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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리의 대학 시절을 추억하다
우리는 앉은 자리에서 맥주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은 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었다. 유럽 축구에 대한 이야기로 말문을 트여선지,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베컴이 어떻고 레알 마드리드가 어떻다는 이야기로 서로 무릎을 치며 얘기를 나누다보니 차두리 개인의 고민도 들을 수 있었다. 발 부상으로 긴 공백기를 가진 지 얼마 되지 않던 그는 선수 생활을 오래 지속할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축구에 대한 열정은 내가 만난 어느 누구보다 대단해서 맛깔스런 말투에 풍부한 축구 지식을 담아내는 차두리의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더군다나 80년대부터 2000년대를 아우르는 그의 축구 지식은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어서 그 무렵 이미 TV에서 축구 해설자 노릇을 하던 나에게도 경이로울 정도였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MBC가 그에게 해설위원 직함을 달아준 것은 절대 무모한 선택이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나 같은 서생이 책이나 위성TV 따위로 습득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축구 현장에서 고스란히 온 몸으로 빨아들인 체험들이 축적된 결과물이었으니 어느 샌가 나는 '화자'에서 '청자'로 입장이 바뀌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유로2000' 4강 이탈리아-네덜란드 전의 압도적인 기운을 얘기하던 때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이야기 도중 "그 경기가 대회 최고였지"라며 함께 엄지 손가락을 추켜 세우긴 했지만, 그 뒤로 나는 그저 맞장구만 칠 뿐이었다. TV로 지켜본 감동만으로도 충분했던 나와 현장에서 그 분위기에 흠뻑 젖었던 차두리의 감흥은 같은 성질의 것일 리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꿈에 잠긴 사람처럼 그 날의 기억을 끄집어내던 차두리의 맑고 뜨거운 눈빛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대표팀 발탁, 영광과 고난의 시작
차두리가 대중에 집중적으로 노출되기 시작한 것은 히딩크 감독이 그를 국가대표팀에 소집하면서부터였다. 이전 대표 경력이 전혀 없는 그를 히딩크 감독이 대표팀에 명단에 올리자 매체의 관심은 모두 차두리에게 쏠렸다. 이유는 하나, 그가 '불세출의 영웅' 차범근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자신이 이후 자서전에서 밝혔던 것처럼 그가 누구의 아들이라서 뽑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누구보다 강한 힘과 스피드를 지닌 차두리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한 히딩크 감독에게 그가 전설적인 선수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여론의 관심을 끈다는 점에서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것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이 일을 계기로 차두리는 축구 선수를 직업으로 갖는 것에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게 된다.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 '차두리'로서 축구 선수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 히딩크 감독은 그런 점에서 차두리의 주요 '멘토' 중 한 명이다. 히딩크 호에서 나날이 기량을 발전시키던 차두리는 대표팀 생활에 재미를 붙였고, '유럽 리그 선수'의 꿈도 본격적으로 가꿔나가게 된다.
하지만, 그 뒤 차두리에게 쏟아진 부담스런 시선과 경계의 눈초리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종종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시험 공부도 했던 ‘신문방송학도’이자 비교적 평범한 대학 축구 선수였던 차두리의 학창 시절은 그렇게 매몰되어 가기 시작했다. 사실, 본인의 대표팀 발탁과 상관없이 ‘태생’이 이미 유명인이었던 차두리에게 유명세 자체는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차두리는 태어날 때부터 ‘차범근의 장남’이었고 그런 이유로 한동안 그는 유명세에 의연하게 대처할 줄 아는 청년으로 컸다. (예를 들자면 이런 일도 있었다. 차두리의 대표팀 합류가 확정될 즈음, 명동의 한 실비집에서 함께 고기를 뜯은 적이 있다. 그 때만해도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긴 해도 그저 흘낏거리거나 말 한마디를 건넬 뿐이었다. 아무 상관없는 내가 괜히 안쓰러울 정도로 제3자들의 시선은 끊임없었지만 정작 차두리 본인은 익숙한 듯 개의치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신 뒤, 늦은 시각 명동 밀리오레 앞 대로변에서 30분 넘게 택시를 잡는 동안에도 차두리는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들에게 그냥 한번 씩 웃어준 뒤 지나가는 택시를 향해 계속 엄지 손가락을 양 옆으로 흔들 뿐이었다.)
2002년 월드컵은 차두리에게 영광과 고난의 교차점이다. |
벗어날 수 없어 더욱 힘든 ’2세’의 굴레
각계를 불문하고, ‘2세’들의 삶은 척박하다. ‘1세’들이 태생적인 비교 대상 없이 자신의 노력만으로 기량과 재능을 꽃피울 기회를 얻었다면, ‘2세’들에게는 그런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다. 대중 앞에 나타날 때부터 그는 이미 ‘1세’라는 막강한 경쟁 상대를 강요받는다. “아버지(혹은 어머니)를 뛰어넘겠다”는 말도, “감히 제가 어떻게..”라는 말도, 모두가 보도와 비난의 대상이다. 앞만 보고 달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환경에서 ‘2세’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1세’들은 느껴보지 못한 부담을 안고 싸워야 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능은 ‘선물’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가 될 수도 있다.
차두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표팀 발탁 이후, 그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바라보는 사람은 아마도 거스 히딩크 감독 뿐이었을 것이다. 모두들 “애비 덕”이라고 흘겨 보거나, “차붐만큼 하겠지”라는 폭력적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팀 성적을 극대화하겠다는 객관적인 목적 하에 그를 지켜본 것은 히딩크 뿐이었을 것이다. 선의든, 악의든, 당사자에게는 겹겹이 둘러싸인 장애물 틈에서 고난의 길을 걸어야 했던 차두리조차 자신에게 주어진 도약의 기회를 부담스러워하고 있을 정도로 주위의 눈초리는 매서웠다.
하지만,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차두리는 주위의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대표팀 동료들과 코칭 스태프들은 차두리를 택한 히딩크 감독의 판단에 공감했다. 결국 차두리는 2002년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고 몇몇 경기에서 팀에 기여하며 한국의 4강 신화를 도왔다. 이후, 차두리의 행보는 모두가 아는 대로다.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했고 여러 팀을 오가며 1부 리그와 2부 리그에서 많은 경험을 쌓고 있다. 대표팀에서도 꾸준히 모습을 드러냈고 때로는 박수를, 때로는 야유를 받으며 출전 횟수를 늘려나갔다.
분데스리가 1부 프랑크푸르트 시절, 골을 터뜨린 뒤 동료와 환호하는 차두리 |
하지만 일부 축구인들, 혹은 축구팬들의 시각은 여전히 왜곡되어 있다. 2002년 월드컵의 성과와 독일 리그에서의 풍부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차두리를 차두리로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이 여럿 존재하고 있다. ‘아버지의 후광을 입고’ 월드컵에도 나섰고, 독일에서도 선수로 뛰고 있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을 너무도 많이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그네들의 주장은 수 많은 사람들에게 모욕적인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단순히 차두리를 폄하하고 그의 태생을 질시하려고 했을 뿐이겠지만, 그런 주장은, 실은 그들이 존경하거나 높게 평가할 것이 분명한 인물들을 모욕하고 있다. 만일 차두리가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 들어갈 역량이 없는 사내였다면, 그에 대한 비난은 차두리를 택해 월드컵 본선에 데려가고 심지어 ‘앞으로 영원히 없을 지 모를’ 4강전에 선발로 내보낸 히딩크 감독을 무시하는 발언이다. 분데스리가 역시 마찬가지다. 유럽 프로팀들이 어떤 팀들인가. 돈을 더 얹어준다고 해도 우리 선수들 임대로도 받지 않는 팀들이 부지기수다. 펠레와 베켄바우어의 아들들도 모두 축구 선수를 했지만, 프로 선수로 자리잡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알렉스 퍼거슨의 아들도 아버지가 만들어준 기회를 못 살리고 하위리그를 전전하지 않았는가. 이런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근거없는 낭설을 퍼뜨리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인다. 당신이 프로 팀의 구단주라면, 단순히 ‘누구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선수를 고용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그것이 한 두 팀도 아니고 한 두 해도 아닌데 말이다.
대표팀에 발탁되거나 소속팀 관련 뉴스가 보도될 때면, 어김없이 관련 댓글이 따라붙는 현실에서 차두리는 심한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차범근의 아들’이라는 건 너무도 자랑스러운 사실이지만, 그로 인해 아버지의 이름이 자주 거론되고 늘 자신을 그와 비교하는 일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실제로 그는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을 누구보다 싫어한다. 사춘기 시절, 98년 월드컵 직후 집 현관문을 뜯고 거실까지 밀고 들어오던 언론의 무례함에 큰 충격을 받았던 그는, 한때나마 가졌던 ‘축구 기자’의 꿈을 일찌감치 접고 그 자리에 한국 언론에 대한 불신을 심었다. 매체에 등장하는 걸 가장 싫어하는 축구 선수를 꼽으라면 아마도 그의 이름이 첫 손에 꼽힐 것이다. 물론 이러한 그의 환경을 ‘태생적 한계’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 덕으로 많은 것을 얻지 않았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니, 그걸 극복하는 것은 본인의 몫이 아니냐고, 또 대중 매체에게서 등을 돌리는 건 잘못된 것 아니냐고 반문해도 틀린 말은 아닐 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방치하기엔 너무 각박한 것 아닌가. 게다가, 나는 그가 너무도 아깝다.
차두리가 소중하고 아쉬운 까닭
개인적으로 차두리는 한국 축구계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라고 본다. 현대 축구의 가장 치열한 현장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당시 유럽 최고 리그였던 분데스리가의 유소년팀을 통해 축구에 입문했고 자라서는 한국의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동료들과 뒹굴었다. 이후 월드컵 4강 멤버와 분데스리거를 거친 차두리는 그의 영원한 ‘벽’이라 할 아버지마저도 갖지 못한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다. 게다가 독일(유럽)과 한국 문화와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는 그는 태생과 경력 덕분에 누구보다 광범위한 세계 축구계의 네트워크를 확보한 대한민국의 축구인이다. 베켄바우어에서 아데바요르까지, 전화 한 통이면 연락이 닿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또 누가 있나. 한국 축구에 필요한 모든 경험과 재능을 한 몸에 갖춘 단독자인 셈이다.
하지만, 차두리는 벌써 지쳐 보인다. 아직 서른도 채 되기 전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보다 감추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다. 한국 언론에서 자신에 대한 기사가 나오거나 인터뷰 요청이 들어올 때면 한껏 움츠린다. 솜씨 좋게 거절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이 여린 청년은 ‘No’라고 말하기 보다 그저 외면하거나 사라져 버린다. 올 시즌이 시작되기 전, 선수 생활을 접고 이후의 나날들을 준비하겠다며 마음을 굳게 먹었던 차두리는 가족의 설득으로 생각을 바꿨고, 부상에서 복귀한 뒤 소속팀 코블렌츠의 상승세를 진두 지휘하는 중이다. 오직 팀에게만 집중하고 싶어하는 그는 지난해 말, 허정무 감독 부임 이후 대표팀 예비 엔트리를 정하는 과정에서 협회로부터 대표팀 합류 연락을 받았지만 힘들게 고사했다. 아직, 자신이 대표팀에 합류할만한 활약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생각도 이유였지만, 상처를 보듬고 자신감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대중에 노출될 기회를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게 또 하나의 큰 이유였다.
2006년 여름, 독일 뮌헨에서. 서혜부 탈장 수술을 받은 차두리는 친구 윤원씨와 함께 휴양 중이었다. |
’차범근의 아들’로도 행복할 수 있도록
그 동안 차두리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자기 인생이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을 지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주위의 눈총에 스스로가 경도된 탓이었을까. 자신에게 주어지는 모든 기회가 아버지 덕분이라 여겨졌고, 자신이 버는 돈도 자기 돈이 아니라고 여겼다. ‘차범근의 아들’이라는 딱지는 스스로 얻은 모든 기회에 대한 자부심을 갖지 못하게 했다. 자기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지 모른다는 무력감이 찾아왔다. 2부 리그 팀을 택한 것이나 대표팀 발탁을 고사한 것도 그러한 무력감을 떨치고 홀로 선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픈 그의 도전이었다.
혹자는 말한다. 어쨌든 부모에게 물려받은 조건이 좋아서 선수도 하고 외국 말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나는 이렇게 되묻고 싶다. 당신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 없는가. 그리고, 그 조건의 차이가 과연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냐고. 개인이 거부할 수도, 의도할 수도 없는 조건을 두고 그를 비난하는 건 그저 차별이다. 피부가 검다고, 신체적으로 장애가 있다고 비난하고 외면하는 차별 금지법이 존재하는 건 바로 그래서다. 누군가 부유한 재산을 물려받았다 하더라도 단순히 그 사실만으로 그를 비난할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누구는 화려한 외모를, 누구는 비상한 머리를, 누구는 부모의 막대한 부를 태생적으로 갖고 세상에 난다. 나도, 당신도 마찬가지다. 단지 그 종류에 차이가 있을 뿐 우리 모두는 부모에게서 무언가 다른 것을 물려받고 태어나며 자란다. 차두리에게는 그것이 ‘수퍼스타’ 아버지에, 뛰어난 신체 조건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말한다. 그가 차범근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대신 그 뒤에서 기회를 잃어버린 사람들도 있지 않느냐고.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단순히 누군가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무한정의 기회를 주는 게 프로 스포츠의 세계는 아니라고.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다. 프로의 세계는 잔인하다. 히딩크는 ‘차범근의 아들’에게 월드컵 출전 기회를 준 것이 아니라 ‘타고난 신체를 잘 갈고 닦은’ 유망한 선수를 발탁한 것이다. 분데스리가의 여러 팀들은 ‘차범근의 아들’이라 그를 뽑은 게 아니라 팀에 보탬이 될만한 선수를 발탁했을 뿐이다. 당신이 K리그 구단주라면, ‘피아퐁의 아들’을 무작정 팀에 들이겠는가.
잘하든 말든, 그대로 내버려두자
자기만의 영역을 갖고 싶은 것은 모두의 소망이다. ‘2세’들에게는 그런 욕망이 더 클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차두리는 달랐다. 그는 아버지를 존경하고, 아버지의 그늘을 사랑했다. 그렇게 행복할 수 있던 그에게 세상의 시선은 차가웠다. 그래서 그는 마음을 단련하고 생각을 다지며 자기만의 방을 찾았다. 그 곳에서 차두리는 차두리의 꿈을 꾼다. ‘차범근의 아들’을 벗어날 생각도,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을 모를 리야 없지만, 아버지의 그늘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능력만으로 보람을 찾을 수 있는 길을 만들려 한다. 예전부터 차두리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선수 생활보다 그 뒤의 인생이 훨씬 길고 재미있을 것”이라고. 오래 전부터 훗날을 꿈꾸고 그 날을 차근차근 준비하는 차두리가 늘 든든해 보이는 건 그래서다.
매우 특별한 환경에서 자라 이 땅의 누구도 얻지 못할 경험과 능력을 갖춘 그는 여전히 대학 시절처럼 밝고 희망적인 꿈을 잃지 않고 있다. 우려하는 것은, 한국 축구에게 더 없이 귀중한 능력과 경험, 비전을 가진 그가 혹시라도 드러나지 않는 곳으로 숨어버릴 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가 더 이상 숨지 않아도 될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보낼 수 있는 최소한의 격려가 아닐까. 어찌됐든 우리에게 한 순간이라도 웃음을 주고 희망을 주었던 사람을 대하는 데 우리는 너무 인색하고 차가운 면이 있다. 그럴 바에야, 그가 잘하든 말든, 그저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게,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고 자신이 받은 것을 언제든 돌려줄 준비가 되어 있는 그가 특유의 환한 웃음으로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머물 수 있도록, 조금은 긴 호흡으로 이제 잠시 그를 놓아주었으면 좋겠다.
축구전문가 서형욱 기사목록|기사제공 : 축구전문가 서형욱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260&aid=0000000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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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지금 코블렌츠에서 완전히 자리를잡앗어요 수비수로써 팀이 승리할때 어시를 기록하진못햇지만.. 어시나 다름없는.. 것들을 많이햇죠.. 수비로변경후.. 지금 코블렌츠는 후반기에 상승세를타며 8위에 등극되있고 독일분데스리가로 승격이 가능한 순위 3위와 승점차는 6점차!! 게다가 이번주 5위팀 쾰른과의경기.. 이경기에서 이긴다면.. 승격 경쟁할듯하네요.. 코블렌츠 승격하자!!!!
삭제된 댓글 입니다.
지금 수비수로 출전해서 쩐다고하네요.. 이팀 후반기에 상승세이니.. 독일1부리그로 승격하길 저는 간전히 바레요~
차두리 홧팅
ㅇㅇ 코블렌츠 승격하자!! 지금 리그순위 8위고 승격가능한 순위 3위랑 승점차 6점차니 해볼만하다!
며칠전 차붐카페에서 차둘선수에 관심 보이는 걸 봤는데 역시 바로 기사가 나오네요^^
두리차 분데스리가로 승격 ㄱㄱㄱ!!! 파이팅!! 축구선수로써의 전성기가 늦게 오는 선수도 많으니 힘내시길!
차두리선수 파이팅입니다!!!
차두리 지금 정도의 실력을 꾸준히 유지해 준다면 분데스리가 팀으로 이적할수도 있을듯....
2부리그인데 관중이 꽉 찼네 ㅎㄷㄷ
잘생겼구만
몸매ㅎㄷㄷ
쫄지마 두리차!!!!!!!!할수있어!!
마지막 사진... 레이저를 쏘는군요.
"현관문 뜯고 거실로 밀고들어오던" 기자들이 아니라 폭도들이구만...
눈물난다..ㅠ 차두리를 다시 보게 되네요.. 선수 생활보다 그 뒤의 인생이 훨씬 길고 재미있을 것..ㅠ 지금 현재를 열심히 살면서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는 그의 인생 마인드가 정말 멋있네요.. 그리고, 기자분들과 일부 일등지상주의에 눈먼 팬들은 잠시 버로우해주시길~
차범근도 저 나이때에 분데스리가 가지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