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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24일(대림절 네 번째 주일)
마태복음 2:1~12
꽃별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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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혹시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아십니까? 이 영화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어느 평범한 가정의 노부인이 설거지를 하는 동안에 군장성급 장교의 차가 노부인이 사는 집 마당으로 들어옵니다. 별이 붙은 차량을 본 노부인은 설마 하는 마음으로 자신이 하던 일을 멈춥니다. 그리고 노부인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습니다.
부인은 전쟁터에 아들 셋을 모두 보내고, 그중 하나를 이미 전쟁터에서 잃었습니다. 그런 노부인이 자신의 집에 들어온 장교를 본 순간 무언가를 알아차렸다는 듯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장교가 가져온 소식은 노부인의 또 다른 아들이 전쟁터에서 사망했다는 비보였습니다. 이것은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한 장면입니다.
예수께서 탄생하실 때조차도 어두움이 존재했습니다. 1절에는,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에는 여러 명의 헤롯이 등장합니다. 이중 본문에서 소개되고 있는 헤롯 왕은 주전 37년부터 주전 4년까지 유대를 다스렸던 헤롯 1세를 가리킵니다. 헤롯은 원래 이두매 혈통의 유대인이었습니다. 당시 로마가 유대를 점령한 이후에 그의 아버지 안티파터는 유다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습니다.
안티파터는 자기 아들 헤롯을 갈릴리 지역의 군대 장관으로 임명하였습니다. 이후 헤롯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승승장구하여, 결국 로마 원로원으로부터 ‘유대인의 왕’이라는 지위를 얻게 되었습니다.
헤롯이 유대의 왕이 된 후에, 헤롯은 자신의 숙적이었던 하스모니아 가문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 가문 출신의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였습니다. 그러나 헤롯 왕은 그들을 의심하여 결국 자신의 아내와 하스모니아 가문을 몰살시키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사람을 의심하는 헤롯의 태도는 오늘 본문에도 소개되고 있습니다. 헤롯 왕은 동방박사들로부터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실 그리스도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에 헤롯 왕은 잔인하게도 베들레헴과 그 근처에 있던 두 살 아래의 모든 사내아이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헤롯 왕에게서 무엇을 느끼십니까?
예수님의 탄생을 기록하고 있는 복음서는 마태복음 2장과 누가복음 2장입니다. 마태복음 2장에서는 유대인의 왕 헤롯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2장에서는 당시 로마의 황제였던 가이사 아구스도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2장 1절에 보면, “그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명을 따라 모든 유대인은 자신이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이때 요셉과 마리아도 갈릴리 나사렛을 떠나 고향 땅 베들레헴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해산할 날이 차자, 마리아는 베들레헴의 한 구유에서 아기 예수님을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로마 황제는 “천하로 다 호적하라.”라는 명령을 내렸을까요? 이때의 인구조사는 더 효율적인 세금징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로마 황제는 사람들로부터 신으로 숭배되고 있었습니다. 그는 ‘로마의 평화’라고 하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를 건설하기 위해 막대한 재정이 필요했습니다.
과연 ‘팍스 로마나’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많은 돈과 권력으로 유지되는 평화를 뜻했습니다. 가난한 백성에게 걷힌 세금의 많은 부분이 로마 황제를 위한 통치자금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돈과 권력으로, 때로는 무력과 술수로 평화를 이루려고 했던 사람들이 나라를 다스리는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의 상황은 암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유대인의 왕 헤롯은 자기 권력을 지키기 위해 영아살해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또한,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는 돈과 권력으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가난한 백성에게 막대한 양의 정치자금을 거두고 있었습니다.
목적은 평화인데, 그 평화를 얻을 수단은 살인과 돈과 권력이었습니다. 돈이 있어야 힘이 있고, 힘이 있어야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논리가 세상에 퍼져있었습니다. 이러한 세속적 가치관은 오늘날에도 존재합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기들에게 평화를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사회는 세속적인 힘만으로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이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힘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아기 예수님으로 드러나는 겸손과 평화의 힘입니다.
동방박사들의 입을 통해 선언된 아기 예수님은 과연 어떤 분입니까? 그분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분’이십니다. 동방박사들은 별을 보고 기뻐하며, 별의 인도함을 받아 마구간에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님과 그 모친 마리아를 보고 아기께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기 예수님께 황금와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은 “어떻게 그들에게 이러한 믿음이 있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과연 그들이 누구입니까? 그들의 고향인 ‘동방’은 ‘별이 떠오르는 곳’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아마 그곳은 바벨론이나 페르시아 정도로 추정될 수 있을 겁니다.
또 동방박사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천문학에 능통하고, 꿈을 해석하거나 점성술을 하기도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하늘의 신비한 현상을 연구하던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은 유대인도 아니었고, 율법을 연구하던 학자들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헤롯 왕 앞에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2절).”라고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유대 땅에는 구약성경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없었을까요? 헤롯 왕이 동방박사들의 이야기를 듣고 누구를 소집했습니까?
4절에 보면, “왕이 모든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여기서 대제사장들은 누구고, 서기관들은 또 누구입니까? 그들은 모세의 율법에 능통했던 소위 성경 박사들이 아니겠습니까?
백성들은 존경의 마음을 담아 그들을 ‘랍비’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왕의 지시를 받고 난 후, 뛰어난 성경 실력으로 아기 예수님이 태어날 장소를 정확하게 찾아냈습니다. 그곳은 유대 땅 베들레헴이었습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그때로부터 약 700년 전에 유다에서 활동했던 미가 선지자의 예언에 주목했습니다. 미가 선지자는 앞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릴 목자가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5~6절).
그런데 해박한 성경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세간에 칭찬과 존경까지 받아오던 종교지도자들은 왜 정작 예수께서 탄생하시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을까요?
그와는 정반대로, 왜 하나님께서는 유능한 성경 박사들을 선택하지 않으시고, 이방인 중에서, 그것도 하늘의 별을 연구하는 점성가들을 통해서 예수 탄생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했을까요?
아무리 성경 지식이 많고, 교회에서 중직을 맡고, 봉사를 많이 하더라도, 누구든 영적인 무지와 교만에 빠지면 주님을 바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갈급한 심령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갈구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만일 저와 여러분이 영적인 사모함을 가지고 별을 바라본다면, 우리도 별의 인도를 따라 아기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헤롯 왕은 세속적인 권력을 지키기 위해 잔인한 영아살해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는 로마의 평화를 위해 가난한 식민지 백성들에게 막대한 양의 세금을 거둬들였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로마의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정권쟁취를 위한 암투만이 계속되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동방박사들이 엎드려 경배하였던 아기 예수가 우리의 진정한 왕이 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혹시 여러분은 밤하늘에 별이 빛나는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동화작가 정채봉 선생은 “밤하늘에 별이 빛나는 이유를 별이 지구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중 ‘꽃별’이라 불리는 한 별이 있었습니다. 꽃별은 늘 멀리서 바라만 보는 지구를 너무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꽃별은 북극성을 찾아가 자신을 지구로 보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북극성은 꽃별의 마음을 알아차리고는 꽃별을 지구로 보내 주었습니다. 마침내 꽃별은 지구로 와서 별 모양의 작은 불가사리가 되었습니다.
이 짧은 동화는 서로 다른 둘을 하나로 만드는 사랑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각각 떨어진 별로 존재하기보다는 함께 살고 싶어 합니다. 큰 별이 작은 불가사리처럼 수천 배 작아지더라도, 그것을 감내하는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인간이 되기로 하신 꽃별입니다. 예수님은 죄와 슬픔, 두려움 속에 있는 우리를 잘 아시고, 그 곤경 속에서 인간과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꽃별 사랑 이야기를 알게 되었을 때, 우리에게는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정채봉 선생님의 꽃별 사랑 이야기를 소개해 주신 분은 김병년 목사님이십니다. 이분에게는 뇌 병변으로 십여 년째 누워 있는 아내가 있습니다. 이 분은 병든 아내를 수발하면서 느낀 점을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아내가 누워 있은 지 오래되니 씻어도 씻어도 냄새가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 아내를 보며, 임마누엘 사랑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닫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죄에서 풍기는 악취를 감수하시고, 끝까지 함께 하시는 그 사랑을 보여 주셨기에, 나 역시 누워만 있는 아내 곁에 머뭅니다.
아내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한 인간으로 아내를 대하며, 아내에게 다가가는 임마누엘 사랑이 더 많이 내 몸에 배어들어 완전함에 이르기를 기도합니다.”
-출처: 김병년, 「바람 불어도 좋아」(서울: IVP, 2013); 「생명의 삶」(서울: 두란노, 2020년 12월호), 135에서 재인용.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사랑을 더 깊이 깨달을수록, 우리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악취 나는 형제, 자매를 용납하고, 그들 곁을 오랫동안 지켜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설교 초반부에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한 노부인은 자기의 세 아들을 전쟁터에 내보냈습니다. 이 부인은 세 아들 중에 두 명을 전쟁터에서 잃고 말았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령관은 전쟁터에서 세 아들 모두를 다 잃게 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사령관은 아직 살아 있을 나머지 한 명의 아들을 찾아 안전하게 귀환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세 번째 아들의 이름이 '라이언 일병'이었습니다.
전우들은 두 아들을 잃은 노부인의 절망과 슬픔을 헤아렸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더는 절망 중에 거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라이언 일병을 구해냅니다.
-출처: 정우현, 「신이 내 마음에 노트할 때」(서울: 두란노, 2017); 「생명의 삶 플러스」(서울: 두란노, 2022년 12월호), 227쪽에서 재인용.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사업가가 있었습니다. 이 사업가는 외아들과 함께 전 세계를 누비며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수집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그동안 사들인 미술품의 가치는 1조 3,000억 원이 훨씬 넘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전쟁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외아들은 국가의 부름을 받고 전쟁터에 나가야 했습니다. 얼마 후 비극적인 소식이 아버지에게 들렸습니다. 아들이 그만 전쟁터에서 전사하고 말았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아들은 부상 당한 전우를 구하려다가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세월이 지나, 목숨을 건진 병사가 전우의 아버지를 찾아왔습니다. 병사는 자기 목숨을 구해 주고 대신 죽은 전우의 초상화를 아버지에게 선물했습니다. 몇 달 후, 아버지는 숨을 거두게 되었고, 그의 수집품들이 경매에 나왔습니다.
첫 번째 작품은 젊은 군인이 그렸던 아들의 초상화였습니다. 사람들은 그 그림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간신히 사업가의 한 지인이 13만 원에 그 그림을 낙찰받았습니다.
그때 사회자가 경매 종료를 선언했습니다. 사회자는 1조 3,000억 원이 넘는 미술품 소유권을 그 초상화를 사는 사람에게 넘기겠다는 사업가의 유언을 발표했습니다. 경매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고 놀라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에는 복음이 담겨 있습니다. 아들의 초상화는 아버지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의 초상화를 원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주기로 작정했습니다.
2,000년 전에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독생자를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영접하는 자에게 모든 것을 주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출처: 강준민, 「위대한 투자」 (서울: 두란노, 2021); 「생명의 삶」 (서울: 두란노, 2023년 12월호), 137에서 재인용.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은 사랑으로 꽃별이 되셨습니다.
이러한 사랑을 받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아기 예수님께 최고의 경배와 감사를 표현하는 일을 과연 지나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꽃별 사랑 이야기를 세상에 널리 전하는 일보다 우리에게 더 의미 있는 일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