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람은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나?
헌금은 주로 하는 것으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청년 때 난생처음으로 헌금을 받아보았습니다. 봉투 안에는 5천 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무렵 결혼을 전제로 사귀는 자매가 있었는데, 아마 누군가 데이트 비용에 보태라고 헌금을 한 모양입니다. 아무튼 그 돈으로 한 분식집에서 냄비국수를 사 먹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후로도 주님을 섬겨 오면서 간혹 헌금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여쭙는 과정을 통해, 제 안에 한 가지 원칙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사장이 경리 직원에게 준 돈처럼 쓰는 것입니다. 그중엔 물론 본인 월급도 있겠지만, 직원들 월급 주라고 맡긴 것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그런 돈이 생기면, 영어권 전 시간 봉사자들을 한인 식당에 데려가거나, 기독교 책방에 가서 관심 있는 책자를 사거나, 다른 성도들을 위해 다시 헌금합니다.
발람이 발락의 신하들에게 대답하였다.
“발락 왕께서 궁전을 은과 금으로 가득 채워 나에게 주신다 하여도,
나는 여호와 나의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일은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할 수 없습니다”(민 22:18).
위 본문을 포함하여 민수기에서의 발람의 기록을 읽을 때마다, 그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잘 모르는 상태로 그다음 진도로 넘어가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작정하고 관련 구절들을 일일이 찾아 묵상하면서 마침내 그 의문이 풀렸습니다(민 22-24, 31장, 신 23:4, 수 13:22, 24:9, 미 6:5, 벧후 2:15, 유 11, 계 2:14). 아래 내용은 그것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여호와께 허락을 받음: 먼저 브올의 아들 발람은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의 참된 신언자였습니다. 따라서 그는 비록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이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으니,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거라. 그러나 너는 내가 너에게 하는 말만 해야 한다”라는 조건부 허락을 받고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발락 앞에서 총 네 번의 비유로 여호와의 말씀을 바르게 대변했습니다. 그중에는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하지 않으시고”, “그분은 야곱의 죄악을 보지 않으시며/ 이스라엘의 잘못을 보지 않으신다네”, “야곱이여, 그대의 천막이,/ 이스라엘이여, 그대의 장막이 어찌 그리 수려한지!” 등과 같은 주옥같은 내용들도 들어있습니다(민 23:19, 21, 24:5).
여호와께서 금지하심: 이 이야기의 대략적인 배경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를 거쳐서 가나안 땅 입구에 도착해서, 그들에게 저항하는 세 왕들을 무력으로 물리쳤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모압 왕 발락은 “소가 들의 풀을 먹어 치우듯” 몰려오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길 수 없음을 알고, 사람을 보내어 그럴 힘이 있는 발람에게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고 제안했습니다(민 22:6). 그러나 하나님은 “너는 이들과 함께 가서는 안 된다”라고 단호하게 막으셨습니다(12절). 그러자 발락은 “지위가 더 높은 지도자들”을 “더 많이 보내어” 발람을 설득했고, 바로 이 대목에서 발람이 그들에게 위 본문처럼 말한 것입니다. 그 후에 하나님은 발람이 눈치도 없이 거의 떼쓰듯이 자꾸 요청하자 부득이 허락은 하셨지만, 실제로는 여호와의 천사로 나타나셔서 발람을 태우고 가는 나귀를 가로막으셨습니다.
발람의 탐욕과 하나님의 크신 역사: 사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자신의 눈동자처럼 지켜주셨던”(신 32:10) 하나님을 발람이 알았다면, 그들을 저주하러 와 달라는 발락의 요청을 받았을 때 바로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그러나 본문처럼 누구도 묻거나 약속하지 않은 ‘은과 금’ 이야기를 발람이 두 번이나 거론한 것은, 그 안에 ‘은과 금’에 대한 탐욕이 있었음을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민 24:13).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발람(우리)의 약함과 실패를 통해서도 그분의 일을 하셨고, 또 지금도 하고 계십니다.
불의의 삯을 사랑한 발람: 민수기 31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의 딸들과 음행을 저지르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다가, 재앙으로 이만 사천 명이 죽게 된 것이, “발람의 계락”에 따른 끔찍한 결과였음을 밝힙니다(16절). 아마도 발람은 앞에서는 하나님의 선지자로 처신했지만, 뒤로는 발락에게서 은, 금을 받고 그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해칠 계략을 제공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신약도 “발람은 불의의 대가를 사랑하였다”(벧후 2:15), “삯을 위하여” “발람의 그릇된 길”(유 11), “발람은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을 놓았다”(계 2:14)라고 기록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이 주제를 묵상하면서, 시날에서 만든 아름다운 겉옷을 훔쳐서 이스라엘 백성이 아이에서 패배하는 숨은 원인을 제공한 아간이 생각났습니다. 또한 (저를 포함해서) 오늘날 소위 주의 종이라는 이들 중에도 얼마든지 현대판 발람이 나올 수 있음을 보았습니다. 사실 교회의 하락을 가져 온 세상과의 타협의 이면에는, 일부 교회 인도자들이 돈 문제에 대해 투명하지 못한 점이 한 몫을 차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점에서 발람의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이고, 또 우리 모두에게 경고가 됩니다.
첫댓글
헌금??
무당이 받는 것은 복채라고 하지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