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사백쉰네 번째
꽁보리밥
<흥부전>이 외국에 소개되면서 흥부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으로 꼽혔답니다. 그 흥부가 제비가 보은으로 물어다 준 박씨를 심고 첫 박을 타자 양식이 무진장 쏟아져 나왔습니다. 삼순구식三旬九食, 한 달에 아홉 끼밖에 못 먹었던 형편인지라 당장 밥을 지어 남산만 하게 쌓아놓고 스물다섯 자식을 불러들여 밥을 먹였다는 흥보가 가사가 있습니다. 삼시세끼 제대로 먹지 못하는 가난의 상징으로는 먼저 보릿고개가 떠오릅니다. 보리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던 시절이 악몽 같아 소외당한 처지를 ‘보리알 신세’라 했고, 어울리지 못하고 따돌림당하는 사람을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꽁보리밥·보리떡·보리죽은 가장 가난함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반도의 풍토에 가장 알맞은 곡식이 보리였답니다. 그렇지만 쌀이 보리에 비해 단위 면적당 영양소출량이 20~50배가 많아 힘들지만, 벼농사가 주곡이 되었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렵고 고통받던 시절의 음식을 되찾아 먹음으로써 그 고난을 되뇌고 잊지 않으려는 억고반憶苦飯으로서가 아니라 영양과잉으로 잃어버린 건강을 되찾기 위해 보리밥을 찾습니다. 본디 그리 먹고 살았었는데 이젠 별미가 된 것입니다. 보리는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어 다이어트에도 좋다고 하니 자동차를 타고 멀리 외곽지역에 있는 보리밥집을 찾아가기도 합니다. 아내가 둘째 아이를 가졌을 때 유성시장 장날이면 목판 앞에 쪼그리고 앉아 꽁보리밥을 맛있게 먹던 생각이 납니다. 어려서 8남매가 먹던 보리밥이 먹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정말 가난해서 겨우 보리밥이나 먹었다면 아마도 눈물밥이 되었을 테지만, 추억의 음식으로 먹었으니 행복했을 겁니다. 고추장에 비벼 먹고 싶어 어디 그런 집 없나 찾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