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미국의 한 유력 일간지는 투수 노모 히데오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계기로 미국 국민들에게 '당신이 가장 만나고 싶어하는 일본인'을 묻는 설문조사를 했다.
결과는 1위 천황, 2위 브루스 리, 3위 고질라였다. 미국민들의 아시아에 대한 무지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동양인으로서 아직 브루스 리를 능가하는 스타가 없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브루스 리. 이소룡. 사후 30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그는 용의 이미지로 남아 있다.
그에 대해 얘기할때 거론되는 영화는 '당산대형' '정무문' '맹룡과강' '용쟁호투' '사망유희' 등 고작 다섯편. 이 영화들은 미국에서 TV 연기자로 일하던 그가 중국으로 돌아와 찍은 영화들로 모두 71년에서 73년 사이에 완성됐다. 실질적인 활동 시기는 3년뿐이지만 그 이후의 홍콩의 권격 무술영화가 '이소룡 이전과 '이소룡 이후'로 구분될 정도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의 영화에는 이전의 무술영화에서 보이던 어설픈 슬랩스틱은 사라지고 없었다. 특유의 괴조음(怪鳥音)은 그의 쇼맨십을 보여주지만 스크린에서 보여지는 그의 카리스마는 그가 배우이기 앞서 탁월한 실전무도인이었던데서 기인한다. 그는 직접 '절권도'라는 무술을 창안하기도 했다. 절권도는 '벽돌은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격파 시범은 쓸모없다는 뜻)'는 말에서도 보이듯 철저하게 사람끼리의 대전에 초점을 맞춘 무술.
연극배우 출신 아버지의 영향으로 6세때 아역 배우 활동을 시작한 이소룡은 성장하면서 점점 불량소년이 되어갔다. 그의 장래를 걱정한 아버지가 미화 100달러와 편도 비행기표로 미국으로 쫓아보냈을 정도. 미국에서 덩치 큰 불량배들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무술을 배우기 시작한 이소룡은 곧 두각을 보였다.
중국 권법중 하나인 영춘권이 그의 무술의 모태이긴 하지만 그는 곧 세계의 킥복싱을 비롯한 다양한 격투기들을 흡수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쌍절곤은 필리핀 무술가 대니 이노산토에게 배운 것. 무술 사범으로서 그는 수많은 유명 인사들을 가르쳤다. 스티브 매퀸과 제임스 코번, 리 마빈 등 할리우드 스타들은 물론 농구스타 카림 압둘 자바도 그의 제자였다. 자바는 그의 유작이 된 '사망유희'에 악역으로 출연하기도 한다.
그가 무술가 이전에 댄서였다는 점도 이채를 띤다. 18세때 이소룡은 홍콩에서 열린 영국 식민지 차차차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적이 있다.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 그의 전설은 아들 브랜든 리(이국호)에게로 이어진다. 일찌기 홍콩 영화계에서 '재전강호'라는 영화로 대를 잇는 카리스마를 보여줬던 브랜든 리는 죽은 자가 무덤에서 돌아와 복수하는 영화 '크로우'로 아버지의 뒤를 잇는 액션 스타로 자리한다.
그러나 그 또한 영화 '크로우2'의 촬영중 어처구니 없는 오발 사고로 사망, '용의 아들'의 성장을 기대하던 팬들에게 2대에 걸친 불길한 운명을 다시한번 느끼게 했다.
물론 용의 아들이 사라졌다고 해서 이소륭의 후계자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홍번구'의 성룡, '애나 앤 킹'의 주윤발, 그리고 '브로큰 애로' '페이스 오프'의 감독 오우삼은 현재 할리우드에서 누구도 무시못할 명성으로 그의 전설을 잇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