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고기의 사랑
김민자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어디론가 떠나고픈 나그네가 되어 황금 물결 가득한 길을 걸었다. 이제 머지않아 풍요로운 결실을 비워내고 겨우내 침묵할 대지를 그려보며, 며칠 전에 읽은 가시고기를 떠올렸다. 난 그 작품을 읽으며 작으나마 어머니로서 한층 더 성숙한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다움이란 정겨운 이름의 초등학교 3학년의 어린이가 불치병인 백혈병에 걸려 2년 동안 입퇴원을 거듭한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 병실에서 창밖을 바라보다가 상념에 젖어 벤치에 앉은 아빠를 보며 의젓한 다움이는 애써 지우며 오직 자기를 위해 힘겹게 살고 있는 아빠를 더없이 사랑한다.
불치병을 앓고 있는 아들을 위해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아빠는, 자식에게 모든 생의 목표를 걸고 최소한의 생활이나마 연명하기 위해 글을 쓰면서 버팀목이 되어 준다.
다움이는 골수이식을 받아야 하는 상태로 맞는 골수를 구하기도 힘들지만 그때까지 받아야 하는 항암치료를 아들이 어떻게 견뎌낼지 아빠는 암담하기만 하다. 그래서 생명의 불씨가 꺼져 가는 아들에게 항암치료의 고통을 안겨주고 싶지 않아, 모든 생활을 정리하고 공기 좋고 물 맑은 산속으로 들어간다.
사락골이란 그곳에서 약초를 캐며 살아가는 노인의 도움으로 민간요법을 시도해 본다. 오직 자식을 살리겠다는 집념 하나로 약초를 캐고 몸에 좋다는 것은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정성껏 아들에게 먹여 잠시 기력을 되찾아 효험이 있는 듯해 희망을 가져 보지만 안타깝게도 재발된다.
위급한 상태에서 결국 산속을 떠나 서울 병원으로 다시 입원하고, 이혼한 다움이 엄마로부터 아들과 유전자가 같은 골수를 기증하겠다는 일본인을 찾았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골수이식을 받으려면 엄청난 돈이 드는데 병원비까지 밀려 있는 상태에서 감당을 할 수 없는 아빠는 한없이 무력해지고 다움이 엄마는 새 남편의 도움으로 수술비를 마련하겠다고 제의하지만 아빠는 거절한다. 고심한 끝에 자신의 신장을 팔아 수술비를 마련하려고 여러 검사를 받은 결과 뜻밖에도 간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는다.
결국 이미 암세포가 퍼져 있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신장은 돈으로서 가치를 잃은 것임을 알고, 엄마도 없는 어린 자식이 끝내 이렇게 짧은 생을 마쳐야 되는가 싶어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간암 말기, 어차피 시한부 인생인데 끝까지 돌볼 수 없다는 생각에 아들을 위해 자신의 몸에서 아직은 쓸모 있다는 각막을 팔아 수술비를 마련하여 다움이는 성공적으로 골수 이식을 받는다. 결국 아빠는 자신이 끝까지 책임질 수 없는 아이를 프랑스로 떠난 아내에게 보내기로 한다.
엄마를 거부하는 아이에게 의도적으로 정을 떼게 하려는 아빠의 눈물겨운 행동들은 너무나 안타까워 가슴이 먹먹해졌다. 마지막으로 아빠를 보고 싶다고 떼를 쓰는 아들에게 각막을 잃고 몸도 심하게 병들어 가는 자신의 흉한 모습을 보이게 될까봐, 일부러 어두운 저녁으로 약속을 하고, 마지막으로 아빠에게 안기고 싶다는 아들의 울부짖음을 보며 끝내 자기에게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는 아빠의 처절한 인내력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어느 부모인들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가만, 쉽게 흉내내지 못할 큰 사랑이라 생각된다. 이렇게 눈물겹게 아들과 이별한 아빠는 아들과 함께 마지막 생명의 불씨를 되찾으려 헤맸던 사락골을 찾아가 자신을 사모하며 내내 옆에서 돌봐주던 후배 옆에서 초연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암컷은 새끼를 낳고 떠나가지만 수컷은 그들을 지키며 키우다가 성장하여 떠나고 나면 머리를 박고 죽는다는 가시고기. 자식의 생명을 위해 모든 것을 주고 끝내 자신은 죽어 가는 다움이 아빠의 사랑을 수컷 가시고기의 특성에 빗대어 이 시대의 모성과 부성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 이 작품은 마지막 책장을 뗄때까지 가슴을 저리게 해 눈물을 거둘 수 없게 한다.
IMF 이후, 수없이 많은 아빠들은 가장으로서 설자리를 잃고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로 인해 가정의 질서가 무너지고 그 중에는 함께 헤쳐가야 할 그 위기로부터 도피하는 아내들도 있는 이 시점에서 가시고기를 통해 힘겨운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의 부성에 대해 연민의 시선으로 메시지를 보내는 작가의 마음에 동감한다.
나는 자식에게 또 부모님께 어떤 모습일까? 책을 덮으며 자신을 새삼 되돌아본다.
자식들에게 다 주고 빈 껍질만 남은 어머니께 이제야 어머니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시라고 투정도 부리지만, 수컷 가시고기의 삶이 그러하듯 내 어머니의 삶 또한 자식들이 당신의 존재 의미임을 너무도 잘 안다.
문득 내게 한없이 자상하고 늘 배려해 주며 아이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는 남편의 사랑이 더없이 크게 느껴지고 소중하게 다가온다.
첫댓글 나는 자식에게 또 부모님께 어떤 모습일까? 책을 덮으며 자신을 새삼 되돌아본다.
자식들에게 다 주고 빈 껍질만 남은 어머니께 이제야 어머니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시라고 투정도 부리지만, 수컷 가시고기의 삶이 그러하듯 내 어머니의 삶 또한 자식들이 당신의 존재 의미임을 너무도 잘 안다.
문득 내게 한없이 자상하고 늘 배려해 주며 아이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는 남편의 사랑이 더없이 크게 느껴지고 소중하게 다가온다.
나는 자식에게 또 부모님께 어떤 모습일까? 책을 덮으며 자신을 새삼 되돌아본다.
자식들에게 다 주고 빈 껍질만 남은 어머니께 이제야 어머니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시라고 투정도 부리지만, 수컷 가시고기의 삶이 그러하듯 내 어머니의 삶 또한 자식들이 당신의 존재 의미임을 너무도 잘 안다.
문득 내게 한없이 자상하고 늘 배려해 주며 아이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는 남편의 사랑이 더없이 크게 느껴지고 소중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