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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7차 부산23산우회 다대포 몰운대/2017.07.09 1부
1. 모임장소 : 다대포 해수욕장역 4번 출구 11시반
2. 출석(22명) : 박수갑 부부 박재완 김상영 이승국 조진호 감인홍 부부 박창수 박무열 김중광 최인식
이상운 정연철 박정본 김태홍 김영기 박영창 안호창 홍덕표 송충송 신영화
3. 코스 : 낙조분수대 - 칼국수집/점심 - 몰운대입구 - 다대포객사 - 몰운대 전망대 - 화손대 -
몰운대입구 - 백사장 - 아미산 노을마루길 - 아미산 전망대 - 프르지오아파트 - 미인탕
4. 시간 : 4시간 5.회비 : 만원
- 결산 1) 수입 : 862.2951만원 (전이월/844.2951 + 회비/18.0 (부인 면제)
2) 지출 : 65.857만
목욕/6.0 준비물/커피등등/1.1270 점심/칼국수/12.6 저녁/오리불고기/28.0
팥빙수/아미산전망대/2.5 아이스케키/몰운대입구/2.13 다대포답사/2명/3.5
당구회시합 찬조/7월1일/10.0
잔금 : 796.4381만원
사진모음
인터넷에서 .. 총길이 7.98㎞인 1호선 연장 다대 구간은 신평역에서 동매·장림·신장림·낫개·다대포항역을 거쳐 다대포해수욕장역까지 이어진다. 9590억 원이 투입됐다. 신평역에서 다대포해수욕장역까지는 14분가량, 노포동역에서는 76분가량이면 닿는다
동매역이나 낫개역은 낯설다. 동매역은 인근 동매산에서 따왔다. 낫개역은 다대만 동쪽 해안을 낫개 또는 낫개마을이라고 불렀다는 점에 착안해 멸치잡이로 유명했던 낫개포구의 이름을 되살렸다. 되살릴 것은 이뿐만 아니다.
다대포 일대는 중생대 백악기를 알려주는 지층 교과서로 불린다. 불의 시대라는 이 시기 화산활동의 증거가 남아 있다. 다대포 지층의 아래가 9000만 년 전, 그리고 그 상층부는 7000만 년 전, 그러니까 2000만 년 세월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또 있다. 몰운대 북쪽 끝부분 다대포패총은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문화연구에 중요한 유적으로 꼽힌다. 다대포는 한반도를 침략한 왜군을 격퇴했던 최전선이었으며 다대포후리소리의 고향이다.
다대포 꿈의 낙조 분수대
전철 다대포 해수욕장역 4번 출구에서 30미터 지점 해안가에 있다
돈들여서 멀리 갈 필요있나 ??
공짜 전철타고 무더운 여름에 집의 손자들 데리고 여기에 와서 시원한 여름밤을 즐길수 있다.
동영상 (파일에서)
다대포 꿈의 낙조 분수쇼
11시반에 낙조분수대에 집합
동심으로 돌아가서 시원하게 물안개를 만드는 분수쇼도 보고 ,,,
오늘은 영기 상운 정본 창수 장유팀이 전원 참석했네요. 그리고 오랜만에 23산우회 여학생들도 참석하고 ,,,
분수쇼를 감상하고 점심을 먹으로 칼국수 집으로
오늘 새벽까지 혹시 오늘 비가 올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
다행히 비가 않오고 하늘이 개여서 다들 즐거운가보다
" 야 총무야 다음부터는 항상 요렇게 하자. 칼국시 한그릇 묵고 살살 돌다가 목간하고 저녁묵고 또 당구치고 ,,,,
그라먼 나는 매일 올께 ,, ㅎㅎ 환상적인 코스냉 ,,, ^^^ "
칼국수가 푸짐하다
그릇이 너무 커서 애기들 목욕도 하겠다 ㅎㅎ
오늘 산행을 할려면 배가 고플낀데 다들 마이 드세요
점심식사를 하고 몰운대로
다대포 해수욕장에서 유명한 횟집거리를 지나고 ,,,, 정면에 몰운대 입구가 보인다
원래 이 구역이 옛날 다대포 해수욕장이고 우측의 낙동강쪽 해수욕장은 다대포 백사장으로 구분한 기억이 난다.
옛날 70년대 이쪽 모래 사장에서 길다란 막대같은 맛을 한바케츠씩 잡은 기억이 난다.
모래사장에 물기가 있는 곳에 자세히 보면 맛이 숨을 쉬는 모습이 보였다. 자그마한 물구멍이 폭폭 움직였다
그 작은 구멍으로 끝을 꼬부린 철사를 수셔 넣었서 잡았다. 백합은 호미로 파면 지천에 가득했고 ,,,
다들 옛기억을 더듬으며 여기 백사장을 본다
아 !!!!!
그 수려했던 백사장은 어디로 가고 자갈밭만 ,,,,
그래도 멀리 낯익은 다대포항 입구 솔섬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아레 6일날 호창이랑 둘이서 답사차 들렸을때 백사장 모습 .
그래도 약간 남아있던 우리의 그 귀한 추억이 서린 백사장의 흔적이 3일 사이에 오늘 위의 사진처럼 자갈밭이 되어 버렸다.
아마 이근처에 축대를 쌓고 또 다른 먹거리 구역을 만들겠지 ,,,, 개발 ??? 인간의 욕심이 ,,,
이 일대가 그 아름다운 해수욕장이였다는 사실도 모르고 우리후손은 여기에서 멋지고 비싼 횟집에 앉아서 저 솔섬을 바라보고 낭만(?)을 즐기겠지 ,,,,
아픈 기억을 뒤로하고 몰운대로 들어간다.
여기 몰운대 이구역은 70년대까지만 해도 몰운대 끝바리까지 소나무숲 작은 오솔길이 있었는데
그 오솔길 중간 중간에 소나무 가지를 모아둔 더미가 군데 군데 있었는데 우리가 어릴쩍에 간혹 여기를 지나면서 그 소나무 가지 더미를 들치면 그 안에는 옷감(비로도 등등)과 다른 물건들이 수북했던 기억이난다.
바로 일본서 밀수해온 밀수품이리라 ,,,,
우리가 아주 못살때의 60-70년대의 슬픈 추억이다 . 우리 부모님들은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야 했던것같다.
다대포 객사를 지나고
인터네에서 다대포 객사는 1972년 6월 22일 지방유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다.
객사란 조선시대 지방 관아(官衙:관청) 건물의 하나로 수령(守令)이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궁궐)을 향해 망배(望拜)를 드리던 곳으로 근엄하게 지어져 사신(使臣)이 있을때는 그 사신의 숙소가 된 곳이다.
조선시대에 부산에는 다대포첨사영 이외에도 부산진성 안에 공진관이란 이름의 객사와 지금의 수영인 옛 좌수영에 영파당(寧派堂)이란 이름의 객사가 있었고, 동래부에 봉래관(蓬萊?)이라 이름한 39간(間)이나 되는 객사가 있었다. 그리고 초량왜관에 왜관으로 오가는 사람을 위해 대동관이란 객사에 조선왕조 건국 이래의 역대 국왕의 전패(殿牌)를 봉안하고 있었다.
그때는 일본에서 사신이 오면 이 전패에 먼저 예를 올려야 했다. 위에 말한 객사들은 지금으로부터 90년 이전(한일합방 이전) 또는 갑오경장 이전까지는 부산에 모두 다 있었으나 지금은 다대포진 객사만 남아 있다.
다대포진 객사가 남아 있다 해도 지붕과 기둥과 밑뿌리의 하방(下防)만 남아 있을뿐 벽체는 허물어진 뒤다. 그때 회원관이라 불린 이 객사도 본디의 다대포진이었던 지금의 다대초등학교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1970년 몰운대 현재의 자리에 원형그대로 이전 복원 된 것이다.
한데 다대포를 비롯한 남해안은 예부터 왜구의 노략질이 심했던 곳이다. 그 왜구를 막기 위해 수군의 절도사영을 두었는데 조선조 초기의 다대포영은 부산포절제사영 휘하의 만호영(萬戶營)이었다. 그때는 장림포(長林浦)에 있었다. 그 뒤 다대포로 옮겨지고 명종이후 다대포 만호영은 부산포와 같은 진(鎭)으로 승격되었다. 임진왜란 이후는 부산포진과 함께 그 중요성에 비추어 딴 진보다 2배의 병선을 가지게 되면서 다대포진의 첨사는 북경(北境)의 만포진첨사(滿浦鎭僉使)와 같이 정 3품 당상관이 임명되었다.
이 다대포진 객사의 창건 연대는 분명하지 않으나 1970년 몰운대로 옮겨지고는 산꼭대기에 벽체가 없이 서서 누대같은 모습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대티고개밑에서 나온 석관묘로 보이는 유적에서는 무문토기에 단(丹 : 붉은)을 칠하고, 광택을 낸 단도마연토기 한점과 마제석검 한점, 마석촉 세점, 미완성 석촉 두점이 출토되어 무문토기와 함께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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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운대 전망대에서 본 몰운대 끝바리(사진 우측) 와 쥐섬 (사진 좌측)
몰운대 끝바리의 경치가 몰운대의 백미인데 지금은 군부대가 있어서 출입금지다.
그 옛날에 동네 형님들 따라와서 몰운대 끝바리 높은 절벽에서 다이빙(X치기 ㅎㅎ )을 하던 추억들이 되살아 난다.
전망대를 오르는 언덕길
전망대에서 본 쥐섬 . 쥐섬 바로 앞의 작은 섬이 동섬이다.
어릴쩍 동네 아저씨들이 여기서 바로앞 등대 바위로 헤엄처서 건너가서 잠시 쉬다가 또 쥐섬으로 가던 모습이 기억난다.
지금 보니까 엄청 먼데 그 아저씨들은 겁도 없이 어떻게 갔을까 ??? 물론 고무 우끼를 가지고 갔지만 ,,,
모자섬
화손대. 다대포항 입구 방파재. 구시평끝바리 . 대가리섬. 그리고 멀리 태종대가 가물2 보인다
전망대에서 쥐섬을 배경으로
최인식 김영기 박수갑 김중광 박재완
김중광
군인들이 지키던 초소가 전망대가 되어 있다
70년대 전국을 떠들썩 하게 한 다대포 간첩침투 사건이 바로 여기 자갈마당 근처로 기억된다
그때 굉장했지. 야광탄 불빛에 자갈치도 훤했으니까,,,
전망대에서 본 화손대 쪽 해안가
이 해안가는 그런대로 다행히 옛날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서 반갑다.
저 자갈마당에서 친구들과 해삼을 잡던 기억이 ,,, 그 당시 친구들과 떠들던 소리가 해변에서 들리는것 같다
전망대를 지나서 화손대로
야생동물들을 위한 자그마한 인공 옹달샘도 지나고
걷기에는 참좋은 코스다. 조용하다
5분간 휴식
여학생들
폼도 잡아보고
" 요사이 뉴스보니까 즈그 아파트를 지나가는 외부 차량들에게 통행세를 받는 아파트가 있어서 싸움이 나고 하든데
우리도 여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통행세를 받자 힉 "
" 그래 느그 생긴거 보이 그래도 되것다. 영팡 동네 조폭들 같넹 ,, 아지매들 꺼지 ,,,, ㅎㅎㅎ "
오늘은 영기가 조폭 대장이 되어서 다들 영기의 조폭얘기 듣노라고 5분휴식인데 갈 생각을 않한다
김상영 모자섬을 배경으로
화손대 도착. 여학생 1 . 2 . 3
중광이가 나누어준 일제 양갱을 먹으며 ,,,,
" 사랑하는 중광씨 ~~~~ 우리는 2개씩 주세요 ^^^ 호호호 "
김영기 정연철
여기는 벌써 주유소 문을 열고 ,,,, 주유중
양갱을 배급하는 중광이
" 우리는 산에만 오면 중광이의 초코렛과 양갱이 기다려 진답니다 "
주유소
다대포항 전경
다대항 뒷산이 아미산 . 산 바로 아래에 하얀 봉수대가 보이고 ,,,
오늘 우리들의 미인이 기다리는(?) 푸르지오 아파트외 현대 아파트도 보인다
옛날에 다대포 해수욕장에서 저기 보이는 절벽길을 따라서 여기로 오던 기억이 난다 꾀 험한 길이였는데 ,,,
오늘은 영기와 호창이 연철이 창수들이 저 길로 용감하게 해수욕장으로 돌아갔다
고등학교 시절 지금은 미국에 간 한일이와 여름방학때 여기에 와서 담치잡아서 솥에 삶아먹던 기억이 ,,,
그때는 집에서 여기까지 솥을 짊어지고 왔지 ,,,,
홍반장도 오랜만에 바닷가로 오니까 즐거운가보다.
오랜만에 여학생들도 옛 추억의 바다속으로 빠져들어가고 ,,,.
회장은 머시 즐거워서 ?????
오늘도 송다방 문을 열고 ,,,,
오늘은 송마담 훨씬 편하다 새끼마담 최양이 전번에 월차내고 결석했다고 오늘은 자기가 다한다
" 최양아 단디해라이 ,,, 돈은 현금으로 꼭 받고 ^^^^ 외상은 안된다캐라. 외상 한푼도 아직 몬 받았다이 ,, ^^ "
이승국 모자섬을 배경으로
주유를 끝내고 자리를 일어나서 다시 다대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에 아쉬운 마음에 모자섬을 본다
솔섬 너머로 다대포항이 보이고 ,,, 멀리 보이는 육상크레인이 있는 곳이 다대포 낫개 대선 조선임
낫개 ,, 70년대까지 낫개에는 집이 두채가 있은 기억이난다. 외국인 별장이 ,,
어느 여름 방학때 지금은 미국간 친구 한일이 그리고 지금 영월 산골에 사는 해동이와 낫개에 캠핑을 온 추억이 생생하다
집에서 쓰던 모기장을 들고 솥도 짊어지고 그 더운 여름에 괴정서 걸어서 저기까지 ,,,
저 낫개 바위근처에서 모기장을 탠트 대신으로 해서 캠핑을 ,,,
그 근처에 해삼이 얼마나 많던지 하루 밤사이에 해삼을 한 동이 (큰 물동이)를 잡아서 밤세워 먹다가 모두들 설사를 얼마나 햿던지 ,,,, 그때 해동이는 해삼잡는 킬러 였다. 그당시 해녀들보다 더 숨이 길은 기억이 ,,,,
화손대 갈림길
약수터 약수 한잔 하고
몰운대 입구에 도착
ㅎㅎㅎㅎㅎ
며누리 사위가 보면 도데체 머시라 할까 용 ???
" 아이고 무신소리 ,,,, 우리는 글마들 땜시 얼마나 스트레스 받는데 ,,,,
글마들이 이렇게 멀쩡한 우리를 할매로 만들어서 ,,,, 우리는 아직도 힘이 팔팔하고 남아 도는디 ,,,, "
" 사위야 며누리야 느그가 우리 마음을 어찌 알겠냐 ??? 마 느그는 그저 말썽 부리지 않고 느그끼리 알콩달콩 살기를 바란단다. 그라고 느그는 느그끼리 우아한 레스토랑에서 티본스틱이나 즐기거라 "
" 우리는 이렇게 친구들과 길가에 퍼질고 앉아서 천삼백원짜리 아이스케키를 먹는 것이 더 좋단다. "
우리는 프리우먼 ㅎㅎㅎㅎㅎㅎㅎ 호호호호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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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1300원 짜리 아이스케키가 얼마나 맜있는지!!!. 지금 손자한테 보여 주면 아이스 케키 사러 다대포 가자고 난리날 낀데. 조금 더 커거든 보여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