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매년 9월 말에서 10월 초가 되면 북유럽에서 북극을 넘어, 정기적으로 아시아 동북부의 반도국에 왔다가 금방 사라지는 ‘역병’ 이 존재한다. 그 역병은 과학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그닥 관심이 없는 동아시아의 어떤 반도국가에서도 잠깐 과학에 대한 화제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심각한 질병이지만, 한달 안에 그 증상이 말끔히 사라지는 계절성 유행병 같은 질병이다. 그 유행병에는 스웨덴에서 약 백여 전에 사망한 어떤 화학업자, 즉 알프레드 노벨 (Alfred B Nobel)의 이름이 붙어 있다. 그리고 이 유행병의 계절이 끝나갈 때쯤 반도국의 언론에서는 ‘한국은 왜 아직도 노벨상을 못 타나’ 의 주제로 매년 거의 동일한 한탄이 소개된다. 특히 이 한탄의 빈도는 반도국 옆의 열도국 출신의 수상자가 나오는 해일수록 증가한다. 열도국에서는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 왜 반도국에서는 생기지 않는 것에는 뭔가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원인분석이 쏟아진다. ‘창의적인 교육의 부재’, ‘입시지옥’ , ‘창의성을 억누르는 위계질서’ 등 사람마다 제각각의 원인 분석이 쏟아진다. 옆 열도국도 결코 교육 면에서 창의적이지도 않으며 입시지옥인 것은 마찬가지고, 위계질서라면 반도국 못지 않음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여기서 또 하나의 ‘한국이 노벨상을 왜 못 타는가’ 에 대한 이야기를 보태고 싶지는 않다. 그 대신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오늘날의 과학에서 과연 노벨상에 큰 의미부여를 할 필요가 있을까?' 와 같은 이야기이다.
사실 최초의 노벨상이 수상된 1901년과 21세기의 과학이 행해지는 방식에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 일단 주로 한 명, 많아 봐야 2-3명의 과학자가 한 토픽에 대해서 연구를 하던 시절에 비해서 현대의 과학 연구는 적어도 10여명, 극단적인 경우에는 수백, 수천명의 연구자가 관여되어 있다. 가령 금년의 물리학상의 소재인 ‘중력파 검출’ 의 최초 보고 논문의 저자 목록은 무려 3페이지에 달한다1. 그렇지만 노벨상의 수상자는 여전히 ‘생존해 있는 3명’ 으로 한정된다. 중력파 검출과 같은 거대 연구가 아닌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생체시계’ 로 생리의학상에서 수상한 3명은 해당 연구실을 이끄는 연구 책임자이고, 이들과 함께 연구를 수행한 수많은 ‘진짜 연구자’의 이름은 잘 기억하지 않는다. 적어도 수십 명에서 수백, 수천명이 관여하여 만들어 낸 현대과학의 성과를 단지 3명의 업적인 것처럼 기념하는 것은 월드컵 축구에서 우승팀 대신 감독과 주장, 최다 득점자 3명에게만 개인자격으로 상을 수여하고 나머지 선수, 코칭스탭에게는 아무런 영광이 돌아가지 않는 상황과 흡사하다. 현대 과학은 노벨상과 과학 위인전에서 기술하는 것처럼 몇 명의 영웅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지만, 노벨상은 이러한 잘못된 인식을 대중에게 고착화시키는 주범 중의 하나이다.
단순히 수상자가 3명으로 한정되어 있거나 단체에게 수여를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사소한 문제 이외에도 노벨상의 문제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노벨의 유언에서는 “매년 이전 해에 특정한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공헌을 한 사람” 에게 상을 주라고 명시되어 있지만, 요즘의 노벨상은 특정한 분야에 대한 생애 공로상의 성격을 띄고 있다. 그러나 노벨상이 문제는 특정한 분야를 진정으로 개척한 사람의 공로를 기념하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현실의 노벨상은 ‘살아남은 자’ 에 대한 상에 더 가깝다. 사실 금년의 생리의학상의 토픽인 ‘생체시계’ 에 대한 노벨상이 20년 전에 수상되었다면, 아마 수상자는 지금의 수상자 3인이 아닌 최초로 초파리에서 생체시계 돌연변이를 찾은 로널드 코노프카 (Ronald Knopka)와 세이모어 벤저 (Seymour Benzer) 일 것이다. 그러나 노벨상은 알다시피 살아남은 자에게만 주어진다. 체외수정을 개발하여 최초의 ‘시험관 아기’ 를 탄생시킨 주역 로버트 에드워드 (Robert Edward)와 패트릭 스탭토 (Patrick Staptoe) 중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것은 그 당시 생존하고 있던 로버트 에드워드였고, 만약 해당 분야에 대한 수상이 몇 년만 늦었어도 로버트 에드워드가 사망하여 그 분야에 대한 시상은 아예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로절린드 프랭클린 (Rosalind Franklin) 이 암으로 요절한 덕에 DNA 이중나선 구조의 발견은 왓슨과 크릭의 것처럼 묘사되었다. 이렇듯, 노벨상을 받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적인 공헌보다는 어쩌면 거룩한 노벨상 선정 위원회가 해당 분야를 점지하실 때까지 끈질기게 살아남는 것이다.
알프레드 노벨은 유언장에 “매년 이전 해에 특정한 분야에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공헌을 한 사람” 에게 상을 주라고 썼다. 즉, 알프레드 노벨이 생각한 노벨상은 매년 수상하는 ‘과학의 아카데미상’, ‘야구의 골든글러브상’ 과 같은 개념이었을지도 모른다. 현재의 노벨상은 특정 세부 분야에 대한 ‘생애공로상’, 그것도 ‘살아남아 있는 3명’ 만을 기념하는, 상당히 이상한 상이 되어 버렸다. 그 결과 요즘의 노벨상은 적어도 10년, 보통은 20-30년전에 이루어진 일에 대한 시상이 되어 버린다. 즉, 수상자가 나온 해당 분야의 연자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고, 교과서에 잘 나와 있는 그리고 해당 분야 연구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연구자들에게 상이 주어지는 ‘뒷북’ 과 같은 성격을 띈다. 마치 방송국에서 개최하는 연말의 올해의 가수왕이나 연기대상에 요즘의 인기가수나 배우 대신 조용필씨나 최불암씨가 수상을 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물론 해당 분야에 관심이 없었던 일반인들이야 ‘저 사람 누구?’ 라는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지만 이미 해당 학문분야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룬 원로들에게 주는 상이 해당 분야의 과학 발전, 특히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젊은 과학자들에게 얼마나 동기 부여가 될 수 있을지는 솔직히 미지수이다.
물론 대중의 관심을 좀처럼 끌지 못하는 과학 분야에서 일년에 한번 정도 노벨상이라는 계기로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거액의 상금을 제공함으로써 과학자의 사기 진작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빌미로 노벨상이 등장한 이후에도 래스커 상 (Lasker Award), 브레이크쓰루상 (Breakthrough Award) 등의 수많은 유사품들이 등장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상들이 과연 특정한 분야의 과학분야를 개척한 사람들을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스타로 만들어 줄 아우라가 있을까? 어차피 노벨상을 포함한 이러한 상은 돈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물질적인 재산을 이용하여 과학의 영속성에 편승해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한 것이므로, 물질적인 기준에서만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하자. 2016년 기준으로 노벨상 상금은 900만 크로나 (약 12억 7천억원) 정도이다. 요즘의 과학 분야의 노벨상은 대개 3명이 공동 수상하는 것이 추세이므로 ‘n분의 1’ 을 적용하면 약 4억원 정도의 금액이다. 물론 일반적인 과학자들에게는 큰 금액처럼 느껴지지만 과연 이 정도의 상금이 그리 대단한 금액인가? 아마도 노벨상을 수상한 대개의 연구자들이면 일년에 연구실에서 운용하는 연구비의 극히 일부 수준이 될 지도 모르는 금액이다. 2009년 리보좀의 입체구조 규명으로 화학상을 수상한 톰 스테이츠 (Thomas Steitz) 는 이렇게 농담을 했다. “노벨상이라고 상금을 받았더니, 메이저 리그 야구 (MLB)에 드래프트된 우리 아들의 계약금보다도 적던데!”2, 참고로 톰 스테이츠의 아들은 MLB에 드래프트되긴 하였으나 한번도 메이저 리그에 올라가 보지 못하고 부상으로 은퇴한 선수이다3. 과학계를 대표하는 최고 업적을 낸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금이라고 해봐야 별로 성공적이지 않았던 프로스포츠 선수의 계약금, 혹은 대학스포츠의 감독의 한 해 연봉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면4 요즈음의 노벨상이라는 것은 결국 ‘푼돈으로 생색’ 내는 셈이다. 노벨상에 비견되는 새로운 과학상을 만들어 자신의 이름을 후세에 남기면 어떨까 하는 재력가들에게 한 마디 충고한다면, 당신이 과학 자체에 진정한 공헌을 하고자 한다면 이미 이전에 공공의 세금에 의해 차려진 연구 결과, 즉 ‘다 된 밥상’ 에 숟가락을 올려 자신의 명예를 남기려고 하지 말고, 지금 현재 진행되는 과학, 혹은 앞으로 진행될 과학이나 지원할 생각이나 하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백여년 전에 스웨덴의 어떤 화약업자가 써먹은 방법을 지금 와서 다시 써먹는 것은 너무 식상하지 않는가.
이런 상황에서 아직도 국가 및 사회적인 차원에서 마치 과학 노벨상 수상을 과학계의 염원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이 바로 과학 후진국 인증이며,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노벨상 수상이 누군가의 염원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적어도 과학 현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염원인 적은 없었다. 과학에 평소에 관심도 그닥 없는 국가에서 그토록 노벨상에 집착하는 것은 이제 경제적으로 살만하게 되었지만 학벌이나 교양이 부족해서 컴플렉스를 느끼는 ‘신흥 졸부’ 의 열등감 폭발의 일환처럼 보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팩트폭력’을 한번 더 시전한다면, 한국에서 수행된 연구로 노벨상이 수상하는 것은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대개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난 먼 훗날의 이야기이나 될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어차피 노벨상은 해당 분야를 처음 시작한 사람에게 주어지고, 그 이야기는 이전에 수행된 적이 없는 연구를 처음 시작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그런 연구를 좋아하지도 않고 지원도 안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사실 아닌가? 로또에 당첨되는 희박한 확률에 기대를 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지만 일단 로또부터 산 다음에 당첨을 기도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아니면 확률도 없다시피 한 로또는 아예 잊어버리든지.
--------------------------------------------------- 1 https://journals.aps.org/prl/abstract/10.1103/PhysRevLett.116.061102 2 https://www.nobelprize.org/nobel_prizes/chemistry/laureates/2009/steitz-bio.html 참고로 톰 스테이츠의 아들은 MLB에 드래프트되긴 하였으나 한번도 메이저 리그에 올라가 보지 못하고 부상으로 은퇴하였다. 3 https://www.baseball-reference.com/register/player.fcgi?id=steitz001jon 4 http://www.businessinsider.com/college-football-highest-paid-coaches-2016-10/ 미시간 대학의 풋볼 코치인 Jim Harbaugh는 매년900만 달러의 연봉을 받는다.
남궁석 (MadScientist in Secret Lab of Mad Scien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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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협주곡 김우재, 남궁석, 김태호 과학협주곡은 두 명의 과학자와 한 명의 과학사학자가 함께 써가는 과학 주변의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이야기가 어디로 흐르게 될지 우리도 알지 못합니다. 마치 재즈처럼, 세 명의 필자는 앞 사람이 쓴 글과 맥락이 닿는 이야기들로 과학의 현실과, 과거, 그리고 미래에 대해 짧은 단상들을 늘어 놓게 될 겁니다. 과학계의 현실을 지적할 땐 치열하게, 과거를 가져 올 땐 차갑게, 그리고 대안과 함께 미래를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마도 그것이, 과학으로부터 훈련받은 그리고 과학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과학적인 태도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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