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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원사화라는 고문헌은 우리나라 역사를 일만년이라고 저술하고 있다
또한 한국사 미스테리 60가지라는 이야기가 오래전부터 인터넷에 돌았고, 진위논쟁이 뜨거웠던 적도 있었다
더깨비 본좌도 실제로 프랑스인을 비롯 다수 서양인이 여러가지 다양한 지도에서
하북성(지금의 만주지방)쪽을 근세 조선영토로 그려놓은 지도를 본 바있고,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그 부하를 시켜 팔도총도를 그리게 한 지도에도
대마도를 조선강역에 넣었다는 걸 볼 수 있다.
또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김대건 신부가 1846년에 그린 조선전도(朝鮮全圖)를 보면
간도,한반도,독도,대마도까지 조선영토로 그려놓은 걸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승만 초대대통령도 2차세계대전 전후보상 협상회의인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맺을 당시, 미국에게 대마도는 원래 한국 땅이니 넘기라고,
미국에게 요구한 바 있고 거절당한 바 있다
그러나 반도사관을 추종하는 현 역사학계는, 이런 수많은 지도가 조선영역을 증명해줌에도 불구하고, 조선영역을 합리적인 근거도 없이 지멋대로, 압록강 두만강안으로 집어넣어 왜곡해 가르치고 있다. 물론 대마도도 배제시킨 채 말이다
이와같이 수많은 서양인, 그리고 토요토미히데요시, 김대건신부를 또라이로 만들어버리는 현 역사학계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현 반도사관을 추종하는 주류역사학계 그들이 그토록 추종하는 반도사관의 중심인 김부식의 삼국사(三國史)마저도 저자?허락도 맡지않고? 책이름마저 삼국사기(三國史記)로 격하시켜 버렸다.
한번쯤은 고대사뿐만 아니라 근현대사까지 통채로 왜곡되어 있는 현재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고, 반드시 집고넘어가야할 대목이다.
이런 관점에서 토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지나간 역사를 되돌릴 수 없다해도, 유불리를 떠나, 최소한 드러난 사실은 정확하게 사실대로 가르쳐야하는게, '역사학자로서의 양심이 아닌가' 현 반도사관 추종하는자들에게 한마디 외치며, 되묻고 싶다
"김대건 신부는 또라이가 아니다"
한가지 본좌가 집고넘어가고 싶은게 있다. 1만년 역사를 자랑? 하는 민족의 고대사를
달랑 김부식의 삼국사 중심으로, 일연의 삼국유사를 보충적으로 하는 2가지 사서로 설명이 가능한가?
다음은 한번쯤 생각해보라고 올린것이다,
본좌는 이중에 동의하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한국사 미스테리 60가지
1. 19C 독일인 '에른스트 폰 헤쎄 - 봐르테크'와 영국인 '존 로스'는 현재 중국영토인 '하북성'이 근대 조선의 강역에 포함되어 있다고 설명하였다.
2. 중국의 '중국고금지명사전' 마저도 '하북성'이 근대 조선의 강역에 속한다고 하고있다.
3. 몽고가 좋은 말을 얻기위해 제주도까지 와서 말을 사육했다는 것은 다시 되새김질해보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4. 삼국지의 위,촉,오 가 병력을 모두 합해도 실제로는 20만명 안팎이었다. 고구려나 백제의 전성기 병력은 100만명이었다.
5. 같은 해의 같은 달에 백제에선 가뭄이 들고 신라에선 홍수가 난다. 한반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6. 삼국시대를 비롯해 고려, 조선 시대에 이동성 메뚜기떼에 의해 입은 피해기록이 무수히 나온다. 한반도에는 이동성 메뚜기가 존재할 수 없다.
7. 청나라가 건국되고 청 왕의 명령으로 씌여진 '만주원류고' 라는 역사서에는 신라가 만주에 있다고 기록되어있다.
8.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비롯 각종 지리지나 고문헌에 나오는 지명을 종합하여 보면 한반도에서 찾을 수 있는 지명보다 찾을 수 없는 지명이 더 많다. 각종 문헌에서 나오는 모든 지명이 현재 중국에는 있다.
9. 김부식은 살수가 어디인지 모른다고 하였다. 고려시대의 김부식도 모르는 지명이 아무 근거없이 현재 청천강이라고 알려져있다.
10. 현재 내몽골 지역에서 고구려성터가 발굴되었다.
11. 바이칼 호수 주변의 부족들은 생긴것부터 풍속이나 문화까지 한국인과 소름끼치도록 닮아있다. 그들은 아직까지도 고구려칸이라고 불리는 동명성왕을 모시고 있다.
12. 치우천황에 대해 중국에서는 고리국 황제이며 묘족의 선조이고 동이민족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한단고기등의 사서를 보면 치우천황은 분명히 한민족의 선조이다. 묘족도 우리와 같은 민족이다. 바이칼 호수 주변엔 고리족이 지금도 살고있었으며 고구려 고려 등이 모두 고리 족에서 파생되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치우를 부정한다.
13. 백제의 유명 8대 성씨는 한반도에는 남아있지 않다. 모두 현 중국대륙에 있다.
14. 박혁거세의 무덤은 중국에서 발굴되었다.
15. 고려, 조선등의 무역 내역을 보면 한반도에서는 생산할 수 없는 것들을 수출하고 있다.
16.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의 연구에 의해 삼국사기의 천체관측기록이 한반도가 아닌 현 중국대륙에서 이루어진 것임이 증명되었다.
17. 한단고기는 우리 민족의 역사가 반만년이 아닌 일만년이라고 주장하는 고문헌이다. 현재 학계에서 무시당하고 있지만 박창범 교수에 의해 한단고기의 천체관측기록이 정확하다고 밝혀졌다.
18. 백제의 인구가 고려나 조선초의 인구보다 많다.
19. 고구려 수도를 묘사한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지금의 평양으로는 턱없이 작다. 현 중국대륙의 장안(시안)과 소름끼치도록 일치한다.
20. 당 13만 군에 의해 백제 수도가 함락된 후에도 백제 장군 흑치상지는 200여개의 성을 기반으로 당에게 저항해 당은 40만군을 증원한다. 만약 백제가 한반도에 있었다면 한반도 전체가 성으로 뒤덮여있어야한다.
21. 조선 초 인구가 37만명인데 1000년전의 국가인 백제나 고구려의 군인만 100만이었다.
22. 현재의 요동 요서 개념과 과거의 요동 요서 개념은 완전히 틀린다. 요동이 고구려 영토라 함은 현재의 요동반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 중국 대륙 내륙의 요동을 이야기한다.
23. 18~19c 외국인 선교사 또는 탐험가들이 작성한 지도에는 조선이 만주는 물론 중국대륙의 일부까지 지배하고 있다.
24. 현 중국대륙의 강소성 숙천과 산동성 즉묵시의 향토사학자들이나 향토지에 따르면 연개소문이 이 곳들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었다고 한다.
25. 현 중국대륙의 강소성 숙천 근처에는 성터가 있는데 이 곳 주민들은 고려성이라고 부른다.
26. 현 중국 대륙의 베이징 근처에는 고려영진이라는 지명이있다.
27. 고구려 고씨가 아직도 중국 대륙에 살고있다. 특히 장수왕 후손인 사람은 고구려 유리왕의 묘가 베이징 근처에 있다고 주장했으며 실제로 베이징 근처에 유리왕묘가 있다. 중국에서는 제후국 유리국의 왕의 묘라고 주장하고 있다.
28. 중국대륙에 있는 수많은 성들이 현지인들에게 예로부터 지금까지도 고려성, 또는 고구려성이라고 불리고 있다.
29. 백제의 의자왕, 흑치상지에 관련된 지명들이 중국대륙에만 존재한다.
30. 백제가 패망할 당시 지명이 한반도에는 없다. 그러나 중국대륙에는 모두 있다.
31. 삼국사기에 나오는 지명중 김부식이 모른다고 한 지명이 359개나 된다. 이들 모두가 중국대륙에는 존재한다.
32. 한단고기외에 한민족 일만년 역사를 주장하는 '규원사화'는 위서라고 알려져왔다. 그러나 규원사화 진본이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되어있다.
33. 중국의 고문헌에 나와있는 발음법으로 정확하게 한자를 읽는 민족은 우리민족밖에 없다.
34. 신라 수도에 있다는 토함산의 이름은 화산이라는 뜻이다. 또한 삼국유사, 삼국사기등에도 토함산의 화산활동이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현 경주의 토함산은 공교롭게도 화산이 아니다.
35. 한국 국사에서는 고조선이 망한 후 漢나라에서 한사군을 설치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중국의 문헌에서는 한사군을 설치하려다가 고구려 동명왕에게 참패해서 漢군의 수장들이 모두 육시(몸을 6등분하는 참형) 당했다고 기록되어있다.
36. 청나라 황제들의 성씨인 애신각라 는 신라를 잊지않고 사랑하겠다는 뜻이다.
37. 애신각라를 몽골어로 읽으면 아이신 지료 라고 발음된다. 아이신은 금(金)을, 지료는 겨레(族)를 의미한다. 신라의 왕족은 금(金)씨이다. 청나라의 원래 이름은 금(金)나라 이다.
38. 임진왜란 때 청나라 태조 누르하치가 조선 선조에게 '부모님의 나라를 침략한 쥐 같은 왜구들을 해치우겠다'는 요지의 편지를 썼다.
39. 금나라 역사서인 금사 를 보면 금 태조는 고려에서 왔다고 기록되어있다.
40. 청나라 황실 역사서인 만주원류고에는 금 태조가 나라 이름을 신라의 왕의 성씨에서 따왔다고 기록되어있다.
41. 송나라때의 역사서 송막기문에는 금나라 건국직전에 여진족이 부족국가 형태일때의 추장이 신라인이라고 기록되어있다.
42. 현재 우리나라 부안 김씨의 족보에 금 태조의 이름이 나와있다.
43. 백제 온조왕 13년 (BC 6), 5월에 왕이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나라의 동편에는 낙랑이 있고 북에는 말갈이 있어 영토를 침노하여 오므로 편안한 날이 적다."고 하였다. 지금 국사에서 배우는 상식으로는 백제 북쪽은 고구려로 막혀 있어야한다.
44. 1976년 평남 대안시 덕흥리의 무학산 밑에서 발굴된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유주자사 진에게 보고하는 13명의 태수의 그림이 그려져있는데 그 뒤에 관명이 새겨져 있다. 그 이름은 다음과 같다. 연군태수(하북성 보정부 서쪽의 완현부근), 광령태수(하북성 탁현의 군치), 상곡태수(보정부, 하문부 및 순천부 서남경계), 어양태수(하북성 밀운형 동쪽), 범양태수(북경의 서쪽), 대군태수(산서성 대동현 동쪽), 북평태수(북경지방), 낙랑태수(북경 동쪽의 하북성), 창려태수(산해관 남쪽), 요동태수(하북성 영정하 동쪽), 요서태수(하북성 영정하 서쪽), 현도태수(하북성 북경 서남쪽), 대방태수(창려,금주일대)이다. 유주는 북경일대를 말한다.
45. 중국의 역사서인 남제서에는 북위가 백제를 치려고 수십만의 기병을 파견했다가 패배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우리가 국사교과서에서 배운대로라면 북위에서 백제를 치려면 바다를 건너야한다. 기병은 바다를 건널 수 없다.
46. 고려도경에는 '고려의 강역은 동서 너비가 2천여 리, 남북 길이 1천 5백여리, 신라, 백제를 병합하니 고려의 동북(東北)쪽이 넓어졌다 라고 쓰고 있다. 송사(宋史),. 삼국사기 지리지, 고려사 지리지, 세종실록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들을 보더라도 역사서 원전에 의한 조선의 선조 국가들이 존재했던 곳은 모두 동서(東西)가 넓고 남북이 짧은 지역을 통치 영역으로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북송인이자 외국(外國)인 서긍이 직접 고려로 가서 보고 온 고려의 통치 영역의 지형구조가 동서(東西)가 넓은 구조였다고 했다. 현재의 한반도는 동서가 짧고 남북이 긴 지형이다.
47. 몽고에서는 징기츠칸의 어머니와 아내가 모두 고구려 사람이라고 전해진다.
48. 임진왜란 당시의 기록들(명사, 선조실록, 난중일기, 이순신전서, 임진전란사, 은봉야사별록 등) 을 자세히 살펴보면 지명, 상황전개, 위치, 방위, 거리 및 전후사정이 한반도에서는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49. 임진왜란 당시의 기록들에 나오는 지명들은 중국에는 모두 존재한다.
50. 난중일기의 원문을 직접 번역한 현역 해군 중령 최두환씨(해군본부 충무공수련원 연구실장)는 난중일기 번역을 하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는 지명을 추적하여 임진왜란의 무대를 중국 본토로 옮겨놓자 쉽게 풀려나갔다고 한다.
51. 임진왜란 당시 기록을 보면 왜가 침입해오자 조선의 왕은 서쪽으로 피신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상식적으로는 북쪽으로 피신해야 옳다.
52. 어제신도비명 에 보면 임진년에 왜적이 침입하여 부산 동래를 함락하고 여러길로 나눠 서쪽으로 진출했다고 기록되어있다. 한반도라면 당연히 북상 하는 것이 옳다.
53. 지도는 측량학, 수학, 천체학, 광학 등을 두루섭렵하고 있어야 제대로 만들 수있다. 한반도 전역을 3차례 둘러보고 정교한 대동여지도를 김정호가 만들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54. 김정호는 일제시대에 일제가 만든 교과서에 의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대동여지도가 공개된 것 역시 일제시대이다.
55. 대동여지도에 씌여있는 글에는 분명 조선의 강역이 1만 9백리에 달한다고 씌여있다. 글옆의 지도, 즉 한반도와는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
56. 조선의 중심지는 낙양이라고 쓰고있다. 한반도에는 낙양이라는 지명은 단한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낙양은 중국의 천년고도의 도시이다.
57. 세스페데스라는 포르투갈 신부가 16c 에 쓴 책에 의하면 꼬라이 또는 꼬리아라는 왕국은 일본에서 10일정도 걸리며 왕국의 끝은 티벳까지 달한다고 씌여있다. 또한 조선의 북쪽에 타타르가 있었는데 그것도 조선땅이다 라고 씌여있다. 타타르는 내몽고에서 활동하는 종족이다. 그리고 조선대륙의 강들은 수량이 풍부한데 강의 폭이 3레구아에 달한다고 씌여있다.
58. 루이스 프로이스 라는 신부가 쓴 조선의 강역에 대한 글에는 수량이 풍부한 강과 거대한 사막이 존재한다고 씌여있다.
59. 일제시대에 일본에서 불태운 우리 역사서가 약 20만권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딱 두 권만 남겨두었다.
60. 한국의 국사의 기초와 체계는 모두 일제시대때 일본에 의해 세워졌다. 현재 고등학교의 국사 교과서 역시 일제시대에 일본에 의해 씌여진 '조선사' 라는 책과 내용이 거의 똑같다.
첫댓글 지금은 눈이 아파서 못 읽겠지만.. 꼭 읽어보고 싶은 글이네.. 기대 기대 ㅎㅎ
이거 그대로 전부 반박한 글이 또 인터넷에 돌아다닌다. 그놈의 음모론 좀 지겹지도 않냐.
http://rx78gd.egloos.com/l8 여기 가보면 반박문 적혀있고. 그냥 1번 부터 10번까지만 봐도 내가 반박 가능한게 반이 넘는다 ㅡ,.ㅡ 헛소리 좀 그만하자.
글쎄 더깨비가 싣어놓은 한국사 60가지 미스테리가 꼭 틀리다고 볼수도 없어. 반박문도 여러개 돌아다니더만 내가 봤을때 반박도 어설픈거 많더라. 60가지 미스테리중에 아예 정사에 수록돼있거나 실제로 밝혀진 사실들도 많고... 또 반박론자들 웃긴게 백제와 북위의 싸움문제의 해석(바다건너 백제와 5번싸워~ 이부분)을 그저 남제서를 지나치게 믿는다!@$^!@#$^$!@#^ 이런식으로 해놓더라고. 웃긴건 이런놈들 대부분 다른부분에서 반도사관 옹호할땐 남제서의 내용을 쓰기도 한다는거지 ㅋㅋ 신뢰할수없다면서 왜쓰는지 도통 모르겠네. 더군다나 남제서는 중국 25사중 하나인 엄연한 정사이고.
잡설 많이 봤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한 예만 들자 금나라하고 신라 왕실 관계 그렇다면 조선왕실과 당나라의 관계는?ㅋ
단순히 김대건 신부 지도 뿐만아니라 로마 교황청에서 조선교구 지정할때 교구 강역표시한 지도에도 보면 간도까지 한국껄료 표기돼있다.
인구문제의 경우 나같은 경우는 미스테리가 됄순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고려,조선시기에 전염병으로만 수십만씩 골로간 기록이나오거든.. 또 과연 조선과 고려의 인구기록이 신뢰할수있는것인가에도 학자들이 의문을 많이제기하고(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참조). 그 과정에서 인구가 충분히 줄어들수 있었다고본다. 수십만씩 전염병,수십만씩 전쟁때 죽고 포로로 끌려간일들만 수두룩닭상인데, 조선왕조실록 데이터베이스 검색해보면 역병으로 몇만이 골로갔네~ 라는 기사들 수없이 많다.
비슷한사례로 유럽의 흑사병, 백년전쟁으로 인구수 급감.
그리고 고구려나,백제,신라의 위치에 관해서는 분명 지금 학계에서 쓰고있는 고구려,백제,신라의 강역(거의 한반도로만 국한됀)에도 문제가 있지만 지나치게 확장한 대륙사관역시 문제가 있다고 본다. 조선왕조실록 데이터베이스에서 고구려나,백제나,신라로 검색해보면 수백가지의 기록이 뜨는데 기록을 살펴보면 지리개념을 유추하는것이 가능하다. 가령 숙종땐가 의주부윤이 숙종에게 보고한내용(지방의 한 성을 이전하는데 어떻게 할것인가를 묻는)에 따르면 지금 성의 위치는 과거 옛 고구려국의 수백년 수도였던 고성(古城)국내성에서 30리가 떨어져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또 신하들이 왕과 함께 이런저런 역사얘기 하는장면중에 함경도를 지배했던 이런저런 나라들에 관한 언급에 고구려와,신라가 포함돼있고 이문제로 신하들이 논쟁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밖에도 고구려,백제,신라가 한반도에 일정한 강역,영토가 있었음을 과거 선조들이 인식하고 있었다는 역사적 사료들은 수없이 많다. 다만 문제는 기존의 식민사관과 지금 한국이 애들한테 가르치는 국사책처럼 고구려,백제,신라의 강역이 간단하진 않았을꺼라는것이다.
그리고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하다보면 선조들의 과거사(삼국시대)인식이 우리가 생각하는것 처럼 틀에박힌 지금식은 아니었다는것을 보여줄수있는 내용도 참 많다. 그리고 요동과 요하에도 수많은 조선인이 살고있다고 기록돼어있고 여기 사는 조선인들이 야만족들에게 침략을 자주당해서 중국과 이문제로 협의중이란식의 내용도 나온다.
최근 내가 조선왕조실록 검색놀이에 맛들려있는데 꽤나 웃기더라. 이걸 보면 과연 고구려가 자기꺼라고 발광하는 짱개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지 ㅋㅋㅋ 정조는 고구려,백제,신라 왕릉을 다치지 않게 잘 보존 하라는 명령까지 내린 내용이있고, 숙종은 을지문덕에게 호를 내린 기록이 있다. 그뿐만아니라 국방문제 관련으로 토론할때도 많은 장수나 신하들이 고구려의 예를 들기도 한다. 본문의 내용을 읽어보면 조선인들은 고구려를 자국사로 인정하고있음이 그대로 묻어나온다. 그리고 이외에도 그들이 고구려를 자국사로 생각했음에 관련됀 조선왕조실록의 기록들은 수십건이 넘는다.
반면에 중국은 중국 25정사 그 어느곳에도 고구려를 자국사로 인정하는 내용이없다. 도리어 당태종이 "우리의 자식들을 죽인 원수를 갚으러 출정한다"등의 지네역사로 인정하긴 커녕 개무시하거나 상종못할종족으로나 묘사한거나 널려있지. 븅신짱개들 ㅉㅉ
여튼 결론을 내리자면 이렇다. 최근 떠도는 한국사 미스테리60 가지 글은 내가 보았을때 맞는내용도 상당히 많고 지나치게 확장됀 해석도 있다는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반박글역시 완벽하다고 보기 힘들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건 분명히 담론돼고 넘어가야지 그저 이런 글을 딸딸이용자료라고 개무시하고넘어가선 안됀다는거다. 우리가 우리역사에 대한 충분한 고증이나 담론이 없는 사이 짱궈는 수조원을 들여서 마구잡이로 우리역사를 뺏어가고있다. "어머 고구려 유적에 기스가 났네~복원이 필요하겠어 ㅠㅠ 포크레인 기사 이리오세요~ 퍽퍽퍽 콰지지지지직. 자 이제 복원작업을 하자^^ 하고 중국식 건축법으로 복원ㄳ
->그리고 나서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 요청->한편으론 중국식 축성양식이잖아! 당연히 우리 역사 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 이런식으로 외국인들 세뇌. 지저분한 짱개새끼들 ㅋㅋㅋ
중국은 자국사 수천년에서 고조선,고구려및 한반도의 역사를 자국사로 인정한적 자체가 없다. 그저 최근에 들어서 어떻게든 과거역사를 활용해서 현실에 활용하기 위해서 개지랄발광떠는것 뿐이다. 이러한 중국의 역사,문화 침략은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됀다.
참고:조선인구는 초기에 550-750만 임진왜란직전에 1천만 조선후기엔 1700만으로 보는 설도 꽤 힘을 얻고 있다. 수험서에 실릴 정도면 뭐.
규원사화는 우리주류사학계에서는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북한에선 이미 사료로 인정하고 있다..위의 미스테리 60개도 뭐 다틀리다 이런식보다는 기존의 편협된 관점에서 탈피해보자는 것이다..
재밌는것은 송나라의 영웅 악비는 현재 중국사학계에서 '민족분열자'로 찍힌다는 거다 ㅋㅋㅋ
37만= 남자 성인가운데 일부 (천민제외) 즉, 대략적인 조선초의 인구= 200~300만 내외 정도로 추정. (완벽한건 아님.. 좀 예전에 봤던 거라 기억이 잘 안남.) 고구려,백제 군사 100만?! 전혀 확인 불가능.
46번. 통일신라의 최대 판도가 중국 사서를 보면 구당서: 동서 천리, 남북2천리 신당서: 동서 천리, 남북3천리이다. 하고자 하는 말은 영역에 관한게 사서 하나의 차이에서 천리가 차이난다. 둘다 백제,고구려 멸망이후의 신라를 지칭 하는데, 단숨에 천리가 늘어난 다는 것만 봐도 굳이 저 기록에 대해 매진하고 신봉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47. 일본에선 (겐페이전쟁때의)미나모토노 요시츠네가 오슈에서 죽지 않고 징기스칸이 되어 몽골 제국을 건설했다고 하는 기발한 견해가 있다. - 하룻밤에 읽는 일본사 참고
19. 고구려 수도를 묘사한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지금의 평양으로는 턱없이 작다. 현 중국대륙의 장안(시안)과 소름끼치도록 일치한다. =도대체 어느 사서에 그토록 정확하게 고구려 도성에 관해 나와있고, 얼마나 제대로 되서 장안성과 일치하는지 나부터 궁금하다.
4. 삼국지의 위,촉,오 가 병력을 모두 합해도 실제로는 20만명 안팎이었다. 고구려나 백제의 전성기 병력은 100만명이었다 =이것도 은근히 말 많다. 혹자는 삼국시대 촉나라 인구가 100만? 위나라가 3?~4?백만 정도라고 하는데 혹자는 그전 시대의 인구를 예로 들어 훨씬 많을거라고 하는 것도 본적이 있다.(이건 인터넷에서..) 과연 고구려의 인구는 어떤방식으로 측정이 되었으며, 군사수는 누가 세보았을까? ^^
43. 백제 온조왕 13년 (BC 6), 5월에 왕이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나라의 동편에는 낙랑이 있고 북에는 말갈이 있어 영토를 침노하여 오므로 편안한 날이 적다."고 하였다. 지금 국사에서 배우는 상식으로는 백제 북쪽은 고구려로 막혀 있어야한다. = 국사책 대로면 우리 고대사에 세워진 국가로는 고구려,백제,신라,가야(여러소국)만 있어야 한다^^.. 신라이전의 사로국시절은?! 사로국시절은?! 신라가 병합한 국가들은?! 백제가 마한을 치면서 세력을 규합한 것은?! 참고로 한국사 연표라는.. 단순히 연표만으로 된 책이 있었다. 거길 보면 수도 없이 나온 것들이 말갈의 백제 침략, 신라침략 등등이었다. 고등학생시절의 나는 궁금해서
평소 친분이 있는 국사선생님께 가서 여쭤보았다.(참고로 고구려사 전공, 석사) 그 선생님께서 대답하시길 굳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만주의 말갈과 같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으며, 그 기록 자체에 연연하지 말라고 하셨다.
굳이 환단고기를 부정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무차별적으로 아무런 고증이나 자료 없이 달랑 그 자료 하나만을 가지고 운운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이쪽 부류가 대부분 범하는 오류가 별다른 증거 없이 그 사서하나만을 신봉하는 것이다. 그들이 흔히들 싸잡아 욕하는 강단사학계는 최소한의 유적 혹은 유물에 대한 고찰, 진위여부 판단등을 통한 그들의 주장의 뒷받침 자료들을 마련하고 있다. 그리고, 역사는 단순히 전쟁, 영토만을 의미하진 않는데, 그쪽은 국수주의?! 좋게 말하면 민족주의에 목매어 단순히 전쟁, 강역에 관한 것들만을 치부한다. 이런것들은 좀 고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비판의 근거를 제대로 잡아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한때 역사를 좋아한답시고 환단고기 신봉하는 역사관련 카페에 가입한적이 있다. 근데 그들의 카페에 올라온 고려시대의 그림 하나를 놓고(대략 다층건물) 고려시대엔 이런식의 다층 목조건물들이 꽤 많았고, 뭔가 더 달랐다는 식으로 말을 했었다. 뭐, 나도 그 당시는 믿었었지만.. 지금 보면 콧웃음이 나올뿐.. 고려불화라고 한번만 쳐보기라도 하고 주장을 할 것을.. 하는 생각이 많이든다. 그들이 주장했던 그림은, 고려불화의 관경서분변상도라고 하는 그림으로,(인도 마가다국의 왕,왕자,왕비에 관한설화를 그린 그림)좀 기가 찰뿐..
강단 사학이 무조건 좋다는 것도 아니고, 재야사학쪽이 무조건 허무맹랑한 주장만 편다는 것도 아니지만, 재야사학을 신봉하는 대다수는 답답한 하나의 주장을 그대로 아무 비판없이 믿는 것 같아서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