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nri Matisse (1839.12.31 ~ 1954.11.3)
20세기 표현주의 화가로 야수파 운동을 주도했다. 강렬한 원색을 사용해 행복함과 충만함을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앙리 마티스는 20세기 표현주의 화가로, 파블로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회화에 위대한 지침을 놓았다고 평가된다. 그가 주도한 야수파(Fauvisme) 운동은 20세기 회화의 일대 혁명으로 여겨지는데, 야수파란 고흐와 고갱의 영향을 받아 프랑스에서 일어난 미술 사조로, 원색의 강렬한 색채 사용이 특징이다.
순수하고 섬세한 색조, 단순한 선과 구성을 토대로 행복함과 충만함을 표현한 그의 그림들은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깨끗하게 만든다. 다음과 같은 마티스의 말은 그의 작품 경향을 잘 설명해 준다.
“나는 균형이 잡힌 무구(無垢)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 지친 사람에게 조용한 휴식처를 제공하고 싶다.”
마티스는 1869년 12월 31일 프랑스 북부 르 카토 캉브레지에서 태어났다. 상인이었던 아버지는 그가 자신의 뒤를 잇기를 바랐고, 마티스는 이에 따라 파리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변호사 자격증을 땄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법률사무소에서 서기로 일했다. 어린 시절 그림에 대단한 재능을 보였다는 이야기는 없으며, 고등학교 시절에 데생으로 상을 받은 일도 있지만 후일 그의 표현에 따르면 “그 당시에는 그림이 뭔지도 몰랐다.”라고 했다.
그가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는 단순하다. 법률사무소에 근무하던 중 맹장 수술을 받고 누워 있을 때 미술 교본에 실린 그림을 베끼던 이웃이 권유하여 취미로 시작했다고 한다.
1891년,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마티스는 미술대학 입학시험을 준비하고자 파리 쥘리앙 아카데미에 들어갔고, 이곳에서 오랫동안 우정을 나누게 될 화가 알베르 마르케와 만났다. 이듬해 마티스는 당초 목표였던 에콜 데 보자르에 낙방하고, 장식미술학교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해 말, 루브르 미술관에서 모사를 하던 중 귀스타브 모로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자신의 화실에 받아 주었다.
1893년, 마티스는 카롤린 조블로와 동거를 시작하고 딸 마르그리트를 낳았다. 마르그리트는 마티스에게 크나큰 영감을 주는 원천이자 그의 작품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평가해 주는 중대한 조언자가 된다.
1895년에는 에콜 데 보자르에 들어갔으며, 이듬해 살롱전에 그림 4점을 출품해 성공을 거두고 국립미술협회 준회원으로 선출되었다. 화가로서 순탄하게 첫걸음을 뗀 그는 인상파 화가 카미유 피사로를 만나면서 인상파 미술에 관심을 가졌고, 고갱, 세잔, 우키요에풍의 예술 세계에 눈을 떴다. 이후 마티스는 더욱 밝고 강렬한 색채 표현에 몰두했는데, 그 결과 1897년 살롱전에 5점의 작품을 출품했다. 그러나 그중 〈저녁 식탁〉은 “클로드 모네를 염두에 둔 인상파 그림”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1899년에는 에콜 데 보자르의 조각부 야간반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는 평생 약 60여 점의 조각을 제작할 정도로 조각에도 큰 관심이 있었다. 또한 이해부터 살롱전 출품을 그만두고, 1901년부터 앵데팡당전에 출품하기 시작했다. 파리 미술계에서 마티스는 진보적이라고 간주되었음에도 다소의 인정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넉넉한 형편은 아니어서 생계를 꾸리기 위해 1900년 만국박람회 전시장으로 사용될 그랑 팔레 장식을 맡기도 했다.
1905년경부터 ‘야수파’의 시기가 전개되었다. 원색의 대비 기법, 단순화된 선을 바탕으로 점차 색을 강렬하게 사용하는 기법을 시도하던 그는 빨강과 초록, 주황과 파랑, 노랑과 보라의 강한 보색 대비와 활달하게 꿈틀거리는 듯한 붓놀림을 사용했다. 이런 시도는 〈열린 창〉과 〈모자를 쓴 여인〉에서 처음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1905년 그는 살롱전에 〈젊은 선원〉, 〈목가〉를 출품했는데, 이 작품들은 강렬한 색채 표현을 연구하던 다른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과 나란히 전시되면서 ‘야수들’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20세기 회화에서 최초의 중요한 ‘이즘’인 포비슴(Fauvism), 즉 야수파는 이렇게 탄생되었다. 마티스는 야수파의 선두로 인정받았으며, 이듬해에 개인전을 열었다. 1908년에는 뉴욕과 모스크바, 베를린 등에서도 개인전을 열만큼 화가로서 성공적인 길을 걷기 시작했다
Study of a Nude, 1899
Crockery on a Table (1900)
Fruit and Coffeepot (1898)
Gustave Moreau's Studio, 1894-1895
Woman Reading (La Liseuse), 1895
Dishes and Fruit, 1901
Luxembourg Gardens, 1901
Les toits de Collioure, 1905
Nu (Carmelita), 1904
Self-Portrait in a Striped T-shirt 1906
The Young Sailor II, 1906
Vase, Bottle and Fruit, 1906
Blue Nude, 1907
La coiffure, 1907
Madras Rouge, The Red Turban, 1907
Le Luxe II, 1907?08
Odalisque au fauteuil noir 1942 Oil
Portrait au manteau bleu 1935 Oil
Danseuse dans le Fauteuil, sol en Damier 1942 Oil on canvas
Les Pivoines 1907 Oil on canvas
Les trois baigneuses (Three Bathers), 1907
Still Life with Dance, 1909
Still Life Checked Tablecloth 1903
Luxe, calme et volupte(사치, 평온, 쾌락), Oil
Woman with a Hat 1905 , Oil on canvas
Le bonheur de vivre(삶의 기쁨) 1905-1906, Oil on canvas
마티스의 대표작 <삶의 기쁨>이다. 이 목가적인 그의 대작 <삶의 기쁨>은 그의 장구한 화력(畵歷)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야수파로서 그의 절정을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단계를 넘어서는 방향타이기도 했다. 이것은 오랫동안 비평가들에 의해 공격의 목표가 되었던 그림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1920년경 미국인 컬렉터 앨버트 반즈가 구입한 이래 반즈 재단에 소장되어 있다. 그러나 반즈 재단의 소장품 공개 방침은 대단히 엄격해서, 작품의 상설 전시는 물론 컬러 인쇄마저 오랫동안 금지돼 있었다. 이 <삶의 기쁨>의 인쇄물도 역시 마티스가 사망한지 9년만인 1993년에야 처음으로 컬러로 된 책에 등장했다. 생전의 마티스도 반즈의 방침을 지지했다고 한다.
<삶의 기쁨>은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 그대로 화제(畵題)그 자체이다. 마티스는 오로지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사랑했고 감상자에게도 자신의 기쁨을 나누어 가지기를 바란 것이다. 밝은 빨강과 눈부신 노랑, 깊은 초록 등 풍요로운 색채로 가득 메운 화면 속에, 부드러운 긴 곡선은 그림 전체에 생동감을 만들어내며 나무가 되고, 수풀이 되고, 사람이 되었다. 풍요로운 자연에 온몸을 맡긴 채 사랑을 나누고, 꽃과 대화하며, 동물에게 피리를 연주해주고, 여럿이 모여 둥글게 손을 잡고 춤추는 이들의 모습은인류 태초의 순수했던 낙원이 아닐까. “내가 꿈꾸는 미술이란 사람을 불안하게 하거나 마음을 무겁게 하는 주제를 갖지 않는 것이다. 균형과 순수함과 고요함, 두뇌의 진정제 같은 편안하게 머리를 누일 수 있는 안락의자 같은 작품이다.” 과연 화사하고 평화로운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살아있는 듯한 따뜻한 생동감에 마음이 환해지며 기쁨으로 가득해 진다.마치 내가 푸른 들에서 맨발로 환희의 춤을 추고 있는 듯...
Dishes and Fruit on a Red and Black Carpet 1906. Oil on canvas
Oriental Rugs 1906, Oil on canvas
Still Life with Vase, Bottle and Fruit 1903~1906, Oil on canvas
The Bank 1907 , Oil on canvas
The Algerian Woman 1909 , Oil on canvas
Blue Table-Cloth 1909, Oil on canvas
The Conversation, c.1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