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토론성 글들과는 전혀 다른..
그냥 떠올라서 적는 저의 스포츠 관람이야기..
해외까지 나가,
좀 좁혀 서울외 지역까지 가서,
스포츠 경기를 볼만큼의..
열정과 경제적 여유는 없던 가정이라..
지역은 서울..
1.
1986년 아시안 게임 때에는..
직관했던 유일한 경기는..
복싱..
당시만 해도 복싱은
올림픽,아시안게임의 효자종목이었기에..
분명 좋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내가 직관관 날만은
우리나라 선수의 금메달이 없었다..
애국가가 울리는 시상식은 한번도 못봄..
대신 (이름은 분명하게 기억난다.)
오광수란 선수가 은메달을 땄고..
그날 우리나라 복싱의 유일한 메달..
사실 이날이 기억에 남는건..경기보다는..
청량리 산동네에서..1호선 타고 신설동가서..
성수까지 2호선 외선 타고 가서..다시 종합운동장역까지..
경기 끝나고 똑같이 돌아온..첫 강남 여행..
아버지,할아버지,나..이렇게 셋이서..
이상하게 기억에 남는 것도,별것 아닌데..
오는길에 성수역 갈아타는 벤치에 셋이 앉아서 전철 기다리던 어느 순간..
2.
서울올림픽 때도 딱 한경기..
당시 정식종목은 아니고 시범경기였던 야구..
할아버지랑 둘이서 갔다..
우리나라와 푸에르토리코의 3,4위전..
난 이날 푸에르토리코라는 나라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시범경기라고 공짜였는데..
그나마 관객은 잠실 야구장에..
나랑 할아버지 합쳐서 5명 됐으려나..
디테일한 경기내용은 거의 기억안나고..
우리나라가 이겨서 동메달 땄고..
유독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포수 겸 4번타자였던 김동수가 홈런을 쳤다는것..
당시엔 지역연고제니 그런것 몰랐기에..
막 좋아하기 시작했던,허구헌날 지는 롯데자이언츠에..
김동수가 입단하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2년 뒤 김동수는 LG트윈스에 데뷔..신인왕에 팀우숭..)
3.프로야구 경기를 처음 직관한건..
시기적으로는 1과 2의 사이에 있는 1987년..
그것도 무려 해태와 빙그레의 한국시리즈..
아버지와 아버지 직장동료 10분정도와 같이 봤다..
경기적으로는 빙그레가 이겼다는 것만 기억에 남고..
(아마 이해 한국시리즈에서 빙그레가 유일하게 이긴 경기일 것이다..)
경기장 입장하는 과정에서 고생했던 게 너무 또렷하다..
6시 입장인데..이미 경기장 앞은 매표소부근부터 출구 부근까지,
이미 줄은 별 의미가 없고..그냥 인산인해..
문제는 관계자들이 어떤 이유에선지
경기장 출입문을 열어주지 않은 것이었는데..
짜증나서 열받은 아저씨들이 안에 대고 소리치고,욕하다가..
어느 순간 문을 마구 밀치기 시작..
처음 몇 사람이 밀치기 시작하니,거기에 있던 모두가 문을 향해 돌진..
결국 유리문 박살나고(꽤 소리가 컸다)..문이 사라진 출구를 향해,
경기장을 둘러싸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한꺼번에 밀쳐들어가기 시작..
어느 순간 발이 땅에서 떨어져있었고..
그 어른들의 몸사이에 끼어서,죽을것 같은 와중에..
당시에 미아,유괴 사건이 워낙 많던 때라..아버지 손만 꽉 잡고 있었다..
인파에 밀려 공중에 둥둥 뜬 상태로 꽤 많은 거리를 끌려가다보니,
어느 순간 야구장 관중석에 앉아 있기는 했는데...
너무 아파서 막 울어서 얼굴은 눈물 범벅에,한 3회 정도까지는 멘붕상태..
농담같은 이야기를 적어본건..
올림픽 너무 재미있고..
야구가 다시 올림픽 정식 종목 되면 좋겠고..
롯데가 죽기전에 한번만 우승했으면 하는 바람..
첫댓글 ㅋㅋㅋㅋ 리얼리티에 근간을 둔 매우 공감 가는 글이네요... 전 그 김동수가 입단한 LG팬... 우승은 고사하고 여름까지 제대로 된 야구나 했으면 좋겠네요... 90년대엔 이런 팀이 아니었는데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