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8할은 바람이였다> 라고 표현한 싯귀가 있습니다. 함께했던 시간 - 우리인생의 8할은 여러분이였으며 그 완전함을 있게해준 2할또한 여러분과 함께한 음악이였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남기고서 떠나는 헤어짐입니다. 간직하고 돌아서는 출발입니다. 여러분을 추억하며 어느 시간속에서도 우리의 유일했던 사랑을 기억할 것입니다.
살아야할 세월 속 - 정겨운 인연을 믿으며...
신문기사-은퇴 전 10일을 밝힌다.
2982 사서함 언니 채송아.
10일동안 세번 "서태지와 아이들"을 만났던 이유는 바로 은퇴 발표문을 함께 작성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22일부터 잠적을 시작했는데, 나는 22일 삼일프로덕션에서 그들을 만났다. 삼일프로덕션에서는 이들의 뮤직비디오 마무리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대략의 기안을 잡고 26일 다시 그들을 만났다.
서태지가 직접 작성한 은퇴문
놀라운 것은 서태지에게 우리(나와 모대학의 교수가 같이 작업을 했다)가 써온 초안을 내밀자 그 역시 자신이 쓴 은퇴문 초안을 꺼낸 것이다. 그가 쓴 초안을 보자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한번에 쓴 초안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떤 부분은 곱게 정자체로 쓰여있고 어떤 부분은 누운 자세에서 쓴것인양 살짝 비뚤어져 있었다. 어떤 부분은 달리는 차안에서 쓴 듯 괴발개발 휘갈겨 쓴 글씨였고 어떤 부분은 잉크가 흐려져 있기도 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날때마다 틈틈이 준비했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있었다. 그가 쓴 초안은 훌륭했다. 그대로 은퇴 기자회견장에서 읽어도 될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는 신중에 신중을 거듭했다. 그는 기자회견의 형식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들이 어떤 기자의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은채 은퇴문만을 읽을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은퇴문은 팬들에게 남기는 마지막이자 유일한 메세지가 되리란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평소 같으면 청하지 않았을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서태지가 직접 쓴 은퇴문과 내가 작성한 은퇴문을 절충해 하나를 만들면서도 한줄 한줄 마다 그의 OK싸인을 받아야 했다.
서울의 장급호텔과 프로덕션 진전
이들이 그동안 주로 머물렀던 곳은 서울의 장급호텔이었다. 그중의 한곳이 1월 26일. 내가 그들을 만난 장소인 잠실의 유니버셜 호텔이었다. 어느 숙소이든지 오래 머무를 수는 없었다. 유니버셜 호텔에는 딱 서너 명만 탈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있어 비밀 유지하기에 무척 편리햇지만 나가면서 주차계원의 눈빛이 얼핏 빝나는 것을 보고 불안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시 호텔로 돌아오자 호텔 주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물론 서태지 일행은 즉시 숙소를 옮겼다. 각 언론매체에서 서울 지역의 모든 숙박업소에 연락해 제보를 부탁했다는 소문이 들리기도 했을만큼 이들은 이삼일마다 숙소를 옮겨야 했다. 뮤직비디오 작업을 했던 삼일프로덕션 역시 한번은 기자들에게 발각이 되기도 했다. 그것도 작업첫날. 물론 장소를 옮겼는데 아이러니컬했던 것은 3일째에는 다시 삼일프로덕션으로 와서 작업을 했다는 사실. 기자들은 이미 드러난 장소라고 생각했던지 삼일프로덕션을 의심치 않았고 다시는 이곳을 찾지 않았다. 안쓰러웠던 것은 그 기간동안 서태지와 3번을 만났는데 옷이 늘 같았다는 것이다.
잠적 10일은 팬들을 위한 유예기간
왜 10일동안 잠적해야 했을까. 이들의 은퇴소식이 전해지자 팬들이 그야말로'패닉'이라고 불러야 할 심각한 공황상태에 빠지고 자살부대라는 얼토당토않은 루머들이 퍼져나가고.. 그러면서 몇몇 언론들은 이들을 맹비난했다. 공인답게 떳떳하게 나와서 자신들의 거취를 설명하지 못하고 숨어다닌다고. 그렇지만 이들, 특히 서태지의 생각은 한결같았다. 만약 지금 곧바로 은퇴를 발표한다면 팬들은 더욱 충격을 받을거라는 것이었다. 주위의 압력이 거세지니까 나를 포함한 몇몇 스태프와 측근들도 '그냥 이렇게 힘들게숨어 다니지 말고 나가서 빨리 기자회견을 해버리자'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고집은 요지부동이었다. 하루는 그가 어디선가 옮겨 적은 문구라며 다음과 같은 글을 보여주었다. '하고 싶은 대로 다해도 어긋남이 없는 것이 이성이다. 나는 나의 이성을 믿는다' 아마도 그의 마음 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야 그를 이해한다. 그때도 그의 진의는 하나도 의심하지 않았다. 단지 불안했을 뿐이다. 하지만 난 감히 말할수 있다. 그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 당사자만큼 팬들을 염려한 사람은 없을꺼라고. 자살부대 얘기가 나돌고 있을 때였다. 도화선만 당겨지면 감당할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것 같은 불안한 며칠, 어느날 장소 이동을 하다가 매니저 중의 한사람인 이상철씨가 앞차에 타고 있는 이주노와 농담을 주고 받다가 내용이 너무 재밌다는 의미로 '야, 죽었다'라고 감탄사처럼 잛게 내뱉었다. 그때 나는 서태지와 함께 밴의 뒷자석에 앉아있었는데 순간 서태지가 이를 오해, 얼굴이 시퍼렇게 질리며 혼절직전까지 가는 모습을 보았다.
슬픈 농담이 오가고..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서로 장난도 치고 농담도 많이 했다. 아마 10일동안 서로에게 너무 처량한 모습만 보이기엔 그들의 자존심이 이를 용남하지 않았으리라. 한번은 어느 장금 여관의 엘리베이터에서 였다. 나와 서태지, 양현석 그리고 매니저 이상철씨가 타고 있었다. 내가 농담삼아 "지금 사진을 한 장 찍어서 신문사에 팔면 아마 거금을 받을것" 이라고 말하자 서태지가 맞장구를 쳤다. "그럼 사진을 찍어서 팔고 나랑 반 나누자"고. 우리는 웃었다. 하지만 평소같이 폭소를 터뜨리는 대신 웃다가 갑자기 어느 순간 모두들 웃음을 그치고 착찹한 표정을 지었다. 그기간동안 늘 그랬다. 서로의 기운을 북돋우기위해 장난도 치고 농담도 했지만 늘 그 웃음들은 짧게 끝났고 늘 가슴아픈 침묵이 시간들을 지배하곤 했다. 그리고 그들은 떠났다. 언젠가 서태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머무르고 싶다' 라고 얘기했다. 그토록 오랫동안 그렇게도 수많은 사람들속에서 질식할 만큼 과중한 부담을 안고 살아왔던 그의 자유시간, 개인적으로 서태지에게 '정현철'로 돌아가 자유시간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마도 수많은 팬들 또한 이에 동의할것이다.
첫댓글 "스태지와 아이들"이라는 말이 거슬린다. 자꾸 스태지,,스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