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처: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 원문보기 글쓴이: 쿰란
[역경의 열매] 이종근 (13~16) 전도 시작한 후 견딜 수 없었던 극한의 통증 사라져
* [역경의 열매] 이종근 (13) 친구부터 거래처까지… 아는 사람 모두 전도주일 초청
* [역경의 열매] 이종근 (14) 이웃 교회 성도인 교장과 소통, 학교 전도 물꼬
* [역경의 열매] 이종근 (15) 전도 회의 들 무렵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깨우침
* [역경의 열매] 이종근 (16) 전도 시작한 후 견딜 수 없었던 극한의 통증 사라져
<약력>△1944년생 △73년 천금선교회 창립 △86년 대구서문교회 전도주일 1026명 전도왕 △2014년 대구서문교회 원로장로 △국내외 5000여교회 전도부흥성회 인도 △저서 ‘3만명 전도의 비밀’ ‘부흥할 수 밖에 없는 전도전략’
정리=전병선 선임기자 junbs@kmib.co.kr
[역경의 열매] 이종근 (13) 친구부터 거래처까지… 아는 사람 모두 전도주일 초청
동창, 군 동기, 동네 슈퍼, 이발소…
전도 마음 먹으니 곳곳이 대상자
안면 있는 사람이면 어디든 찾아가
불교 신자 손님도 끝내 신앙의 길
이종근 장로가 2005년쯤 대구의 천금보석 앞에서 노방전도를 하고 있다.
나는 가장 먼저 친구들과 동창들을 전도하기 시작했다. 전도하려고 마음을 먹고 하나하나 찾아보니 친구 모임도 꽤 많았다.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부터 초·중·고교, 대학, 대학원 동기들까지 모임이 이어졌다. 군 생활을 함께했던 동기 모임도 있었고 와이즈맨 클럽과 JC, 로터리클럽 모임도 있었다. 모임에 가면 사람들은 나를 목사라고 불렀다. 만나기만 하면 예수님을 믿으라고 권했기에 붙여진 별명이었다.
두 번째로는 나와 거래하던 모든 거래처 직원들을 전도했다. 그들에게 초청장을 주며 내용을 설명했다. “직원들 모두 다 데리고 나오십시오. 안 오면 앞으로 절대로 거래하지 않을 겁니다.” 물건을 그리 많이 팔아주지도 않으면서 너무 큰소리를 치니 거래처 사람들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도 별다른 말 없이 “알겠습니다”라고 약속을 해줬다.
세 번째로는 가게에 오시던 손님들을 전도했다. 손님들은 그동안 가게에서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았기 때문인지 대체로 반응이 좋았다. 손님들 가운데 절에 열심히 다니는 분이 한 분 있었다. 교회에 한번 나오시라고 권하자 그분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종손이라 제사도 모셔야 하고 절에도 다니기 때문에 교회에 갈 수 없습니다.”
나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절에 다니는 사람은 왜 교회에 못 옵니까. 나는 교회에 열심히 나가는 사람이지만 절에도 많이 가봤습니다.” 나는 생각나는 대로 여러 사찰 이름을 줄줄이 말했다. “부산 동래 범어사도 가봤고, 양산 통도사, 경주 불국사, 김천 직지사, 영천 은해사, 대구 동화사, 속리산 법주사, 공주 동학사, 양양 낙산사, 여주 신륵사, 강화 전등사, 서울 조계사와 봉은사도 가봤습니다.” 그러면서 물었다. “나는 절에 여러 번 가봤는데 절에 다니시는 분은 교회에 한 번 오면 큰일이라도 납니까.”
그러자 그분이 이렇게 말했다. “절에 한 번 가봤다고 다 부처님을 믿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나는 바로 대답했다. “맞습니다. 내가 절에 한 번 가봤다고 부처님을 믿는 것이 아닌 것처럼 손님도 교회 한 번 온다고 해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절에 간다 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하시며 축복해 주십니다. 그런데 절에 다니는 분이 교회에 한 번 나오면 부처님이 속이 상해 잡아먹기라도 합니까.”
그분은 결국 교회에 나왔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그분에게 “교회에 와보시니 어떻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오늘 까딱하면 넘어갈 뻔했다”며 웃었다. 이후에도 못 이기는 척 교회를 드나들던 손님이 지금은 신앙생활을 잘 이어가고 계신다.
네 번째로는 조금이라도 안면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찾아가 전도했다. 예전에 세 들어 살던 집 주인들도 모두 찾아갔다. 사글세부터 전세까지 여러 곳을 떠돌며 살았는데 그렇게 이사 다닌 집만 해도 13곳이나 됐다. 또 취사용 프로판가스와 석유를 배달해 주던 가게들도 방문했다. 옷을 맡기던 세탁소도 들러 전도했고, 아이들이 과자를 사 먹던 슈퍼도 찾아가 인사했다. 아내가 다니던 미용실도 만나러 갔고 내가 이용하던 이발소도 찾아가 종업원들까지 모두 전도했다.
***[역경의 열매] 이종근 (14) 이웃 교회 성도인 교장과 소통, 학교 전도 물꼬
대구 외곽 산업체 부설 여고서
수업시간 일부 활용해 말씀 전해
교사들에 깍듯한 미소 작전 펴자
반대 목소리 잦아들고 오히려 도와
이종근 장로가 1987년 전도한 산업체 부설 여자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
개인적으로 전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회사나 공장, 학교 등 다수가 모이는 곳을 정해 꾸준히 전도하는 일도 필요하다. 대구 외곽의 3공단 지역에는 산업체 부설 여자고등학교가 있다. 전교생은 1500명가량이다. 마침 그 학교 교장 선생님이 이웃 교회의 집사였다. 그래서 교장 선생님에게 전도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다. 교장 선생님은 수업 시간을 배정하는 교사도 집사라고 소개해줬다.
그 선생님은 다른 수업 시간에는 곤란하니 결강 시간이나 자신의 영어 수업 시간을 2주 동안 활용하라고 했다. 시간표를 보니 영어 수업 시간이 가장 많았다. 임마누엘과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신이 나서 영어 수업 시간마다 학생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했다. 학생들은 무척 좋아하며 예수를 영접했다.
사탄의 방해 공작도 만만치 않았다. 어느 날 교장 선생님이 나를 불러 “교내 반발이 심하니 이제 그만하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닙니다. 며칠만 참아주십시오. 제가 해결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이미 죽기로 작정한 몸이었다.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저 주님께 기도하고 모든 것을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슈퍼마켓에서 콜라와 사이다 등 음료수를 여러 병 사서 ‘미소 작전’을 펴기로 했다. 교무실 입구에서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교사들에게 90도로 인사하며 “수고 많으셨습니다. 힘드시지요”라고 위로하며 음료수를 따라 드렸다.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을 수 있을까. 친절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뼈만 남은 사람이 굽실대는 모습이 측은하게 느껴졌을까. 그보다 성령님이 그들의 완악한 마음을 녹였으리라. 이후 반대하던 교사들이 점차 협조하기 시작했다. 내가 교실 밖에서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떤 때는 수업하던 교사가 “집사님, 들어오셔서 예수님 전하시죠”라고 했다. 할렐루야!
누가 물었다. 전도할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이 무엇이냐고. 가장 힘든 것은 첫 번째 사람을 전도하는 일이다. 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그날 전도의 결실이 결정된다.
그런 경우가 많다. 전도하려고 첫 번째 사람에게 다가가 보니 얼굴이 너무 험상궂어 보여서 용기가 꺾인다. ‘말을 잘못하다 괜히 맞기라도 하면 나만 손해지. 이 사람 말고 다음 사람에게 하자’며 그냥 넘어간다. 그런데 두 번째 사람도 쉽지 않다. 술에 취한 것처럼 보여서 ‘술 취한 사람에게 말 걸면 피곤할 뿐이야’ 하며 지나친다. 그렇게 하다 보면 결국 아무에게도 전도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오게 된다.
전도에는 왕도가 따로 없다. 용기가 나지 않을 때는 눈을 뜨고 잠시 기도한다. “주여, 믿습니다. 돌격!” 그리고 첫 번째 만나는 사람에게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일단 시작하면 그다음부터는 일사불란하게 진행된다.
“교회에 한 번만 와보라”는 권유는 효과가 크다. 한 번만 와달라고 하면 “예수 안 믿어도 되느냐”고 묻는 이들이 많다. “예수 믿으면 주일과 수요일, 금요일은 물론 새벽에도 교회에 가야 하니 도무지 시간이 없어서 못 믿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단 발을 들이면 그다음부터는 성령님이 책임져 주신다.
***[역경의 열매] 이종근 (15) 전도 회의 들 무렵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깨우침
성경 속 전도를 파종에 비유하듯
씨만 뿌렸는데 “새 생명 얻었으니
생명의 은인” “나도 이웃 전도할 것”
많은 이들 신앙 갖고 감사의 간증
이종근(오른쪽) 장로와 동역자들이 1984년쯤 전남 홍도와 흑산도에서 전도한 뒤 선상에서 함께 찍은 사진.
노방전도에 대한 회의가 밀려올 때도 있었다. 내가 1000명이든 2000명이든 죽도록 전도한다 해도 그들이 단지 한 번 왔다가 결신하지 않고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린다면 과연 이런 전도 방식이 옳은 것일까.
그러던 어느 날 새벽기도를 마친 뒤 성경을 보는데 사도행전 13장 48절 말씀이 눈에 확 들어왔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그렇다. 사람들을 데려와 말씀을 듣게 하면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믿게 된다. 믿고 안 믿고는 하나님이 결정하실 일이다. 우리는 순종하며 전도만 하면 된다. 성경은 ‘전도는 씨를 뿌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내 사무실에서는 지금도 전도지를 무료로 나누어 주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그 전도지를 가지고 많은 전도자가 노방전도를 열심히 하고 있다.
씨만 뿌렸는데도 열매 맺는 간증은 너무 많다. 대구 동산기독병원(현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에 간호사로 근무하시던 김효순씨가 있었다. 이분은 기독교 병원에서 근무했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길거리에서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됐다며 인사를 하러 왔다. 정작 예수님을 믿고 보니 너무 좋아 감사의 뜻이라며 선물을 한아름 사서 찾아온 것이다.
K여고 교사로 근무하는 박영자씨는 결혼할 때 예수님을 믿는 가정으로 시집을 갔다. 시아버님은 장로이고 시어머님은 권사였지만 자기는 교회를 모르고 자랐기 때문에 시부모님이 아무리 권유해도 교회에 다니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종교는 자유이기 때문에 마음에 끌리면 가는 것이지 지성이 부족해서 가는 것이 아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게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시어른들의 속을 무척이나 썩였는데 이번에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믿게 됐다고 했다. 막상 믿고 보니 이렇게 좋은 것을 왜 그토록 고집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너무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갔다.
어느 날 한 신사분이 찾아와 대뜸 내 손을 좀 만져보자고 했다. 왜 그러시냐고 묻자 그는 ‘그 손으로 나를 구원해 주셨으니 그 손을 한 번 만져보는 것이 인생 최고의 기쁨이겠다’고 말했다. 나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데 주님이 이렇게 나를 높여주시니 감사한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다.
감사 편지도 많이 받았다. 예수님을 믿고 새 생명을 얻었으니 전도해 준 내가 생명의 은인이라는 인사, 이제는 자기만 믿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전도하겠다며 기도를 부탁하는 내용, 나중에 천국에서 꼭 만나자는 메시지….
전도는 축복의 씨앗이다. 많은 사람이 복 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복 받을 만한 일은 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도 집회 때마다 성도들에게 복 받을 일을 하라고 강조한다. “복 주실 줄 믿습니다”하고 기도한다고 하나님이 복을 주시겠는가. 만약 “복 주실 줄 믿습니다”하고 기도만 100번 반복한다고 복을 받을 수 있다면 나는 기도원에 가서 100만번 기도하겠다. 하나님을 먼저 기쁘시게 해 드리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기쁘게 해 주신다. 복 받을 일은 하지 않고 기도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복만 바라는 기복신앙이다.
***[역경의 열매] 이종근 (16) 전도 시작한 후 견딜 수 없었던 극한의 통증 사라져
아침 7시부터 밤 12까지 강행군
다음날 아침이면 피로감 없어져
전도 사역 통해 건강의 축복 받아
국내외 5000여곳 전도집회 인도
이종근 장로가 2011년 안동교회 전도부흥집회에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전도하는 것이야말로 복을 받는 길이다. 나는 총전도주일 이후 큰 축복을 받았다. 먼저 건강의 축복을 받았다. 그동안 돈이 없어서 수술도 하지 못한 채 십이지장궤양과 담석증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의 나날을 지내왔다. 특히 신경을 쓰거나 음식을 조금만 먹어도 담석에 통증이 생겼기 때문에 무리하거나 긴장해야 하는 일은 가급적 피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통증이 시작되면 참을 수가 없어서 버스에서 내려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창백한 얼굴에 땀을 흘리며 얼굴을 찡그리고 앉아 있으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측은하다는 듯이 쳐다보곤 했다. 그렇게 조금 통증이 멎으면 집으로 전화를 했다. 그러면 놀란 아내가 달려와 나를 부축해 집으로 데려가곤 했다.
전도하던 기간은 온종일 피곤의 연속이었다. 아침 7시부터 저녁 12시까지 점포에 오신 손님을 전도했고 점포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말씀을 전했다. 길을 가면서나 버스를 타는 동안, 산업체 고등학교에서도 어디서든 끊임없이 전도를 이어갔다.
평소에는 피곤하거나 신경을 많이 쓰면 견딜 수 없는 통증 때문에 밤을 꼬박 새우곤 했다. 그러나 전도하는 동안만은 자정이 넘어 피곤한 몸으로 아픈 다리를 주무르다 잠들었고 아침이면 모든 피로가 말끔히 사라졌다. 오히려 새로운 기운이 솟아났다. 전도를 시작한 뒤부터는 담석증과 십이지장궤양이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지금까지 나는 국내외 5000여곳 교회에서 전도집회를 인도했다. 여전히 주님이 주신 건강으로 쉬지 않고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 내가 이렇게 바쁘게 쓰임 받는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본 교회에서 예배를 일찍 드리고 나면 다른 교회 대예배 시간에 가서 간증할 때가 많다. 그렇게 간증을 마치면 곧바로 다른 교회의 오후 예배를 인도하고, 이어 주일 저녁부터 수요일 새벽까지 전도부흥성회를 맡는다. 다시 수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새벽까지 전도부흥성회를 인도한 뒤 토요일 저녁에는 간증집회 나간다. 정말 주님이 건강을 주시지 않으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사역이다.
게다가 해외 성회라도 나가게 되면, 한국에서 수요일까지 간증부흥성회를 마치고 곧바로 출국해서 목요일에 도착하자마자 새로운 부흥성회를 인도하곤 했다. 하루도 놓칠 수 없고, 한 시간도 소중했기에 시차 적응을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매주 한두 교회에서 성회를 인도하고 많을 때는 7~8곳을 다닌 뒤 곧바로 한국으로 돌아와 저녁부터 또 다른 간증집회를 이어갔다. 무리하면 안 된다고, 조심하라는 말을 여러 사람이 끊임없이 해줬다.
그러나 나는 확신한다. 사명이 있는 한 결코 죽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다.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 나 같은 작은 존재를 쓰신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감사 외에는 다른 말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