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주간의 출애굽기 강의가 끝났어요. 아가를 데리고 가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었는데 옆지기 도움으로 서울로 고맙게 오고가고 강의 집중 할 수 있었네요. 육아정황에 맞닥들이면서 예상은 했지만 막상 집에만 있는 것이 답답했어요. 나는 왜 답답해하는가, 나가서 무얼 하고 싶은가 질문하다가 끝에 다다른 마음이 하나님 부르시는 청년들 만나고 싶다! 였어요. 내 뜻, 내 의지 아닌 하나님 뜻 찾아야겠다는 열망이 서울로 발걸음 가벼이 가게 하는 이정표였지요. 우리가 이 길에 서 있는 이유, 지금 이 삶의 방향 다시금 잡고 갈 수 있어 참 고마운 시간이었습니다.
저에게 출애굽은 숨막히게 고통스러운 절망, 끝을 알 수 없는 낭떨어지에서 부르짖던 절규에 대한 응답이었어요. 내 힘, 내 의지가 완전히 꺾이고 내가 믿고 따르던 세상의 어떤 가치도 날 일으켜 세우지 못하고 고꾸라져 있을 때 구원하신 그 손길을 따라 완전히 새로운 삶의 기로에 설 수 있었어요. 애굽에서 보고 들어왔던 신들이, 그 기라성 같은 우상들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 하나씩 폭로하시던 10가지 재앙 사건이 우리에게 뼈아플지언정 은혜임을 기억하게 됩니다. 같은 줄 알았던 모든 것이 새롭게 해석되고 내 존재가 하나님 안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을 깨달았어요.
이렇듯 출애굽 백성들은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는 구원을 경험한 자들이에요. 억압하고 착취하는 애굽의 신과 그 문명을 완전히 거부한, 나다움을 회복한, 모양도 없고 이름도 없는 야훼 하나님을 따르는 합비루들. 투쟁하고 해방을 쟁취하는 합비루들의 출애굽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자유케하시는 야훼를 경험한 자들이, 계속해서 그의 얼을 나누고 전하며 전혀 새로운 삶에 동참하는 걸음이 이어지는 것이지요. 8주간 공부하러 갈 때마다 우리들이 이 거룩한 혁명 역사에 동참하고 있음에 벅차오르기도 했어요. 아론과 같이, 이드로와 같이, 사람을 세우고 조직하고 힘을 모아 시대의 우상에 맞서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함께 세워갈 동지들에게 고마운 마음입니다. 여전히 아파하고 고통 중에 있는 이땅의 절박한 청년들에게 해방의 하나님을 전하는 전사들이 되길 축복해요.
모두가 다 알다시피 출애굽을 했다고 그게 다는 아니었어요. 가나안 땅으로 왔더라도 끝이 아니고 또 일상이에요. 사실 이제부터가 더 중요한데, 그 일상에는 크고 작은 파도가 당연하게 입니다. 높게 이는 파도를 보고 놀라서 내가 해오던 익숙한 방식으로 그 파도를 대하면 어느 순간 금송아지를 다시 만들고 있어요. 가시적인 돌파구들로 나를 위안삼으려고 해요. 애굽에서 봐 온 금송아지, 높은 제단, 집단을 획일화하는 힘, 영원할 것 같은 체제, 그것으로 돌아가고자하는 욕망은 언제든 다시 넘실댈 수 있다는거죠. 그럴때마다 어쩔 수 없다며 자기 합리화를 하거나 어떻게든 피하려고 들지 않고 파도를 고맙게 여기고 그저 오고 가는 파도를 타기도 해보고 어쩌다 물 속에 빠지면 바다 속 구경 하다가 지치면 뭍으로 나와 햇볕도 쬐고 그렇게 살고 싶어요.
그리고 그 무엇보다 파도를 이해하고 넘어가는 훈련 속에서 모세와 같이 성막에 들어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 쌓여가길 바라요. 그들을 살려주시길 바라는 간절함이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할 수 있도록 이끌겠지요. 나의 일상 모습 그대로 육아중에도, 소양증 앓는 그대로, 내가 어떤 부르심 앞에 서있는지 확인하고 합비루들의 해방과 구원을 비는 성막의 시간, 고요하고 잠잠한 기도로 깨어 주위를 비추기를.
그들이 길 없는 사막에서
방황하며
살 성을 찾지 못하고
굶주리고 목말라 시들어 갈 때에
그들이 고통 가운데서
여호와께 부르짖자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여
정착할 성에 이르게 하셨다.
그들은 여호와의 한결같은 사랑과
그가 행하신 놀라운 일에 대하여
그에게 감사해야 하리라.
그가 갈망하는 심령을
만족하게 하시며
굶주린 심령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신다.
시편 107: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