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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ZZI_RRdVTGQ?si=1SRQGK0JgIh0ywQk
GUSTAV MAHLER SYMPHONY NR 8 Leonardo Bernstein
작곡과정
8번 교향곡의 작곡과정은 말러의 다른 교향곡과는 다소 달리 다소간 기록이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오해의 여지를 많이 남긴다. 말러는 1906년의 여름 역시 마이에르니히에서 보냈는데, 그 해 6월에도 여느 휴가 초와 마찬가지로 창작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이때 뒤에서 인용한 바대로 송가 'Veni creator spiritus'에 대한 아이디어가 갑자기 찾아왔다. 그는 즉시 곡 전체의 아이디어를 다음과 같이 적어놓았다.
1. 송가 :Veni creator spiritus
2. 스케르쪼
3. 아다지오
4. 송가 : 에로스의 탄생
같은 날, 그는 '에로스의 탄생'을 '에로스의 창조'라는 주제로 바꾸면서 주제를 스케치했는데, 오히려 이 주제는 말러가 오프닝 합창으로 구상했던 'Veni creator spiritus'라는 가사에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또 다른 엉뚱한 점이 역시 1악장에 관여되어 있다. 알마에 의하면, 말러는 반쯤은 잊어버리고 있던 이 강림절 송가를 가지고 1악장의 합창을 구상했다고 한다. 그런데, 분출하는 음악의 영감에 비해 가사가 충분하지 않아서 음악과 글이 잘 맞지 않았다. 말러는 흥분되어 비엔나로 전보를 보내 이 라틴 송가 전체를 다시 전보로 받아야 했다. 그리고 도착한 송가는 작곡된 음악과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알마의 회상은 나중에 인용되고 있는, 말러가 슈페흐트와 나눈 대화에서 우연히 고서를 접하게 되어 펼친 곳에 강림절 송가가 있었다는 말러의 얘기와는 완전히 다름을 알 수 있다. 이 두 이야기 중 하나만 접하게 된다면 상당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요지가 큰데, 에른스트 덱세이가 아주 절충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말러가 어디에선가 나타난 'Veni creator spiritus'를 가지고 곡을 붙이기 시작했는데, 작곡 과정에서 음악이 샘처럼 흘러나오 가사를 넘어버림으로서 나중에는 곡의 구조가 가사와 맞지 않게 되어버렸다. 말러는 한 문헌학자인 친구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고, 이 송가를 본 친구는 이 송가에서 하나 반 정도의 연이 부족하다는 것을 지적했다. 말러는 비엔나의 궁정 음악감독 루체에게 연락하여 전체 가사를 받아냈고, 이 가사가 도착했을 때 음악과 부족함 없이 들어맞는 것을 발견하고 말러는 크게 놀랐다는 이야기다. 라틴어에 정통한 우리의 말러 선생인지라, 6월 21일(편지의 날짜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 아마도 프리츠 뢰르에 의한 첨가)에는 친구인 프리츠 뢰르에게 이 편지를 보내 송가의 운율이 잘 맞지 않는다는 불평을 늘어놓으며 보다. '아름다운' 해석이 어디에 있는 지 물었다. 즉, 적어도 이전부터 말러가 이 텍스트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뢰르에게 보낸 7월 18일의 편지에서는 결국 이 송가를 따온 '빌어먹을 구닥다리 교회 서적(말러의 표현에 의하면)'에 몇 오류가 있음을 발견하고 이 송가의 권위 있는 새로운 텍스트를 요청하고 있다. 언제부터 말러가 파우스트의 마지막 장면을 이 송가와 연결하려고 했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다.
8월 18일 빌렘 멩겔베르크에게 도착한 편지에서 말러는 '8번 교향곡을 막 끝냈다'고 선언하고 있으며, 16일부터 사흘 동안 말러가 모차르트 페스티벌을 위해 잘츠부르크에 있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늦어도 15일까지 새 교향곡의 스케치가 끝났다는 것을 알 숭 있을 것이다. 잘츠부르크로 떠나기 직전 말러는 알마에게 마지막의 'Chorus Mysticus'을 들려주었다고 한다. 말러는 잘츠부르크에서 돌아온 뒤에도 8번 교향곡의 마무리에 몰두했고 이 방대한 작업은 8월 말에야 끝났다. 결국 6월 중순부터 약 10주가 걸린 셈이다.
초 연
1910년 9월 12일에 이루어진 교향곡 8번의 뮌헨 초연은 말러에게 예전에는 결코 경험할 수 없었던 작곡가로서의 성공을 가져다 주었다(이어진 오스트리아, 프랑스의 청중들도 모두 이 작품에 환호했다). 이 작품이 '천인 교향곡'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은 뮌헨 초연의 연주 지휘자인 에밀 구트만에 의해서이다. 뮌헨 초연에서 솔로를 포함해 858명의 성악가와 171명의 연주자가 동원되었기 때문이다. 이 연주회의 청중이 약 3400명이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홀 안에 있었던 총 인원의 약 25%는 연주자였던 셈이다. 이 규모는 베를리오즈의 '레퀴엠' 이후 최대였다. 이 대규모의 연주회를 위해서 뮌헨의 국제 전시 센터에는 지휘대를 포함해 많은 장비가 설치되었다. 이 연주회는 이미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에밀 구트만의 적극적인 홍보덕택에 도시의 모든 곳에 포스터와 사진의 붙어 있었고, 합창 리허설이 진행되었던 비엔나와 라이프치히에서도 마찬가지의 관심을 끌었다. 객석에는 당시를 대표하는 모든 문화인들이 이 이벤트를 보기 위해 앉아 잇었다.
라히르트 쉬트라우스, 막스 레거, 카미유 생상, 브루노 발터, 오스카르 프리트, 프란츠 샬크 등의 음악인들은 물론 많은 작가들과 그 시대의 가장 유명한 극장 감독 막스 라인하르트가 포함되어 있었다. 연주회는 완전한 성공으로 끝났고 청중은 물론 연주자들도 환호했다. 20분 정도 격앙된 갈채가 쏟아졌고, 연주회가 완전히 끝난 후에도 밖에서 많은 사람들이 말러를 기다리고 있어서 말러는 이 사람들을 뚫고 지나가야만 했다. 이 연주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말러가 몹시 마르고 창백했다고 전하고 있다. 이 시기는 말러의 메트로폴리탄 시절로서, 그가 딸을 잃고, 비엔나 오페라에서 사직 당하고, 한 차례 병을 앓은 후였다. 게다가 이 연주회가 있기 얼마 전 말러는 알마가 발터 그로피우스와 사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해(1910년) 1월 말러는 알마와 함께 토벨바트의 요양소에서 지냈는데, 그 곳에서 알마는 발터 그로피우스를 만났고 곧 매우 심상치 않은 관계로 발전했다고 한다.
멍청한 발터 그로피우스가 그해 8월 알마에게 편지를 쓰고선 말러에게 잘못 부친 바람에 말러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모든 이에게 독재자로 군림해온 말러였지만, 사실 그에게 있어 정신적 지주였던 알마인지라 그는 화를 내기 보다는 고민에 빠졌고, 알마는 결국 그를 떠나지 않겠다는 관대함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말러는 편지 사건이 있었던 며칠 후 이 새 교향곡을 알마에게 바쳤다. 이 모든 것을 안고 있던 말러가 마지막의 'Chorus Mysticus'를 지휘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왠지 감동적이다. 이 연주회의 성공으로 그는 다른 교향곡의 초연에 대해 제의를 받았다. 말러는 그 다음 해의 9번 교향곡 초연 제의를 거절했지만, '대지의 노래'를 지휘하기 위해서 다시 뮌헨으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그 다음 해 세상을 떠났고 이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두 텍스트의 조화
1부에서 사용하고 있는 송가는 학자 흐라바누스 마우루스(? - 856)의 작품으로, 2부에서 사용된 괴테의 '파우스트(1830년에서 1831년에 걸쳐 쓰여짐)와는 1000년 정도의 시간차이가 있다. 언어도 서로 달라서 하나는 라틴어로 쓰여있지만, 다른 하나는 독일어 문학의 본보기로 평가받고 있는 작품이다. 이런 두 시를 함께 연결시켜 사용하고 있는 말러의 의도는 무엇일까? 많은 학자들이 이를 나름대로 가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두 텍스트의 간격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말러가 처음에 두 송가 사이에 스케르쪼와 아다지오를 포함시키려고 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이런 차이를 극복하려는 의도였다고 가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단 두 악장으로 완성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말러는 이 두 송가를 연결시키려고 노력했다.
베베른이 전하는 바로는, 뮌헨 초연의 드레스 리허설에서 말러는 1악장의 'Accende lumen sensibus' 구절에서부터는 이미 '파우스트'의 연장선에 놓여, 이 부분은 전 작품의 축이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스 마이어 같은 학자는 매우 부정적이다. 만약 말러 자신의 이야기대로 마우루스의 라틴 송가가 '9세기 초, 이 시가 쓰여진 플다라는 마을에서 쓰여진 종교적 신념이 구술로서, 그 때의 시간과 지형이 종교적 경험'에 관한 것이라면 두 텍스트 사이에는 단지 병렬로 밖에 볼 수 없다고 가정했다. 도 그는 말러가 음악적으로 이 두 텍스트를 조화시키려고 했다면 이는 '종교적 시적 남용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반해 슈테판 슈트롬은 말러가 심리적으로 이 라틴 송가를 고찰하려고 한 것은 아니며 이 안에서 '절대성'을 추구하려 했을 따름이다라고 반박하고 있다.
H. J. 데 오엔스는 근본적으로 이 라틴 송가를 괴테가 해석한 적이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괴테는 이 송가를 '우주의 신에 대한 호소'라고 성격 짓고 있으며, 말러가 괴테를 읽긱 전에는 이 송가를 접한 적이 없다라는 데 오엔스의 가정은 알마에 의해서 확인되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되면 결국 두 송가를 나열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러는 마우르스의 송가를 괴테를 통해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어찌 되었건 콘스탄틴 풀로로스가 지적하고 있듯이, 두 텍스트는 모두 공통적으로 은총, 사랑, 계몽 등을 포함한 신학적 개념을 가지고 있으며, 괴테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 거의 모든 동기가 1악장으로부터 인용되고 있음으로서 적어도 음악적으로 이 두 작품의 조화가 시도되고 있다는 것은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작곡가의 말
사실 이 곡이 말러의 음악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있고 어떤 의미가 있는 진에 대해서는 말러가 1906년 8월 중순 잘츠부르크에서 리하르트 슈베흐트와 나눈 다음의 대화를 인용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이 대화 속에서는 이 대곡을 작곡한 말러의 자긍심을 충분히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3주 동안 새로운 교향곡, 내 다른 모든 곡을 준비과정 정도로 만들어 놓을 작품의 스케치를 완성시켰다. 이런 작품은 전에는 써 본적이 없는 것이다. 내용과 형식 모든 면에서 다른 모든 작품과 다르며, 확실히 내가 쓴 것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것이다. 이런 추진력으로 작품을 써 본적이 없는 것 같다. 그것은 번개와도 같이 나를 티고 간 비전이었다. 모든 것이 이미 내 눈앞에 서 있었고, 나는 그저 불러주는 대로 써 내려가기만 하면 되었다. ...이 8번 교향곡은 주목할 만하다. 우선 다른 언어로 쓰여진 두 시를 결합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파트는 라틴 송가이며, 두 번째 파트는 다름아니라 '파우스트' 2부의 마지막 장면이다. 다소 놀라우리라 생각한다. 나는 은자의 장면과 피날레를 영광의 성모와 결합해서, 이 부분들이 지금까지 듣기 좋고 약하게 해석되어 온 방법과는 다르게 표현하기를 바란 적이 있었는데, 곧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하루는 한 고서를 접하게 되었고, 송가 'Veni creator spiritus' 부분을 펼쳤을 때 모든 것은 그곳에 있었다. 첫 주제뿐만 아니라 1악장 전체가 놓여 있었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 은자의 장면에 쓰인 괴테의 언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찾지 못했다. 이 형식 또한 완전히 새로운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에 성악이 사용되는 교향곡을 상상할 수 있을까? 지금가지 나는 가사와 성악을 제안하거나 요약하고,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사용해 왔다. 나는 무언가 간결하고 피상적인 것, 가사로만 전달할 수 있는 것을 위해 성악에 의존해 왔지만, 여기에서는 성악 또한 악기로 사용된다. 1악장 전체에서는 계속 성악이 사용되긴 하지만 형식적인 면에서 엄격하게 교향적이다. 누구도 이런 것을 전에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 단순한 그 자체로서, 가장 아름다운 악기가 그 요구에 답하는 '진짜 교향곡'인 셈이다. 성악은 소리로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시적 사고의 전달자가 된다.
곡의 해석
말러는 전에 쓴 모든 곡은 이 곡을 위한 준비 과정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만들 것이라고 언급했다. 사실 이 공은 그의 다른 작품들과는 많이 동떨어져 있다. 단시간에 작곡되었고 선명한 종교적인 텍스트를 전체에서 사용하고 있어서인지 말러의 자아가 많이 투영되고 있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즉 팡파르도 없고. 행진곡 비슷한 부분은 1악장에서 등장하지만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행진이라고 분명히 부를 수는 없으며, 그나마 그렇게 주요한 동기로 사용되지도 않는다. 게다가 렌틀러도 없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말러의 곡 중에서도 이 곡만큼 동기가 서로 교환되고 있는 곡도 드물다.
1악장. Veni creator spiritus
흐라바누스 마우르스가 쓴 강림절 송가는 7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일곱 개의 연은 이사야서 11장 2절에 등장하는 영혼이 가진 일곱 개의 재능을 상징한다고 한다. 즉, 영혼, 지혜, 지식, 분별력, 힘, 통찰력, 그리고 신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 송가는 1000년을 내려오며 세부적으로 조금씩 다른 여러 버전이 존재하게 되었다. 말러는 여기에서 또 여러 단어를 대체시키고, 위치를 변경하고, 삽입하는 등 자신의 의도에 맞게 수정했다. 쇤베르크는 1악장의 조성 전개에 관해 언급하며 만약 자신의 학생이 이와도 같은 말도 안되는 화음을 사용했다면 다른 방향으로 인도했을 것이지만, 말러의 경우 이 조성들은 완벽하게 들어맞는다는 것에 감탄했다. 그는 모든 학문적 규칙은 이 곡으로 인해 수정되어야 할 것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게다가 쇤베르크는 이 곡의 규모에 꽤 깊은 인상을 받았는지 그 이듬해 작곡한 '구레의 노래'에서 이보다 더 큰 편성을 사용했다. 그러나 '구레의 노래' 역시 이 곡의 2악장처럼 줄거리가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드라마 형식으로 처리되어 이 곡의 1악장의 보여주고 있는 것만큼의 황당한 규모의 다성음악을 보여주지는 목하고 있다. 이 악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다성음악의 기교는 실로 놀라운 것이다. 두 팀의 합창이 들려주는 8성부에 소년합창과 8명의 독주자가 가세하고(8명의 독주자 중 소프라노 한 명은 2악장에서만 등장한다)., 오케스트라가 뒷받침을 한다. 그리고 많은 부분에서 이 모든 성부가 동시에 각각 다른 멜로디로 울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곡은 교향적 소나타 형식이다. 다소 축소되어 잇는 재현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시부와 발전부의 규모가 크다. 제시부에서는 제1주제와 전환부, 제2주제, 코데타로 연결되는 분명한 소나타 형식의 윤곽을 보여준다. 제1주제는 물론 'Veni creator spiritus'의 가사로 쓰여진 부분이며, 제2주제는 'Imple superna gratis'로 시작된다. 제1주제가 전 합창으로 불리는 웅장하고 힘있는 성격임에 반해, 제2주제는 독창자들에 의해 시작되는 보다 부드럽고 표현이 풍부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발전부는 오케스트라의 연주(etwas hastig, 다소 급하게)로 시작된다. 이어지는 'Infirma nostri corporis'에서는 새로운 소재가 등장하며'Accende lumen'으로 시작되는 부분(Mit ploetzlichem Aufschwung, 갑자기 힘을 가지고)은 전 악장의 클라이맥스를 구성하고 있기도 하다. 'Praevie te ductore'에서는 갑자기 이중 푸가가 등장하기도 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재현부는 제시부에 비해서 규모가 축소되어 있고, 코다가 뒤따른다. 학자들에 따라서 코다으의시작을 'Wieder frisch, 다시 정력적으로' 부분부터 간주하기도 하고 소년 합창의 'Gloria, gloria'로 간주하고 있기도 하다. 코다는 거대한 아첼레란도로서 모든 주제가 다시 등장하며 흥분된 상태로 끝난다.
이 악장에서 간간이 울리는 A와 A 플랫의 딥 멜이 주목할 가치가 잇는데 이 소리를 통해 말러는 초월을 그리고자 했다고 한다.
2악장. '파우스트' 2부 중 마지막 장면
이 악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텍스트를 합창과 독창으로 작곡한 것은 말러가 처음은 아니다. 몇 년 전 아바도의 녹음(Sony)으로 화제가 되었던 슈만의 '파우스트의 장면들'에서는 파우스트의 2부 중 이 부분을 포함한 많은 장면들이 사용되어 있고, 리스트의 '파우스트' 교향곡에서는 마지막의 'Chorus Mysticus'가 사용되고 있다. 말러가 사용하고 있는 이 텍스트의 내용은 죽은 후 마리아 숭배의 박사(Doctor Marianus)라고 불리게 되는 파우스트가 승천한다는 이야기로서, 내기에서 이긴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의 영혼을 데려가려고 하자 이런 저런 어린 천사들과 속죄하는 한 여인(그레트헨)이 성모를 꼬드겨서 파우스트를 그들의 편으로 데려간다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영강의 성모를 부르는 소프라노는 1부에서는 등장하지 않고 1시간 남짓 기다리고 있다가 2부의 마지막 즈음에만 잠시 나오게 되는데 한참을 기다리던 차례가 드디어 오게되면 단 두 줄을 부른 후 그녀의 역할은 끝난다(조수미가 시노폴리의 음반에서 맡은 것도 이 역할이다).
비록 독창자라고 부르기에는 그 역할이 너무 작지만 그리 비운의 역할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것이, 우선은 많은 역할이 그래도 누구보다도 지위가 높은 성모라는 점과, 말러가 이 역할을 영원의 여인으로 간주하여 많은 신경을 쏟았다는 점이다. 말러는 텍스트를 조금 줄였는데, 본문에서는 다른 교부들과 동등한 비중으로 등장하는 천사의 교부(Pater seraphicus) 역을 완전히 없애버렸고, 축복 받은 소년들의 몇 합창과, 마리아 숭배의 박사의 몇 구절들을 생략했다. 그러나 앞의 송가나, 말러의 다른 교향곡에서 사용된 텍스트들과는 달리 다른 언어나 구절로 대체한 경우는 거의 없다. 말러는 괴테의 시를 이미 완전한 것으로 보았던 것 같다.
1악장이 칸타타 스타일의 합창을 사용하고 있다면, 이 악장은 바그너의 '파르지팔'처럼 구원에 관한 뮤직 드라마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구조에 관하여 리하르트 슈페흐트를 시작으로 많은 학자들이 이 악장을 안단테(혹은 아다지오), 스케르쪼, 피날레로 구분하고 있다. 즉,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시작되는 안단테와 젊은 천사들의 합창인 'Jene Rosen aus den Haenden'으로 시작되는 스케르쪼, 축복 받은 소녀들의 합창 'Freudig emfangen wir'로 시작되는 피날레 세 부분이다. 이런 구분은 소타나 형식으로 구성된 1악장과 더불어 이 곡을 전통적인 교향곡 형태로서의 해석이 가능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시벨리우스의 단악장 곡인 7번 교향곡을 이런 구분으로 나누는 것이 설득력을 가지는 것과는 다리, 이런 해석은 말러의 경우 많은 현존 학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우선 많은 동기와 주제들이 1악장으로부터 인용됨은 물론, 2악장 내에서도 빈번히 교차되고 있다는 점, 이렇게 구분 짓기에는 이 곡이 너무 에피소드 중심이라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이 곡은 말러 중기의 교향곡 중 마지막 것이지만 그는 이 곡을 통해 이미 말기의 곡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내세로, 구원의 주제로 향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2. 음 반
8번 교향곡의 연주는 지휘자에게나 독주자에게나 어렵기 그지없을 것이다. 고음역 성악가들의 경우 높이 올라가는 것도 문제지만(소프라노 Ⅰ은 하이 C 까지 마구 치솟으며, 심지어 하이 C 에서도 약음을 요구하기도 한다) 고음에서 계속되는 반음진행도 만만치 않다. 보통 힘있는 성악가가 아니라면 이 음들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워낙 많은 성부들이 한꺼번에 울리는 데다 중심 조성도 불분명하기 때문에 각 성부가 그 소음들을 뚫고 자신의 멜로디를 잃지 않는 것도 쉽지는 않다.
8번 교향곡을 녹음하기란 더 어렵다. 누누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이 정도의 규모가 되면 실연에서의 다이내믹과 섬세함을 재생매체에 옮긴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우선 이 곡의 모노 녹음이 없다는 것도 이 곡이 가진 기술적 어려움을 어느 정도 입증한다. 디지털 시대에 이르러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녹음이 20비트니 24비트니 주장해도 어차피 재생 단계에서 16비트라는 한계에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희생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 때문에 녹음이 좋은 음반은 왠지 연주도 좋게 들린다. 필자에게 경제적인 면으로서나 시간적인 면으로서나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은 말러의 다른 교향곡에 비해 교향곡 8번의 연주가 그리 많지는 않다는 점이다(물론 상대적인 것으로서 10종은 훨씬 넘어간다). 이 여러 연주들은 제각기 이 거대한 녹음을 한정된 음향 속에 담고자 노력한다.
우선 하이팅크(Philips)와 번스타인(Sony)의 음반은 비교적 초기에 해당되는 연주들이다. 모두 나쁘지 않다. 하이팅크는 늘 그렇듯이 넉넉함을 유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왠지 공허해 보인다. 좋은 점이란 그의 새로운 말러 시리즈도 그러하고 콘서트헤보와 녹음한 예전의 말러도 그러하지만 늘 말러에게 있어 강박관념을 가지고 연주하는 다른 지휘자들과는 달리 남다른 여유로움이 연주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넉넉함 속에서 전개되어 가는 합창이 클라이맥스가 감동적이다. 하지만 때로는 바로 이 여유로움이 문제가 되기도 하는데, 이 넉넉한 템포 속에서도 이상하게 스케일이 크다는 느낌은 들지 않으며 전체를 흐르는 듯한 이상이 없다는 느낌이다. 번스타인의 연주도 일장일단이 있다. 그의 정열적인 초기 연주를 듣는다는 것은 언제나 흥분되는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음향과 합창의 수준이다.
첫째 1966년에 녹음된 이 음향은 SBM 방식의 리마스터링에도 불구하고 이 거대한 녹음을 담는데 힘겨워하는 인상이 역력하다. 두 번째로는 합창의 수준이다. 소년 합창이 우선 다른 음반들에 비해 산만한 발성을 내지만 어른들도 마찬가지여서 이 어려운 곡을 부를 만큼 높은 수준은 아니다. 이런 점 때문에 번스타인의 유동적인 템포가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완성도에서 추천하기에는 조금 부족하다. 쿠벨릭의 녹음(DG)도 마차가지로 초기 녹음 중 하나인데, 그의 다른 연주들과 마찬가질 담백한 표정과 꾸림 없는 표현들이 돋보인다. 쿠벨릭이 이끌어 가는 방식에서는 지나간 세대들의 표정이 많이 느껴진다. 곳곳에서 촌스럽게 변화하는 템포도 그러하고 절묘한 약음의 아름다움에 신경 쓰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음반 역시 녹음의 한계가 따른다. 멀리 선 합창에 비해 독창자들의 위치가 너무 앞으로 두드러져 있고, 파열음이 강조된 녹음은 총주에서 듣기에 조금 피곤하다.
조수미가 성모를 부르고 있는 시노폴리의 연주(DG) 역시, 다른 시노폴리의 말러와는 달리 괜히 용쓰는 표정들이 덜하기에 썩 어색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인상적인 부분도 없다. 몰론 때때로는 너무 힘들여 연주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어 듣는 이를 지치게 한다.
인발(Denon)의 경우 녹음은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 듣기에 편하다. 연주도 평화로운 부분들을 중심으로 매우 안정되어 있는 편이고, 드라마틱한 부분들도 깔끔하게 처리되어 있어 매우 인상적이다. 녹음도 비교적 괜찮은 편이어서 총주에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지 않으면서도 다이내믹한 편이다. 단지 인발의 음악 연출에서는 1악장 코다 등에서의 치열함이나 터져 나오는 클라이맥스의 느낌이 없다는 것을 지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점은 오자와의 연주(Philips)에서도 거의 비슷하다. 마젤의 연주(Sony) 역시 독특한 비인 필하모닉의 호른 음색과 비엔나 국립 오페라의 탄탄한 합창을 배경으로 두고 있기는 하지만, 다소 경직된 템포를 바탕으로 긴장감 등이 부족한 연주를 펼치고 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이 연주는 매우 안정된 진행을 들려주는 듯하면서도 다음에 올 악구에 대한 준비과정이 부족해서인지 별다른 흥분감을 주지 못하고 있고 몇몇 성부만이 살려져 있는 느낌이다.
그 다음에 로버트 쇼의 연주(Telarc)가 있다. 과연 합창 지휘의 대가답게 조금 무거운 듯하면서도 층층이 쌓아 가는 합창의 결이 돋보인다. 그러나 1악장 발전부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부분 등 템포가 분주해지면 그에 대한 민첩한 표정변화가 조금 부족하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번스타인이 8번 교향곡을 새로 녹음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는 점이다. 이미 뉴욕 필하모닉 및 여러 성악가들과 녹음 스케줄도 잡혀 있었다고 하는데, 번스타인은 그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지금 DG의 전집에 포함된 녹음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실황녹음을 담은 것이다. 이 녹음이 과히 나쁘지는 않지만, 번스타인이 그의 두 번째 말러 녹음에서 보여준 수준 높은 완성도를 생각할 때 정말 훌륭한 연주 하나가 나왔을 것 같다.
https://youtu.be/nxf3xtH31jA?si=ARLsfJl6JC-T1VT2
MAHLER | Symphony no. 8 | Netherlands Philharmonic Orchestra | Marc Albrecht | Concertgebouw
글쓴이 : 베토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