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필유린(德必有隣)
조선 철종 때에 경상도 상주 땅에 서씨 성을 가진 농부가 살았는데, 사람들은 그를 그냥 '서 선달'이라고 불렀다. 원래 선달이란 과거 시험에 급제하였으나 아직 벼슬을 받지 못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지만 이 사람은 급제와는 관련이 없었으나 그냥 사람이 심성이 착하고 무던해서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서 선달은 남의 땅을 빌려 겨우 입에 풀칠을 하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는 봄이 왔는데도 농사를 지을 비용이 없을 정도로 곤궁하였다.
생각다 못한 그는 부산의 쌀가게에서 장부를 담당하며 어렵게 사는 큰아들을 찾아갔다.
효자 아들은 주인께 통사정을 하여 6개월치 월급을 가불받아 아버지께 드렸다. 서 선달은 500리 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어느 고개를 넘던 중 그만 돈을 흘려서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때 반대쪽에서 고개를 넘어오던 한 양반이 이 돈꾸러미를 발견했는데 세어보니 백 냥쯤 되는 큰돈이었다.
한편 서 선달은 30리는 더 가서야 돈을 잃은 것을 알고는 전 재산을 잃어버렸으니 눈앞이 깜깜하였다.
다행히 돈을 발견한 사람이 착한 사람이었다. 횡재라고 좋아하는 하인에게 일러 말하였다.
“잃은 사람은 꼭 찾아온다. 목숨과 같이 귀한 돈을 잃은 그 사람은 얼마나 속이 탈까?”
그 노인은 가던 길을 멈추고 몇 시간이고 돈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한참 후에 서 선달이 얼굴이 훍빛이 되어 나타났다. 주운 돈을 서 선달에게 전부 돌려주자 서 선달은 '어른께서 제 목숨을 살려 주셨습니다.' 하며 돈을 찿아준 은혜를 갚겠다며 사례를 하려 하는데, 그 사람은 '은혜랄 것이 뭐가 있겠소. 당연한 일인데' 하고 펄쩍뛰며 사양을 했다. 그는 주운 돈 100 냥을 서 선달에게 전달을 해준 뒤 가던 길을 갔다.
서 선달도 다시 집을 향해 갔고 이윽고 어느 강가에 이르렀다. 그때 마침 한 소년이 물에 빠졌는데 구경꾼은 많아도 누가 뛰어들어서 구해 줄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그때 서 선달이 외쳤다.
“누구든 저 소년을 구하면 백 냥을 주겠소.”
그러자 한 장정이 뛰어들어 소년을 구하였다.
죽다 살아난 도령이 선달에게 말하였다.
“정말 고맙습니다. 어른이 아니었으면 저는 수중고혼이 되고 말았을 것인데, 저희 집은 안동에서 제일 부자인데 함께 가면 백냥을 갚아드리겠다.”
서 선달은 무슨 사례를 받고 싶어서 한 일은 아니었으나 자기의 사정도 어려운지라 같이 안동까지 가게 되었다.
안동의 총각집은 고래등 같은 부자집이었다. 소년의 부친이 쏜살 같이 달려왔다. 그런데 그 부친이란 분은 다름 아닌 서 선달의 돈을 찾아준 바로 그 노인이었다.
“전재산을 털어서 제 아들을 구해 주시다니 당신은 진정 의인이요. 정말 고맙소이다.”
“아닙니다. 댁의 아드님은 어르신이 살리신 것이나 같습니다. 제가 돈을 잃었다면 무슨 수로 살렸겠습니까?”
“겸손의 말씀이십니다. 7대 독자인 외아들을 살려주신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안동 권 부자는 눈물을 흘리며 아들을 살려준 보답으로 돈 천 냥을 나귀에 실어서 선달에게 주었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서 선달이 사는 상주 고을을 찾아와 백 섬지기 전답까지 사서 주고 돌아갔다.
이 일은 후에 조정에까지 알려져 안동과 상주 두 고을이 조정으로부터 후한 상을 받았다고 한다.
⭐ 요즈음에는 착하게 살기가 힘들고, 착한 것이 오히려 바보와 같이 여겨지는 안타까운 시대입니다. 그렇지만 덕필유린입니다. 덕이 있고 심성이 착한 사람은 반드시 주위에 돕는 손길이 있습니다.
(받은글)
첫댓글 덕필유린 감동적인 이야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