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을 노래한 불후의 명곡이 몇곡 있다.
섬마을 선생님도 있지만 원 픽은 흑산도 아가씨다.
섬마을 선생님은 사실 순박한 섬 처녀를 농락하고 떠난 나쁜 육지 선생을 원망하면서도 그리워하는 노래다. 듣다보면 애잔하면서도 성질이 난다.
하지만 흑산도 아가씨는 섬 처녀, 정확히는 섬사람이 주인공이다.
숙명처럼 절해고도의 섬에 사는 섬 사람들.
태생이 유배살이였던 섬 사람들의 애타는 마음을 절절히 표현한 서사가 가슴을 친다.
오늘도 흑산도 예리항에 여객선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여객들을 반기는 것은 이미자의 노래 흑산도 아가씨디. 흑산도의 주제곡이 돼버린 흑산도 아가씨.
“남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
물결은 천번 만번 밀려오는데
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1965년 박춘석이 작곡을 하고 이미자가 노래한 ‘흑산도 아가씨’는 흑산도 아가씨의 절절한 심정을 담고 있지만 실상 노래의 탄생 배경은 아가씨의 사연과는 무관하다.
작사가 정두수는 1965년 봄 어느 날 가수 신카나리아가 운영하던 서울의 다방에서 우연히 동아일보 석간 사회면 톱 기사를 보게 된다.
흑산도 아이들이 거센 풍랑 때문에 뱃길이 끊겨 수학여행을 포기하게 됐다는 소식을 접한 청와대의 육영수 여사가 해군에 부탁했고 해군에서는 함정을 동원해 아이들의 소원인 서울 구경을 시켜줬다는 기사였다.
이 기사를 접한 정두수는 흑산도를 배경으로 가사를 썼고 이 가사에 작곡가 박춘석 이 곡을 붙여 탄생한 뒤 이미자가 부른 노래가 바로 흑산도 아가씨였다. 노래는 순식간에 전국적인 히트곡이 됐다.
그런데 흑산도 아가씨의 모티브가 됐던 서울로 수학여행을 간 아이들이 살던 동네가 바로 흑산도에서도 가장 오지였던 심리 마을이다. 심리는 1200년경 경주 이씨 이태삼이 이주하면서 마을 형성했다고 하는데. 산으로 둘러쌓인 깊은 골짜기 속에 있는 마을이라 지푸미, 기프미라 부르다가 한자화 하면서 깊을 심자 심리가 됐다.
해안도로가 나기 전에는 흑산도 항에서 뱃길로도 1시간, 걸어서도 1시간 반이나 걸렸던 섬속의 오지였다.
한때는 110호 597명까지 살던 큰 마을이었다,
그때 서울 구경을 갔던 아이들은 이미 꼬부랑 노인이 됐거나 이승을 떴다.
이주빈 시인도 심리 초등학교를 다녔다.
그 소년이 시인이 되어 고 때 그 꿈결처럼 아름다웠던 고향을 노래한 시집을 펴냈다.
<내고향 흑산도 푸르다 지쳐 검은 섬>
그라고 보믄 세상 젤 징한 게 인연이여
갈라믄 같이 가든가
저 혼자 가는 건 경우가 아니제
썩을 놈의 영감탱이
뭔 염병한다고 [흑산도 아가씨]는
그라고 처불렀는지 몰라
너나 나나 다 귀양살이하는 거여
이 세상 귀양 끝나는 날이 죽는 날이제
얼마나 오져
죽는 날이 이별 끝나는 날인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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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골래 도화」중에서
첫댓글 그 좋아 하던 섬 한번 못 가보고 죽어도 되는 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