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212900.html#ace04ou
오늘도 시작부터 초를 좀 치고 시작하자.
한국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만들 수 없었다.
만들 수 없다. 만들 수 없을 것이다.
올해 넷플릭스 최고 히트작을 넘어 현재 전세계 최고 인기 콘텐츠가 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간접적으로 선사하는 ‘국뽕’에 취해 있는 독자들은
이미 시작부터 기분이 상했을 것이다.
항변하고 싶을 것이다.
어쨌든 케이팝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이다.
한국이 무대다. 한국인이 주인공이다.
물론 국적은 한국이 아니다. 미국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케이 콘텐츠가 아니다.
나는 이 놀라운 애니메이션을 지나칠 정도로 재미있게 본 사람이다.
빌보드 차트 2위에 오른 주제곡 ‘골든’(Golden)은 너무 들어서 가사도 외울 지경이다.
다만 이것이 한국 콘텐츠 시장에 새로운 길을 열어준 것처럼 환호하는 여러분의 기대에 동참할 수 없을 뿐이다.
사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처음 본 날 나는 어느 정도 기대를 가졌다.
한국 콘텐츠 제작사들이 이것을 몰염치하게 따라 해서라도
기울어가는 콘텐츠 시장(적어도 영화 시장은 기울었다)의 판도를
바꿀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내놓으리라는 기대다.
두번째 본 날 나는 기대를 접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완벽한 할리우드 상품이었다.
‘쿵푸 판다’가 중국이 아닌 온전한 할리우드 상품인 것처럼 말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한국인이라면 최초 기획안에도 등장하지 못했을 아이디어로부터 출발하는 작품이다.
케이팝 스타들이 악마를 사냥한다는 아이디어다.
한국 제작사 막내 직원이 기획 회의에서
“블랙핑크 스타일 여돌 그룹이 악마 사냥꾼이고요,
서울을 지키던 그들이 신인 남돌 그룹이 악마가 보낸 저승사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노래로 대결하는 판타지 액션물 어떨까요?
오에스티(OST)는 와이지(YG)나 에스엠(SM)이랑 같이 만들면 괜찮지 않을까요?
신인 여돌들 캐스팅하고요”라고 말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 것 같은가?
고참 직원은 웃으며 말할 것이다.
“케이팝 퇴마록이니?”
팀장은 고개를 저으며 말할 것이다.
“아티스트 이미지 망가질 텐데 어떤 기획사가 자기 그룹에 그런 걸 시키겠니.”
부장은 ‘쟤를 대체 누가 뽑았니?’라는 표정으로 말할 것이다.
“아이돌 주인공 영화 한국에서 잘되는 거 봤니?
그거 팬들만 보러 가.
중국 수출도 될까 말까 한 시절에 뭐? 그걸 세계 시장에 팔아?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어디 잘되는 웹툰이나 웹소설 좀 알아봐.”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한국인이 상상할 수 있는 창작물이 아니다.
이것은 완벽한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이다.
케이팝과 남산타워와 저승사자와 김밥 등 우리에게 익숙한 모든 요소를 다 제거해 보자
남는 것은 디즈니, 픽사, 드림웍스,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 등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세상 누구보다도 잘해온 고유의 특징들이다.
프랜차이즈 상품으로 팔 계획까지 염두에 둔 과장되고 매력적인 캐릭터들.
개인의 상처를 극복한 주인공이 세계도 구원한다는 미국적 영웅 서사.
과장되고 뒤틀리고 세련된 유머 감각.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더없이 할리우드적인 서사와
프로덕션의 뼈대를 한국과 케이팝이라는 새로운 포장지로 꼼꼼하게 싸서 내놓은 작품이다.
국립중앙박물관 호랑이 관련 상품을 거의 매진시키는 데 공헌한
호랑이 ‘더피’ 캐릭터를 생각해 보시라.
조선 민화 까치와 호랑이를 모티브로 한 이 과묵한 캐릭터를
한국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만들었다고 가정해 보시라.
훨씬 더 과하게 귀여운 나머지
오히려 별 개성이 없는,
그래서 딱히 프랜차이즈 상품을 사고 싶어지지도 않는 캐릭터가 됐을 것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감탄할 정도로 잘 배치된 한국적 설정도 한국적인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디아스포라적 특징’에 가깝다.
5살에 이민 간 한국계 캐나다인 강민지 감독은 한국 문화를
내부자가 아닌 외부자의 시선으로 재구성했다.
한국 문화를 누구보다 잘 아는 외부자의 시선이다.
외부자는 내부자보다 용감하다.
과감하다. 시원하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한국계 북미인 스태프들은
한국적 디테일을 한국인보다 더 꼼꼼하게 챙기는 동시에
한국 문화를 유희적으로 해체하길 두려워하지 않는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케이팝과 케이영화 역사상
최고의 이익을 거둔 케이 아이피(IP)의 상징으로 남을 것이다.
나 역시 소니와 넷플릭스가 어떻게든 계약을 조정하는 데 성공한 뒤
대량 생산을 시작할 호랑이 ‘더피’ 관련 상품을 반드시 구입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케이의 것이 아닌 케이 아이피의 성공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미래를 위해 써먹을 아이피는 어디에 있는 걸까?
엄청난 가능성을 갖고 있었지만
장기적인 세계관 관리와 확장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지난 세대의 유산이 되어버린 아기공룡 둘리?
어쨌든 나는 한국 콘텐츠 제작자들이 ‘케이팝 데몬 헌터스’로부터
나도 생각하지 못한 어떤 교훈을 얻었기를 바란다.
누군가는 구멍 뚫린 한국적 아이피의 혼문을 새로 세워야만 한다
한철 장사밖에 모르는 콘텐츠 저승사자만 너무 많다.
첫댓글 가상상황 설정한 거 진짜 너무나 한국 팀장 부장이 할 법한 이야기다
잘쓴 글이다 한국에서 만들엇으면 못 만들엇을거같아 ㅜ
한철장사 ㄹㅇ ㅋㅋㅋㅋㅋㅋㅋ 중간에 회의실풍경 ㄹㅇ임
케이 컨텐츠 아닌데 케이팝 포장지 씌워서 그로 인해 한국 문화 이리저리 알려지는 계기되면 좋지 뭐 일본은 이미지 장사해서 닌자 뭣도 없는 거 해외에서 좋아하잖아
한국 문화를 누구보다 잘 아는 외부자의 시선이다.
외부자는 내부자보다 용감하다.
과감하다. 시원하다.
이 문구 진짜 좋다 극히 공감도 가고...! 한국 문화라면 당연히 내부자가 더 잘 알 것 같지만 이런저런 제약이 많다 보니까 결국엔 흔해빠진 콘텐츠가 나오기 마련인데 외부자가 만든 만큼 케데헌 내용이 더 신선하게 다가온 것 같아
한국에서 살릴수 없는 맛을 잘 조리한 제작물이지
한국인이라면 한복 갓 사자들 무대의상 가터벨트나 다양하게 표현 못했을거 같아
근데 다르게 생각하면 밖에서 봤을 때 '이게 돈이 될 컨텐츠가 되었다'는 건 그만큼 주류로 올라갔다는 것, 적어도 매력적인 요소로 자리잡았다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해ㅋㅋㅋ 원래 갖고 있는 걸 객관적으로 보는 건 문화가 아니더라도 어렵다고 생각해서
기사 좋다
케데헌 처음 볼때 내내했던 생각임
한국에서였다면 절대 못만들었을거
그래도 흥행되니 분석해서 만들면 좋겠음
한국애니 흥했으면ㅜ
지금도 회사 아재들 케이팝은 여자만 소비한다 누가 돈쓰냐 이럼ㅋ 그런 사람들이 연차 높은 실무자고 의사결정자인데 절대 안돼. 대기업 밑에서 엔터가 못큰 이유
내가 계속 댓글로 달던 얘기가 이거임 한국에선 절대 못만들 컨텐츠라 한국에서 만든거 아니라고 징징거릴 일이 아님ㅋㅋㅋㅋㅋ
회의실 내용 현실적이네 ㅋㅋㅋ 글 좋다
외부자는 내부자보다 용감하다 <<<< 명언이다
우리나라 애니 웹툰 게임 다 여혐개꼰대새끼들만 있는데 어떻게 저게 나오겠음 ㅅㅂ 집게손가락 가지고도 부랄발작을 하는데 하
우리나라는 윗대가리 늙남들 싹다 디지기전까진 안바뀔듯
어쨌든 한국적인 요소 잘 고증된거 맞고 우리 문화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니 조음
공감된다
맞는말
일본,미국만 배 부르겠지만 이걸 발판삼아 한국 문화로 다양한 컨텐츠가 제작될 수 있어서 긍정적으로 보고 한국 애니 분야도 분발했으면 좋겠다 한국은 실력 출중하니깐 좀만 바꾸면 금방 발전할 것 같음
맞아 우리나라에서 만들었으면 주인공 무대 배경이 일월오봉도가 나오지 못했을듯..노리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