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함에서 나오는 감격이 예배다 (시2-50)
2026년 3월 9일 (월요일)
찬양 : 주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본문 : 시50:1-23절
☞ https://youtu.be/eI2d1P-nLDI?si=DBS2SQJvEN9gpP-p
어제 주일 작은교회들을 방문하여 함께 예배했다. 낮에는 결혼도 아직 하지 않으신 전도사님이 한 장로님 가정과 함께 섬기는 교회다. 올해 은퇴하신 장로님으로 교회를 충심으로 섬기시는 장로님 가정 그리고 열정과 진심을 가진 전도사님이 섬기시는 교회를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주님 ~
오늘은 내일 있을 중보기도 세미나를 준비하고 내일 오실 분들을 맞이할 준비하는 날이다. 이제 라마나욧선교회에서 내가 주관하는 마지막 수업과 같은 시간이라 마음이 새롭다. 오시는 분들에게 제대로 된 주님의 통로가 되기를 소망하며 오늘까지 최선으로 준비하여 한분 한분을 맞이하고 싶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지를 묻는 매우 소중한 말씀이다. 8절
‘나는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는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으로다.’
하나님은 마치 법정에 선 심판자처럼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제물의 양이나 숫자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삼림의 짐승들과 뭇 산의 가축이 다 내 것이라고 반문하신다. 그러면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우리에게 들려주신다. 14-15절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여기서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향하여 매우 당황스런 말씀을 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진정한 '제사'는
우리의 대단한 성과나 수고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분을 부르는 것(Call upon Me),
즉 은혜가 필요한 존재임을 고백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가장 영화롭게 하는 행위라는 사실이다.
감사로 제사를 드린다는 의미는 바로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는 표현이고,
또 환난 날에 주님을 부르는 행위도 같은 맥락임을 본다.
킴 켈러 목사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해드린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을 우리가 조종할 수 있는 대상으로 전락시킨다고 지적했는데 매우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하나님을 향한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거래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우리의 왕이신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를 드러내며 종됨의 자리에 서서 그분께 우리의 삶을 아뢰는 것이다.
그러면서 주일에는 예배에 경건한 척을 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세상과 타협하여 사는 종교인들을 향해 강력한 말씀을 전하신다. 21절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내 눈앞에 낱낱이 드러내리라 하시는도다’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제물과 종교적 행위 때문에 화가 나신 게 아니라, 그 제물 뒤에 숨어서 하나님을 만만하게 여기는 우리의 하나님을 향한 무지와 '가벼움'에 진노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시편 50편의 저자인 성전의 찬양대장으로 알려진 아삽은 이렇게 선포한다. 22-23절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자 없으리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여기 주목해야 할 단어가 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다.
여기서 '잊어버리다'(Shakach)는 지식의 망각이 아니다. 하나님을 삶의 계산에서 제외해버린 '실천적 무신론'을 뜻한다. 16절에 표현된 것처럼 입으로는 언약을 읊조리면서 삶에서는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행하는 위선자들을 향해, 하나님은 "이제 이를 생각하라"고 명하신다.
그러므로 감사로 제사를 드린다는 말은 뒤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와 연결되어 이해해야 한다. 앞의 18-20절에서 도둑과 연합하고 형제를 비방하던 그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통로로 삶의 방향을 수정하며, 하나님앞에 겸손히 한계를 인정하며 그 은혜에 온전히 기대는 예배를 말한다.
오늘 주님은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가?
솔직히 나의 예배에도 많은 부분 내가 무엇인가를 해서
주님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교만과 거래의 마음들이 존재했음을 시인한다.
내가 만물의 창조주시며, 모든 것의 주인되신 그분을
무엇으로 만족시킬 수 있단 말인가?
오직 은혜의 받아주심에 의해서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음을 고백한다.
은혜 아니면 나는 감히 하나님 앞에 설 자격이 없는 자이다. 오직 은혜로 나를 택하셔서 이 영광의 자리에 서게 하심을 감격하며 감사로 제사를 드리고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꾼 자로 오늘이란 삶이 주께 드려지기를 소망하고 기도한다.
주님, 나같은 연약한 자의 감사를 기쁨으로 받으시며 그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소중한 자리가 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 하루 죄인된 나를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온전한 감사로 예배하며 이 은혜의 감격을 가지고 세상을 은혜로 대하는 삶의 혁명을 이루는 날 되게 하소서.
한줄 묵상 :
<하나님은 우리의 가득 찬 제물보다, 그분의 은혜를 갈구하는 '진실한 무력함'을 더 영화롭게 받으십니다.>
적용 질문
1. 나는 입술로는 하나님의 언약을 읊조리면서, 정작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는 하나님을 계산에서 제외하는 자는 아닙니까?
2. 하나님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드려야 한다'는 종교적 강박이 오히려 하나님을 내 수준으로 조종하려는 교만은 아니었는지 돌아봅시다.
3. 내가 마주하는 '환난의 상황‘에, 내 힘으로 해결하려는 고집을 꺾고 오직 '감사'와 '부르짖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릴 영역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