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 시절 선수단 앞에서 신고식 시킬 때 기막히게 춤을 잘 춰서 박수를 받았지만
그 이후로는 두번 다시 박수를 받지 못했다는 -0- 전설을 남긴
이 선수에 대한 이야기..
가 아닙니다.
이 선수는 거의 안 나오니 관심 없으시면 뒤로
94년 창단 2번째 트윈스는 우승을 합니다.
우승에 큰 공헌을 한 선수로는 94 3인방으로 불리우는 세명의 루키.
유지현 - 김재현 - 서용빈. 3명이죠..
모 이 선수들의 이야기야 모.. 다 아는 소리고
좋은 생산력의 타점 생산 능력을 갖춘 3루수.
두터운 불펜진. 좌타라인.. 등등과 함께 한 때 트윈스의 "성공의 공식" 이라고 불리웠던
거액의 거물 신인들 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역설적으로 유지현 - 서용빈 선수는 거액의 계약금을 못 받았죠 ^^
유지현 선수는 참.. 트윈스에 제대로 된 머리가 없거나
재물운이 없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시범경기 보니까 유지현 선수 없으면 시즌 들어가서
상당히 이종열로 땜빵하면서 여기저기 우왕자왕 했을 꺼 같던데..
신인 3인방 중 김재현 선수는 고졸 루키 라는 당시로서는 조금 특이한 케이스 였습니다.
연세대학교가 일본 전지훈련에 가있을 때, 트윈스의 스카우트 팀이
부친과 본인을 설득하여 얻어낸 쾌거라고 할 수 있죠
김동수, 이병훈, 송구홍, 이상훈, 유지현에 이르기까지..
트윈스의 대졸 신인들은 전력의 핵이었고
이들은 약간의 굴곡은 있었지만 루키 시즌부터 팀에 중요한 전력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 절정은 3명의 신인과 비록 시즌 중반에 부상으로 쓰러졌지만 10승을 따주었던 투수
4명의 신인이 전력에 힘을 보태주었던 94년 우승 시즌이 절정이었죠.
김재현 선수와 함께 이야기 해야할 선수는 옆동네 김동주 선수입니다
아마 시절부터 고교 최고의 타자들이었던 이 둘은..
지금 생각하면 조금.. 인생역전 같은 이야기인데
김재현 선수는 어려서부터 OB 팬으로, 베어스 어린이 팬클럽 회원이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김동주 선수는 MBC 청룡의 팬으로, 대학 입학 당시 트윈스에서 4년후에 꼭 지명하겠다
고 이야기 했던 걸로 알고 있고요..
세월이 흘러서 고 앞에 임선동 - 조성민 - 손경수 파동 도 있었고..
이런저런 이유로 주사위 싸움이 사라지고,
팀 별로 서울의 반을 뚝 갈라서 사실상 연고 지명 학교들이 생기고
(.. 베어스의 모기업 지원이 줄어들면서 약해졌지만 ..)
당시 해마다 번 갈아서 우선권으로 지명을 했고, 그해가 OB가 우선권이어서
내가 김재현보다 나아.. 하던
김동주 선수가 자존심도 상했을 뿐더러
- 양준혁 선수처럼 상무나, 실업에서 1년 쉬기에는 세월도 바뀌어 있었고-
결국 우루사 로 가고 말죠
93학번. 임뚱이
여느해였다면 대졸로 서울팀에게 1차 지명을 받았을 동봉철
서울랭킹 NO.3로 서울고가 정말 오랜만에 가졌던 에이스급 투수였던 손경수 등등의
피해자를 낳은 트윈스 - OB의 스카우트 전쟁속에
연세대로 향합니다.
당시 트윈스는 임선동 부모의 마음을 돌려 놓는데는 성공하지만
연세대 측의 자기선수 보호로 임선동 본인을 만나지 못하죠
들리는 말에 의하면 서울역에서 원래 플랫폼으로 안 나오고
임뚱이랑 무슨 부장이랑 철로를 가로 질렀다나 모라나..
94학번. 김재현이 일본에서 연대 야구부 훈련에 합류했다가
트윈스와 사인합니다. 연대로서는 환장할 노릇이었죠
작년에 서울에서 실패하니까 이제는 아예 비행기타서 일본에 왔습니다
이런 대학교 혹은 프로와 가계약 맺어놓고 튀어버리는 행위는
손지환 선수를 정점으로 한번 크게 터지고, 가라앉습니다
아마야구가 힘을 잃기도 했고..
메이저라는 더 큰 적을 상대해야 했기 때문에 ^^
그 후 연대는 프로와 상당히 대립각을 날카롭게 세운거로 알고 있습니다.
마침 프로야구 판에 강력한 도전자가 나타났으니..
"현대 피닉스"
사실 대학이 프로와 선수놓고 싸운다는 게 이상하긴 하지만
현대라는 탈출구가 있어서 달라지죠
문동환, 안희봉, 박재홍 등 연대 출신 스타 선수들이 당시 현대 피닉스 행이나
이들과 접촉을 합니다.
학교 측에서 프로구단과 마찰이 있어서 선수들을 몰아주었다는 이야기를 뒤로 하고
드디어 97년. 꿈의 93학번이라 불리웠던 선수들 중 대학행을 택했던 선수들이
프로에 뛰어들 해가 되었습니다.
그 중 동봉철, 박철홍, 손경수 등등 무수한 선수들의 눈물을 흘리는 와중에
지명권에서 홀로 벗어났던 조성민은 거인과 장기 계약을 했고..
임뚱은 일본 다이에와 계약을 하긴 했는데..
트윈스가 지명권을 내세워 발목을 잡고, 결국 성공합니다
임선동의 그 뒤 이야기는 모.. 그냥 넘어가고
그 한해 전. 96년 트윈스는 1차 1순위로 4억이라는 거액의 계약금을 지불하고
연세대 출신 이정길을 지명합니다.
프로 통산 1승 1패를 기록한 이 선수는 사실 자신의 기량 때문에 4억을
받은 건 아니었다고 합니다.
눈으로 확인 한 바는 아니지만, 기억하시겠지만 잠깐 1군에 몇년만에 나왔을 때
사람들의 실망이 대단했습니다
공은 140 될랑 말랑에 변화구는 컨트롤 안되는 커브 같은 브레이킹 볼 하나.
이정길 선수의 대학교 성적은 - 직접 확인한 바는 아니지만 -
1,2,3 학년 때는 별 거 없었는데 4학년 한 해는 잘 했다고 합니다.
이 선수의 4억은 2가지 이유였는데..
하나는 스타 마케팅의 일환으로 역시 찌라시에 기사 내기 -- 였고..
다른 하나는 연세대와 임선동에게 일종의 구애를 한 거라고 하더군요
봐라. 너보다 못한 이정길에게 4억이다. 임선동 너가 오면 얼마겠냐.
그리고 연대 니들 이제 그만 화 풀어라.
결국 임선동은 법정 싸움 끝에 입단을 하긴 하지만,
2년간의 트윈스 생활을 마치고 현대로 향하고
이정길 선수는 단 1승만을 5이닝 선발승으로 거두고 마칩니다.
96년 입단 선수 중 2차 1지명으로 들어 온 손혁 선수가 쏠쏠한 활약을 합니다.
결론은. 김재현 스카웃은 성공했고 그 없이 94년 우승과
이후 트윈스의 성적은 힘들었고 실제 프렌차이즈 홈런 기록 보유자이지만
현재 건강에 꼬리표를 달고 다니고 90년대 말까지는 과대포장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던
김재현을 무리하게 대학교에 합류한 상황에서 선수 잡으면서
라이벌이었던 김동주 선수 스카웃 기회가 사라졌고
아마야구와의 대립속에
이정길에게 4억이라는 비싼 대가를 치뤘다는 겁니다
.. 아시겠지만 무리한 해석이기도 합니다 ..
그 후 연대에 입학원서 냈던 손지환 스카우트 파동 으로;; 휘문고 감독 사퇴와
대거 전학 등등
트윈스의 스카우트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높은 계약금을 동반하며
90년대 초반의 눈부셨던 대졸 거물 신인들의 입단과 활약...
을 뒤로하고
심재학, 조현, 이정길, 손지환, 김상태, 김경태, 장준관.. 등등
신인들이 비교적 높은 계약금과 기대 속에 입단하지만
각자 사정이 있었지만 적어도 "LG 트윈스"의 유니폼을 입고는
기대만큼 활약을 못해줍니다
이미 프로와 아마 야구의 격차가 벌어지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프로로 직행하는 케이스가 늘어나면서
한마디로 대학 야구의 수준이 예전보다 낮아졌는데,
트윈스는 90년대 초반 자신들의 성공을 불러왔던 "성공공식" 을 믿고
90년대 중후반에도
대졸 신인들에게 큰 기대와 많은 노력과 금전적인 노력을 쏟아 붓습니다
가장 선진적인 야구라는 이미지와
미국식의 마이너리그 시스템을 꿈꾸며 지금은 조금 부족해두 실력은 우리가 키우겠다..
거액의 계약금을 통한 네임벨류 만들어주기, 스타성을 만들어 주는 것은
입단 당시의 실력과 별개의 문제이다..
는 생각도 일조를 했고요
결과적으로는 대실패였습니다. 입단하고 한번 구리에 가면 거의 나오지 못했으니까요
트윈스 스카우터들이 너무 네임벨류에 의존해서 선수들을 지명한다.. 는 이야기도 있었고
성공의 공식의 결과는 기억하실껍니다..
심재학과 김광삼이 투수를 할 정도로 절박한..
한대화를 생각하며 데려왔던 홍현우에 이르기까지
90년대 초반의 성공공식을 2000년대까지 고집하다가 겪은 실패를
최종준 단장이 물러나고 어윤태 사장의 친정 체제가 시작되면서
어윤태 시절에도 3억원의 김광희, 4억의 박경수가 있긴 했지만..
이제 더이상 선수들의 봉이 아니다. 는 멘트가 수차례 언론에 공개되었고
최향남 처럼 구단 방침을 어기거나
안병원 이병석 처럼 끝났다고 생각되는 선수들에 대한 가차없는 방출
작년의 연봉협상
이름값보다 실속 위주의 지명은 현재로서는 별 활약을 못할 것 같지만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도루 실패했던 -0-
아마시절 최고의 수비수고 상무 출신인 - 김성근 감독님이 지명했다고 하네요 -
김우석 선수의 2라운드 1차 지명이 변화의 시작이겠죠
.. 여담인데 홈피서 선수들 프로필 보는데 김우석 선수께 잘못 나왔더군요
상무 갔다온 걸 모르고 나이 보고 제작자가 98년 지명이려니 하고 써논거 같던데
트윈스가 김우석 선수 데려온 지명권은 02년도 지명권입니다..
올시즌 신인들의 계약금.
몇천만원 차이 때문에 입단이 결렬되고 군대간다던 허용 선수.
예전 같으면 1억 2억은 가볍게 받았을 선수들.
대학교 4학년 1년간 성적으로만 놓고보면 NO.3 지만
대학교 4년간을 통 털어서는 가장 꾸준한 성적을 올렸고, 드림팀 소속이며
뛰어난 용모로 스타성도 있고 아마야구 심판이사의 아들이라는 흥미거리도 있는 심수창 선수가
일본 간다, 고소한다 고 엄포까지 놓았지만
결국 2억 조금 넘는 돈으로 사인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을
불과 1년 전 고졸포수 이성열 선수가 3억 가까이 받고 입단했던 것과는 너무나도 달라진 모습이죠
2004시즌 고졸 우선지명자인 장진용 선수의 계약금이 기억나십니까?
이 선수가 언론에 얼마나 노출되었는지? 그 앞의 김광희나 박경수에 비해
이제 트윈스의 프런트와 스카우터들이 과거 성공의 공식 중 하나를 버린 것 같습니다
최-최 콤비가 물러났으니..
어씨가 등장하기는 했지만 -0-
트윈스의 "성공공식"의 가장 큰 금전적 수혜자이지만
정신적으로는 피혜자이고
자신과는 별개의 외부적인 논리속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입단했던
이정길 선수는,
물론 역대 최고의 먹튀에 올라있긴 하지만,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강타자들인 김재현 - 김동주 라는 고리와
아마 최고의 투수였고 프로에서도 풍운을 일으켰던 임선동
거물 선수들의 스카우트 전쟁속에
끼인 희생양 이기도 합니다
현대와 프로야구의 돈싸움. 연대의 아마야구 자존심. 트윈스의 스타시스템
이런 요소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90년대 중반 한국 야구 시대의 단면에 비춰지는
선수입니다
그리고
트윈스가 다시한번 성공하기 위해서 버려야 했고 조금 늦은감이 있었던
"성공의 공식"의 지나간 표상 입니다.
혹은 후에 우승하고 팀이 정상의 전력을 갖추고 그 이유가 된 "성공의 공식"을 알아도
리그 상황과 시대에 따라서
"성공의 공식"을 바꾸고 다시 성립시켜야 할 필요성을 잊지 말아야 표상이고요
궁굼한것이 있는데요.. 임선동, 조성민 파동 이후에 LG와 OB가 과열 경쟁으로 인한 신인들의 몸값 상승을 막기 위해서 고교팀을 반으로 나누어서 스카웃 하기로 했었죠.. 여기까지는 님과 일치합니다만.. 제 기억으로는 당시 김동주는 OB관할의 팀이었기 때문에 LG가 스카웃 할 수 없는 선수였던 것 같은데요.
사실 조현이.. 김재현 선수 1년 후배지만;;; 1살 위입니다. 2번 유급.(운동 선수 유급은 모 행실이 나빠서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대부분 부상 때문이고.. 구대성도 2번 유급했고..) 그러니까 고2, 고3 때 나이로는 대학교 1학년, 대학교 2학년 자기보다 2살 어린 선수들을 상대했는데 이런게 스카웃에 고려 안 된게 좀..
스카웃 할 수 없는 선수였겠죠^^ 예전에 하일성옹의;; 인터뷰 보신 기억나시겠지만 ;;; 이것도 아이러니한데 김재현 선수는 대학을 생각하고 김동주 선수는 프로를 생각한다고 했었죠.. 알기로는 트윈스와 김동주가 접촉이 있었고 트윈스는 둘 다 먹으려는;; 심보가 있었는데.. 김동주 대학 간 사이에 세상이 뒤집혀서..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는데 주사위 안하고 해마다 번갈아서 우선권 갖게 되고 엘지가 조인성이 오게 되었을거에요.. 손지환 전만 해도 고졸은 거의 자유계약이고 지명권으로 고등학생 무더기로 찍지 않았는데.. 그 후로 라운드 확 늘리면서 지명권 보유 기간이 늘어나고 그때까지랑 지명권 내용이 확 바뀌고..
주사위로 하다가 OB가 계속 지니까 해마다 번갈아서 하는 걸로 바뀌었죠. 만약 계속 주사위로 했다면.. 혹시 김동주가 LG로 왔을 수도 있었죠.. 암튼 제 이야긴 김재현과 김동주의 스카웃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었다는 것이죠.^^ 다만 LG가 OB와의 밀약을 깨고 김동주까지 스카웃하려 했다는 이야긴 처음 듣네요.
이제 기억이 난다.. 김동주가 고대 들어갈 때 3학년 초만해도 프로 직행 생각하고 있었는데 트윈스에서 지금은 지명 못하니까 대졸로 유턴하면 입단시키겠다.. 모 그런 말을 흘린 적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맞을거에요.. ;; 그때 우선권이 엇갈리면서 뻥 친게 되서 감정이 상했다.. 였을거에요
이병규가 실패면; 트윈스 나머지 선수들 야구 관둬야죠.. 골든글러버인데 통산 0.309 - 0.369 - 0.478 에 93홈런 113 도루에 뛰어난 필딩을 갖춘 중견수입니다. 한시즌에 기록이 집중되었다는 약점이 있긴 하지만. MVP 레벨의 선수는 아니어도 어느 팀에서도 라인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할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조성민, 임선동, 손경수 이 시대 선수는 93이 아닌 92학번입니다... 그리고 이정길은 고교시절 배재고 있을 때 마치 문동환이 동래고에서 혼자 던지고 쳐서 4강까지 갔듯이... 이정길도 배재고를 혼자 던지고 치고 해서 4강까지 올려놨던 유망주였습니다. 대학 때 임선동, 문동환에 밀려 등판기회가 없었고...
그건 마치 정삼흠 선수가 고대시절 선동렬과 박노준에 밀려 등판기회가 없었던 것처럼... 그러다가 이정길이 4학년 때 본격적으로 기회를 잡죠. 문동환의 졸업과 함께... 그리고 국대까지 뽑힙니다... 그리고 1차지명... 4억은 많은 돈이었지만... 좋은 선수이기는 했습니다. 실제 입단 후 동계훈련 초기에는 굉장한 공을
조형인님 말에 공감합니다....부상 후 극복하는 과정에서 심적 강인함이 뒷받침 되지 못한 그 와중에 언론들....팀내 분위기...이런 것들이 합쳐저서 이정길 선수는....아마 노장진이나 김건우선수처럼 강한 정신력이 있었다면 그리고 언론에서 조그만 배려를 했다면 제기할 수도 있었던 선수입니다,, 이정길 선수.....
이상훈 선수도 꾸준한 성적이기 보다는 대학4학년때 성균관대전에서 14타자 연속 삼진을 잡으며 뜬 케이스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스타만들기는 이정길이나 이상훈이나 같은 케이스였고 이상훈 또한 당시 고대감독이 단언했던 "15승"에 못미치는 9승9패를 기록했었지만 그후로 그는 노력에 의해 대한민국 최고 좌완으로 태어
엘지가 주사위에서 연일 승리하면서 이상훈 같은 대박선수들을 잡고나서 당시 OB가 잡은 선수들 추성건 송재용 선수들도 지금 입단한다면 계약금 2,3억은 가능한 선수들인데 주사위던지기가 언론에 대서특필 되던 시기라 엘지에 입단한 선수에 비해 상대적 박탈감과 그런 경기 외적인 여러 요인에 의해 정신력으로 극복하지
솔직히 차명석 손혁 장문석 전승남 데뷔 당시에는 많은 기대를 받으며 엘지에 입단했지만 프로초기에는 상당히 부진했습니다. 이들이 보통 선수같았으면 위 선수들같이 잊혀져 갔겠죠. 정신력으로 어려운 시기를 넘어 LG를 책임지는 선수로 성장하게 된것도 정신력의 차이인것 같습니다.
이상훈도 어떻게 보면 거품 신인이었죠. 이상훈보다 한수위의 기량으로 평가받던 구대성보다도 훨씬 많은 계약금을 받고 입단했으니까요. 문제는 이상훈처럼 성공하는 사례가 극히 드물다는 것이죠. LG식 스타만들기 거품신인 만들기가 지난 10년동안 계속되어 왔는데 이상훈이후 이병규 조인성 정도를 제외하고는..
첫댓글 님이 쓰신 글인가요? 글 참 잘쓰시네... 전적으로 동감입니다...저도 올해 이상하게 선수들의 계약금이 예년에 비해 낮아졌다고 생각했었는데....사실 엘지 신인들 몸값 못한건 사실이고 실력에 비해 너무 돈만 많이 받은 선수들도 많은 건 사실이라 생각됩니다.
아... 이런 사실이 ....좋은 정보가 되었습니다 ^^
저도 동감입니다. 이런 속 사정들이 있었는 지는 첨 알았습니다. 이정길은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김재현은 그 당시 최고의 선수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조현은 아마야구에서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오면 홈런을 치던 선수 였는데.. 많은 도움 되었습니다.
궁굼한것이 있는데요.. 임선동, 조성민 파동 이후에 LG와 OB가 과열 경쟁으로 인한 신인들의 몸값 상승을 막기 위해서 고교팀을 반으로 나누어서 스카웃 하기로 했었죠.. 여기까지는 님과 일치합니다만.. 제 기억으로는 당시 김동주는 OB관할의 팀이었기 때문에 LG가 스카웃 할 수 없는 선수였던 것 같은데요.
사실 조현이.. 김재현 선수 1년 후배지만;;; 1살 위입니다. 2번 유급.(운동 선수 유급은 모 행실이 나빠서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대부분 부상 때문이고.. 구대성도 2번 유급했고..) 그러니까 고2, 고3 때 나이로는 대학교 1학년, 대학교 2학년 자기보다 2살 어린 선수들을 상대했는데 이런게 스카웃에 고려 안 된게 좀..
스카웃 할 수 없는 선수였겠죠^^ 예전에 하일성옹의;; 인터뷰 보신 기억나시겠지만 ;;; 이것도 아이러니한데 김재현 선수는 대학을 생각하고 김동주 선수는 프로를 생각한다고 했었죠.. 알기로는 트윈스와 김동주가 접촉이 있었고 트윈스는 둘 다 먹으려는;; 심보가 있었는데.. 김동주 대학 간 사이에 세상이 뒤집혀서..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는데 주사위 안하고 해마다 번갈아서 우선권 갖게 되고 엘지가 조인성이 오게 되었을거에요.. 손지환 전만 해도 고졸은 거의 자유계약이고 지명권으로 고등학생 무더기로 찍지 않았는데.. 그 후로 라운드 확 늘리면서 지명권 보유 기간이 늘어나고 그때까지랑 지명권 내용이 확 바뀌고..
주사위로 하다가 OB가 계속 지니까 해마다 번갈아서 하는 걸로 바뀌었죠. 만약 계속 주사위로 했다면.. 혹시 김동주가 LG로 왔을 수도 있었죠.. 암튼 제 이야긴 김재현과 김동주의 스카웃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었다는 것이죠.^^ 다만 LG가 OB와의 밀약을 깨고 김동주까지 스카웃하려 했다는 이야긴 처음 듣네요.
이제 기억이 난다.. 김동주가 고대 들어갈 때 3학년 초만해도 프로 직행 생각하고 있었는데 트윈스에서 지금은 지명 못하니까 대졸로 유턴하면 입단시키겠다.. 모 그런 말을 흘린 적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맞을거에요.. ;; 그때 우선권이 엇갈리면서 뻥 친게 되서 감정이 상했다.. 였을거에요
당초에는 트윈스에서 잡을 수 있다고 그랬는데 결국 못 잡았다.. 그거였던 거 같네요
OB가 이긴 적이 2번있죠 ^^ 유지현 - 유택현, 김기범 - 이진. 2번은 OB가 이겼는데 결과는 트윈스의 완승.
그랬군요.^^ 김동주 선수까지 LG로 왔다면.. 야구사가 확 뒤집어 졌을 텐데요. 이병규-김동주-김재현..^^ 유지현때는 주사위를 안던졌던 것 같은데요. 당시에 OB가 좌완이 급했거든요. 유지현이 4학년때 부상당한 것도 있고.. 그땐 LG가 운이 좋았죠.
김동주가 LG 왔으면.. 99년에 투수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ㅜㅜ
김동주가 고교때는 투수도 잘했죠.^^ 투수했어도 잘했을 겁니다.
역대 타자최고액이었던 4억4천을 받고 입단한 대졸 이병규도 실패인가요?
이병규가 실패면; 트윈스 나머지 선수들 야구 관둬야죠.. 골든글러버인데 통산 0.309 - 0.369 - 0.478 에 93홈런 113 도루에 뛰어난 필딩을 갖춘 중견수입니다. 한시즌에 기록이 집중되었다는 약점이 있긴 하지만. MVP 레벨의 선수는 아니어도 어느 팀에서도 라인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할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조성민, 임선동, 손경수 이 시대 선수는 93이 아닌 92학번입니다... 그리고 이정길은 고교시절 배재고 있을 때 마치 문동환이 동래고에서 혼자 던지고 쳐서 4강까지 갔듯이... 이정길도 배재고를 혼자 던지고 치고 해서 4강까지 올려놨던 유망주였습니다. 대학 때 임선동, 문동환에 밀려 등판기회가 없었고...
그건 마치 정삼흠 선수가 고대시절 선동렬과 박노준에 밀려 등판기회가 없었던 것처럼... 그러다가 이정길이 4학년 때 본격적으로 기회를 잡죠. 문동환의 졸업과 함께... 그리고 국대까지 뽑힙니다... 그리고 1차지명... 4억은 많은 돈이었지만... 좋은 선수이기는 했습니다. 실제 입단 후 동계훈련 초기에는 굉장한 공을
뿌렸었지만... 내성적인 그의 성격이 그가 부상을 당하게 만드는 큰 원인이 되었다고 하죠... 전 아까워하는 선수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엔님이 뭐하시는 분인가가 더 궁금합니다. 어찌 이 많은 정보를 알고 계신지...
조형인님 말에 공감합니다....부상 후 극복하는 과정에서 심적 강인함이 뒷받침 되지 못한 그 와중에 언론들....팀내 분위기...이런 것들이 합쳐저서 이정길 선수는....아마 노장진이나 김건우선수처럼 강한 정신력이 있었다면 그리고 언론에서 조그만 배려를 했다면 제기할 수도 있었던 선수입니다,, 이정길 선수.....
이상훈 선수도 꾸준한 성적이기 보다는 대학4학년때 성균관대전에서 14타자 연속 삼진을 잡으며 뜬 케이스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스타만들기는 이정길이나 이상훈이나 같은 케이스였고 이상훈 또한 당시 고대감독이 단언했던 "15승"에 못미치는 9승9패를 기록했었지만 그후로 그는 노력에 의해 대한민국 최고 좌완으로 태어
엘지가 주사위에서 연일 승리하면서 이상훈 같은 대박선수들을 잡고나서 당시 OB가 잡은 선수들 추성건 송재용 선수들도 지금 입단한다면 계약금 2,3억은 가능한 선수들인데 주사위던지기가 언론에 대서특필 되던 시기라 엘지에 입단한 선수에 비해 상대적 박탈감과 그런 경기 외적인 여러 요인에 의해 정신력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도태되어 갔다는걸 보더라도...하여튼 제 말의 결론은 제주야구메니아 님의 의견과 일치합니다.
솔직히 차명석 손혁 장문석 전승남 데뷔 당시에는 많은 기대를 받으며 엘지에 입단했지만 프로초기에는 상당히 부진했습니다. 이들이 보통 선수같았으면 위 선수들같이 잊혀져 갔겠죠. 정신력으로 어려운 시기를 넘어 LG를 책임지는 선수로 성장하게 된것도 정신력의 차이인것 같습니다.
이상훈도 어떻게 보면 거품 신인이었죠. 이상훈보다 한수위의 기량으로 평가받던 구대성보다도 훨씬 많은 계약금을 받고 입단했으니까요. 문제는 이상훈처럼 성공하는 사례가 극히 드물다는 것이죠. LG식 스타만들기 거품신인 만들기가 지난 10년동안 계속되어 왔는데 이상훈이후 이병규 조인성 정도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써먹은 선수가 없었죠. 손혁, 전승남의 경우는 2억에도 못미치는 경우고.. 실제로 3,4억원대의 돈을 받고 들어온 선수들중에 제대로 성공한 경우가 얼마나 되던가요? 4억대 계약을 할 정도라면 즉시 전력감은 되어야 할터인데 신인때 제대로 뛴선수는 얼마나 되던가요?
제가 이병규 들먹인건 거액의 돈을 준 신인은 다 망한거 같이 쓰셔서 그런건데..
김재현 선수 신일고 시절 이영민 타격상은 제가 알기론 조현 선수였는데... 정말 아쉬운 선수죠,, 조현 선수...
원래 김재현 선수가 수상해야하는데 프로계약 문제로 조현이 탔습니다... ^^
언제나 엘지문제는 팜시스템이 안좋다는거죠. 유망한 신인은 돈지랄로 죄다 들여놓고 제대로 키울 실력이 안되서 인생망쳐버리고... 우승 못한 10년동안 팜프런트문제만 해결했어도 앞으로 5번은 연속으로 했을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