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축구팀은 오렌지 군단이다. 비단 축구팀 뿐 아니다.
다른 종목 대표팀도 오렌지 유니폼을 입는다...
그럼 왜 유독 네덜란드는 오렌지군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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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네덜란드 역사의 상당부분은 스페인으로 부터의 독립 투쟁에 관한 역사다.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 ‘오렌지’의 비밀도 이때 가야 풀린다.
스페인과의 독립 투쟁에 앞서 중세 네덜란드와 유럽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이 과정을 모르면 유럽사는 한국인에게는 골칫덩이일 뿐이다.
우리가 보는 중세 유럽의 나라는 왕이 전국을 지배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그냥 편의상 왕국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왕이 있더라도 왕이 다스리는 지역은 한정되어 있고, 실제 지배는 귀족들이 그 지역을 다스렸다.
왕은 명목상 전국을 다스리지만, 실제로는 왕이 있는 서울․경기만 다스리고, 충청도는 충청공작이, 전라도는 전라공작이 다스리는 식이다.
공작이 다스리면 공국, 백작이 다스리면 백작령국國이라고 하기에는 약해서 이렇게 불렀다.
이것이 비슷한 시기의 고려나 조선과 큰 차이점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서양의 역사가 쉽게 와 닿지 않는다.
그럼, 공국이란 무엇일까? 귀족도 계급이 있다. 공작, 백작, 후작 같은 것들이다.
공국은 귀족 중에서 제일 높은 귀족인 ‘공작’이 다스리던 나라를 말한다. 공국은 동양에서는 없었고 중세 유럽에서나 등장하는 국가형태다.
중세 유럽은 오늘날처럼 국경이 분명한 것이 아니었다. 힘 있는 지역의 호족이 군대를 동원해서 ‘내 땅이요’ 하고 선포한다.
그러나 왕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약할 때 ‘공국’이라고 부른다.
혹은 왕이 왕족이나 귀족인 공작에게 영토를 떼어 주어 다스리게 하면, 이 또한 공국이 된다.
이 영토를 ‘봉토’ 또는 ‘영지’라고 부른다. 이 공국이 힘이 세지면 왕이라 칭하고 왕국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세 유럽의 영토는 어떻게 차지하고 넓혔을까?
앞에서 본 것처럼, 왕이 영토를 뚝 떼어다가 “네가 다스려라” 한다거나, 전쟁을 통해서 영토를 차지하는 게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그런데 중세 유럽의 특이한 영토 획득 방법이 있다. 바로 결혼과 상속을 통한 영토 획득이다.
예를 들어 보자. A지역을 다스리던 공국의 귀족 아들과 B라는 공국의 귀족 딸이 결혼하면 두 땅을 다 다스리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태어난 아들이 C라는 공국의 귀족의 딸과 결혼하면, 아들은 A, B, C영토를 모두 다스리게 된다.
(물론 다른 형제가 있으면 “내 땅이다” 하면서 갈등이 생길 여지는 있다)
아니면, 딸이 시집 갈 때 영토를 떼어다 지참금으로 주는 경우도 있다. 유럽의 중세는 이런 식으로 영토를 넓혔다, 줄였다 했다.
네덜란드도 이런 결혼과 상속을 통해서 부르고뉴Bourgogne 공국의 지배를 받게 되는데, 이때가 14세기 쯤 된다.
부르고뉴 공국은 프랑스 동부에 있는 지역이다. 프랑크왕국의 지배를 받다가 필리프 1세재위 1363∼1404가 부르고뉴를 다스리면서 공국이 되었다.
이 필리프1세가 플랑드르 백작의 딸과 결혼하면서 플랑드르(네덜란드의 일부)는 부르고뉴 공국의 지배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뒤 아들 필립이 조약과 결혼을 통해 네덜란드의 다른 영토를 하나씩 편입하게 된다. 이로써 네덜란드는 부르고뉴 가문의 지배에 들어가게 되었다.
필립재위1419~67은 브뤼셀오늘날 벨기에의 수도에 살았는데 이 지역은 자기가 직접 통치하고 나머지 지역은 총독으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였다.
그래서 네덜란드 각 주는 총독이 다스렸는데 대부분 그 지역의 귀족들이었다. 총독 한명이 여러 주를 동시에 다스리는 경우도 있었다.
뒤에 보게 될 오라녀공 빌렘도 이러한 총독 중 한 명이었다.
자 다시 앞으로 가서, 중세 네덜란드 역사의 상당부분은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 투쟁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네덜란드는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다는 말인데, 네덜란드와 스페인은 2,000km나 떨어져 있다.
어떻게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다는 말일까?
스페인의 왕 카를로스5세가 그 열쇠를 쥐고 있다.
이 ⓐ카를로스5세는 엄친아 중에 엄친아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엄친아가 아닐까.
할아버지는 ⓒ막시밀리안1세인데, 오스트리아와 독일을 지배하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다.
할머니는 네덜란드를 다스리는 부르고뉴 공작의 딸 ⓓ마리 드 부르고뉴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영토가 아버지 ⓖ필립에게로 갔다가, 고스란히 다시 엄친아 ⓐ카를로스5세에게 상속되었다.
그럼 외가 쪽은 어떨까. 외할아버지는 ⓔ페르난도2세인데 스페인 아라곤의 왕이었다.
외할머니는 스페인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 여왕이다. 그리고 두 사람의 딸이 ⓗ후안이다.
후안이 ⓐ카를로스5세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친가 쪽 영토는 당연히 카를로스5세가 물려받았다. 문제는 외가 쪽이었다.
보통 외손자에게까지 영토가 고스란히 떨어지기는 쉽지 않은데 되는 집안 자식은 뭘 해도 되는 모양이다.
외할아버지 댁에는 마침 후손이 없어서 외손자인 ⓐ카를로스5세에게 스페인 땅마저 넘겨지게 되었다.
스페인이 가진 그 넓은 아메리카 식민지를 포함해서 말이다.
정리를 하면, ⓐ카를로스5세는 친가 쪽에서 오스트리아, 독일과 네덜란드를 받고, 외가 쪽에서는 스페인과 그에 딸린 해외 식민지를 받으니 입에 금 숟가락을 물고 태어난 셈이다.
나폴레옹이나 히틀러처럼 전쟁을 해서 유럽의 반을 지배한 경우는 있지만 부모 잘 만나서 이토록 넓은 영토를 차지한 경우가 어디 흔하랴.
어쨌든 이렇게 해서 네덜란드는 스페인과 한 집안으로 엮여버린 것이다.
카를로스 5세는 죽기 전에 스스로 동생에게 신성로마황제 타이틀과 오스트리아-독일 지역을 물려주었다.
그리고 스페인과 네덜란드 지역은 아들인 ⓑ펠리페 2세에게 통치하게 하였다.
우리는 앞으로 펠리페2세를 주목해야 한다. 펠리페2세는 스페인의 전성기를 가져온 인물이다.
그는 열렬한 가톨릭신자였다. 신교에 맞서 가톨릭을 지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1554년 영국 여왕 메리 1세와 정략결혼을 통해 신교를 견제한 인물이다.
하지만 도가 지나친 나머지 오히려 스페인의 몰락과 네덜란드가 독립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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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에........