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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소식을 기다리는 다윗 18:24~30
24 때에 다윗이 두 문 사이에 앉아 있더라 파수꾼이 성문 위층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보니 어떤 사람이 홀로 달려오는지라
25 파수꾼이 외쳐 왕께 아뢰매 왕이 이르되 그가 만일 혼자면 그의 입에 소식이 있으리라 할 때에 그가 점점 가까이 오니라
26 파수꾼이 본즉 한 사람이 또 달려오는지라 파수꾼이 문지기에게 외쳐 이르되 보라 한 사람이 또 혼자 달려온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도 소식을 가져오느니라
27 파수꾼이 이르되 내가 보기에는 앞선 사람의 달음질이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의 달음질과 같으니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는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오느니라 하니라
28 아히마아스가 외쳐 왕께 아뢰되 평강하옵소서 하고 왕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이르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리로소이다 그의 손을 들어 내 주 왕을 대적하는 자들을 넘겨주셨나이다 하니
29 왕이 이르되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하니라 아히마아스가 대답하되 요압이 왕의 종 나를 보낼 때에 크게 소동하는 것을 보았사오나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였나이다 하니
30 왕이 이르되 물러나 거기 서 있으라 하매 물러나서 서 있더라
아들의 죽음 소식과다윗의 반응 18:31~33
31 구스 사람이 이르러 말하되 내 주 왕께 아뢸 소식이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 왕을 대적하던 모든 원수를 갚으셨나이다 하니
32 왕이 구스 사람에게 묻되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구스 사람이 대답하되 내 주 왕의 원수와 일어나서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청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33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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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두 문 사이에 앉아 있던 다윗은 아히마아스가 온다는 말에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올 것이라고 합니다. 아히마아스는 승전 소식을 알리고, 압살롬의 안부는 모른다고 둘러댑니다. 이어 구스 사람이 와서 압살롬의 죽음을 알립니다. 다윗은 마음이 아파서 아들 압살롬의 이름을 부르며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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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소식을 기다리는 다윗 18:24~30
다윗은 초조하게 전쟁 소식을 기다립니다. 다윗이 앉아 있는 ‘두 문 사이’(24절)는 바깥 성문과 안쪽 성문 사이로, 이곳에는 위병소나 공적 모임을 하는 장소가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달려오고 있다고 파수꾼이 알리자, 다윗은 그가 전쟁 소식을 전하는 전령임을 압니다. 앞에 오는 사람이 아히마아스라고 하자, 다윗은 그가 좋은 소식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두 사람 중 먼저 도착한 아히마아스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승리를 보고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압살롬의 안부만을 묻습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들의 안부이기 때문입니다. 아히마아스는 일찍 출발해서 상황을 잘 모른다고 말하며 왕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합니다.
● 더 깊은 묵상
전쟁 소식을 기다리는 다윗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무엇이었나요?
지금 나의 관심사는 공동체의 유익과 어떤 관련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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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죽음 소식과다윗의 반응 18:31~33
구스 사람도 동일하게 다윗에게 승전 소식을 알립니다. 전쟁 중에는 전쟁의 승패가 가장 중요한 이슈입니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압살롬의 안부가 더 중요했기에 승리의 치하도 없이 바로 압살롬의 안부를 묻습니다. 구스 사람은 압살롬을 ‘왕의 원수’라고 부르면서,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청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32절)라며 압살롬의 죽음을 기쁘게 알립니다. 다윗은 그 소식에 마음이 아파 조용히 위층으로 올라가 차라리 자기가 죽었으면 좋았겠다며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면서 통곡합니다. 자신이 죄를 짓지 않았다면 꽃과 같은 아들들이 죽지 않았을 것이기에, 다윗은 더욱 가슴 아팠을 것입니다.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만큼 그에게 내려진 징벌도 컸습니다.
● 더 깊은 묵상
압살롬의 죽음 소식에 다윗은 어떻게 반응했나요?
다윗의 가슴 아픈 통곡을 보며 오늘 내가 기억할 교훈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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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링 신앙 교육
10년 전쯤 캐나다의 어느 청소년 집회에 강사로 참석했을 때, 강의하는 시간 외에는 학생 상담을 했다. 그런데 상담했던 몇몇 학생이 놀랍게도 “절대로 우리 엄마 아빠에게 이야기하지 마세요.”라고 똑같이 말했다. “너희 엄마 아빠가 누군지 모르니까 편하게 이야기해.”라고 말하면 학생들은 몇 번씩 확인하고 나서야 “교회에 다니기 싫어요.”라고 말했다. 이유를 물으면 엄마 아빠가 교회에서는 헌신적으로 봉사하는데, 집에만 오면 온갖 인상을 쓰며 화내고 싸운다는 것이다. 그런 이중적인 모습이 싫어서 교회에 가기 싫다는 것이다.
자녀를 기쁘고 행복한 신앙인으로 양육하는 데 필요한 교육은 바로 ‘모델링’이다. 부모가 본이 되어 자녀가 그 모습을 보고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하는 것이다. 부모가 먼저 진실하게 기도하는 모습, 집중해서 성경 보는 모습, 교회에서 열심히 예배드리는 모습과 함께 집에서 가족을 사랑하고 섬기는 모습을 자녀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러면 자녀는 부모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따라 하게 된다.
우리는 본질과 본질이 아닌 것 모두를 자녀에게 맞춰 주면 좋은 부모가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착각이다. 본질은 정확히 알려 주고, 비본질은 자녀에게 맞춰 주면 된다. 본질은 예배다. 자녀에게 예배의 기쁨을 알려 주고, 예배자로서 합당한 삶의 본을 보이는 것이 참된 신앙 교육이다.
사춘기 자녀 웃으며 키우기 / 김성중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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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사무엘하 18장 33절
인생의 비극은 죄에서 시작됩니다. 반역을 일으킨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왕권을 지키게 되었음에도 기쁘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집에 일어난 비극의 시작점은 다윗의 죄입니다.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이라는 다윗의 탄식은 자신의 죄에 대한 탄식입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죄를 간과하지 않으십니다. 작은 죄도 크게 보는 성도가 죄의 영향력을 막고 경건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고통은 헛되지 않다. 인생의 가장 큰 교훈은 가장 큰 고난에서 얻는다. -엘리자베스 엘리엇
오늘의 기도
하나님, 말씀을 저버리고 인간적인 욕망을 따른 범죄의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지 보게 됩니다. 연약한 제 마음과 삶을 은혜로 온전히 붙드셔서 죄를 미워하며 그 모양이라도 철저히 버리게 하소서. 가정과 교회 안에 승리의 좋은 소식이 기쁘게 전해지도록 항상 도우소서.
오늘의 찬송(새 549 내 주여 뜻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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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란과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공의를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다윗은 압살롬의 죽음이 자신의 죄로부터 시작된 것을 깨닫고 더욱더 슬퍼했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려움이 오면 하나님의 큰 계획과 뜻을 찾기보다는 슬픔과 절망 속에서 빠
져나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도움을 의지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약속을 붙잡고 소망을 품게 하심으로 우리는 슬픔과 절망을 인내함으로 이겨 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늘에 소망을 두고 인내하는 여러분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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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파수꾼이 두 사람이 달려오고 있는데 앞사람은 아히마아스인 것 같다고 보고하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오느니라"(삼하18:27) 그때 다윗 왕의 말처럼 아히마아스는 승리의 좋은 소식만 전하고 압살롬이 죽은 슬픈 소식은 전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압살롬이 죽은 사실이 변경되지는 않습니다
결국 구스 사람을 통해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마음이 심히 아파 울었습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삼하18:33)
그러나 좋은 소식만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좋은 소식은 우리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기별은 뼈를 윤택하게 하느니라"(잠15:30)
그러므로 우리가 천사가 전해준 좋은 소식을 전하는 좋은 사람 되기를 원합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2:10~11)
좋은 사람은 입술을 닫지 않고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많은 회중 가운데에서 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내 입술을 닫지 아니할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시40:9)
그러므로 이 마지막 때에 우리가 슬픈 소식 보다는
아름다운 좋은 소식을 힘써 소리 높여 외치는 자 되기를 원합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사40:9)
그래서 아직도 주의 좋은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받게 되기를 원합니다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롬15:21)
그래서 우리와 우리 집에는 오직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만 가득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의인들의 장막에는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시1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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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7절 : 때에 다윗이 두 문 사이에 앉아 있더라 파수꾼이 성 문 위층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보니 어떤 사람이 홀로 달려오는지라 파수꾼이 외쳐 왕께 아뢰매 왕이 이르되 그가 만일 혼자면 그의 입에 소식이 있으리라 할 때에 그가 점점 가까이 오니라 파수꾼이 본즉 한 사람이 또 달려오는지라
듣고 싶은 소식이 있다면 그 소식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아가 죽었다는 소식을 기다렸던(11:24,25) 다윗이 자기 아들 압살롬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밧세바가 낳은 첫 번째 아이의 죽음(12:19), 장자 암논의 죽음(13:32), 그리고 압살롬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다윗은 죽음의 소식만 듣습니다 (12:10). 듣고 싶은 좋은 소식이 있습니까? 먼저 복음을 따라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고 진실하게 사십시오
28-33절 : 아히마아스가 외쳐 왕께 아뢰되 평강하옵소서 하고 왕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이르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리로소이다 그의 손을 들어 내 주 왕을 대적하는 자들을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하니라 아히마아스가 대답하되 요압이 왕의 종 나를 보낼 때에 크게 소동하는 것을 보았사오나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였나이다 하니
죄의 결과는 후회와 탄식뿐입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를 네 번이나 반복하며 아들의 이름을 부르지만 다윗은 아들을 대신하여 죽을 수 없습니다. 구스 사람은 압살롬을 다윗의 '대적이자 원수'라고 불렀지만,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의 '대적이자 원수처럼 살았던 죄의 결과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순간의 만족을 위해 양심과 신앙을 저버리는 어리석은 결정을 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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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환경을 넘어 기쁨을 보아야 합니다(28~33절).
아히마아스는 승전 소식을 전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소식을 듣고서도 그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압살롬의 안부부터 묻습니다. 그러자 아히마아스는 좀 전에 가졌던 열정은 사라지고 소극적인 태도도 바뀝니다.
압살롬의 일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는 말로 대답합니다. 구스 사람이 도착하자 이번에도 다윗은 압살롬의 안부부터 물었습니다. 이에 구스 사람은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다윗은 슬픔을 안고 위층으로 올라가 압살롬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했습니다. 밧세바가 낳은 첫 번째 아이의 죽음과 맏아들 암논의 죽음 그리고 이제 압살롬 마저 잃은 다윗의 슬픔은 너무나 황량하여 어디에서도 위로받을 길이 없었습니다.
전쟁의 승리로 기뻐해야 할 순간에 기뻐하지 못하고, 잔칫집이 되어야 할 이스라엘은 다윗 때문에 초상집이 되고 말았습니다. 복음은 한없는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다윗은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보다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셨다는 소식에 더 집중을 했어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복음 안에 거하는 자만이 항상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영적으로 곤고한 상태에 있고, 영적으로 배고픔과 목마름 속에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문제는 복음으로만 해결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견딜 수 없는 아픔과 슬픔을 겪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푸신 은혜 안에서 측량할 수 없는 기쁨과 감사를 누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항상 기쁘고 범사에 감사하는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살아감에 있어서 어떤 장애물들이 있다 할지라도 복음을 전하는 일만큼은 결코 포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영혼의 진정한 구원을 위해 쓰디쓴 말씀이라도 과감히 전하며, 복음으로 인하여 날마다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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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메시지에는 양면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도 무시무시한 심판과 피할 수 없는 지옥불의 메시지가 어김없이 따라옵니다.
복음은 정말 기쁜 소식입니다.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측량할 수도 없고 그 놀라운 섭리에는 다 감사할 수 없을 만큼 크고 깊고 세심한 손길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쁜 소식을 진심으로 감사하게 받지 못한다면 그 뒤에 따라오는 여호와의 준엄한 판결문을 통해 드러날 결말은 상상할 수 없는 슬픔과 두려움을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세상 가운데는 그 소식을 잠시 감출 수도 포장하여 전달할 수 있을지라도 그리스도께서 다시 임하실 때에는 모든 것이 드러나고 그 빛 아래 그림자가 존재할 수 없듯이 만천하에 눈과 눈을 맞대어 볼 수 있는 그의 나라 속에 있게 될 것을 기억하는 주님의 자녀 되길 소망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 히브리서 9: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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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압살롬의 안위를 걱정하고, 그의 죽음을 애통해한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밧세바가 낳은 첫 아이의 죽음, 암논, 그리고 압살롬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드러난 자신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공의를 보고 또 봅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울고 또 슬퍼합니다. 이런 다윗의 노심초사하는 마음을 알지 못하는 요압은 압살롬을 거침없이 죽여버립니다. 그리고 아히마아스는 승리의 기쁨만 생각하여 다윗 앞에 섭니다. 굳이 구스 사람은 이 모두를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람이기에 압살롬의 죽음을 자랑스럽게 전합니다.
이들은 모두 죽어 마땅한 다윗은 은혜로 살리시고 그의 아들들을 죽이시는 하나님을 통해 드러나는 사랑과 공의의 긴장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언제나 나의 죄를 위해 죽은 예수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의 피 흘리신 죽음은 나의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였음을 한순간도 잊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의 부활은 나를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인 것은 더욱 잊어서는 안 됩니다.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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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히마아스/늘좋은소식의사람속에 인간의양면성
ㅡ 자신의 출세를 위해 기회를 놓치지 않는 기회주의자
ㅡ 공명심에 눈이 먼
ㅡ 구스사람보다 앞질러 가는
ㅡ 상 받고 싶어하는
공명심에 눈 먼 자ㅡ 물러나 거기 서 있으라
구스 사람
ㅡ 묵묵히 자신의 일에 책임을 다해 행하는 사람
ㅡ 아무 害도 받지 않았다.
네가 본 것을 왕께 아뢰라
대의를 망각하는 다윗
ㅡ 다윗의 관심은 압살롬의 생사에 있었다
이 관심은 단순히 자식에 대한 연민 만이 아니라
밧세바 사건 이후 피의 보복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심정 때문이었을 것이다(밧세바가 낳은 첫아이의 죽음,
장자 암논의 죽음,그리고 압살롬의 죽음).
ㅡ 결과적으로 다윗은 반란 진압을 위해 싸운 군사들의 노고와
승전보를 전한 두 전령의 노고에 무관심.
ㅡ 혈육의 정에 치우쳐 다윗 왕국에 베푸신 하나님의 자비에 무관심한 우를 범한다.
☆ 전할만한 소식
1. 생명의 소식
아기의 탄생, 질병의 쾌유 등 생명의 소식이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다 주듯이, 그리스도의 탄생과 부활의 소식은 삶의 참된 의미와 더불어 영생의 기쁨을 가져다 준다(딤후1:8-10).
2. 구원의 소식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에게 전해진 구원의 기쁜 소식, 이것이 우리가 전할 최대의 소식이다(살후2:13-14).
3. 회개의 소식
이 세상의 죄인 하나가 회개를 했다는 소식에 하나님은 기뻐하시며, 이 소식 전한 자를 위해 상급을 예비해 놓으셨다(눅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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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변하지 않는 공의와 끝이 없는 사랑 안에서 흔들림 없이 걸어가는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아버지 앞에 설 때까지 겸비하고 겸손하게 주어진 사명을 위해 달려가며 그 준엄한 심판 아래 구원을 받는 믿음의 삶을 살아내는 거룩한 제자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윗 왕국에 자비를 베푸신 하나님
존귀하신 성호를 찬송합니다.
아들의 죽음을 통해 얻은 하나님의 자비를 나타내 보이시니 그 크신 은혜를 감사드리옵니다.
다윗은 다윗 왕국에 베푸신 자비를 망걱하고 지극히 육적인 아비의 정에 통곡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다윗 왕국의 반란군을 진압하고 승리하고도 승리의 소식을 전하지 못하는 진압군의 고민을 기록한 말씀을 묵상합니다.
아들의 죽음에 슬퍼하는 다윗에게 침묵하시고 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와 허물로 죄의 결과가 연이어 일어남으로 이 죄에서 얼마나 벗어나고 싶었을까요
다윗이 밧세바와 낳은 첫 아들이 죽었을 때와는 너무 다른 모습입니다.
결국은 아들의 죽음을 한번도 아닌 세번이나 당하게 되면서 많은 후회와 탄식을 쏟아 놓는 모습입니다.
네 대신 내가 죽었더라면 좋았을 걸...
자신의 죄의 결과로 이런 일들의 반복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해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고
다윗을 통해 메시야를 보내실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일에
육체인 인간의 연약함을 절실하게 깨닫게 하시고 필경은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가 죄의 값으로 그 생명을 드리는 일이 있을 것을 예비해 주시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드디어 다윗에게 임했지만
다윗은 자신의 죄의 결과로 아들을 잃고 슬퍼합니다.
우리는 죄 없으신 하나님의 독생자가 생명을 드린 화목제물로 인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그 은혜를 감사하고 찬송합니다.
다윗이 듣고 싶은 소식은 아들의 생존 소식이었습니다.
자신의 죄의 결과가 너무 긴 시간 동안 자신의 집에서 아들들이 죽는 일이 떠나지 않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짐작이되고도 남습니다.
그 죄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랬는데
또 아들이 죽음으로 절망하며 차라리 압살롬을 대신하여 자신이 죽었더면 좋았을 것이라 탄식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죄의 값으로 인해 죽는 것을 원하지 않으셔서
죄 없으신 독생자를 죽이셨습니다.
다윗의 고백은 의도하지 않았어도
하나님의 고백이 되었습니다.
'너희가 죽는 것보다 내가 죽는다'.
내 죄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자비를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우리의 삶도 어떤 사건에서 대의를 망각하고 사사로운 정에 치우치는 연약한 모습을 나태내서는 안 될 것을 교훈으로 받습니다.
일상의 사소한 일들 속에서 옆에 사람의 필요에 대해 비정하도록 인색하고 자신만의 만족만 생각하는 다윗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지
극히 육적인 모습으로 순간의 만족을 위해 양심과 신앙을 저버리는 모습이
곧 나의 모습이고 우리 가정의 모습임을 고백합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일보다 이웃의 슬픔을 배려하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