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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를 비는 시므이 19:16~23
16 바후림에 있는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급히 유다 사람과 함께 다윗왕을 맞으러 내려올 때에
17 베냐민 사람 천 명이 그와 함께하고 사울 집안의 종 시바도 그의 아들 열다섯과 종 스무 명과 더불어 그와 함께하여 요단강을 밟고 건너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
18 왕의 가족을 건너가게 하며 왕이 좋게 여기는 대로 쓰게 하려 하여 나룻배로 건너가니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할 때에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왕 앞에 엎드려
19 왕께 아뢰되 내 주여 원하건대 내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시오며 왕의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20 왕의 종 내가 범죄한 줄 아옵기에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 하니
21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대답하여 이르되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로 말미암아 죽어야 마땅하지 아니하니이까 하니라
22 다윗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너희가 오늘 나의 원수가 되느냐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 하고
23 왕이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에게 맹세하니라
24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내려와 왕을 맞으니 그는 왕이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의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의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더라
므비보셋을 질책하는 다윗 19:24~30
25 예루살렘에서 와서 왕을 맞을 때에 왕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냐 하니
26 대답하되 내 주 왕이여 왕의 종인 나는 다리를 절므로 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 그 위에 타고 왕과 함께 가려 하였더니 내 종이 나를 속이고
27 종인 나를 내 주 왕께 모함하였나이다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
28 내 아버지의 온 집이 내 주 왕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나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내게 아직 무슨 공의가 있어서 다시 왕께 부르짖을 수 있사오리이까 하니라
29 왕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 내가 이르노니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 하니 30 므비보셋이 왕께 아뢰되 내 주 왕께서 평안히 왕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그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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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다윗이 요단을 건널 때 전에 다윗을 저주했던 시므이가 와서 용서를 빕니다. 아비새가 시므이를 죽여야 한다고 하나, 다윗은 그를 살려 줍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을 맞으며 전에 시바가 자신을 속이고 다윗에게 자신을 모함했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시바와 밭을 나누어 가지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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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를 비는 시므이 19:16~23
다윗이 다시 왕이 되자 사람들이 그를 마중하러 나옵니다. 다윗을 저주했던 시므이는 보복이 두려워 1,000명의 베냐민 사람을 대동해 다윗을 환영하러 나옵니다. 시므이와 함께한 1,000명은 군사로, 다윗이 자신을 죽이지 못하도록 무력시위를 한 것입니다. 이에 다윗은 시므이를 죽이자는 아비새를 말리며 시므이를 용서합니다. 시므이의 사죄와 다윗의 용서는 진심 어린 사죄와 용서가 아닙니다. 시므이의 무력시위에 더는 싸움을 하지 않겠다는 다윗의 임시적인 굴복일 뿐입니다. 므비보셋의 종 시바는 자신의 아들들과 함께 사병과 배를 준비해 다윗이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도록 준비합니다. 시바는 자신의 거짓말이 들통나더라도 벌을 피하고자 다윗의 환심을 사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 더 깊은 묵상
다윗은 자신을 저주한 시므이가 나와서 용서를 구할 때 어떻게 대했나요?
진심 어린 용서는 아닐지라도 내가 용납할 대상은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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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비보셋을 질책하는 다윗 19:24~30
다윗은 므비보셋의 말을 믿지 못합니다. 자신의 폐위를 기뻐했다는 시바의 거짓말을 먼저 들었기에 다윗은 므비보셋을 의심해 왜 자신과 같이 가지 않았느냐고 질책합니다. 시바의 모함으로 요나단과의 언약이 흔들리는 순간입니다. 므비보셋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다윗의 판단에 맡기자, 다윗은 자신에게 잘한 시바도 챙기기 위해 재산을 반으로 나누라고 판결합니다. 사무엘서 저자는 다윗이 성을 떠난 날부터 돌아오는 날까지 므비보셋이 발도 씻지 않고, 수염도 깎지 않고, 옷도 빨지 않은 상태로 지내며 다윗의 떠남을 슬퍼했다고 기록합니다. 이는 시바가 거짓을 말했고 므비보셋은 신실한 사람임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 더 깊은 묵상
사무엘서 저자는 므비보셋과 시바의 말을 어떻게 평가했나요?
나는 참과 거짓이 혼재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진리를 분별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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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에게 필요한 ‘그것’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교회로 손꼽히는 라이프교회의 크레이그 그로쉘 목사에 따르면 성공하는 목회자에게는 공통적인 ‘it’(그것)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it’이란 정직함·인내·끈기 등을 포함하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무엇입니다. ‘영적 매력’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는데, 저는 이 말을 ‘하나님 닮은 모습’이라고 설명하고 싶습니다. 목회자뿐 아니라 모든 리더에게 이 ‘it’이 필요합니다. 목회자가 교회에서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을 전하듯이, 성도는 세상에서의 삶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오래 참으심, 긍휼을 나타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직장이나 가정에서 누군가와 불화가 생겼을 때 무조건 원수처럼 대하고 척지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닙니다. 상대의 생각을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상대방이 아무리 잘못을 했어도 진심으로 사과한다면, 받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진솔한 대화가 오고 갈 수 있는 창구를 열어 둬야 합니다.
여기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이 ‘실수하지 않겠다, 잘 하겠다’고 약속해도 또 실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성품이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기에 ‘저 사람은 원래 저렇구나.’라고 인정하며, 불편하더라도 인내로 감내하며 함께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닮은 성품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억울하고 섭섭해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행위를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목회 멘토링 / 김관성·최병락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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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사무엘하 19장 22~23절
압살롬을 피해 도망하는 다윗에게 가장 큰 모욕을 주었던 시므이가 승리한 다윗에게 찾아옵니다. 아비새가 그를 죽이겠다고 나서자 다윗이 아비새를 저지합니다. 다윗은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서 시므이를 자기 백성으로 본 것입니다. 자신을 저주한 사람을 용납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은 다양한 사람을 용납하는 마음입니다. 비록 온전한 용서는 아닐지라도 저주와 기만을 용납하는 마음은 성숙한 마음입니다.
기도 안에 거하지 않는다면 시험 안에 처하게 될 것이다. - 존 오웬
오늘의 기도
하나님, 권력의 유무와 상황에 따라 사람을 다르게 대하는 모습이 제게는 없는지 돌아봅니다. 제게 유익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나님의 형상인 다른 사람을 무시했던 교만을 용서하소서. 편견과 선입견 없이 사람을 그 존재 자체로 볼 수 있는 마음과 눈을 허락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516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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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상황에 따라, 조건에 따라 돌변하는 사랑이 아니라 무조건적이고
한결같은 은혜와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합니다.
상황에 따라, 조건에 따라 돌변하는 것이 아니라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말과 행동에도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를 서운하게 했던 상황들이나 사람들에게 너무 마음에 쓰지 말고,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시켜 주시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격려를 기대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조건 없는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대하여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 드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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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을 아뢰는 것은 성도의 지혜이며 기쁨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은 다윗의 약점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유는 그의 실수를 통해서 배울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압살롬의 죽음으로 혼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보다는
자신의 생각대로 행했기 때문에 후에 더 큰 문제가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아뢰지 않고 우리의 생각대로 판단하고 결정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잘못된 판단에 대한 책임을 치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해야 하며,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뜻을 아뢰고 순종함으로 참 기쁨을 누리시는 여러분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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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슬픔도 삼켜야 하고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도 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시므이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약자에게는 강하고 강자에게는 한없이 약한 사람들 말입니다.
이런 기회주의자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우리는 분명한 중심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좇아야 합니다.
저는 이런 시므이를 용납하는 다윗에게서 내가 가야할 길을 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사람들을 용납하고 포용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성령의 음성으로 들려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시므이를 쳐내도 문제였습니다. 지금 나라가 흉흉합니다. 여러 갈래로 분열의 조짐이 보입니다. 그러므로 융화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다윗의 진심을 믿고 싶은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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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드리는 고백을 들으며 문득 그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는 시바에게 당한 일이 억울하지 않습니다. 므비보셋은 자신에게 주어진 재산을 거짓과 사기로 다 빼앗아간 시바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 마음 중심에 오직 다윗이 주신 은혜와 사랑만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죽은 개와 같았던 자신을 돌아보시고 아들과 같이 여겨주신 그 사랑을 생각하면 몸을 단장할 수 없었고, 의복을 갈아입을 생각도 못합니다.
다만 다윗의 얼굴을 볼 때, 비로소 그는 활짝 피어난 꽃망울처럼 웃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성도는 무슨 일을 당해도 억울하지 않습니다.
성도가 된 이유가 이미 죽었어야 할 존재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이 죽음에서 생명을 얻게 된 사실을 생각하면 억울할 일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생명을 얻게 된 것이 나의 힘과 노력과는 전혀 상관이 없이 예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면 더욱 억울할 일이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로 인해 억울한 일을 남김없이 당하신 예수를 생각하면 더더욱 억울해할 일이 없습니다. 다만 모든 일에 예수께서 베푸신 사랑과 은혜로 인해 감사할 일로만 다가올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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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을 일삼은 시바를 철저하게 응징해야 하는 것이 심판자의 역할이었지만 다윗은 모두를 용납하고 화해와 용서의 길로 이끌어 갑니다. 다윗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 가운데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고 자신의 아들들이 반복적으로 죽는 고통과 시련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해왔습니다.
한 인생을 부르시고 빚어가시는 여호와의 손길은 정금같이 나아갈 때까지 변함이 없고 포기될 수 없는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을 십자가로 몰아가는 이들을 향해서도 그 영적 전투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지 않고 온몸과 영혼으로 끝까지 감당해 내시며 영생의 문을 여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작은 사명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감사함으로 승리하는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시편103:10~11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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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왕권을 회복하여 귀환하자 베냐민 지파에서 두 사람이 맞으러 나왔습니다 한 사람은 시므이로 베냐민 사람 천 명과 함께 와서 용서를 구했습니다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시오며 왕의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왕의 종 내가 범죄한 줄 아옵기에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삼하19:19~20)
그때 아비새가 왕을 저주한 자는 마땅히 죽어야 한다고 법을 주장했지만, 다윗은 용서하고 죽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회개하거든 용서하라는 것이 주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눅17:3~4)
그의 회개가 진심인지 아닌지는 우리의 판단영역이 아닙니다 마음까지 달아 보시고 판단하시는 분은 오직 우리의 유일한 재판관이신 주님 뿐입니다 우리는 단지 주의 명령을 순종할 뿐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회복하시면 우리도 형제와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므비보셋이었습니다 다윗은 므비보셋의 종 시바의 모함 때문에 오해했었습니다 그러나 므비보셋이 수염도 깍지 않고 발도 씻지 않으며 옷도 빨지 않고 다윗이 돌아오기만을 진심으로 고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오해를 풀었습니다
그러나 전에 시바에게 속아서 므비보셋의 모든 소유를 가지라고 했던 터라, 왕명을 번복할 수는 없어서 재산을 반씩 나누어 가지라고 명했습니다 그러나 므비보셋은 왕이 무사히 귀환한 것과 오해가 풀린 것만으로도 만족하여 그가 다 가지게 하라고 고백했습니다
참으로 주께서 우리를 향하신 처음 뜻과 원래의 계획을 본래와 같이 회복하시는 줄 믿습니다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사1:26) "너희 옛 지위를 회복할 것이니라"(겔16:55) 그러므로 또한 우리의 형제들과 모든 오해를 풀고 서로 용서하며 화목하기 원합니다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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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므이는 다윗을 저주한 사람입니다. 이에 아비새는 시므이가 죽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21절)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한 시므이에게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합니다.(23절)
므비보셋은 사울의 자손으로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부터 품은자입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이 궁을 나갈 때 같이 가려 했으나 몸이 불편한지라 어쩔 수 없이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때, 므비보셋의 시종인 시바가 므비보셋에 대하여 모함하게 됩니다. 므비보셋은 이를 바로잡으려 합니다.
다윗왕은 이에 므비보셋의 재산 절반을 시바에게 줍니다. 시바가 므비보셋을 모함했을지라도, 그는 다윗을 따라나서서 끝까지 다윗왕을 도왔기 때문입니다. 직접 따라나선 시바에게 어느정도의 보상과 치하가 필요했습니다.
배신한 자에게는 용서를,
공을 세운자에게는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해줍니다.
용서를 하려면, 마음이 넓어야 하는 것도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하시며 자신을 지켜주시고 회복시켜주셨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을 무서워하게 되고 마음이 더욱 좁아지고, 두려움으로 둘러쌓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없애기 위하여 공포로 다스리게 됩니다. 승리하였지만 미래가 두렵기에 마음은 넉넉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신다는 믿음이 없으면,
용서해야 할 자가 아니라 없앨 자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보상은 중요합니다.
가끔 은혜 안에서 라는 말로 모든 것을 덮으려 하는 경우를 봅니다. 교회에서 지체들의 봉사나 헌신, 수고들에 대하여 위로와 격려를 보내는 일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는 일로 생각하는 경우를 봅니다. 이건 하나님의 지혜가 아니라 사람의 지혜라고 생각하는 경우를 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과을 받으시고 우리에게도 복을 베푸시길 원하십니다. 위로하시길 원하시고, 이 땅에서 우리의 수고와 헌신에 대하여 귀하게 여기십니다.
우리는 그 통로로서 서로에게 축복하고 채워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일들이 하나님의 위로로서 전달 되어야 합니다.
주변의 수고를 돌아볼 줄 알고,
주변에 품어야 할 사람을 돌아볼 줄 아는 눈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세밀하게 보고 보상해 주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실천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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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까?
모함한 원수까지도 용서하는 삶이어야 합니다(16~23절).
다윗 왕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길에 요단 강가에 이르렀습니다. 바후림에 사는 베냐민 사람 시므이도 천 명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다윗을 마중 나왔고, 사울 집안의 종 시바도 아들 열다섯과 종 스무 명을 데리고 마중을 나왔습니다. 시므이와 시바는 왕의 가족이 요단 강을 잘 건널 수 있도록 돕는 한편, 왕의 눈에 좋아 보이는 일을 하려고 나룻배를 가져왔습니다.
다윗은 시므이에게 죽음이 아니라 용서를 베풀어주었습니다. 죽어 마땅한 내 자신이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죄를 용서함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라도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 들 때에, 용서받을 자격 없는 나와 같은 죄인을 용서하신 그 십자가의 사랑을 기억하고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원수까지도 용서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간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억울한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삶이어야 합니다(24~30절).
그 때에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도 다윗 왕을 맞으러 내려왔습니다. 그는 다윗이 떠난 이후 발도 씻지 않고, 수염도 깎지 않고, 옷도 빨아 입지 않고, 애도하는 자의 모습으로 살았다고 말(24절)합니다. 왕은 그에게 시바와 밭은 나누라고 하지만 므비보셋은 시바에게 전부를 주라고 말합니다(30절).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재물보다는 왕과의 관계를 더 소중히 여기는 므비보셋의 충성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지만,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은 믿음의 온전함을 이룰 수 있습니다.
죄나 실수가 없어도 세상으로부터 오해와 핍박과 고난을 당할 수 있으며, 억울하게 모함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하며, 오히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혜로 인한 믿음을 갖게 하심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즉,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합 3:17)
감사하는 삶을 믿음의 사람답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환경과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심지어는 병에 들어 다시 회복될 가망이 없어 보인다 할지라도 죄인인 내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묵상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내 영혼이 구원을 받았다라는 이 자체가 가장 큰 감사의 제목임을 잊지 않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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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0절 : 바후림에 있는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급히 유다 사람과 함께 다윗 왕을 맞으러 내려올 때에 베냐민 사람 천 명이 그와 함께 하고 사울 집안의 종 시바도 그의 아들 열다섯과 종 스무 명과 더불어 그와 함께 하여 요단 강을 밟고 건너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환궁할 때 가장 먼저 다윗을 맞이한 자는 시므이였습니다. 그는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길 때 돌을 던지며 저주하고 조롱했습니다(16:5-8). 당시에는 다윗이 비참한 상태로 생을 마감하리라 생각했기에 그런 행동을 서슴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므이가 생각한 미래는 오지 않았고, 오히려 다윗 앞에 다급히 엎드려 목숨을 구걸해야 하는 상황이 왔습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앞날을 함부로 판단하고 행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21-23절 :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대답하여 이르되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로 말미암아 죽어야 마땅하지 아니하니이까 하니라
아비새가 지난번처럼 (16:9) 시므이를 처단하려 했지만, 다윗 역시 지난번처럼 (16:10) 아비새의 칼을 막았습니다. 다만 이전에는 하나님의 주권에 복종하는 신앙적인 이유에서 살려 두었다면, 이번에는 자기를 반대하던 자들까지 포용함으로써 자신이 모든 백성의 왕임을 보이려는 정치적인 이유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다윗에게 중요한 것은 사사로운 복수가 아니라 나라의 통합과 안정이었습니다.
24-30절 :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내려와 왕을 맞으니 그는 왕이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의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의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더라 예루살렘에서 와서 왕을 맞을 때에 왕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냐 하니
이전에 시바는 므비보셋이 다윗을 배반했다고 말했지만(16:3), 다시 만난 므비보셋의 초라한 행색은 왕위를 탐낸 자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므비보셋은 시바가 자기를 버려두고 가는 바람에 왕을 따르지 못했다고 해명했습니다. 다윗은 한 사람의 편을 들거나 둘 다 내치는 대신, 시바에게 모두 주었던 사울 가문의 재산(16:4) 중 절반을 다시 므비보셋에게 돌려줌으로 둘 다 자신의 나라 백성이 되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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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혜 베푼 자의 받을 복
1) 대접 받음
베푼 만큼 대접 받는 것은 변함없는 황금률의 진리이다. 이 땅에서 뿐만 아니라 하늘 나라에서라도 이 법칙은 지켜진다(마7:12).
2) 소원을 이룸
하나님은 많은 축복들 가운데 특별히 우리가 소원하는 의로운 바를 들어주시는 복을 베푸신다(마6:33).
3) 더 많은 것을 베품
많이 베풀고도 더 베풀 수 있도록 더욱 풍성한 축복이 허락된다(말3:10).
☆ 성경의 교만과 겸손
일반적으로 교만은 '근거없는 우월감을 심중에 품고 언제나 모든 일에 자기 자신이 중심이 아니고는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리키는데, 성경에서 말하는 교만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즉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인생과 우주에 대해, 나아가 인간 자신에 대한 주권을 마치 자신이 소유한 것처럼 착각하고 하나님께 대하여 방자히 구는 마음을 교만이라고 하는 것이다(시10:4). 이 때문에 성경은 교만에 대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반면에 성경에서의 겸손은 근본적으로는 자신의 참 존재를 깨달아(왕상9:6-14 ; 눅18:13,14) 자신의 삶의 주권이 오직 하나님에게 있음을 인정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리킨다.
따라서 겸손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미덕이나, 교만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이다. 또한 스스로의 겸손은 높아짐과 존귀히 여김을 받지만 교만은 낮아짐과 멸망의 선봉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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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하나님
환난의 때에 다윗은 하나님을 의뢰하며 보호를 간구했고 또 원수 갚아주시기를 바라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다윗을 건지셨습니다.
다윗은 이 은혜를 생각하고 자신이 대적에게 복수할 기회가 되었을 때 그 대적의 머리를 치지 않고 인자를 베풀었습니다.
예루살렘 왕궁으로 환궁하는 길에 다윗의 곁에 있었던 사람들 중에 시므이와 시바 그리고 바르실래와 므비보셋의 이야기가 기록된 말씀을 묵상합니다.
시므이는 다윗이 쫓길 때 돌을 던지며 저주하던 자인데
상황이 바꾸니까 다급하게 목숨을 구걸하고 있습니다.
시바는 주인을 모함하여 주인의 재산을 다 치지한 자 이고.
므비보셋의 진심을 다윗은 반신반의 했을까요
그럼 반은 너 가져라 하는 식의 답변이 다윗같지 않습니다.
이런 저런 일들을 보며
우리들의 인생과 다를 바 없는 다윗을 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음을 깨닫고
죄인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를 찬송합니다.
그리고 택하여 주신 한량없는 사랑을 감사 찬송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잠시 왔다가 먼지와 같이 사라지지만
우리를 통해 역사하시는 여호와의 큰 사랑과 한없는 긍휼은
영원히 빛난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우리의 삶을 통해 오직 아버지께 영광이 되고
우리의 발걸음을 통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만이
드러나는 시간 되도록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