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 독신제를 읽고] 정병경
조선일보에 시리즈 별로 연재중인 '숨어있는 세계사' 에 서민영 교사가 (2019.10.15.) 기고한 <사제 독신제>를 읽고 몇자 남겨본다. 인류 역사에서 종교는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다. 신을 향한 기도에는 구원의 간절함이 깃들어 있다. 그 손을 잡아주는 종교의 제도는 때에 따라 다르다. 사제의 독신제를 고수하는 종교가 있다. 신을 섬기기 위해 인간의 본능을 끊는다. 사랑의 행위를 죄악시하며, 생명 잉태를 금지한 제도이다. 내부적으로 신성함과 인간 본능이 끊임없는 충돌을 일으킨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독교가 세상에 드러난다. 그 순간부터 순수한 신앙 공동체가 아니다. 권력과 맞닿은 종교는 나름대로 제도를 만든다. 질서와 권력을 쌓게 된다. 엘비라 공의회에서 성직자에게 금욕을 명한다. 교회 질서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다. 사제가 결혼해 자녀를 낳는다면, 교회 재산이 세습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신앙 보다 권력의 순결을 지키려는 제도를 만든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다. 시리치오 교황이 미사 전날 아내와의 동침을 금하지만 사랑을 명령으로 끊을 수는 없다. 인노켄티우스 1세가 별거를 명분화하지만 분리할 수는 없다. 결국 1123년 1차 라테라노 공의회에서 사제 독신제가 제도화된다. 신을 향한 사랑보다 인간을 억압하는 규율로 남는다. 제도가 다른 형태로 되살아난다. 알렉산드로 6세 교황이 증거이다. 그는 금욕의 상징인 교황이나, 권력과 욕망의 화신이다. 제도는 완전한데 인간은 여전히 불완전이다.
넌즈시 묻는다. 특권을 누리는 교육자나 종교 지도자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 의문이다. 세속을 떠난 사람이라기보다, 세속을 다스리는 권력이다. 교단에서 신의 이름을 빌려 정당화한다. 진정한 종교 지도자는 법과 교리로 신을 증명하지 않는다. 그들의 설교가 신앙의 길이 되어야 한다. 독신과 결혼, 금욕이나 사랑의 선택 기준은 신 앞에서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종교의 병폐는 신을 이용해 통제하려는 데 있다. 신의 뜻이라며 인간의 자유를 막을 때, 종교는 이미 신으로부터 멀어진다. 믿음은 자유로워야 한다. 두려움 속의 신앙은 복종을 낳는다. 자유 속의 신앙은 사랑을 낳는다. 오늘날 교회와 성직자들은 다시 새겨봐야 한다.
후대 교단에 전하고 싶은 말이다. 신은 율법이 아니라 인간의 눈물 속에 있다. 사제의 독신제나 규율은 인간을 신에게 가까이 데려가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인간이 신을 닮는 것은 사랑과 자유를 누리기 때문이다.
종교는 사회의 거울이다. 윤리와 인간에 대한 존중을 중시해야한다. 깨끗한 종교는 국민의 마음을 맑게 만든다. 타락한 종교는 국가를 병들게 한다. 믿음은 사랑의 언어로 다시 태어날 때 비로소 국가를 밝히는 등불이 된다.
하늘의 뜻은 마음으로는 이해하게 된다. 신은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다. 사랑이야말로, 천 년을 이어온 독신제보다 더 위대한 믿음의 증거이다.
2025.11.09.
첫댓글 독신제
온 마음으로 신을 정의하신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신은 사림믈 사랑하는것~이라는
작가님의 의미를. 가슴에 새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