음만 나올 뿐
경찰이 수고했다고 가라고하길래
“이 여자는 어떻게 됩니까?” 하고 물었다
“강 명자씨는 연루 된 건이 또 확인되어 아마 당분간은 밖에 못나갈 겁니다”
서류철을 들고 일어서며 말을 했다.
건질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한심하기만 해서 마지막으로 한마디 던지고 나왔다
“당신 앞으로 사이비 무당 질 말고 똑바로 살아!”
그나마 택시기사가 200만원을 현철을 통해서 가지고 왔다.
현철이 계속해서 보이지 않게 압박을 했더니 가지고 와서 무릎 끓고
용서를 빌어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라고 말하고 보냈다고 한다.
“형님 이거 밖에 못 받았는데요......”
하면서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고생 했네 아우 이거라도 어디냐? 고맙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었다.
닭튀김에 소주를 각 두 병씩 나누어 마신 후 약속이나 한 듯이 둘이는
오랜만에 지하에 있는 노래방으로 들어갔다.
한 시간만 노래를 부르기로 하고 그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 일부를 날리기로 했다.
그런 나의 심정을 알고 현철은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부르고
흥을 돋우며 시간을 보낸 후 헤어져 집으로 갔다.
허름한 연립주택 단지 집 앞에 희뿌연 물체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가까워지면서 또렷이 보이는 모습이 아내란 걸 알 수 있었다.
걱정이 묻은 목소리로 물었다.
“왜 추운데 나와 있어?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아니야. 오늘따라 당신이 너무 보고 싶어서 기다린 거야.”
대답하며 겸연쩍어 했다.
“오늘 낮에 교회 사모님하고 여전도회장 이라는 분이 다녀가셨어요.
이번 주 토요일에 목사님 심방 오신다는데“
겉저고리를 받아주며 신이 난 듯 귀엽게 쫑알거렸다.
나는 아내를 지그시 바라보며 안아 주었다.
깊은 포옹을 하며 그녀의 귀여운 입술을 깨물었다.
거창하게 벌인 굿판으로 인한 상처를 하루속히 아물게 하고
새로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침대 위로 스러져 깊은 밤을 위한
축제의 전초전을 벌였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0.07.13 04:09
하고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다만 잉태의 고통을 느낍니다
@별빛
문학의 열정에 박수보냅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쓰지 않으면 아파옵니다.
작가님 좋은글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부끄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