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시 여행] 단군성전.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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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단군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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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신화에 대해서는 우리는 어렸을때부터 익히 들어왔다. 단군신화는 고조선이 건국될 당시의 상황
을 반영하고 있다. 천제 환인의 아들 환웅은 다른 곳에서 이주한 선진문물을 가지고 있는 이주민들을
이끄는 부족이며, 곰과 호랑이는 강력한 토착세력을 지닌 원주민들을 대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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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와 곰이 사람이 되기를 원한 다고 했을 때 환웅이 준것은 쑥과 마늘이다. 환웅이 거느리고 있는
신은 비의 신 우사(雨師), 바람의 신 풍백(風伯), 구름의 신 운사(雲師)로 구름쑥과 마늘에서 고조선
사회가 농경사회이며, 제정일치 사회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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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성전 경내외에서는 경건한 마음으로 고개 숙여 옷깃을 여미고 종교와 이념을 초월하는 국조승모의 참뜻을 되새겨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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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성전은 한국의 국조인 단군의 영정이나 위패등을 두고 봉향하는 사당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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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과 호랑이 100일동안에 동굴에 있으면서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기를 기달리는 것은 곰 부족
과 호랑이 부족 간의 세력 다툼이라고 할 수가 있다. 곰 부족이 승리하고 호랑이 부족이 패함으로써
곰부족은 선진 문물을 가진 이주민세력과 결합하여 고조선을 건국한 것이다. 단군을 모신 대종교는
단군(檀君)숭배를 기초로 하는 우리 민족종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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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 교리는 성(性) ·명(命) ·정(精)의 삼진귀일(三眞歸一)과 지(止) ·조(調) ·금(禁)의 3법이다. 대종
교는 종교로 출발하였지만 그 시기가 바로 일제(日帝)가 한국을 강점(强占)할 때였으므로, 종교로서
보다는 항일독립운동에 더 많은 공헌을 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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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 단군 한배검 숭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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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모비 비문을 잠깐 부분적으로 살펴보면. 한배검의 한없이 높고 끝없이 높으신 대의와..~~중간생략~~그 자손으로서 어찌
잠시인들 잊으오리까. 금년 갑술년은 한님 환국의 단기로는 9191년이요, 신시 시대로 부터 셈하면 개천 5891년이요, 단군 기원
으로는 4227년이 되는데 이제야 비로소 20만 남원시민의 정성을 모아 천마산 남쪽기슭 양지바른 이곳을 터잡아 단군사를 건립
하고 나무심고 꽃씨를 뿌리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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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조(敎祖) 나철(羅喆:1863∼1916)은 일본의 한국에 대한 간섭과 강박이 날로 심해지자 이를 항의하
고자 3차에 걸쳐 도일(渡日)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국하여 구국운동이 몇 사람의 애국정객
만으로는 이룩될 수 없음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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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그는 국가의 기틀을 튼튼히 하고 민족을 부흥시키는 원동력은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데 있
다고 보고, 1909년 재동(齋洞)에서 ‘단군대황조신위(檀君大皇祖神位)’를 모시고 <단군교포명서(檀君
敎佈明書)>를 공포함으로써 고려시대 몽골의 침략 이후 700년간 단절되었던 국조 단군을 숭앙하는
단군교를 창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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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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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시조로 받들어지고 있는 단군(壇君)은 고조선(古朝鮮)의 첫 임금이며, 단군왕검(檀君王儉)ㆍ단웅천왕(檀雄天王)
이라고도 한다. 천제(天帝)인 환인(桓因)의 손자이며ㅡ 환웅(桓雄)의 아들로 B.C 2333년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하고 홍익
인간(弘益人間 :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의 이념으로 나라를 건국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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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일제 강점기에 여러 곳에 단군성전이 설립되었다는 기록이 있다.특히 한국은 단군의 개국에 맞
춰 단기(檀紀)를 사용하고 일본은 신무천황을 기점으로 한 황기(皇紀) 제정하고 중국은 황제 자손론
에 의해 황제를 기점으로 한 황기(黃紀)를 사용한다한다. 단군은 국조(개국시조)개념이라는 것을 알
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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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는 개천절은 어떤 날인고 하면 기원전(예수가 태어난 해를 기준으로
그 이전을 말하며, BC로 쓰기도 함) 2333년 단군(단군왕검)이 우리나라의 첫 민족 국가인 고조선(단
군조선)을 세운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날이다. ‘개천’은 ‘하늘을 열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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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시조로 받드는 고조선의 첫 임금. 그에 관한 우리나라의 첫 사서 기록은 《삼국유사(三國遺史)》에 전하며, 천제(天帝)인
환인의 손자이며, 환웅의 아들로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단군조선을 개국하였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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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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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하늘 신의 아들인 환웅이 하늘에서 백두산의 신단수 아래로 내려온 것을 말한다. 따라서 개천절
은 환웅이 홍익인간(널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 사상과 이화세계(이치로써 세상을 다스린다)를 선포
한 날이라고 본다. 개천절이 경축일로 제정된 것은 1909년 대종교(교주 나철)에서 종교적인 행사로
단군을 기리기 시작하면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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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도 매년 음력 10월 3일에 기념행사를 치렀다. 그러다가 1949년부터는 양력 10월 3
일로 바꿔 개천절을 기념해오고 있다. 그해부터 공휴일로도 정해졌다. 고려 시대 일연 스님이 쓴 ‘삼
국유사’에는 단군왕검이 기원전 2300년경 고조선을 세운 이야기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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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우는 우리 겨례의 시조되시는 단군할아버님을 모신 성역이다. 그 이름을 단군성전 또는 백악전이라고 부른다. 성전 안에서는
정부 표준 단군영정과 국민 경모 단군상을 봉안하여 우리 민족의 상징으로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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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단군성전의 단군천진은 신라시대 솔거가 그렸다던 고열가단군 천진이 모셔져 있다. 매년 양력 개천절 10월3일날
개천행사를 남원시와 함께 크게 치룬다 중앙에 '국조단군홍성제'라 쓴 위패를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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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신화에 따르면 단군은 한반도 북쪽에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그런데 이성계가 건국(1392년)
한 조선과 이름이 같아 ‘오래된 조선’이라는 뜻으로 ‘고조선’으로 불린다. 단군왕검은 한민족의 시조
로 받드는 고조선의 첫 임금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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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 왕검은 ‘나라를 다스리는 지도자’의 뜻을 갖는다. 이를 통해 단
군이 백성을 대신해 제사를 지내고 백성을 다스리는 최고의 지배자였음을 알 수 있다. 단군신화에 따
르면 단군의 아버지는 하느님의 아들인 환웅, 어머니는 곰이 변하여 된 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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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과 고조선에 관한 기록은 중국의 위서(魏書)와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승려 일연(一然)이 쓴 삼국유사(三國遺事) <기이편(紀異篇)>
에 실려 있고, 같은 고려시대의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帝王韻記)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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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은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고 주(周)나라 호왕(虎王 - 武王을 말함)이 즉위한 기묘년(己卯年)에 기자(箕子)를 조선의
임금으로 봉한 후 단군은 장당경(藏唐京: 황해도 신천군 文化面)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서 산신(山神)이
되니 나이가 1908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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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단군은 몇 년을 살았을까? 삼국유사에 따르면 단군은 기원전 2333년에 나라를 세우고 1908
세에 산신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또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오래살 수
있을까? 역사학자들은 단군왕검은 ‘고조선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을 일컫는 말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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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한 사람의 단군이 아닌, 고조선의 최고 지도자들이 잇달아 2000년 넘게 나라를 다스렸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 단군 관련 유적지로는? 강화도는 남한에서는 유일하게 단군과 직접 연관된 유적
이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해발 469m 마니산 정상에는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올린 제단으로 전해
오는 참성단(마니산 제천단ㆍ사적 제136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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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곳에서는 개천절에 제천행사가 열리며, 칠선녀가 전국체전 성화를 채화하는 의식이 펼쳐진다.
우리나라 전국체전의 시작을 알리는 성화도 이곳에서 첫 불꽃을 피운다. 여기서 5㎞ 떨어진 정족산에
는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고 전해지는 삼랑성(정족산성)이 자리한다. 지리산 삼성궁은 단군 할아버
지와 환인, 환웅을 모신 사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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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직단에도 단군을 모신 성전이 갖춰져 있다. 단(壇)은 믿음의 대상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흙
이나 돌로 쌓아 올린 장소를 말한다. 강원도 태백산 천제단도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낸 곳으로 알려
져 있다. 단 위에는 ‘한배검’이라 새긴 비가 있다. 한배검은 대종교에서 단군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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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여행기 이어보기 클릭
http://cafe.daum.net/b2345/9toB/1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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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남원시 보산로 75-26
(지번)식정동 산 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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