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에 신성성을 부여하려는 시도에 대한 성경상의 사례는 솔로몬의 성전 건축에서 처음으로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이보다 먼저 바벨탑 사건에서 그러한 지배자의 욕망을 엿볼 수 있지만 성경은 바벨탑에 대해서는 일체 부연하지 않는다. 설명할 가치가 없기 때문이리라. '하나님께서는 다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고린도전서의 표현은 심오하지만 적확하다.
바벨탑에 대해서 사족을 붙이자면 바벨탑을 통해 노아의 후손들을 다스렸던 니므롯은 노아가 살아있음에도 막강한 권력을 휘둘러 도시를 이루고 거대한 건축물들을 건설한다. 성경에서 언뜻 바벨론에 대하여 '가증한 것의 어미', '음녀'등으로 묘사한 것은 사실 종교를 말한다. 종교는 도시인들을 심리적으로 휘어 잡을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며, 갖가지 화려한 퍼포먼스를 통해 군중의 심리를 조종한다. 바벨탑은 그러한 종교적 퍼포먼스를 행사하는 메타포 구실을 했을 것이다. 후대에 가토릭에서 그 바벨탑의 흔적을 복원 해 낸 것은 놀랄일도 아니다. 마귀는 종교의 설계자이며 배후이다. 바벨탑의 교주 세미라미스(니므롯의 아내)는 창세기에 언급된 '여인의 후손'을 운운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사용하는 대담하고 영리한 모습을 보인다.
원론으로 돌아가서 솔로몬의 성전 건축 이전에는 아직 성막이 그 용도를 이어오고 있었다. 다윗이 궁전을 지어놓고 초라한 성막을 떠올릴 때 마다 불편하고 죄스럽게 생각되어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 성전건축을 희망했으나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솔로몬에 이르러 성전이 건축된다. 그런데 이마저 하나님의 뜻과는 어긋나고 있다는 것을 성경은 기록해 놓았다. 바로 열왕기상 8장 12절에 "여호와께서는 캄캄한데 계시겠다고 말씀 하셨으나"라고 기록하여 성전은 마지못해 허락되어졌을 뿐 전혀 하나님의 뜻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전이 지어지자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솔로몬은 흔들리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사람들의 종교심을 이용한다. 바로 성전에서 대대적인 종교행사를 벌여 지방 방백들을 초청하고 화려한 퍼포먼스를 행사한다. 이렇게하여 더욱 중앙집권을 공고히 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의도와는 관계가 없는 일이다. 결국 이스라엘은 솔로몬대에서 분열하고 만다.
그렇다면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성막이 생겨난 연유는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로 나섰을 때 부터이다. 구름기둥(물)과 불기둥(불)을 향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아갔다.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이 있는 곳에 늘 함께 이동했다. 이것이 상징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백성들과 함께 하신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임마누엘 사상'이 자리잡은 연유다. 성막이 성전과 다른 점은 이동형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원래 하나님의 의도가 그것이다. '백성 있는 곳에 내가 있겠다' 는 것.
그러나 이 임마누엘이 사람의 노력으로는 불충하다는 것을 솔로몬의 성전 건축에서 어떻게 어긋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그래서 궁극적 임마누엘은 결국 성령께서 우리 사람 존재 안으로 들어와 버리는 일이 필연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종교의 영'에 빠진 이들은 바벨탑의 과거로 자꾸 되돌아가려 한다. 거대한 건물에서 종교쑈를 감상하며 거짓 경건에 도취되고 마치 그것이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것인양 중독되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종교 사기꾼들은 되도록이면 거대한 건물을짓고 화려하게 단장을 하고 신성한 건물임을 주장하며 사람들의 종교성을 부추키는 것이다. 바벨탑은 진정으로 마귀의 놀이터이며 덫이고 오늘날도 여전히 현대판 바벨탑들이 명멸하고 있다.
첫댓글 옳은 글인데 이해 하는이가 적어 저라도 응원하는 마음을 전 합니다.
진리는 어느시대를 막론하고 외면 당할 뿐아니라 배척 당했습니다
이해는 되어도 자신이 택한 방향과 맞지 않으므로 외면하는 것이겠지요
칼뱅, 쯔빙글리, 루터마저 합심하여 재세례파들을 처형하거나 추방하는등의 극악한 법 제정에 협력한 것을 보면 한국의 목사들이 자리를 보전받기 위해 신사참배를 옹호하고 그것에 반대하는 신자들을 밀고했던 행태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언제나 있는 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