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이 글은 책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옮긴것이므로..
저작권은 저에게 없구요(..-_-;) 고로 다른 곳으로 퍼가지는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냥 읽어만 주세요..
조운전
- 조운은 자가 자룡이고, 상산군 진정현 사람이다. 그는 본래 공손찬의 부하로 있었는데, 공손찬이 유비를 보내 전해를 위해 원소에게 대항하도록 했을때, 조운은 유비를 수행하여 그의 주기가 됐다. 유비가 조조에게 당양의 장판까지 추격당하여 처자식마저 버리고 남쪽으로 달아났을 때, 조운은 직접 어린자식(유선)을 품에 안고 감부인을 보호하여 모두 난을 모면하도록 했다. 승진하여 아문 장군이 되었다. 유비가 촉으로 들어갔을때, 조운은 형주에 남았다.
유비가 가맹에서 돌아와 유장을 공격하고, 제갈양을 불렀다. 제갈양은 조운과 장비등을 인솔하여 함께 장각을 역류하여 서쪽으로 가면서 군현을 평정했다. 강주에 도착하자, 따로 조운에게 물을 지나 강양으로 올라와 성도에서 제가양과 합치도록 했다. 성도가 평정된후 조운을 익군장군으로 임명했다.
건흥 원년(223)에 중호군 정남장군으로 임명되었으며, 영창정후에 봉해졌고, 승진하여 진동장군이 되었다.
5년(227), 제갈양을 수행하여 한중에서 주둔했다. 다음해 제갈양이 군대를 출동시켜 사곡도를 지나며 선전했고, 조진은 대부대를 보내 이곳을 맡았다. 제갈양은 조운과 등지에게 가서 맞아 싸우도록 하고 자신은 기산을 공격했다. 조운과 등지의 병력은 약하고 적군은 강했으므로 기곡에서는 패했지만 군대를 모아 굳게 지켰으므로 참패에 이르지는 않았다. 군대를 물린후 진군장군으로 강등되었다.
7년(229)에 조운은 세상을 떠났는데 시후가 순평후로 추종되었다.
당초 유비시대에는 오직 법정만이 시호를 받았고, 유선의 시대에는 제갈양이 세상사람들을 뛰어넘는 공적과 덕행이 있었고, 장완과 비의가 국가의 중임을 담당했으므로 또한 시호를 받았으며, 진지는 총애를 받아 특별한 장려를 주었으며, 하후패는 먼곳에서 돌아왔기 때문에 시호흘 받았다. 그리고 관우, 강비, 마초, 방통, 황충 및 조운이 시호를 추증받게 되었는데, 그 당시 논의하는 사람들은 영예로 생각했다. 조운의 아들 조통이 후사를 이었으며, 관직은 호분 중랑장, 독행영군까지 이르게 되었다. 차남 조광은 아문장이 되어 강유를 따라 답중으로 출정나갔다가 전쟁터에서 죽었다.
* 평하여 말한다. 관우 장비는 모두 1만명을 상대할 만 하며, 그시대의 용맹한 신하들이다. 관우는 조조에게 보답을 하였고, 장비는 대의로서 엄안을 풀어주었으며, 이들은 모두 국사의 풍격이 있었다. 그러나 관우는 굳세고 교만하며, 장비는 포학하고 은혜를 베풀지 않았는데, 그 단점때문에 실패하게 되었으니, 이치상으로 당연한 것이다. 마초는 오랑캐와 용감함에 의지하였으므로 그 가족을 멸망당하였으니, 애석하구나!
뜻을 얻지못하고 평안한 것이 낫지 않겠는가! 황충과 조운이 강하고 용맹하여 유비의 무신이 되었던것은 한고조때의 관영, 하후영의 무리같구나.
- 정사삼국지 촉서 조운전 중(신원문화사)
소설 조자룡전을 봐도(몇몇 과장된 부분은 있겠지만..^^;) 큰 틀은
정사를 벗어나고 있지는 않습니다. 뭐 없는 이야기도 추가되어있기도 하지만... 정사라고 해서 모든 사실을 담을수 있는건 아닐테니까..-_-;
암튼 정사 어디를 봐도 조운이 수송임무를 주로 맡았다거나 그런 말은 없는것 같죠?.. 진수의 인물평을 봐도 황충과 조운은 용맹한 무장이었던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