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김창식 | 날짜 : 10-03-26 14:54 조회 : 1781 |
| | | 밥 딜런-포크의 성인(聖人)
김창식
무엇을 보았니 내 아들아/늑대에 둘러싸인 갓난아이를 보았소/죽은 말 곁에 서있는 아이를 보았소/몸이 불타는 여자 아이를 보았소/검은 개와 함께 걷는 한 남자를 보았소/처형자의 얼굴이 감추어진 곳을 보았소/온통 검은색으로 둘러싸인 사람 없는 곳을 보았소/험한 비가 내리려 해요/험한 비가…*
오는 3월31일 내한 공연을 갖는 전설적인 아티스트 밥 딜런의 1962년 발표곡 '험한 비가 내리려 해(Hard Rain's A-Gonna Fall)'의 가사 일부입니다. 묵시론적인 이 노래는 쿠바 핵 위기와 맞물려 전쟁으로 인한 삶의 초토화를 경고한 것입니다. '험한 비'는 미사일, 낙진, 폭탄을 뜻하는데 우리 포크 가수 이연실은 '소낙비'로 번안해 불렀습니다.
밥 딜런은 큰 상업적 성공은 거두지 못하였지만(그 흔한 빌보드 차트 1위곡이 한 곡도 없음) 포크와 록 음악, 나아가 대중음악 전반에 끼친 영향은 실로 지대하여 비틀스와 역대 첫째 둘째를 다투는 슈퍼스타입니다. 그의 공적과 영향력은 아인슈타인이나 셰익스피어에 비교되기도 합니다. 그가 이처럼 평가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대략 세 가지 관점에서 살펴봅니다.
우선 그의 음악이 시대적 현실을 증언하거나 예언자적 성찰을 보여줌으로써 시대정신을 견인한 때문입니다. 1960년대는 세계사적 전환기의 시대였죠. 2차 대전 후 세계는 거대한 두 개의 체제로 개편되었고 자유세계의 중심축으로 부상한 미국 사회는 쿠바 미사일 위기, 케네디 대통령 암살, 베트남전 참전, 히피문화의 창궐 등으로 혼란스러운 시대였습니다. 밥 딜런은 노래로써 반핵, 반전, 반 인종차별을 일깨웠고 주류 사회의 위선적인 풍조에 저항하여 젊은이와 지식인층의 추앙을 받았습니다. 당연히 기득권을 가진 주류 보수층은 그를 외면할 수밖에. 그는 아웃사이더의 삶을 살되 시대를 감시하는 파수꾼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마을을 지키는 망루는 중심이 아닌 외곽에 자리하는 법이니까요.
밥 딜런을 평가하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수많은 포크의 명곡을 직접 작사‧작곡하였다는 것입니다. 포크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바람이 전하는 말(Blowin' in the Wind)'을 비롯,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Knockin' on Heaven's Door)', '괜찮아, 두 번 생각하지 마(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미스터 탬버린 맨(Mr. Tambourine Man)' 등은 포크 음악 역사상 길이 빛나는 명곡입니다. 밥 딜런의 역할에 힘입어 포크음악은 대중성을 획득, 세계 전역에 전파되어 전성기를 맞이하죠. 포크 음악에 록을 도입하는 새로운 시도도 하였습니다. 그가 어쿠스틱 기타를 버리고 일렉트릭 기타를 들었을 때 사람들은 배반자라고 비난하였지만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음악적 혜안을 찬탄하게 되었지요. 오랜 동반자인 포크의 여제(女帝) 조앤 바에즈가 포크의 순혈주의를 주창하였다면 그는 일탈을 꿈꾸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밥 딜런만의 특화된 음악적 성공은 초현실주의적이면서도 시적인 가사와 독특한 창법에 힘입은 것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위에 소개한 '험한 비가 오려고 해'에서도 그 편린을 엿볼 수 있지만 상징과 은유가 가득한 노랫말은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수차 거론되었을 정도입니다. 창법도 새로웠지요. 미성이 아니고 가창력도 뛰어나지 않습니다만 읊조리는 듯 우울한 톤의 노래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메마르고 거친 질감의 크로키 화 같은 창법이 역설적으로 듣는 이의 가슴속에 감추어진 현(弦)을 둔중하게 건드린 것이지요. 어찌 보면 그는 표현의 본질에 충실한 것입니다. 암울하고 참담한 현실은 거리를 두고 담담하게 표현할수록 미감(美感)이 배가되는 것이어서요. 우리나라 포크가수 중 한대수('행복의 나라로'), 서유석('타박네') 등 여러 가수가 그의 영향권에 있지만 밥 딜런의 정통 DNA를 이어받은 사람은 김민기입니다. 김민기가 직접 부른 '아침 이슬', '친구', '내 나라 내 겨레'를 들어보면 창법이나 가사가 전하는 메시지에서 동질성을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김민기 자신은 부인하지만, 1970년대 젊은이들에게 김민기는 우울한 시대의 초상이었어요. 그들은 금지곡이었던 김민기의 노래를 알음알음으로 들으며 먹먹한 감정에 빠져드는 한편 위안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나저나 왜 밥 딜런일까요? 밥 딜런이 표출하였거나 예언한 여러 문제들은 진행 중이며 주변에 드리운 어두운 구름은 아직 걷히지 않았습니다. 그가 추구한 반전과 평화의 정신, 아웃사이더로서의 각성, 자유에의 갈구, 삶의 순환에 대한 성찰은 지금도 유효한 가치입니다. 밥 딜런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밥 딜런이 아니었더라도 누군가 밥 딜런적인 것을 노래했을 것이다."
*가사는 편의상 축약 편집함.
*자유칼럼(www.freecolumn.co.kr)게재 *2010. 3.15(월) 김창식 |
| 박원명화 | 10-03-26 20:27 | | 음악에 대한 상식이 날로 한편의 수필로서 그 진가를 발휘하시는 같아 보기에 좋습니다. '빕 빌던'의 음악을 저 또한 좋아합니다. 70년대 포크송에서 그 비슷한 곡들을 들으며 친구와 같이 음악다방을 서성이던 시절을 생각케 하네요. | |
| | 김창식 | 10-03-28 13:29 | | 그 시절 서성이던 박원명화님을 본 듯! 양지, 심지, 야지,본전, 해남, 설파, 훈목, 타임...ㅎㅎ | |
| | 임재문 | 10-03-27 11:39 | | 저는 그냥 트로트 노래나 좋아했는데, 밥딜런의 그 음악에 빠져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합니다. 이제 또 트로트를 주제로 한 글을 하나 발표 해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김창식 선생님 ! | |
| | 김창식 | 10-03-28 13:26 | | 저도 트로트 좋아합니다, 임선생님. 특히 애환이 깃든 가사가 가슴에 와닿습니다. | |
| | 이진화 | 10-03-27 18:49 | | (밥딜런의 정통 DNA를 이어받는) 김민기의 노래를 참 좋아했습니다. 그의 노래를 많이 따라 불렀죠. 밥 딜런, 그의 공연을 직접 보고 싶네요. 김창식 선생님,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_^* | |
| | 김창식 | 10-03-28 13:30 | | 밥 딜런이나 김민기 노래를 노래방에서 부르지 못해 아쉽습니다. 분위기가 곧 바로 다운되니까요, 이진화님. | |
| | 이예원 | 10-03-29 11:24 | | 잘 읽었습니다. 베트남 전쟁에 저항했던 그의 노래들은 가수라고 말하기 보다는 작가, 화가, 시인이라고도 합니다. 나와는 시대가 같아서 더욱 기억 할 수 있는 그분 공연을 아쉬워 했는데 글 잘 읽었습니다. <The Times They are a changin>이 노래도 들었겠네요.부러워요. 이 예 원 | |
| | 김창식 | 10-03-29 11:31 | | 그렇습니다, 이예원 선생님. 밥 딜런은 참으로 간단히 정의하기 힘든 인물이지요. | |
| | 박영보 | 10-04-10 23:17 | | 마치 음악해설을 듣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같은 노래를 부른 존 바에즈의 노래 또한 좋았지요. | |
| | 김창식 | 10-04-11 11:31 | | 박영보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저도 좋아하는 조앤 바에즈에 대해서도 한번 꼭 다루려 합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