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 驛馬 』(작사 지명길, 작곡 강승식)는 1986년 「박상규」가
발표한 곡입니다. '역마살(驛馬煞)'이란 말이 있습니다.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는 팔자를
말하지요. '역마살(驛馬煞)'은 '도화살(桃花煞)'과 더불어 거부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지요. 그래서 역마살(驛馬煞) 낀 사람들은
여행(旅行), 낚시, 골프, 사냥 이런 것들을 좋아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박상규」의 『역마』 는 가슴에 와 닿습니다.
가사가 그렇네요 "아들의 역마살(驛馬煞) 을 걱정하며 한숨 짓던
어머니도 가시고 그 한숨 거리였던 아들도 세상을 떴네요.."
「박상규」(1942~2003)는 인천 출신으로 연세대 국문과를 중퇴
하고, 1963년부터 KBS 방송국에서 전속 가수로 데뷔하여 활동
하였습니다. 미 8군 쇼 무대 등에서 갈고 닦은 노래 솜씨는 곧바로
동료 선후배들의 인정을 받았으나, 대중적으론 인기를 얻지 못해
10 여 년 간 무명의 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후 '가수 장 우', '김상국' 등과 "송아지 코메츠"로 활동하다가,
1970년엔 가수 '김 준' 과 함께 "코코 브라더스" 로 활동하고,
1974년에는 '김 준', '장 우', '차도균'과 「Four Dynamics」를 결성
하여 활동했습니다. 「박상규」는 이후 "친구야 친구", "둘 이서" 등의
노래를 잇달아 히트 시켰고, 1980년대 이후엔 텔레비전과 라디오
프로그램의 단골 사회자로 활약했습니다.
'게스트' 들을 편안하게 해주면서도 재치와 유머로 웃음을 자아내는
그의 진행 솜씨는 발군(拔群)이어서, 그를 영입하려는 방송사들의
경쟁이 치열했다고 하며, 특히 MBC가 가족 시청자를 겨냥해 일요일
낮에 방영했던 오락 게임 프로 그램 〈일요 큰 잔치〉는 이 프로그램이
만들어진 1987년부터 10여 년간 혼자서 진행했는데, 당시만 해도
한 사람이 방송 프로그램을 그렇게 오랫동안 진행한다는 것은 경이적
(驚異的)인 일이었습니다.
이후 「박상규」는 자신의 인기가 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실감(實感)
하면서도 라디오 방송 진행과 해외 교포 위문 공연 등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2000년엔 예기치 않게 '뇌졸증'으로 쓰러지는 불운
(不運)을 겪어야 했으며, 결국 그렇게 소원하던 무대에 다시 서보지
못한 채, 2003년 4월1일 향년 7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인천 아이러브색소폰 클럽 대표 윤양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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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따라 떠난 걸음 돌고 돌아
어느새 반 평생 세월은 흘러
차디찬 술잔 위에 스치는 지난날도
한자리 꿈 일텐데 차마 못 잊어
미워도 했소 원망도 했소
떠도는 가슴앓이를
아아 아아 아아아아아
이것이 역마 라고 한숨을 짓던 어머니
물결 따라 흔들리며 돌아 돌아
지금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휘영청 둥근 달에 어리는 고운 님도
어차피 남남인데 정은 왜 들어
미워도 했소 원망도 했소
떠도는 가슴앓이를
아아 아아 아아아아아
이것이 역마 라고 한숨을 짓던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