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파 시인 정사용의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눈물의 왕인 자신의 자서전적인 경험을 비애 가득하게 적어내고 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짐이 곧 국가”라고 외치던 그런 절대 군주가 아니라 눈물 많고 겁많은 유약한 아들로 태어난 그래서 울음이 습관이 되어버린 힘 없고 눈물 많은 한 무력한 왕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그날 밤도 이렇게 달 있는 밤인데요, 으스름달이 무리 서고 뒷동산에 부엉이 울음 울던 밤인데요, 어머니께서는 구슬픈 옛이야기를 하시다가요, 일 없이 한숨을 길게 쉬시며 웃으시는 듯한 얼굴을 숙이시더이다. 왕은 노상 버릇인 눈물이 나와서 그만 끝까지 섧게 울어 버렸소이다. 울음의 뜻은 도무지 모르면서도요.
왕이란 것이, 다 좋은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하나같이 왕이 되려고 한다. 영주들이나 족장들이 공동의 힘과 권력을 나누어서 집단 지도체제를 유지하던 봉건 사회를 벗어나 왕이라는 한 사람의 손에 절대 권력을 쥐여주면서 소위 절대 왕정, 절대 군주제가 시작되었다. 유럽은 보통 16세기부터 18세기를 절대 왕정 시대라고 하지만 이스라엘에서 첫 왕이 등장한 것은, 기원전 11세기 초반이었다. 하루는 장로들이 사무엘을 찾아와서 자기들도 사사가 아닌 왕이 필요하다고 왕을 요구한 것이다.
(삼상 8:5)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문제는 사무엘의 자식들이 사무엘처럼 바르고 정직하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서 무뢰하고 이기적인 자식들이었다. 그래서 사무엘도 딱히 장로들의 요구를 강하게 거절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때 사무엘이 왕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스라엘의 장로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삼상 8:11) 이르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는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어거하게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삼상 8:12) 그가 또 너희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며 (삼상 8:13) 그가 또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로 삼을 것이며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던 나라가 인간 왕을 세우면서 이스라엘은 왕정 시대에 돌입하게 되었다. 그러나 왕정의 위험과 부담은 그 왕이란 자가 성군이면 다행이지만 폭군이라면 백성이 고역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권력을 사유화하고 그것으로 자기의 욕심을 채우면 눈물의 왕이 아니라 눈물의 백성들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왕이 울면 백성이 웃고 왕이 웃으면 백성은 눈물을 흘린다.
우리에겐 진정한 눈물의 왕이 있다. 잃어버린 세계를 구원하시기 위해 눈물로 호소하시는 눈물의 왕,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진정한 눈물의 왕이시다.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라고 외치던 자들은 세상 왕을 모시고 살겠지만, 언젠가 우리의 눈물의 왕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더 이상 눈물이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왕도 웃고 나도 웃는 영원한 세상을 살날이 올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고 산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이 왕이십니다. 저의 왕이요, 저희 가정의 임금이십니다. 오직 주님만을 우리 마음의 유일한 왕 삼게 해 주시고 오늘도 그 왕의 신민이 되어서 열심히 살아가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