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맹의관 (優孟衣冠) [요약] (優: 뛰어날 우. 孟: 맏 맹. 衣: 옷 의. 冠: 모자 관) *優孟= 사람 이름. 優孟이 복장을 차려 입다는 말로, '그럴 듯하게 꾸며서 진짜인 것처럼 행세하다' 또는 문학예술작품 등이 '남의 것을 교묘하게 모방하여 창조성이 없다'라는 뜻.
[내용] 초(楚)나라에 우맹이라는 악인(樂人)이 있었다. 그는 키가 팔척이며 말을 잘 했으며, 항상 웃으면서 말로써 풍자(諷刺)를 잘 했다. (優孟故楚之樂人也. 長八尺, 多辯, 常以談笑諷諫)
당시 초나라의 재상을 지내던 손숙오(孫叔敖)는 우맹이 재주 많은 사람임을 알고 있었다. 손숙오는 왕을 도와 정치를 잘 하였지만, 청렴한 성품 때문에 별다른 재산이 없었다. 손숙오는 중병에 걸려 죽게 되자, 아들을 불러 유언하였다. "훗날 너는 가난해 질 것이 분명하니, 가난해 지거든 우맹을 찾아가 '저는 손숙오의 아들입니다'라고 말해라." (楚相孫叔敖知其賢人也 善待之 病且死 屬其子曰 我死 汝必貧困 若往見優孟 言我孫叔敖之子也) 손숙오가 죽자, 왕은 그의 공적도 잊은 채 손숙오의 가족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배려도 해주지 않았다. 몇 년 후, 과연 손숙오의 아들은 가난하게 되어 길거리에서 땔감을 팔아 생계를 꾸리는 형편이 되었다. 어느 날, 손숙오의 아들은 길거리에서 우맹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의 유언대로 우맹에게 말했다. "저는 손숙오의 아들입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 제가 가난해지거든 우맹이라는 분을 찾아가라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그러자 우맹이 말했다. "그대는 먼 곳에 가지 않도록 하시오." (居數年 其子窮困負薪 逢優孟 與言曰 我孫叔敖子也 父且死時 屬我貧困往見優孟 優孟曰 若無遠有所之)
그리고 나서 우맹은 집으로 돌아와 손숙오의 옷과 관을 만들어 입고, 그의 몸짓과 말씨를 흉내 냈다. 일 년쯤 지나자, 손숙오와 똑같이 흉내를 내게 되었는데, 초왕과 측근의 신하들은 모두 손숙오와 우맹을 분간하지 못하였다. (卽爲孫叔敖衣冠 抵掌談語 歲餘 像孫叔敖 楚王及左右不能別也) 초장왕(楚莊王)이 베푼 주연(酒宴)에서 우맹이 앞으로 나아가 왕에게 잔을 올리자, 왕은 깜짝 놀라며 손숙오가 다시 살아난 것으로 생각하였다. 초장왕이 우맹을 재상으로 임명하려고 하자 우맹이 말했다. "집에 돌아가 아내와 의논한 다음, 사흘 후에 와서 재상을 맡겠습니다." 사흘 후, 우맹이 알현하러 오자, 왕은 물었다. "그대의 아내는 무어라 말하던가?" "저의 아내가 초나라 재상은 결코 할 만한 자리가 아니라며 저더러 재상(宰相) 자리를 맡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손숙오와 같은 사람은 초나라의 재상으로서 충성스럽고 청렴하게 초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 덕분에 왕께서는 제후들의 패자가 되셨지만, 그가 죽자 그의 아들에게는 송곳을 세울 만큼의 땅도 없으며(其子無立錐之地), 빈곤하여 땔나무를 내다 팔아서 끼니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도 손숙오처럼 된다면 차라리 자살하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莊王置酒 優孟前爲壽 莊王大驚 以爲孫叔敖復生也 欲以爲相 優孟曰 請歸與婦計之 三日而爲相 莊王許之 三日後 優孟復來 王曰 婦言謂何 孟曰 婦言愼無爲 楚相不足爲也 如孫叔敖之爲楚相 盡忠爲廉以治楚 楚王得以覇 今死 其子無立錐之地 貧困負薪以自飮食 必如孫叔敖 不如自殺 因歌曰) 이에 초장왕은 우맹에게 사과하고, 손숙오의 아들을 불러 침구(寢丘; 지금의 하남성 임천현) 땅에 4백호의 봉읍을 주어 아버지의 제사를 모시게 하였다. (於是莊王謝優孟 乃召孫叔敖子 封之寢丘四百戶 以封其祀後十世不絶 此知可以言時矣) [출처] 고사성어 우맹의관 (優孟衣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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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남기신 흔적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