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성과 일반성의 차이] ㅡ kjm / 2021.9.21
1. 보편은 "전체"를 가리키고, 일반은 "부분의 합"을 가리킵니다.
2. 헌법을 보편이라고 본다면, 법률은 부분의 합이 되겠죠.
3. 앞서 "부분의 합은 전체일까?"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는데, 혹시 기억하시는 분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4. 가령, 코끼리를 알려고 하는데, 장님 여럿이 모여서 '코끼리 전체'를 그려내지 못한다고 현대과학철학은 말합니다.
5. 따라서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죠.
6. 수학적 지식마저도 믿지 못한다고 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근대 합리론을 창시한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데카르트가 그입니다.
7. 그는 그의 <성찰>에서, '전능한 악마의 가설'을 제시합니다. '전능한 악마 malin génie'가 있어서, 우리의 감각과 경험을 속이므로 수학적 지식마저도 참된 지식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8. 그러함에도,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확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요즘 '확증편향'이라는 말로도 회자되곤 하죠.
9. 앞서 또 "all"과 "some"에 관해서도 잠깐 언급했습니다만, some은 '특수', all은 '일반'을 뜻합니다. 그리고 "all"은 '부분의 합', 즉 'some들의 합'입니다.
10. 그런데, 논리(연역논리)에서는 "all"이 '전체'를 가리킵니다. 이것이 논리학과 현대철학의 차이라면 차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연역논리'와 '귀납철학'으로 제 나름 정리해서 이해하고 있습니다.
11. 자기 한계를 미리 설정하지 않으면, 항상 경거망동하고 오만하게 돼 있습니다. 지극히 유념해야 할 일입니다.
[불온한 정의]
2019.9.21 / kjm
부분적으로 아는 것으로 세상 전체를 단정적으로 재단하려 하는 모습은 우스꽝스럽기까지 합니다. 더우기 부분적으로 아는 데 그쳐 더 나아가지 않고 오만한 결정을 함부로 내리는 것도 편협함의 극치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은 어쩌면 장님이 코끼리를 더듬어 만져 알게 되는 아주 불완전한 지식이며, 이런 불완전한 앎을 토대로 하여 섣불리 미루어 짐작코저 하는 생각이나 행위도 조잡의 극치라 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개개의 '사실들'에 대한 '암기'일 뿐, 전체적인 '상황들'에 대한 '파악'은 아닙니다. 전체적인 줄거리와 맥락을 짚어내는 것은 전혀 암기로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생각을 보다 넓고 깊게 하는 반복된 훈련으로서만 생겨나는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안다는 것은, 어떤 사실에 대한 부분적 지식이나 믿음을 확신으로 삼지 않으면서도 전체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점차로' 확신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이는 '과학'을 가리켜 '방법'이라고도 정의를 내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조국 장관과 관련한 검찰의 수사 내용들을 시간 단위로 혹은 분 단위로 매일 매일 하나씩 둘씩 흘려 내보냅니다. 도대체 검찰은 어떤 의도일까요? 또 그것들을 받아 적어 옮기는 기자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요?
한 마디로 우리 국민들을 '졸'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앞뒤 아무런 맥락도 없는 이야기들을 자꾸 반복적으로 유출해서 지레짐작케 하고 선입견을 키워나가겠다는 불순한 의도로 밖에 달리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저급하고 저열한 수사 방식과 뉴스 띄우기는 이젠 그만 좀 하면 안 될까요? 구태의연하게 악습을 계속해서 답습해야만 할까요?
그래서 계속해서 검찰 개혁과 언론 개혁을 사람들이 부르짖는 겁니다.
어제 임은정 검사는 조국 장관 주변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가리켜 "선택적 정의"라는 표현을 내 놓았습니다.
'정의'가 일부(검찰) 누군가에 의해서 선택되어지는 겁니까? 아니죠! 즉, 다시말해서, 지금 검찰이 내세우는 정의는 진짜 정의가 아니라 '가짜 정의'라는 겁니다. 필요에 의해서 자기 입맛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정의가 될 수는 없죠. 아무래도 검찰이 정치적으로도 많이 물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정의란, 부분적 사실들을 나열하고 '자기 편의적으로' 꿰어맞추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들의 맥락들을 상황 전체로서 보아 보편타당하고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수시로 칼을 갖고 놀다 보니 마치 자기가 정의의 칼을 든 정의의 사도쯤 되는 줄 아나 봅니다. 실상은, 광란의 칼춤을 추는데 말입니다.
제가 장담 하나 하는데요...
만일 조국 장관이 자리에서 내려오는 일이 생긴다면, 윤석열 총장도 무사하지 못 합니다. 그리고 검찰 전체에도 혹독한 시련의 겨울이 찾아들 겁니다.
갑자기 소주 한 잔 기울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술 생각이 난다는 것은 사람이 그립다는 것 아닐까요? 사람다운 사람을 그리워한다는 말이지요.
남자가 매일 밖에 나가 술을 찾아 헤매이는 것도 결국은 와이프와 집식구들에게서 사람 냄새를 맡지 못하기 때문 아닌가 여겨집니다. 남녀를 바꾸어도 마찬가지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외로운 존재입니다. 그 외로움을 달래줄 마땅한 게 없으면 술을 찾고 친구(사람)을 찾는 게지요.
요즘 말해지는 '혼술'은 그래서 별로 좋아보이지 않습니다.
조만간 그리운 사람을 찾아 함께 소주 한 잔 해야 겠습니다.^^
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