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멋진 지구여’
오늘 저녁 ABC 뉴스는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로 출근했다가 돌아오지 않는 아내를 찾아 여전히 거대한 잔해의 산 주위를 서성거리는 마이클이라는 남자를 인터뷰 했다. 시신 식별 DNA 검사를 위해 아내의 칫솔을 소중하게 싸서 가져온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그 끔찍한 날 아침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침에 서로 직장 가느라 바빠 눈도 제대로 못 마주쳤습니다. 그 사람의 눈을 한 번 더 볼 수 있다면, 그 사람을 한 번 더 안을 수 있다면, 한 번 더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대해 ‘한 번 더를 외치는 그를 보며 나는 20세기 미국 문학 시간에 가끔 가르치는 손톤 와일더(1897-1975)의 ’우리 마을‘이라는 작품을 떠올렸다. 1938년에 플리쳐 상을 수상한 이래 새로운 연극 기법의 잘 짜여진 구성, 시적인 문채로 미극 연극사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이지만 ’우리 마을‘은 이렇다 할 줄거리도, 극적인 요소도 없이 다만 제목 그대로 미국 뉴햄프셔 주의 어느 작은 시골 마을의 일상을 모사하고 있다.
3막으로 되어 있는 연극이 시작하면 나레이터 겸 배우, 때로는 무대 위의 연출가 역할까지 하는 무대 매니저가 나타나 관중들에게 직접 그로버즈 코너즈라는 마을에 대해 설명을 한다; 마을의 지리, 인구, 건물들을 소개하며 두 이웃 깁가와 헬가의 하루를 보여준다. 아침이 되어 신문배달부가 배달하고, 우유배달부가 지나가고, 엄마들은 아이를 깨워 아침을 먹여 학교에 보내고, 교회 합창 연습을 하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등, 하나도 특별할 것이 없는 아주 평범한 하루이다. 2막의 제목은 ’결혼‘, 몇 년이 흘러 이웃에서 함께 자란 에밀리 햅가 조지 집의 결혼식 날이다. 딸을 시집 보내며 섭섭해야 하는 친정 엄마, 분주한 준비, 들이닥치는 손님,들, 그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결혼식 풍경이 묘사된다.
3막은 다시 몇 년이 흘러 둘째 아이를 낳다가 죽은 에밀 리가 묻한 묘지가 배경이다. 두고 온 세상에 미련이 남아 에밀리는 무대 매니저에게 꼭 하루만 다시 삶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자신의 열두 번 째 생일에 돌아가는 것을 허락 받는다. 아침 밥을 잘 씹어 먹으라는 엄마의 잔소리, 출장에서 돌아오는 아버지, 이모와 조지에게서 온 생일 선물들 ------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지상에서의 하루를 살며 에밀리는 회한에 젖어 소리친다.
“엄마,절 그냥 건성으로 보지 말고 진정으로 봐 주세요. 지금으로부터 14년이 흘렀고, 저는 조지와 결혼했고, 그리고 이제 죽었어요. 윌리도 캠프 갔다 오다가 맴장염으로 죽었잖아요. 하지만 지금,. 바로 지금은 우리 모두 함께하고 행복해요. 우리 한 번 서로를 눈여겨 보기로 해요.”
그러나 물론 에밀리이 말을 들을 수 없는 웹 부인은 기계적으로 이런저런 선물 설명을 하기 바쁘다. 에밀리는 견디다 못해 무대 매니저에게 말한다. ’그냥 돌아가겠어요 시간은 너무 빨리 흐르고 우리는 서로를 제대로 쳐다볼 틈도 없어요 안녕, 세상이여, 안녕, 그로비츠 코니즈, 엄마, 아빠, 똑딱거리는 시계, 엄마의 해바라기, 맛있는 음식, 커피, 그리고 갓 다림질한 옷, 뜨거운 목욕물, 잠자리에 드는 것, 그리고 아침에 눈을 뜨는 것, 지구여, 내가 얼마나 몃진 곳인줄을 알았더라면------.‘
서로 질시하고, 싸우고 110층짜리 삽시간에 무너지는 곳이지만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사랑하는 연인들이 있고, 노을진 단풍산이 저토록 아름다운 이 지구는 그래도 살만한 곳인데, 항상 너무 늦게야 깨닫는 것이 우리의 속성인지라. 지금 바로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진정으로 얘기를 나눌 틈도 없이 하루하루를 버겁게 살아간다.
마이클의 아내는 무너지는 세게무역센터에서 탈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집 전화로 음성 사서함을 울먹이는 목소리로 남편에게 메시지를 남겼다고 한다. ’당신을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 주세요.‘
언젠가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라는 책에서 본 한 구절이 생각난다.
“당신이 1분 후에 죽어야 하고 꼭 한 사람에게 전화를 할 수 있다면 누구에게 전화해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리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