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싱클레어 퍼거슨은 <성숙의 길>에서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를 '감정에 지배를 받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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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어린아이의 특징은 육적 아이의 특징과도 비슷하다. 집중력이 없을 때 욕구에 휘둘리게 되고, 성장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영적 어린아이의 특징은 '단단한 음식을 먹지 못하는 자'라고 정의한다. 여기서 단단한 음식은 말씀을 통해 영적 영양분을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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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적 어린아이는 말씀을 통해 공급을 받지 못한다. 왜 말씀을 통해 공급을 받지 못할까? 젖을 먹다가 이유식을 먹는 아이들은 적응해야 한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어린아이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면, 말씀을 묵상하면서 맛보는 기쁨을 누리지 못한 것인데 주로 죄는 아니지만 유익하지 않은 것들에 몰두하기 때문이다. 단것을 많이 먹으면 입맛을 잃어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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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가 되지 않는 것이 기준이 될 때,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선물들에 마음이 빼앗겨 하나님과 멀어질 수 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하나님께로 멀어지게 하는 것은 악이 아니라 소와 결혼과 밭의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죄가 아니면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면된다는 식의 사고는 지속적인 성장을 방해하는 신념이다. 바울은 '모든 것이 가하지만'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다'고 자신의 기준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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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꾸준히 영적 입맛을 개선시켜야 한다. 결국 영적 성숙의 척도는 내가 영적성숙을 위해 무엇을 버렸는가로 판가름된다. 더 성숙해 보이는 사람과 덜 성숙해 보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성숙은 희생한다. 영적 분별력을 가지게 되고 과대광고에 속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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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는 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기도를 통해 깊은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많이 있다. 그들을 깊은 기도의 세계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은혜가 필요하고 또한 은혜를 동기로한 훈련이 필요하다. 성경을 묵상하는 것은 지적 활동이지만 지적인 영역이 아니라 마음의 영역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는 마음을 쏟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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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은혜를 통해 훈련에 이르도록 순종하는 길은 칭의와 성화가 연결되는 길이다. 퍼거슨은 교회 안의 두 가지 기둥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은혜를 받기 위한 예배의 회복과 성화를 위한 훈련의 회복이다. A.W.토저는 <이것이 예배다>에서 오늘날 교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예배를 잃어버린 것이라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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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는 왜 오셨는가?. 그분은 왜 잉태되셨는가? 그분은 왜 태어나셨는가? 그분은 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며 지금은 아버지 우편보좌에 앉아 계시는가? 이 모든 질문의 답은 '반역자들을 예배자로 회복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현대 복음주의에서 예배는 잃어버린 보석이다. 우리는 조직화 되어 있고, 열심히 사역하지만, 갖지 못한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예배하는 능력이다. 복음은 현대교회가 잃어버린 빛나는 보석이다. 나는 우리가 이 보석을 발견할 때까지 찾고 또 찾아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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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또한 성화를 위한 훈련이 필요하다. 이것의 핵심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인데, 그리스도로 충만하다는 것은 말씀이 내 안에 충만하다는 뜻이고 말씀에 순종한다는 뜻이다. 성령충만에 대해 말할때도 골로새서에서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하라" 말씀하고 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신비적인 어떤 느낌이 아니라 말씀으로 교제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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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인격을 경험하게 된다.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먼저 행해주신 일들 즉 복음을 묵상할 때 그 복음의 은혜가 흘러들어온다. 그리스도께서 행해주신 그 은혜를 감격할 때 결국 나 중심적인 영적 어린아이의 상태에서 점점 벗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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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영적 성숙은 자신을 벗어나는 은혜를 누리는 것이고, 자신을 벗어나는 삶 즉 타인을 위한 삶을 통해 사명을 발견하고 이루는 것이다. 영적성숙이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함으로 나 중심적인 삶을 벗어나는 것이다. 참된 성화는 어린아이의 일을 벗어나는 것인데, 감정적 삶, 내가 집중하는 삶,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원하는 삶에서, 하나님 중심으로의 변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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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성화의 뿌리에는 '원함의 변화'가 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한다고 기도하셨듯이, 성숙의 길목에는 언제나 내 의지가 아닌 아버지의 의지를 이루고 싶어하는 사랑으로 희생하기를 기뻐하는 삶이 있다. 예배의 회복과 훈련의 회복을 통해 칭의와 성화의 연결을 이루는 삶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사랑에 잠겨 나 중심에서 벗어나는 복을 누리게 하는 것이 진정한 성숙의 길일 것이다.
고상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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