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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는 교주는 티끌만큼도 흠이 없고 그저 남의 잘못만 산처럼 크게 보이는 자들의 광신적 행태는 反문명적인 작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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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학교 대자보의 전문
[비겁한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닙니다.]
전쟁을 잊은 시대는 전쟁의 무서움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역설적이게 평화를 외칩니다.
맥아더 장군은 우리 한국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확인하는 중요한 사실은 한국이야 말로 세계의 많은 나라들 가운데
유일하게 모든 것을 걸고 공산주의에 저항하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한국인들의 위대한 용기와 불굴의 정신은 입과 붓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들은 노예상태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라고요.
그들은 자녀들에게 전쟁의 아픔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싸웠습니다.
약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선말기의 부조리함, 일제강점기의 고통, 전쟁의 비극을 알았기에
우리 건국세대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 그 의지 하나로 독일, 중동으로 나간 광부와 간호사들,
그리고 하루 중 여유로운 쉼이라는 것을 몰랐던 그 시대 사람들의 열정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고통이 뭔지 서러움이 뭔지 알았기 때문에 자신의 안락함을 추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전쟁을 잊은 시대는 전쟁의 두려움을 머리로만 인식하고 있는 듯합니다.
아니 어쩌면 머리로도 인식할 수 없을 만큼 우리는 풍요롭기에 우리 에게 다시는
그런 고통이 찾아오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 마음 깊숙이 박혀있는 생각은 이 풍요가 계속 되었으면 하는 바램 에서 나옵니다
여러분은 정말로 이곳이 헬 조선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언제부터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우리보다 못한 필리핀, 태국과 같은 나라에서
마사지를 받을 수 있었는지 생각해보신적 있으십니까?
그러면서 우리는 알바로 번 돈이 아닌 부모님 돈으로 외국여행을
다녀온 주변인과 비교합니다.
해외여행 2주 다녀온 친구와 비교하면서 1주 밖에 못가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합니다.
김정은이 두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을 금지한 이래로 모일 수 없었던
북한주민들이 모여서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남한에서 헬 조선이라는 말이 유행이라는 것도 듣기 시작했습니다.
한 탈북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한에서 가장 놀라운 것이 나무가 이렇게 많을 수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나무만 있어도 이렇게 우리들이 굶어죽진 않았을 텐데 라고요.
이것이 우리가 아무리 눈을 가려도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입니다.
수용소를 오래도록 지낸 사람이 가장 이해 못하는 단어가 사랑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들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배우는 데에 몇 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어디가 진정한 헬 입니까? 저는 진정으로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지금 전 세계에서 박해지수가 가장 높은, 모든 신뢰지수가 가장 낮은 유일한 나라,
전쟁 시기도 아닌 때에 400만을 굶겨 죽인 전무후무한 나라에게 평화를 구걸하고 있습니다.
김씨 독재체제는 역사 이래 단 한순간도 대한민국에 대한 야욕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뮌헨협정을 기억해보십시오. 협정이후 챔버레인 수상은
“우리 시대의 평화가 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1년후에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습니다.
1941년 미국은 일본의 각종 요구들이 미국 자신들의 일본에 강요한 불공평 때문이니
일본을 의심해서는 안 되고 모두 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들로 가득 찼습니다.
일본이 점령한 지역에서 미국인 선교사들과 언론인들이 핍박을 받는데도 평화를 위해
희생해서라도 일본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진주만 공습이 일어났습니다.
남베트남이 평화협정을 체결한 후 2년 후에 베트남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이런 예시는 끝도 없이 많을 것이지만 힘의 균형이 깨지면 전쟁이 일어난다는
기본진리조차 설명할 수 없는 이 시대에, 그럼 전쟁을 하자는 말도 안 되는 양비론에 젖어들어
\어떤 논리도 통하지 않는 이때에 양심에 호소합니다.
정신 차리십시오.
지금은 평화를 말할 때가 아닙니다.
억압받는 북한사람들을 생각하지 않은 채 안위유지 때문에 평화라는 가면에 숨어
거짓안도감만 조장하는 이 정권에 더 이상은 속지 마십시오.
서독은 비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잘 살았기 때문에 1조를 들이는 협상을 통해서라도 동독의 정치범들과
고통 받는 자들을 자국으로 건져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북한정권에 바치는 돈과는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그 당시 서독보다 가난 합니까?
북한이 북베트남보다 덜 교활합니까?
북한이 진주만을 일으켰던 일본보다 신뢰할만합니까?
언제까지 그렇게 '북한이 나쁜 정권만은 아니다'라는
궤변으로 국민들을 속일 것입니까?
“나는 가장 좋은 전쟁보다 가장 나쁜 평화에 가치를 더 부여 합니다.”라고 말하는
이 나라 대통령은 진정으로 평화를 위해서, 국민의 안위를 위한 대통령이 맞습니까?
트럼프는 이미 이 정권을
북한과 동지로 규정하였습니다.
같은 동지가 모인 거짓으로 뭉쳐진 남북회담이 진행되는 지금 우리나라는
역사상 가장 위험한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부산대학교 트루스포럼PNU TRUTH FO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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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8.10.14. 21:04 "공항에서 오빠들을 처음 봤는데 저를 기억한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저도 모르는 제 유년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믿기질 않아요."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 사는 윤현경(44·미국이름 사라 존스) 씨는 직선거리로 9천442㎞ 떨어진 서울까지 날아와 14일 서울 동대문구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 모임(전미찾모) 사무실에서 친오빠 태훈(49) 씨와 기태(48) 씨를 만났다.
윤태훈·기태·현경씨..SNS로 문신 사진 올려 연결
42년 만에 상봉한 윤기태·현경씨…"문신 덕분에" (서울=연합뉴스) 정수연 기자 = 14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모임 사무실에서 윤기태(48·왼쪽)씨와 현경(44·미국 이름 사라 존스)씨 남매가 현경씨의 입양으로 헤어진 지 42년 만에 상봉했다. 이들 남매는 친아버지가 왼쪽 팔에 새겨놓은 문신으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기태씨의 문신은 세월이 지나 흐릿해졌고, 현경씨의 문신은 어렸을 때 양부모가 지웠지만 이날 상봉을 앞두고 펜으로 그려 넣은 것이다. 2018.10.14.
(서울=연합뉴스) 현혜란 기자 = "공항에서 오빠들을 처음 봤는데 저를 기억한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저도 모르는 제 유년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믿기질 않아요."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 사는 윤현경(44·미국이름 사라 존스) 씨는 직선거리로 9천442㎞ 떨어진 서울까지 날아와 14일 서울 동대문구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 모임(전미찾모) 사무실에서 친오빠 태훈(49) 씨와 기태(48) 씨를 만났다.
이들 남매가 1976년 생이별한 지 무려 42년 만이다. 전북 전주에서 태어난 이들 남매는 1975년 전주보육원에 맡겨졌고 이듬해 현경씨만 홀로 미국의 한 가정으로 입양됐다.
생사도 모른 채 이역만리에서 각자 바삐 살아오던 삼남매가 중년의 나이가 되어 극적으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가 이들 남매의 왼쪽 팔에 새겨넣은 십자가 모양의 문신 덕분이다.
태훈 씨는 "아버지는 가정형편 때문에 우리를 보육원에 보내야 했는데, 헤어지기 전에 마음을 먹고 우물가에서 우리들 팔에 문신을 새겼다"고 전했다. 십자가 밑에는 자신과 두 아들, 딸까지 가족 숫자만큼 점 4개도 그려놨다.
팔뚝에 그려진 문신은 한국에 남은 형제에게 좋은 기억만은 아니었다. 유년 시절 문신을 이유로 '불량스럽다'고 손가락질받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젠가 이 문신으로 동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마음 한편에 늘 남아있었다.
현경 씨의 문신은 지워졌다. 미국인 양부모가 종교적인 이유로 문신에 거부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현경 씨의 양부모는 늘 그에게 "너의 문신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해줬다고 한다.
현경 씨는 최근까지도 이 문신이 어떤 뜻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어렴풋이 중국식 문양이라고만 여겨왔는데, 이렇게 오빠들을 찾는 계기가 될 줄 몰랐다고 회상했다.
헤어진 가족을 찾고 싶었던 현경 씨는 전미찾모와 미혼모협회 I'MOM, SNS시민동맹이 진행하는 장기실종자·해외입양인 가족 찾기 프로젝트에 왼쪽 팔에 십자가 모양과 4개의 점의 문신이 있었다는 정보와 함께 자신의 사연을 알렸다.
지난 5월 23일 SNS에 현경 씨의 사연이 올라온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가족을 알고 있다는 제보가 접수됐다. 태훈 씨의 중학교 친구인 김승현(50) 씨가 태훈 씨에게 들었던 가족사를 기억하고 있던 것이다.
현경 씨는 이날 가족 상봉식에서 "한국 입양인들은 친부모를 찾는 게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며 "저를 계기로 SNS에서 헤어진 부모와 아이, 가족들이 만날 수 있는 장이 열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살아있어 줘서 고마워요"…42년 만에 상봉한 남매 (서울=연합뉴스) 정수연 기자 = 14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모임 사무실에서 헤어진 지 42년 만에 상봉한 윤태훈(49·하단 왼쪽에서 두 번째)·기태(48·하단 왼쪽에서 세 번째)·현경(44·상단 왼쪽에서 두 번째)씨가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2018.1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