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대륙 조선사 연구회
 
 
 
카페 게시글
역사토론방(출처있는글) 진정한 친일파 매국노는 고종의 아비인 "대원군"과...고종의 형인 "이재면".
홍진영 추천 0 조회 1,162 10.07.14 10:25 댓글 78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10.07.14 11:40

    지금의 주류를 없애고, 지금의 비주류를 주류로 만들자는 이야기인가요? 어떻게요?
    번식을 못하게 하려면 어떻게요? 불임 방법을 총동원하자고요?

  • 10.07.14 11:39

    유전적으로 왜노들이 어떻게 생겼었는지를 입증하자고요? 기술적 방법은 무엇이죠? 그게 가능한가요?

  • 작성자 10.07.14 11:38

    (부록) 왜노들의 유전적 특징 중...외형적 특징.

  • 작성자 10.07.14 11:39

    일단 키가 난쟁이 똥자루다...주의해야 할 것은...현재의 한반도나 중원,위그르인들도 그런 분들이 많으니...키만 작다고 왜노 후손은 아님...

  • 작성자 10.07.14 11:41

    기록화나 구한말기 사진을 보건데...구강구조...즉,주뎅이의 구조가 대체적 으로 돌출형이다...숫가락등의 도구가 과거엔 거의 없었던데 기인한 듯...

  • 10.07.14 11:43

    왜노들의 유전자 지도를 만들어야 하는데..... 객관적으로 말이죠....
    홍선생님의 표현이 아주 재미있네요.... (하하하)

  • 작성자 10.07.14 11:45

    집안 내에서...옷을 잘 않입거나...남녀혼탕을 즐기는 체질...과거 아랫도리를 않 입고 나다니던 관습에 유래한 듯 한데...뭐 가릴것(보호할 것)이 양적(크기적)으로 마땅이 없어 보여서 그런건지...고초가 작다.

  • 10.07.14 11:45

    (하하하)

  • 작성자 10.07.14 11:47

    메이지 유신기의 정책적 유전자 극복운동인 엄청난 양키들 씨받이의 잔재로...서구인들과의 혼혈형이 아직도 많다...필리핀 식으로...

  • 작성자 10.07.14 11:49

    대륙형의 복음발음이 않돼어...국(國)을 고꾸...등으로 혀 짧게 발음한다...동남아&폴리네시안 인들처럼 아따따따따....

  • 10.07.14 11:51

    폴리네시아의 영향도 크겠지요.... 남방계의 특징이라고 할까요?

  • 작성자 10.07.14 12:20

    여타 몽골&알타이인종들에 비해...눈알맹이가 돌출형이다...대륙생활이 아닌...수마투라 섬 같은 어둔 숲이나 동굴서식의 결과인듯...대륙에도 숲은 있었을 것이니...개구리 눈이라고 다 왜노들이 아님도 유의해야 함...

  • 10.07.14 11:56

    훈도시(ふんどし; 褌), 문신(文身)... 이런거는요?

  • 작성자 10.07.14 11:56

    옷을 못 만들고...고려인들에게 하사받거나 약탈한 옷감을...갑옷식으로... 구녕을 뚤고 머리를 집어 넣은후 허리띠만 메는 형식의 전통복이 유행했다...바지는 도저히 못 만들었으니...다 내놓고 딸랑대고 다니며...아직도 그 전통이 유행하나...기저귀는 찬다...일말의 수치심은 생긴듯...

  • 작성자 10.07.14 11:57

    그나마도 없는 애들은...몸에다 문신을 해서 옷을 그린다.

  • 10.07.14 11:58

    문신(文身)은 바닷물 속에서 일을 하는 종족들이 주로 실시한 것으로 압니다. 그게 "보호 기능"을 한다고 하네요....

  • 작성자 10.07.14 12:00

    종합적으로 보건데...과거의 전통 왜노들로 보이는 자들과 가장 가까운 인종은...현재의 폴리네시안들과...아프리카 피그미종족...특히, 아마존의 야만인들 같다....아마존의 야만인들은 고려가 데려간 노예들인데...양이들의 고려족 학살에서...사람이 아닌 짐승으로 분류돼어 보호됐었지 싶다.

  • 10.07.14 12:03

    일본어(日本語)에는 "津津浦浦"라는 말을 "坊坊曲曲"이라는 뜻으로 사용하죠.... 바닷가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어요....

  • 10.07.14 12:06

    왜노(倭奴)들의 특징이 다 정리되었나요? 유전적으로 그걸 규명하려면 "유전자 지도"를 만들어야 하겠네요...

  • 10.07.14 14:26

    드디어, 구한말의 시대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내셨습니다.
    축하 드립니다.
    이론정립이 기쁘기도 하지만, 당시를 되새기자니 무척 슬프네요..~

  • 작성자 10.07.19 21:27

    늘 과분하신 격려 몸둘 바를 못찾겠습니다...서선생님...이론 정립이 다 됀게 아니고...얼핏 눈치를 본 수준이라하겠습니다...방향을 제대로 잡은 건지도 아직 미지수고여...다 완벽히 증명한다면야 노벨상감이겠져...서선생님께 노벨상을 양보해 드릴테니...한 번 도전해 주십시요.

  • 10.07.14 17:43

    흥친왕 이희(이재면)은 친일파인 것이 분명합니다. 애초에 완흥군에서 흥친왕으로 책봉된 것 자체가 흥친왕을 황족대표로 삼아 한일병탄조약을 동의하게 만들고자 했던 일본의 계략이었습니다. 한일병탄이 발표된 것이 1910년 8월 29일입니다. 이재면이 흥친왕으로 봉작된 것이 바로 그 직전인 8월 15일이었습니다. 항간에는 일본통감부에서 한일병탄조약에 동의하는 황족대표로 의친왕 이강을 세우려 하였으나, 의친왕이 이를 완강히 거부함으로, 어쩔 수 없이 이재면을 세웠고, 황족대표의 지위가 적어도 '친왕'급은 되야 했기 때문에, 이재면을 흥친왕으로 봉작했다 합니다.
    [출처=우리황실사랑회, http://cafe.daum.net/1392royal]

  • 10.07.14 17:54

    이에 부응한 흥친왕은 소위 '한일합병조약' 어전회의에 황족대표로 참석하여, 소위 '합방'을 동의하였고, 이에 대한 공로로 일본의 '공(公)'작위와 함께 은사공채금 83만원을 일본에게 수령받았고, 일본측이 내려준 [한국병합기념장]이라는 훈장까지 서훈받았습니다. 당시 매국노 이완용이 받은 은사금이 3만원이었던 것에 비하면 흥친왕이 83만원을 받았다니, 소위 '한일합방'에 끼친 흥친왕의 공로(?)는 이완용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고 판단됩니다. 또한 흥친왕은 병합을 찬성하는 '대한평화협회'라는 친일단체의 총재로 취임하기도 합니다. 죄상이 이와 같으니,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우리황실사랑회]

  • 10.07.14 18:32

    [출처=http://cafe.daum.net/1392royal/5KO7/1488?docid=57CR|5KO7|1488|20100308223832&q=%C0%CC%C0%E7%B8%E9(%C8%EF%C4%A3%BF%D5)&srchid=CCB57CR|5KO7|1488|20100308223832]

  • 10.07.14 17:57

    더 조사해보니까.... CBS 노컷뉴스(www.nocutnews.co.kr)가 늦게 보도한 것이군요...

  • 10.07.14 18:46

    한국평화협회(韓國平和協會)는 대한제국 말기인 1910년에 조직된 단체이다. 일진회의 한일 병합 청원을 찬성하며 결성된 국민협성회의 추진단체 성격이었다. 대한평화회 또는 대한평화협회라고도 불렀다.
    한국평화협회를 발기한 심일택은 국민협성회 회원이었다. 관광차 일본에 갔다가 일본평화협회의 회장을 만나 대한제국에도 평화협회를 설립할 것을 논의했다. 명목상의 목적은 한일 양국의 친선으로 세계 평화를 도모한다는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일본의 병합 찬성론자들과 미리 손잡고 병합 후의 권력 분배를 대비한 단체였다.
    총재로는 고종의 형인 이재면을 선출하고 취지서는 회장에 추선된 남정철이 작성했다.
    [출처=다음 백과사전]

  • 10.07.16 18:03

    은사금 액수는 작위와 공로, 대한제국 황실과의 관계 등을 고려해 결정됐고 작위가 높을수록 액수가 커졌다.
    이들이 받은 은사금은 불과 10여년 만에 모두 바닥났다. 무절제한 소비와 유흥 탓이었다. 1920년대 들어 귀족들의 파산이 줄을 이었고 민영휘의 아들인 남작 민형식은 가난을 이기지 못해 아들 6형제가 모두 강·절도를 저질렀다.
    윤택영은 온 집안이 차압을 당하고 가재도구가 경매에 붙여지는 등 수모를 겪다 1920년 중국으로 도망쳐 그곳에서 사망했다.
    [출처=http://news.naver.com/main/hotissue/read.nhn?mid=hot&sid1=100&gid=523808&cid=307136&iid=3972991&oid=032&aid=0002074359&ptype=011]

  • 작성자 10.07.19 09:03

    최두환 선생님의 격려 답글을 몇 일 전에 얼핏 보았기에...시간날때 신중하게 하례들일까 했었는데...은둔해 버리셔서 섭섭합니다...ㅡ. .ㅡ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