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글에서 잠깐 언급했던 '인류의 제사'에 대해서 정리해 봅니다.
우리는 제사의 본 뜻을 정의하기는 어려워도 그 절차와 행위는 깊히 체화되어 있다.
그러면 제사의 의미는 무엇일까?
祭, 祭祀 는 '하늘(신, 태양) 한테 음식을 바치는 의식'이다.
그런데 정말~ 궁금한 것은 왜 '축제'라는 단어에 '제사 祭'자가 들어갈까? (祝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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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상의 모든 인류는 태초 이래로 하늘에 제사 지내는 문화가 있었다.(天祭)
제정일치 시대에 제사장은 왕이었다.
동아시아 문화권의 제사(제천)의식은 유럽에서는 희생제, 카니발 등으로 불렸다.
초기에는 (잉카문명 뿐만 아니라) 모두가 인신공양을 하다가 중간에 동물로 대체되어 동물의 피를 뿌리게 된다.(구약에도 자세히 나오죠?)
당연히 맨 정신으로는 어려우니까 약초나 술에 의해 몽환적인 상태에서 인신공양 의식을 치르고 난 후 이어서 광란의 파티가 벌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카니발의 유래다.
이런 유럽의 카니발 전통은 그리스 로마 신화, 북유럽의 오딘, 오디세이 신화 시대 때부터 이어진다.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점차 순화되고 기독교가 유럽에 들어오면서 이런 전통이 기독교와 융화되지만 카니발의 화려함 속에 썸뜩하고 그로테스크한 가면이 많은 이유인 것이다.
우리가 '축제'로 알고 있는 카니발은 원래 '인육을 먹는다'는 뜻이다. (자기 생각의 레벨을 넘어가면 안 믿는 사람들 있죠? 어떤 유형의 사람들일까?ㅎ)




카니발이 제사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은 그렇고.... 그럼 축제는 왜 '제사 祭'자일까?
아시아에서도 당연히 제사 의식을 마치고 고기를 비롯한 음식과 술을 나눠먹는 '잔치'가 이어졌다. 그런데 그것 만으로는 설명이 약한 것 같다.
혹시, 축제라는 단어가 나중에 카니발의 번역어로 만들어진 단어는 아닐까?
여러분의 고견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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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인도에서도 고릿적부터 동물을 잡아서 제사 올리는 의식에 기반을 둔 바라문교가 깊숙히 자리잡고 있었다. (현 힌두교의 뿌리)
기존 바라문교의 그런 제사 의식이나 기타 형식적인 전통에 반기를 들고 나온 선각자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제일 큰 세력이 불교였던 것이다.(그 다음이 자이나교)
문명이 발달하게 되면서 BC 5세기 경이 되면 세계 여기 저기에서 석가모니 뿐만 아니라 소크라테스, 공자 등이 등장하고 나중에 예수, 마호메트 등 나와 기존의 인문학적 판을 한번 갈아 엎게 된다.
사실 석가, 예수, 마호메트는 모두 혁명가들이다!
인도에서도 부처의 10대 제자 중에 2명이 기존 바라문교 사람들한테 순교를 당할 정도로 바라문교 기득권들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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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제사 문화는 동아시아 유교 문화권,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하늘 대신 조상에게 음식을 올리는 제사로 발전하게 된다.
그렇다면 형식을 중요시하는 유교에서 제사는 어느 날, 어느 시에 지내야 할까?
일자: 돌아가신 당일 날
시간: 돌아가신 날이 시작되는 첫 타임 (돌아가신 날 제일 먼저 그 조상에게 음식을 올린다는 의미다.)
요즘으로 말하면 밤 12시가 되겠지만.....
서양식 시계가 들어오기 전에는 子時 (11-1시) 즉 11시에 새 날이 시작되기 때문에 11시에 제사를 지냈던 것이다.
그런데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통금, 출근시간)로 바뀌면서 여건 상 편리하게 전날 저녁 때 지내게 되었다.
만약 옛 것을 고수하는 융통성 없는 조상님이 제사를 받으러 왔다면 "엉? 전날 끝내버렸다고?" 화를 내면서 굶고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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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이전의 전통은?)
원래 고려시대의 전통은 남녀 차별 없이 아들딸 균분상속이 되었고 제사도 자녀들이 돌아가면서 지냈다고 한다. (윤회 봉사) <奉祀-제사를 받든다>
물론 그 시절에도 간혹 부모가 특별히 이쁜 자식한테 많이 상속해 주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 때는 그 자식이 단독으로 제사를 모셨다. (분할 봉사)
딸만 두었을 때는 외손자가 제사를 지냈다. (외손 봉사)
그러다가 유교의 장자 상속제가 정착되기 시작한 조선 중기부터 장자 제사가 정착하게 된다.
이렇게 문화라는 것은 시대에 따라 바뀌게 되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전통이라고 알고 있는 유교 문화는 5천년 역사 중 조선 중기부터 근대 까지의 전통이라고 보면 된다.
지금 우리가 옛 것을 그리워하듯이 조선 초기에도 고려의 전통을 고집하는 기성 세대가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과 정서 때문에 조선 중기에나 이르러 우리가 알고 있는 유교 문화가 비로소 자리잡게 된다.
재밌는 것은 근대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종교로도 막지 못했던 제사 문화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차츰 자연스럽게 희석되어 간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간의 변화, 시대의 변화라는 것은 불가항력적인가 보다!
그래서 '세상은 변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다'고 하는가 보다. (易, 無常)
지금 우리의 전통 중에 500년전 몽고 전통이 일부 녹아 있듯이 500년 후 쯤엔 미국 문화가 녹아 있지 말란 법이 있겠는가?
우리가 '그것이 몽고에서 들어온 풍습이었어?' 라고 놀라듯이 500년후에 먼 후손들이 역사 시간에 '엉? 할로윈이 미국꺼였어?' 라고 놀랄지도 모른다.ㅎㅎ
(미국은 현재의 기성세대들도 좋아하지 않는가?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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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절에서도 제사를 지낼까?
절에는 제사 의식이 없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바라문교에서 지내던 제사 의식에 반기를 들고 나온 사람들이 제사를 지낼리가 없다.
무슨 소리야? 49제, 천도제 등이 있잖아!
그것은 49제, 천도제가 아니라 49재, 천도재로서 祭가 아니라 齋다.
재(齋)는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부정한 일을 멀리할 재'字다.
'목욕 재계' 할 때의 재字다.
재(齋)의 어원은 인도 범어 upavasatha 로, 왕이나 지역 유지가 평소에 탁발(걸식)하는 비구(출가 수행자)들을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하는 것이다.
조선시대를 지나오면서 일반인들이 사찰의 齋와 유교의 祭의 차이에 구태여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절에서 유교의 기제사를 지내주기도 한다.
그것은 요즘 잔치를 집에서 치르지 않고 밖에서 치르듯이 제사도 신도들의 부탁을 받고 절에서 치러주는 것이라고 한다. (위탁 봉사)
그럴 때는 불교식 일정에 맞춰 돌아가신 날 오전 11시에 시작하는 예불(미사, 예배)을 마치고 이어서 지낸다.
나무아멘샬라~
첫댓글 다른 나라는 돌아가신 분에 대한 儀式은 장례식을 끝으로 완벽하게 종결된다.
그런데 문득 우리의 제사 문화는 형식과 절차를 떠나서 지속되면 좋을 것도 같다.
왜냐면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인들, 나라를 지키다가 돌아가신 호국영령, 사회적으로 커다란 업적을 남긴 분은 국가나 사회에서 기념해주지만.....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의 부모나 우리는 누가 기념해주지?
그 집안 자손들이나마 생전에 기억해 주면 좋지 않을까? ㅎ
요즘 '忌' 祭祀는 자손들이 모여서 자신들을 있게 해준 (조)부모를 기억하는 '紀' 祭祀 의 의미가 더 큰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