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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겨울이 지나고 꽃피는 봄이 왔다. 1년 이상을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우리네 마음을 얼어 붙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계절은 어김없이 바뀌었다. 봄 중에서도 3월은 겨우내 움추린 몸과 마음이 일어나는 시기인지라 모든 것이 더 화려하고 어여쁘기만 하다. 같은 봄이고 봄꽃들이라도 3월의 봄과 봄꽃들은 다른 달의 그것들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봄의 꽃들인 매화, 산수유, 벚꽃, 개나리 그리고 아직은 채 아쉬워 떠나지 못한 동백꽃까지 한번에 만날 수 있는 곳, 남도의 3월을 지난주 모습까지 묶어서 소개하고자 한다.
온난화 때문인지 꽃들의 피는 시기가 지난 100년 관측 사상 가장 빠르다는 뉴스가 있다. 그러고 보니 아직 3월이 다 가지 않았는데도 온 사방이 꽃천지다. 한편으로 자꾸만 환경이 훼손되는 것 같아 안타깝지만 꽃들을 보는 마음은 내내 즐겁다.
[하동 화개읍에서 만난 봄색]
광양, 하동, 구례의 3월을 보고 싶으면 나는 항상 자동차를 타고 바로 해당 지역으로 갔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면서 좀 더 깊은 지리산 줄기의 3월을 보고 싶었다. 길의 날머리를 하동으로 정했고, 걷는 내내 높은 곳에 위치한 풍경들과 길가의 봄을 마음껏 품었다. 주말 이틀 계속해서 비가 내리고 날이 흐려서 비록 청명한 하늘을 보지는 못했지만 더 진하고 운치있는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하동 정금루에서 내려다 본 화개읍의 비오는 날 만난 봄색]
하동 십리벚꽃길을 방문하는 분들에게 내가 권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첫번째는 가능한 1박 이상의 일정을 계획하기를 권한다. 그리고 두번째는 하동 녹차밭들이 모여 있는 정금루까지의 길이나 근방의 마을 길들을 걸어보기를 권한다. 자동차 문화에 익숙한 우리네 여행의 다른 한축인 걷기로 조금 더 높은 지대에 올라 십리벚꽃길을 내려다 보는 모습은 가히 일품이다.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광양 매화마을에서 만난 봄색]
가장 먼저 들려 오는 봄꽃은 사실 겨울과 봄의 두계절에 걸쳐 피고 지는 동백꽃이라고 할 수 있다. 동백꽃은 1~2월에 제주도나 남해안 일부 섬이나 해변을 중심으로 피기 때문에 봄꽃이라 부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래서 봄꽃의 시작은 전라남도 광양을 중심으로 하는 매화꽃이라고 할 수 있다.
[구례 산수유 마을에서 만난 봄색, 뒷쪽으로 지리산이 보인다. 산수유가 필때 지리산에는 눈이 가득 쌓여 있을때도 있다]
산수유는 산속에 많이 있는 생강나무와 꽃의 색감이 비슷하여 사람들이 구별을 잘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여러 곳의 자료를 검색했으나 가장 알기 쉽게 잘 정리해 놓은 자료의 일부를 발췌하였다. 꽃눈이나 잎사귀 등의 차이도 있지만, 꽃이 먼저 피기 때문에 별로 의미가 없고 핀 꽃의 모양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가장 쉽다.
산수유 꽃은 3~4월 잎보다 먼저 개화하고 노란색이며 지름이 4~5mm이고,
우상모양꽃차례에 20~30개의 꽃이 달린다. 총포조각은 4개이고 노란색이며 길이
6~8mm로, 타원형 예두이고, 꽃대 길이는 6~10mm이며, 꽃받침조각은 4개로
꽃받침통에 털이 있고, 꽃잎은 피침상 삼각형이며 길이 2mm이다.
생강나무는 자생, 산수유는 심은 것이 많기 때문에 산에서 만나는 것은 생강나무,
공원 등 사람이 가꾼 곳에서 만나는 나무는 산수유라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 개의 꽃이 모여서 피는 것은 마찬가지이나 산수유는 꽃대가 길고 꽃잎과 꽃받침이
합쳐 진 화피(花被)가 4장이며 생강나무는 꽃대가 짧고 꽃잎도 6장이다.
그래서 산수유는 작은 꽃 하나 하나가 좀 여유 있는 공간을 가지며
생강나무는 작은 공처럼 모여서 여기저기에 달리는 느낌이다.
하나 더 조언을 드린다면 봄날 남도에 가면 반드시 마을 시장을 둘러보기를 권한다. 아직도 남도에는 5일장을 쇠는 곳이 많다. 고유의 우리 색들과 모습들, 그리고 시골에 거하시는 분들의 순박한 웃음을 보고 잠시나마 마음을 나눌 수도 있다. 시간이 되면 시장 어귀 허름한 주점에서 막걸리 한잔 하는 것도 가끔은 즐길만한 여행의 맛이다.
[악양 최참판댁 입구에서 만난 봄색]
매화의 광양, 하동의 벚꽃, 구례의 산수유, 벚꽃은 거리상으로 일직선상이고 몇십키로 안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그 꽃들은 피는 시기와 절정의 시기가 겹치는 경우가 많아 중간 시기를 택하면 적어도 1석 3조의 행운이 있을 수 있다. 덤으로 운이 좋으면 구례 화엄사 흑매화도 볼 수 있다. 물론 절정의 시기가 약간씩 비켜가는 관계로 일부의 모습은 조금 서운 할 수 있지만 충분히 감당할 만하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흑매화의 봄색]
우리나라 산수유는 생각보다 많이 퍼져 있고, 위도에 상관없이 고루 자라고 있다. 산수유 꽃으로 가장 유명한 곳은 전라남도 구례이고, 서울에서 가까운 이천 도립 산수유 마을에도 상당히 넓은 산수유 군락이 있다. 산수유는 봄과 가을이 다 아름다운 꽃이다. 봄에는 노란 꽃이 아름답고, 가을에는 붉은 산수유 열매가 장관을 이룬다. 봄에 피는 꽃들은 아름답고 즐거운 기분을 선사하는 것 외에도 사람들에게 실제적인 유익함을 가져다 준다는 공통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매화는 매실열매를 남겨 주어 맛난 음식, 술 그리고 한약의 재료로 쓰임새가 많고, 산수유도 그 열매가 차의 재료나, 술의 재료 등 많은 쓰임새를 가지고 있다.
2주전(3월 초) 이천 산수유 마을의 풍경이다. 그날도 약간 비가 내려서 꽃잎들이 진한 노란색을 한껏 과시하고 있었다. 아마도 지난주 또는 금주가 절정일 것으로 생각한다.
아래 2개의 사진은 이천 산수유 마을의 거의 비슷한 위치에서 담은 봄과 가을의 풍경이다. 가을 산수유 열매가 붉게 물들때 한번 다녀오기를 강권하고 싶다. 가슴속 뭔가 뭉쿨한 기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사랑의 열기가 열매로 승화한 것처럼 뜨거운 기운을 느낄 수 있고, 잘만하면 인생사진을 건질 수도 있다.
가을 산수유 열매가 익었을때의 모습이다.
이 사진은 2주전 올해 봄날의 같은 위치에서 담은 모습이다. 그날 아직 산수유 꽃들이 만개가 되지 않았지만 충분히 가을과 봄을 대비해서 볼 수 있다.
지난 가을날 담은 산수유 열매가 붉게 절정으로 물든 날의 한 풍경이다. 봄날의 노란 산수유 꽃도 아름다웠지만, 가을 이 붉은 열매들의 모습에는 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나는 운이 참 좋았다. 그날 이 곳 산수유 나무들을 관리하시는 분들이 산수유 열매를 추수하고 있었다. 하루만 늦었어도 아니 반나절만 늦었어도 이 멋진 풍경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가을날 산수유 열매를 보러 갈때는 추수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고려하여 추수전에 다녀와야 한다. 늦으면 앙상한 나뭇가지들에 따고 남은 열매 몇개만을 보고 오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산수유 나무 아래에 있는 그물 망들은 산수유 열매를 추수하기 위해 바닥에 깔아놓은 것들이다. 막대기로 산수유 나무가지들을 타작하듯 치면 열매들이 '투두둑'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진다. 일부 큰 가지에 매달려 있어 막대기로 쳐도 잘 떨어지지 않는 것들은 전동기로 흔들어 떨어뜨린다.
이천 산수유 마을은 넓이가 구례에 비하여 작지만 오래된 마을답게 아기자기한 돌담도 있고 산책길이 열려 있어 나름 짧은 시간을 수도권에서는 상대적으로 좋은 접근 환경 하에서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연인과 가족과 좋은 친구들과 산책하면서 그 동안 하지 못했던 '고마워!'라는 말, '사랑해!'라는 말도 자연스럽게 하는 기회를 만들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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