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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군대와압살롬 군대의 전쟁 18:1~8
1 이에 다윗이 그와 함께한 백성을 찾아가서 천부장과 백부장을 그들 위에 세우고
2 다윗이 그의 백성을 내보낼새 삼분의 일은 요압의 휘하에, 삼분의 일은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동생 아비새의 휘하에 넘기고 삼분의 일은 가드 사람 잇대의 휘하에 넘기고 왕이 백성에게 이르되 나도 반드시 너희와 함께 나가리라 하니
3 백성들이 이르되 왕은 나가지 마소서 우리가 도망할지라도 그들은 우리에게 마음을 쓰지 아니할 터이요 우리가 절반이나 죽을지라도 우리에게 마음을 쓰지 아니할 터이라 왕은 우리 만 명보다 중하시오니 왕은 성읍에 계시다가 우리를 도우심이 좋으니이다 하니라
4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는 대로 내가 행하리라 하고 문 곁에 왕이 서매 모든 백성이 백 명씩 천 명씩 대를 지어 나가는지라
5 왕이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젊은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우하라 하니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모든 군 지휘관에게 명령할 때에 백성들이 다 들으니라
6 이에 백성이 이스라엘을 치러 들로 나가서 에브라임 수풀에서 싸우더니
7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이 다윗의 부하들에게 패하매 그날 그곳에서 전사자가 많아 이만 명에 이르렀고
8 그 땅에서 사면으로 퍼져 싸웠으므로 그날에 수풀에서 죽은 자가 칼에 죽은 자보다 많았더라
압살롬을 죽인 요압 18:9~15
9 압살롬이 다윗의 부하들과 마주치니라 압살롬이 노새를 탔는데 그 노새가 큰 상수리나무 번성한 가지 아래로 지날 때에 압살롬의 머리가 그 상수리나무에 걸리매 그가 공중과 그 땅 사이에 달리고 그가 탔던 노새는 그 아래로 빠져나간지라
10 한 사람이 보고 요압에게 알려 이르되 내가 보니 압살롬이 상수리나무에 달렸더이다 하니
11 요압이 그 알린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보고 어찌하여 당장에 쳐서 땅에 떨어뜨리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네게 은 열 개와 띠 하나를 주었으리라 하는지라
12 그 사람이 요압에게 대답하되 내가 내 손에 은 천 개를 받는다 할지라도 나는 왕의 아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우리가 들었거니와 왕이 당신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삼가 누구든지 젊은 압살롬을 해하지 말라 하셨나이다
13 아무 일도 왕 앞에는 숨길 수 없나니 내가 만일 거역하여 그의 생명을 해하였더라면 당신도 나를 대적하였으리이다 하니
14 요압이 이르되 나는 너와 같이 지체할 수 없다 하고 손에 작은 창 셋을 가지고 가서 상수리나무 가운데서 아직 살아 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찌르니
15 요압의 무기를 든 청년 열 명이 압살롬을 에워싸고 쳐 죽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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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다윗이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의 휘하에 백성을 나누어 전쟁에 내보내며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하라고 명령합니다. 압살롬의 군대가 다윗의 부하에게 패하고, 압살롬은 도망치다가 머리가 상수리나무에 걸립니다. 요압이 창 세 개로 압살롬의 심장을 찌르고, 군사 10명이 압살롬을 쳐 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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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군대와압살롬 군대의 전쟁 18:1~8
다윗은 군대를 정비해 압살롬과의 전투를 준비합니다. 그는 세 부대로 나누어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를 대장으로 세웁니다. 자신이 직접 출정하려고 하지만 백성이 그의 출정을 막습니다. 압살롬 군대의 목표는 다윗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요청을 받아들이는 대신, 자기 아들 압살롬을 살려서 데려오라고 명령합니다. 아버지로서 압살롬을 살리고 싶었기에 이를 공개적으로 명합니다. 전쟁에 능통한 요압은 병사가 많은 압살롬 군대와 정면으로 붙지 않고 그들을 숲으로 유인합니다. 결국 요단 동편 지형에 익숙한 다윗 군대가, 수적으로는 우세하지만 전쟁 경험이 부족한 압살롬 군대를 어렵지 않게 이깁니다. 하나님이 아히도벨의 계획을 막으셨기에 결국 압살롬은 다윗과의 전쟁에 패하고 맙니다.
● 더 깊은 묵상
다윗이 압살롬을 너그럽게 대우하라고 명령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가 사사로운 인정을 뒤로하고 냉철하게 판단할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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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살롬을 죽인 요압 18:9~15
전쟁에 패하자 압살롬이 도망합니다. 노새를 타고 도망가는데, 큰 상수리나무 밑을 지날 때 공교롭게도 그의 머리가 가지에 걸려 매달립니다. 이런 황당한 우연은 하나님의 간섭입니다. 남성다움과 아름다움의 상징이던 풍성한 머리카락으로 인해 압살롬은 나무에 매달린 채 요압의 병사를 맞닥뜨립니다. 병사들은 다윗의 명령을 어길 수 없다고 하지만, 요압에게 압살롬은 반역자에 불과합니다. 요압이 압살롬을 창으로 찌르고, 요압의 호위병 10명이 압살롬을 에워싸고서 쳐 죽입니다. 요압은 다윗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보다 적장을 죽여 후환을 없애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반역자 압살롬을 심판하십니다.
● 더 깊은 묵상
반역자 압살롬을 죽음에 이르게 한 황당한 일은 무엇인가요?
황당한 우연 같지만, 내가 하나님의 분명한 섭리로 받아들일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 저를 빛낸다고 생각했던 인간적인 자랑이 어떠한 최후를 맞이하는지 그 결국을 깨닫습니다. 보잘것없고 허망한 자랑거리에 자존심을 세우며 교만을 부렸던 저를 용서하소서. 일평생 겸손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잃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자랑하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328 너 주의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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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위하고, 우리의 이름을 기념하고자 하는 삶이 아니라
당신을 위하고, 당신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살아가는 삶을 바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합니다.
항상 하나님께 먼저 구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우리가 맞닥뜨린
상황들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현명하게 대처해 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위하고, 우리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애를 쓰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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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며
성도의 삶을 주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 있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진 승리를
어떤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험에서 피하게 하시며,
해결 방책을 생각하게 하시며, 여러 방면으로 도움을 주시며,
승리를 맛보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언약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선배들이 죽음의 골짜기를 걸어갈 때도 흔들리지 않았던 것은
성령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걸어가신
길을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진리와 생명의 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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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군대가 에브라임 숲에서 압살롬의 군대를 크게 이겼습니다
그때 압살롬이 노새를 타고 가다가 상수리나무 가지에 머리카락이 걸렸는데
노새는 지나가 버리고 압살롬은 공중에 메달린 상태가 되었습니다
누구나 쉽게 죽일 수 있었지만, 요압이 은 천 개를 준다고 하는데도,
아무도 죽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압살롬을 죽이지 말라는 다윗의 명령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압은 압살롬을 죽였습니다
사실 요압은 매우 독특한 자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보다 열심히 다윗을 위해 싸웠지만,
정작 다윗은 그를 기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요압 같은 자가 많습니다
누구보다 열심인 것 같은데, 정작 주님은 그를 기뻐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심지어 다윗의 마지막 유언이 요압을 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수시로 요압이 자기와 상관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삼하16:10)
예수님께서도 그들에게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7:21~23)
그렇다면 요압은 누굴까요? 율법일까요? 결코 아닙니다 율법은 복음의 친구요
은혜의 동역자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요압은 누굴까요?
그는 은혜의 적대자요 복음의 원수입니다
왜냐하면 주제넘게 자기가 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법 아래 두지 않고 은혜 아래 두셨습니다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롬6:14) 그러나 요압은 자기가 법이 되어서
사람들을 법 아래로 끌고 와 단죄했습니다
그러나 법은 자기에게만 적용하는 겁니다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롬2:14) 누구도 법을 형제에게 적용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도 법 위에 세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약4:11)
오히려 예수님은 법의 마침이 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10:4)
그런데 감히 누가 법 위에 서서 법을 다시 시작시키겠습니까?
하나님 나라는 오직 복음과 은혜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법이 되기를 강력히 거부하고,
오직 복음을 믿고 덕을 세우며 은혜를 더욱 받는 자 되기 원합니다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히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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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남 없는 공의로 악을 징계하십니다.
다윗과 압살롬의 마지막 결전은 칼로 죽은 자보다 에브라임 수풀에서 죽은
자가 더 많은 전투였습니다(8절).
이러한 사실은 이 전쟁의 승리가 사람의 실력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개입으로 주어진 것임을 의미합니다.
왕으로서는 반역자 압살롬을 처단해야 하지만,
아버지로서는 아들을 살려줄 것을 간청하는 다윗의 모습은,
다윗 가문의 비극을 적나라하게 보여 줍니다.
하지만 이 전쟁의 실상은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고
업신여긴 압살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이자,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다윗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입니다(12:10).
하나님의 공의는 애달픈 다윗의 부탁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7절)이라고 불리는 압살롬의 큰 군대로 무효화할 수도 없습니다.
오늘도 공의와 은혜의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나를 내려놓고 내 삶을 민감하게 살핍시다.
1-5절 : 이에 다윗이 그와 함께 한 백성을 찾아가서 천부장과 백부장을 그들 위에 세우고 다윗이 그의 백성을 내보낼새 삼분의 일은 요압의 휘하에, 삼분의 일은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동생 아비새의 휘하에 넘기고 삼분의 일은 가드 사람 잇대의 휘하에 넘기고 왕이 백성에게 이르되 나도 반드시 너희와 함께 나가리라 하니
다윗에게는 자신보다 더 지혜롭고 용맹한 군사들이 있었습니다.
다윗의 군사들은 전장에 참여하겠다는 다윗을 저지합니다.
공적인 직무보다 사적인 감정이 앞서 있었던 왕이 아들 압살롬과의
전투를 제대로 지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군사들의 말대로 다윗은 일만 군대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지만,
다윗의 군사들도 다윗이 사랑한 아들 압살롬만큼 소중한 사람들임을,
다윗은 간과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압살롬과의 전쟁에서 군사들에 의해 제척된 것처럼,
내가 유불리의 당사자가 되어 바른 결정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공동체의 결정을 따르는 것이 지혜입니다.
6-18절 : 압살롬이 다윗의 부하들과 마주치니라 압살롬이 노새를 탔는데 그 노새가 큰 상수리나무 번성한 가지 아래로 지날 때에 압살롬의 머리가 그 상수리나무에 걸리매 그가 공중과 그 땅 사이에 달리고 그가 탔던 노새는 그 아래로 빠져나간지라
압살롬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그의 과거 행적과 큰 대조를 이룹니다.
압살롬은 형 암논을 죽이기 위해 2년을 기다렸고(3:23),
아버지에게 반역하기 위해 4년을 준비했습니다(15:7).
이토록 철저한 계획이 무색하게 압살롬은 한 번의 전투로 전부를 잃었습니다.
뛰어난 외모를 상징했던 머리털은 (14:25)
그의 죽음마저 우스꽝스럽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 없이 도모하는 계획의 결말은 이처럼 허무하고 비참합니다
수10:11.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론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덩이 우박을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우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욱 많았더라
삼상 2:6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8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
잠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찌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21:30. 지혜로도, 명철로도,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치 못하느니라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그둘의 멸망은
교만에서 비롯되었음을 나타내줍니다.
(잠 16: 18)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 8: 13)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단 4: 37)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
교만하기 때문에 인생 채찍, 막대기, 연단 등으로 낮추십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벧전 5:5)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야고보서 1장 15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롬12: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마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시109: 4.나는 사랑하나 저희는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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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리나무에 걸린 압살롬을 먼저 발견한 사람과 요압이 비교됩니다.
둘 다 다윗의 명령을 들었던 사람입니다.
다윗의 마음이 어떤지를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먼저 압살롬을 발견한 사람은 그를 죽이지 않습니다.
단지 그 사실을 요압에게 보고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포상을 내거는 요압의 말도 거부합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오직 다윗의 명령만 중요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압은 다릅니다. 다윗의 간곡하고 엄중한 명을 들었음에도
가차없이 압살롬을 죽입니다. 아마 그를 살려두었을 때의 후환을 생각한
까닭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압에게는 진정 있어야 것이 없습니다.
명령권자인 다윗의 말과 그 마음에 대한 고려는 없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런 요압과 압살롬을 먼저 발견한 사람을 통해
주님과의 관계를 생각하게 합니다.
성도 된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어떤 식으로든 듣고 삽니다.
그러나 그 말씀 앞에서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듣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겨
생명을 걸고 지키는 것임을 생각하게 합니다.
세상이 주는 어떤 유혹에도 그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참으로
주님을 생각하는 일임을 다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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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살롬의 죽음과 요압(삼하 18:1~18절)
전쟁은 누구에게나 참혹한 것입니다. 이만 명의 젊은이들이 전사한
이 참혹한 전쟁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전쟁입니까?
압살롬의 욕심이 낳은 비극입니다. 욕심은 결국 자신과 주변 사람을 해칩니다.
더구나 이 전쟁은 아버지와 아들의 전쟁이며 요압의 어머니 스루야의 동생인
아비갈의 아들인 아마사와 스루야의 아들들인 요압과 아비새가 양쪽 진영의 수장들입니다.
가족 간의 전쟁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열방의 정신을 따라가는 압살롬과 그의 사람들과 하나님을 따르는 다윗과
그의 사람들 간의 전쟁이기도 합니다.
어떤 전쟁이라도 전쟁은 참혹한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나로 인해, 내 욕심으로 인해 가정에서, 교회에서 전쟁과 유사한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다윗과 함께한 군사들이 18:3절에 하는 말을 들어보십시오.
도망자로 살고있는 다윗이지만 함께 한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가능한 것입니까?
또 다윗은 요압과 아비새, 잇대에게 압살롬을 죽이지 말아 달라고 부탁합니다.
참 지독한 아들입니다. 아버지의 후궁들과 동침하고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군사를 이끌고 온 아들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다윗은 그런 아들을
여전히 사랑하고 용서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탕자의 비유에서 등장하는 아버지 같아 보입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죽은 이만 명의 사람들은 칼에 죽은 것보다 풀에 걸려
죽은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군대도 같은 조건인데
왜 압살롬의 군대만 죽었을까요?
이 모든 상황이 하나님이 다윗을 보호하시고 높이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16:12절에서 하나님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주실 것이라고 고백했던
신앙고백처럼 하나님이 다윗을 높이고 계신 것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때로 무력해 보이고 때로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야 할 때가 있습니다. 낮은 자의 평강은 절대로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실 때 의외의 곳에서 의외의 사람들이
다윗을 돕고 백성들이 존귀히 여기며 승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윗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분명한 성령의 음성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높여주시기까지 믿음의 원리를 좇아 살아갔던 다윗처럼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 가운데 더 많아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누군가의 욕심으로 인해 공동체가 나뉘고 전쟁하게 되는 불행한 상황이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18:1절입니다. 위기의 순간에 다윗을 배반하지 않은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요압이 가진 힘은 결국 다윗을 힘들게 하는 힘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실 수 있는 사람, 그런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꿈이요 소망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압살롬과 요압(9~18절)
그런데요? 이어지는 이야기는 압살롬의 죽음과 요압의 폭주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압살롬의 죽음은 허무하며, 요압의 폭주는 분노를 불러옵니다.
압살롬의 죽음은 열방의 정신의 계보를 잇는 사울과 아히도벨,
그리고 압살롬으로 이어지면서 세상적인 잘남이 결코 인생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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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살롬은 아버지 다윗과는 다르게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이미 수많은 젊은이들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압살롬은 다윗의 부하들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신없이 도망치다가 그만 그의 자랑거리 중의 자랑거리인
머리털이 상수리나무에 걸린 것입니다.
얼마나 멀 리가 길고 단단하게 묶였으면 체중을 지탱하고 대롱대롱 달릴 수 있습니까?
다.상수리나무에 달려 대롱거리고 있는 압살롬은 결국 그 머리 때문에
죽음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17~18절에 의하면 아무데나 던져져 묻히고 말았습니다.
그 외모로 권력을 삼고 열방을 좇을 때 그 외모가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커다란 교훈을 던지고 압살롬은 비루한 죽음으로 인생을 마치고 말았습니다. 아침 안개와 같은 인생입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잊지 말고 살아갑시다.
반대로 요압은 어떤 사람입니까?
이미 요압은 아브넬을 죽일 때도 다윗 왕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린 적이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 이야기에서는 어떤 병사가 아주 구체적으로 다윗 왕의 뜻을 대변해 주었습니다.
상수리나무에 달린 압살롬을 보고 요압에게 보고한 이 병사는
은 천 개를 준다고 하더라도 왕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 없다고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더 나아가 만약 압살롬을 죽였다면 요압도 자신을 죽였을 것이라고
사태를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습니다.
사실 요압은 상수리나무에 대롱거리고 있는 압살롬을 얼마든지
포로로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 왕의 처분에 맡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현장에서 자신이 직접 죽였습니다.
압살롬과 요압은 서로 모르는 사이가 아닙니다.
자신이 예루살렘에 돌아오게 한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다윗 왕의 뜻도 무시하고 가차 없이 죽여 버립니다.
한 병사가 하는 말은 요압이 고의로 다윗의 뜻을 거스려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증명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요압이 힘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뒷날 다윗은 솔로몬에게 유언을 남깁니다.
요압이 편히 죽게 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뒷날 요압은 성전의 뿔을 붙잡았어도 결국 비참하게 죽고 맙니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살지만 요압은 왕 다윗의 좋은 동역자가 아니었습니다.
제 하고 싶은 대로 폭주하는 못된 신하였습니다.
그 말은 어쩌면 교회 안의 또 다른 세상 정신을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요압은 자신이 가진 힘의 크기를 알고 있었던 듯이 보입니다.
그래서 고의로 지도자를 멸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합니다.
유쾌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묵상하는 것은 늘 힘이 듭니다.
압살롬도, 요압도, 아히도벨도 수많은 기회주의자들도 교회 속에 존재하는
가라지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보여주시며 하나님은 물어 오십니다.
당신은 이 사람들과 다르냐고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3절을 주목해 보기로 합니다.
어떻게 보아도 다윗은 부족해 보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사랑과 존경은 크기만 합니다.
“백성들이 이르되 왕은 나가지 마소서 우리가 도망할지라도
그들은 우리에게 마음을 쓰지 아니할 터이요
우리가 절반이나 죽을지라도 우리에게 마음을 쓰지 아니할 터이라
왕은 우리 만 명보다 중하시오니 왕은 성읍에 계시다가
우리를 도우심이 좋으니이다 하니라” 그럽니다.
저는 이런 사랑과 존경이 다윗이 살아온 인생, 믿음으로 살아가는
인생에 대한 존경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압살롬의 허무한 죽음과 대조해 볼 때 인생은 결국 살아온 삶이 결과로 나타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인답게 잘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다윗을 향한 존경과 사랑이 우리 삶에도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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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전쟁하는 다윗 (1-8절)
다윗은 요압과 만나 아들 압살롬의 군대와 맞서게 됩니다.
이 때, 다윗은 백성들에게 자신의 아들을 살리라고 명령합니다.
너그럽게 대해달라고 한 것은(5절) 전쟁에서 죽이지 말아달라는 명령입니다.
그리고 이 명령은 온 백성이 다 듣도록 선포됩니다. (5절)
깊이 묵상해 볼 부분이 여기서 부터 시작됩니다.
1) 다윗의 입장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아들이 반역했지만, 그래도 아들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뺏으려 했지만, 그래도 아들입니다. 살아야 하는 아들입니다.
이미 다윗은 두 명의 아들을 잃었습니다.
밧새바 사이에서 태어난 첫 아들을, 이후에는 암논을 잃었습니다.
이제 압살롬 마저 잃기는 싫었습니다.
2) 그런데, 백성입장에서, 군대장관인 요압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는 달라집니다.
명백히 압살롬은 반역자입니다. 다른 사람이 반역했다면 당연히
생명을 보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압살롬은 이미 암논을 죽이려
치밀한 계획을 통해 이루었고, 다윗에 대한 반란도 그러했습니다.
이번 전쟁도 압살롬으로 인한 내전으로 군사 2만명이 죽게 됩니다.(7절)
압살롬은 이스라엘 전체에 매우 위협적인 사람입니다. 살려두어야 할까요?
왕인 다윗의 입장, 그리고 백성의 입장은 전혀 다릅니다.
그래서 사람들마다 이에 대한 묵상들의 방향이 나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2. 상수리나무에 걸린 압살롬 (9-10절)
압살롬은 전쟁가운데 상수리 나무에 머리카락이 걸립니다.
압살롬의 가장 자랑거리 중 하나인 머리 때문에 위기에 처합니다.
자신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납니다.
군사들과 싸움에서 위협에 처한 것도 아니고,
상수리 나무 한그루가 그의 생명을 빼앗게 됩니다.
나무 한 그루가, 온 이스라엘의 마음을 훔쳤던 압살롬을 이기게 됩니다.
압살롬의 자랑, 이스라엘이 자랑은 나무 한 그루에 가려져 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께서 심어놓으신 나무 한 그루의 영광보다 못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소리치는 영광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허무하게 없어질 수 있는지 바라보게 됩니다.
3. 압살롬을 죽이는 요압 (11-17절)
이에 요압은 압살롬을 죽이려 합니다. 맨 처음 압살롬을 발견한 군사에게
왜 죽이지 않았느냐고 반문합니다. (11절) 그 군사는 분명하게 말합니다.
다윗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이지요.
만약 자신이 압살롬을 죽이면, 다윗은 요압을 통해서라도
이 군사를 죽이라 명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군사는 다윗의 명령을 어겼을 때, 다윗의 적이 되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러나, 요압은 아닙니다. 지체없이 압살롬을 죽입니다.
여기서도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봐야 합니다.
1) 첫째, 충성하지 않는 요압입니다.
요압은 다윗의 명령을 어깁니다. 압살롬을 살린 군사는 다윗에게 충성하였습니다.
다윗의 명령을 두려워 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압은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다윗이 자신을 함부로 죽이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는 앞서 다윗의 뜻과는 다르게 아브넬을 죽였을 때도 동일 했습니다. (삼하3:27-30)
요압이 없었다면 이 전쟁에 승리도 장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압은 100%다윗의 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충성하되, 자신의 판단에 어긋나는 것은 충성하지 않습니다.
2) 둘째, 냉정한 판단의 요압.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요압이 판단은 현명합니다.
압살롬 때문에 2만명이 죽었습니다.
압살롬의 죄 때문에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압살롬을 살리는 것이 합당한 일일까요?
나머지 군사들은 죽어도 되고, 압살롬만 죽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압살롬을 살리라는 명령은 군사를 잃은
가족에게 매우 아픔이 되는 명령이라고 판단합니다.
생명의 경중이 없는데 어찌 자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정의를
저버리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명령은 지나치게 감성적입니다.
왕으로서 판단을 저버리고 아버지로서 판단한 나머지,
이스라엘 전체를 다시 위기로 이끌어 갈지 모르는 판단입니다.
압살롬이 죽음으로 이스라엘에 전쟁이 그치게 됩니다.
요압도 자신의 사촌동생인 아마샤와 맞서야 했던 전쟁이었습니다.
전쟁은 사촌과 가족끼리 서로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압살롬을 죽여 이 모든 잔인한 전쟁을 그쳤던 요압의 판단은 매우 정확하고 빠릅니다.
불필요한 희생을 끝내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압살롬이 살아 있으면, 암논 때도 그렇듯,
언제 다시 일을 꾸밀지 모르는 일입니다.
자신의 목숨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저는 압살롬의 판단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매우 현명했고, 합리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런 의견에 대하여 미리 다윗과 소통했어야 했고,
하나님께 의뢰했어야 했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합리적인 판단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합리적이고 위협적인 일에 순종해야 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다윗이 사울을 죽이지 않고 넘어가듯 말입니다.
미래가 걱정되지만, 미래의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지금 나는 선을 행하는 것에 집중하는 일입니다.
미련해 보여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기도하며 순종하는 도전입니다.
다윗이 힘없이 도망할 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돕는 일들을 보면서,
우리의 계획보다 크신 하나님을 믿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의 경험에 따른 계획을 그 앞에 버리고,
하나님을 온전하게 의뢰하게 됩니다.
4. 탓 할 수 없습니다.
압살롬은 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고 맙니다.
그는 (자기 이름을 전할 아들이 내게 없다-18절)고 기록되었습니다.
그에게 있었던 아들 세 명은 일찍 죽었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대를 잇지 못한 것은, 미갈처럼 하나님의 형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상수리 나무에 걸리고 죽는 과정에서 요압의 불충이 있었지만,
이 결과는 압살롬의 몫입니다. 그의 죄의 몫입니다.
아버지 다윗이 나를 사랑하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아버지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죄로부터 이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고,
핑계할 수 없습니다.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 하와 때문이라고, 하나님 때문이라고,
가인이 아벨을 죽였을 때,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냐고 하나님께 따지고
숨었던 것처럼, 죄는 항상 자신의 죄 앞에 서지 않게 하고,
핑계하게 합니다. 탓을 하게 합니다.
죄는 스스로를 숨기고 타인만 죄인으로 몰아갑니다.
우리에게 악한 세상이 늘 다가옵니다.
마음을 상하게 하고, 악한 마음이 올라오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은 이러한 죄들로부터
우리의 마음이 악으로 물들게 하지 않고, 선으로 이겨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도 이 세상의 악함에 복수하려는 계획이 아니라,
기도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이 세상을 핑계로 죄를 합리화 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나도 악해질 수 밖에 없다는 핑계로 부터 벗어나게 하는 기도의 힘입니다.
마음을 지키기 원합니다.
선을 행하는 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무례한 자에게 나의 무례함을 보이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모습이 어떠한지 그 때 마다 묵상하며 반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남 탓이 아니라, 나의 죄에, 나의 연약함에, 나쁜 습관에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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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신뢰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악인의 계획은 어리석고 무너집니다(1~8절).
압살롬과의 전쟁을 앞둔 다윗은 천부장과 백부장을 세우고,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각각 군사를 삼등분하여 맡깁니다.
그리고 다윗 자신도 싸움터에 나가겠다고 선언(1~2절)합니다.
이에 백성들은 다윗이 일만 명보다 더 중요한 존재라는 말로
전쟁에 나아가는 것을 만류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마하나임 성문 곁에 섰고, 천 명씩 대를 지어서 싸움터로 나아갔습니다.
그때 다윗은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압살롬을
너그럽게 대해 달라고 특별히 부탁했습니다.
에브라임 숲 속에서 압살롬의 군대와 싸움이 시작되었고,
이스라엘 백성이 크게 패하여서 이만 명이나 죽었습니다.
그날에 수풀에서 죽은 자들이 칼에 죽은 자들보다 더 많았다(8절)고 전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답게 모든 두려움과 근심과 걱정 그리고 분노와 억울함을 하나님께 맡기고,
오직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위에 내 자신을 세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거짓과 불의 그리고 이기심과 탐욕으로 아무리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간다 할지라도 그러한 삶은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악인들의 계획이 아무리 치밀하고, 주도면밀하다 할지라도
그 계획은 어리석은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내 자신의 삶을 세워 나아가게 될 때,
하나님은 반드시 도와주십니다.
풍성한 생명이 넘치는 삶으로 인도하여 가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랑과 공의 그리고 은혜와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자를 반드시
도우신다는 하나님의 약속과 섭리를 신뢰하므로 늘
반석과 같은 굳건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세상의 자랑은 허무하고 비참합니다(9~15절).
압살롬은 다윗의 군대와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때 압살롬은 노새를 타고 있었는데, 노새가 상수리나무의 울창한 가지 아래를 지날 때 그의 머리가 상수리나무에 걸리는 바람에 압살롬은 공중에 매달린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9절).
다윗이 모두가 듣는 앞에서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압살롬을 해치지 말라고 부탁(5절)한 것을 들었기 때문(12절)입니다. 이에 요압이 압살롬에게 달려가 그를 죽였습니다(14~15절).
요압은 유능한 전략가요 세상이 인정하는 용서였으나
자신의 판단을 더 중요시하여 왕에게 불충성하는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압살롬이 자랑거리로 여겼던 아름다운 머리털은 그를 죽음으로
이끈 원인이 되고 말았고, 압살롬이 세우려던 그의 나라는 결국 하나님 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학력이나 재력 그리고 외모나 몸매를 자랑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며 살아갑니다.
어리석은 부자가 많은 재물을 쌓아두고 앞으로 보란 듯이 멋들어지게 살아가겠다고
자랑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죽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허무하고 안타까운 일(눅 12:16~21절)
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죽음은 잠이요,
일순간 안식하는 상태이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에게 죽음은 영원한 멸망과 형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 기준으로 살아가지 않아야 하며,
세상 자랑에 취해 살아가지 않아야 합니다.
내 자신이 자랑할 것은 오직 예수 십자가 복음뿐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남보다 높아지려고 애쓰지 말고, 설령 많은 것을 가졌다 할지라도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삶을 통해
내 자신의 삶이 주님의, 주님에 의한, 주님을 위해 사는 인생이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열심을 내어 쌓아야 할 인생의 탑은 사람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라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통치와 섭리를 온전히 신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사탄의 권세는 심판받고 패망합니다(16~18절).
사탄은 하나님을 대적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유혹해 왔습니다. 그
러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을 통하여 사탄의 모든 계략은 실패로 끝이 났고,
사탄의 견고한 진을 무너뜨려 주심으로 궁극적인 승리를 안겨다 주셨습니다.
지금도 변함없이 사탄은 공중 권세를 잡고 끊임없이 유혹해 오지만,
이는 잠시뿐입니다. 이미 사형 선고가 내려졌기 때문에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 판결한 그대로 시행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말씀을 성취하시는 분이심을 기억하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복음 안에서 복음으로 충만하여 선과 거짓을 분별하므로
영적인 싸움에서 온전히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겸
손한 마음으로 자기 자신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하나님의 통치와 섭리를 신뢰하므로 세상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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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보고 요압에게 가서 압살롬이 상수리 나무에 걸렸습니다.(10) 보고한다.
요압은 어찌 당장 쳐서 땅에 떨어 뜨리지 않았는냐 나무란다.(11)
다윗 왕이 소년 압살롬을 해하지 말라하였기 해하지 않았다고 보고한다.(12)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압은 지체없이 상수리나무로 가서 압살롬의 심장을 찌른다.(14)
요압의 부하 10여명이 압살롬을 쳐 죽였다.(15)
비극적인 결말이다.
요압도 다윗 왕의 말을 듣지 않았다.
요압에게 압살롬은 적의 우두머리 일 뿐이였다.
왕의 명령을 듣지 안아도 되는 상황은 아니지만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해 버린 인물이다.
다윗이 범죄로 말마암았던 다윗 집안의 범죄와 가문의 싸움이 이렇게 막을 내린다.
압살롬의 반역은 압살롬의 죽음으로 끝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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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로 심판히시는 하나님
거룩하신 성호에 영광과 존귀를 영원토록 받으시옵소서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사 반드시 폐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하심이 다윗의 생애에 기록된 말씀을 묵상하고 있는 시간입니다.
징계하시는 중에도 끊임없이 공급되는 하나님의 위로를 통하여 절망하지 않고
신앙의 용기를 잃지 않도록 도우시고 회복을 위한 메시지를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오늘을 사는 우리 성도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오니 감사드리옵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주신 것들이(생명, 재물, 명예, 권력, 자랑 등등)
명예와 교만의 상징이 되어 도리어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에 사용되고 있지는 않은지...
주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나를 돌아보아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통해 영광을 얻으시고, 겸손을 통해 존귀를 받으시고,
죽음을 통해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는,
주님 안에서 평화를 누리고, 우리에게 닥친 고난을 인내하며 겸손한 자세로
낮아져서 부활의 생명을 힘입은 은혜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우리가 고난을 당하는 기간 중 일지라도 우리에게 기회를 주실 때를
위해 준비하는 신앙생활을 하는 믿음과 소망을 주시옵소서
항상 깨어 기도와 말씀으로 성령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기를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